[찬샘통문 8]도올 김용옥의 『상식』이라는 책
시애틀의 잠 못드는 밤이야 연인들의 밀당 때문이었을 테지만, LA의 밤(13-23일)도 잠이 깊이 들지 않았다. 시차時差 때문이 아니었다. 우국지사는 아니지만, 솔직히 ‘나라 걱정 ’때문이라고 말하자. 현지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의 <주역 계사전> 유튜브 특강을 듣으며, 『상식』(1월 23일 통나무 펴냄, 238쪽, 15000원)이라는 책을 펴냈다는 소식에 화들짝 반가웠다. 귀국하자마자 살 생각을 하니 마음까지 설렜다. 최근 시국에 대한 철학자다운 진단과 분석 그리고 전망이 담길 것이 확실했다. 자정부터 몰입해 완독을 하니 5시 20분. 시종일관 진진했다. 머리를 연속 끄덕이게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전 국민의 필독서라고 자신있게 강추한다. 좀 어려운 고전부분은 슬쩍슬쩍 넘겨도 좋다. 저자가 불과 20일만에 만년필로 써내려간 통렬한 ‘대강大綱’의 뜻을 이해한다면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힐 것이다. ‘석학碩學(큰 학자)은 이런 것인가?’ 혀를 연신 내두른다. 박식博識 때문이 아니고, 그의 투철한 역사관과 혜안에 따른 명쾌한 진단과 분석 그리고 미래 전망에 대한 생각이 놀라웠다.
부제 <우리는 이러했다>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어떠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는 ‘우리 민족’을 가르킨다. 3쪽에 걸친 목차를 본다. 비상계엄을 막고 윤석열의 탄핵가결을 이끈 것이 국민들이 이뤄낸 “인仁의 승리”라는 서막의 글을 시작으로, 단군(아사달)에서부터 고려, 조선, 구한말, 일제, 미군정까지 더트는, 종횡무진의 글을 읽으면 그동안 ‘망나니’ 한 놈 때문에 움추려졌던 두 어깨가 점점 펴지며, 무한한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보이며, 그때 보이는 것은 그 전과 천지차이"라는 말은 여전히 진리인 것을. 책 말미를 장식한 송창식의 <토함산에 올랐어라> 노랫말이 절로 흥얼거려진다. 진짜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읽어보시기 바란다.
책 제목 ‘상식常識’을 생각해보자. 앎이나 알고 있는 것(識)의 일상(常)이 상식이다.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지 않은가. common sense. 그렇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항상스러운(常) 식(識)’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벗어나면 ‘상식 밖의 인간’이 되어 비난받기 일쑤다. 지금의 윤석열은 처음부터 상식과 거리가 멀더니, 급기야 비상식와 몰상식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이 아닌 것이다(非人也). 전북의 방언으로, 온 국민을 뛰다 죽게 할 정도로 ‘애송(스트레스)’을 받쳐도 너무 받친다. 최소한의 염치廉恥도 없는, 그저 ‘똥자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동서양의 철학을 넘나든 현학衒學과 석학의 상징인 도올 선생이 화가 미칠 듯이 났다. 엉덩이에 큰 뾰루지가 난 지도 모르고 20일 동안 펜을 휘갈겼다. 탈고 후 짜내니 고름이 어마어마하게 나왔다던가. 역시 발본색원이 중요하다. 친윤 부역자들은 기다리라! 너희는 이미 죽은 목숨. 준엄하게 내란의 수괴를 꾸짖고 있다. 이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 우리 한민족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자랑스러운 민족인지를 고대로부터 차근차근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원한 역사혼(?)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터이지만, 그 뒤를 잇는 대구對句 <재세이화在世理化>의 깊은 뜻을 아시는가. 환웅천왕이 신시神市을 베풀고 그곳 세상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정치인 것을. 홍익인간의 ‘인간’은 우리가 지금 쓰는 ‘인간man'이 아닌 ‘사람사이(人間)’을 의미하므로 ‘인간세人間世를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환웅이 우리 인간세를 탐낸 것은 보편적인 도덕이 발현되는 인간세상을 이 땅에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될 일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한다는 것은, 맹자의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발현되는 사회를 이름이다. 이 네 가지는 각각 인, 의, 예, 지(仁義禮智)의 단초가 된다. 가여워하고, 부끄러워하며, 사양하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다면(그리고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것이다(非人也).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사람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人皆有不忍之心)’는 것을 아시리라. 불인지심不忍之心 이 바로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다. 그 기본조차 깡그리 무시하는, 정치政治의 정자도 모르는 이 땅의 '정치 양아치들'에게 경고하는 마음만은 청춘인 한 철학자의 애소哀訴가 차라리 서글프다. 그러면서도 알아야 할 것은, 고려 500년이고 조선 500년이다. 아니, 그보다 더 공자가 선망한 '군자의 나라' 동이東夷의 세상과 고도로 발달한 문명국가, 옛 대한민국의 궤적을 훑는다. 팔만대장경을 제작하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든 고려시대 비하인드 히스토리를 곰새겨 보자.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 28자는 우리 민족에게 무엇인가?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숱한 역경을 극복한 우리나라는 비록 ‘고난의 여왕’의 길을 밟았지만, 유엔에서 인정한 선진국의 위상을 다시 회복했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의의를 눈곱만큼도 알지 못하며, 관심조차 없는 잘못된 지도자로 인하여 미몽迷夢 속의 ‘무속巫俗의 국가’로 한순간 나락에 빠져, 지금 우리는 일촉즉발 국가 존망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왜 방법이 없겠는가? 제자 자로가 “선생님의 인생 목표가 무엇이냐?”고 공자에게 여쭈었다. 이른바 “자왈子曰”이다. “나는 늙은이들을 편안히 사시도록 해드리고(老者安之), 친구들에게는 신뢰감을 주며(朋友信之), 청소년(젊은이)들을 가슴에 품어주는(少 者懷之) 그런 인간이 되고 싶구나” 이것을 “늙은이들에게는 편안하게 느껴지고, 친구들에게는 믿음직스럼게 느껴지며, 젊은이들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석한들 무슨 문제이랴. 여기에 자유, 평등, 제도, 민주 등 거창한 말은 필요없다. 정치는 감정이요, 생활이요, 생명이며, 만족이 아니겠냐는 도올의 의역意譯이 돋보인다. 역시 도올 선생님답다. 더 나아간다. 늙은 사람들(老者)는 과거이고, 붕우들(친구. 朋友)은 현재인데, 더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少者. MZ세대)이 미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도 미래도 모두 현재를 바탕으로 엮어져 있지 아니한가. 그러니, 소자회지(少者懷之)!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과거(역사)를 알고, 미래를 창조할 젊은이들을 한껏 껴안고 희망을 주도록 하자. 정치는 새로움의 진화인 것을, 창조적 전진인 것을. 유홍준 님도 극찬했지만 도올의 ‘석굴암 예찬론’을 읽어보시라. 전세계에 우뚝한 보물 문화재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 새벽 <토함산에 올랐어라> 노래를 힘차게 불러본다.
<토함산에 올랐어라/해를 안고 올랐어라/가슴 속에 품었어라/세월도 아픔도 품어 버렸어라 아-하//터져 부서질 듯/미소짓는 님의 얼굴에도/천년의 풍파세월 담겼어라//바람 속에 실렸어라/흙이 되어 남았어라/임들의 하신 양/가슴 속에 사무쳐서 좋았어라 아-하//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그 몸뚱이 하나/발바닥 둘을/천년의 두께로 떠받쳐라//산산이 흩어져/공중에 흩어진 아침/그 빛을 기다려/하늘을 우러러/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힘차게 뻗었어라/하늘 향해 벌렸어랴/팔을 든 채 이대로/또다시 천년을 더하겠어라 아-하/세월이 흐른 뒤 다시 찾는 님 하나 있어/천년 더한 이 가슴을 딛고 서게 아-하//한 발 두 발 걸어서 올라라/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그 몸뚱이 하나/발바닥 둘을/천년의 두께로 떠받쳐라/산산이 흩어져/공중에 흩어진 아침/그 빛을 기다려/하늘을 우러러/미소로 웃는 돌이 되거라>
하하-. 도올 선생이 '돌'이 되자고 읊조린다. “2024년 12월 20일 밤 7시 42분 붓을 들고, 2025년 1월 11일 밤 8시 52분 탈고/2025년 1월 23일 1쇄 펴냄>. 새삼 거듭 도올 김용옥 선생님께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