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제 주일 예배 때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 믿으라’고 전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전하시는 예수님은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철저히 문제 해결사로서의 예수였습니다.
눈이 마주치는 가까운 자리에 앉아 참 괴로웠습니다.
오후에 생명의 교제 모임에는 9명이 참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연약한 싹을 주님께서 보호하여 주옵소서.
저녁에는 원집사님과 황권사님과 식사하며 교제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대화를 들으신 주님, 저희를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주시기만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처음 마다에 왔을 때 우리집에서 일했던 메이드과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꼬맹이들이 이제 16, 17, 18살이 되었습니다.
적은 물질이지만 영지지체들과 함께 주님의 사랑을 전한 것이 어느덧 10년이 되었습니다.
얼싸안고 기뻐하지만 언어 소통이 안 되니 잠깐잠깐 통역해 주시는 권사님만 의지하다가
그저 서로 보고 웃기만 합니다.
가져간 선물을 전하고, 용돈을 조금씩 주고 이별했습니다.
목요일 한국으로 돌아간다니 눈물을 비치며 ‘언제 다시 올거냐’ 고 묻습니다.
‘또 오겠다’는 자신 없는 말을 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렇게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아이들과 헤어졌습니다.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천국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주님, 눈물이 나네요.
눈물을 닦으며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내 감정의 상태와는 다른, 엄중한 심판의 말씀 앞에 정신을 차리고 섭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본문)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네가 심판하려느냐 이 피흘린 성읍을 심판하려느냐 그리하려거든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이 알게 하라
3. 너는 말하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자기 가운데에 피를 흘려 벌 받을 때가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4. 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5. 너 이름이 더럽고 어지러움이 많은 자여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너를 조롱하리라
6. 이스라엘 모든 고관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에 있었도다
7. 그들이 네 가운데에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에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에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8.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9.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음행하는 자도 있었으며
10. 네 가운데에 자기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월경하는 부정한 여인과 관계하는 자도 있었으며
11. 어떤 사람은 그 이웃의 아내와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그의 며느리를 더럽혀 음행하였으며 네 가운데에 어떤 사람은 그 자매 곧 아버지의 딸과 관계하였으며
12.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돈과 이자를 받았으며 이익을 탐하여 이웃을 속여 빼앗았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네가 불의를 행하여 이익을 얻은 일과 네 가운데에 피 흘린 일로 말미암아 내가 손뼉을 쳤나니
14.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
15. 내가 너를 뭇 나라 가운데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고 너의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에서 멸하리라
16. 네가 자신 때문에 나라들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본문 주해)
예루살렘의 죄악에 대한 고발이다.
1~2절 :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그의 도성이다. 그런데 많은 백성을 죽이고 우상들을 만들어 스스로를 더럽힌 성읍이 되었다. 피 흘린 성읍이 되었지만 스스로가 그것을 모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인자’로 부르시면서 그가 이 피의 성읍을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물으신다.
3~5절 :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이 저지른 모든 가증한 일을 알려주라고 명하신다. 그것은 대체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으며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알아 그들의 그 죄악에서 돌아서거나 또는 심판을 합당하게 받아들이거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의 배후에는 예루살렘이 극악한 죄를 짓고도 자기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님을 반역한 예루살렘의 죄는 두 가지로 총괄된다.
그것은 피 흘림과 우상숭배이다.
피 흘림은 윤리적인 죄를 포괄하고, 우상숭배는 제의적인 죄를 포괄한다.
이 두 가지 죄악으로 인해 그들은 심판 날을 앞당겼고 그 연한이 마감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이방 민족들에게 모욕을 당하게 하시고 모든 나라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게 하실 것이다.
6~12절 : 예루살렘 성읍 안에 일어나는 온갖 죄악의 목록이다.
열거된 범죄행위들은 레위기 18~20장의 법조문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죄악이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다.
그들의 죄악은 폭력행위(6~7, 9절)로부터 본래적인 의미의 간통죄(10~11절)로 이어지고 마침내 금전욕과 이익 추구로 끝맺는다(12절).
12절 말씀에서 여호와를 잊었다고 한다.
여호와를 잊었다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어떻게 정성을 바쳐서 복을 받느냐에 관심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여호와를 잊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 거룩한 예루살렘 성이어야 할 곳이 피 흘리는 성읍이 되었다.
13~16절 : “너희가 서로 착취하고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지금 주먹을 불끈 쥐고 벼르고 있다.
내가 너희를 사정없이 닦달하는 날, 너희의 마음이 꺾이지 아니하고 너희의 맥이 빠지지 않는가 두고 보자! 나 야훼는 한번 한 말은 반드시 그대로 이룬다.
나는 너를 뭇 민족 가운데 흐트러뜨려 여러 나라로 쫓아보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너의 부정을 말끔히 씻어줄 것이다.
뭇 민족이 보는 데서 너희를 나의 것으로 삼아주리라. 그제야 너희는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공동번역)
‘불의를 행하여 이익을 얻은 일과 네 가운데에 피 흘린 일’(13절)은 위의 모든 죄를 요약한 표현이다.
이러한 죄악으로 가득한 성읍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여호와의 심판이 가혹하지만, 심판을 말씀하셨기에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그 결과로 뭇 나라 가운데 흩어지며 그 더러운 것을 그들 가운데서 멸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심을 통하여 그들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죄악의 목록을 에스겔로 고발하게 하신다.
에루살렘성은 이런 죄악을 저지름으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아니라, ‘피 흘린 성읍 예루살렘’이 되고 말았다.
피 흘린 성읍이 되고 만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다.(12b절)
그런데 만약 그들에게 ‘너희들이 하나님을 잊었다’라는 말을 한다면 ‘아니라’고 그들은 펄쩍 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꼬박꼬박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주일을 꼭 지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잊지 않았는데도 ‘피 흘린 성읍’이 되고,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교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른다’라는 뜻으로 파악하는 것이 맞겠다.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다 되고마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소원을 위해 열심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자에게 ‘네가 하나님을 잊었구나’ 라고 말하면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많이 대한다.
자신은 항상 성령님을 찾고, 길을 가면서도 주님을 생각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성령님을 찾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성령님을 찾는가?
길을 가면서 생각하는 주님은 어떤 주님일까?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할까 아니면 내 소원대로 이루어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부드러워진 자신의 마음을 성령충만이라고 기뻐하는 것일까?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성경이 증거하는 주님과 교제하고 있는지를.
죄악 된 인간이 매일 말씀으로 살지 않는데, 무슨 수로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날마다, 순간마다 그럴 듯한 ‘나의 생각과 나의 주장’을 쏟아붓는 죄의 세력을 무슨 수로 상대할 수 있을까 말이다.
복음을 알고 말씀 앞으로 나아가니 성령께서 내게 제일 먼저 깨닫게 해 주신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구제불능의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과거에 그렇게 듣기 삻어했던 ‘죄인’이라는 소리가 지금은 참으로 마땅하고 마땅하다는 생각뿐이다. ‘구제불능의, 새까만, 큰, 용서받지 못할.....’ 온갖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아들의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자로서 주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시니 ‘용서받은 죄인’의 감사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찌 주님을 잊을 수 있을까?
그러니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내 기쁨이 되고,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나를 주장하여 주시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자이니, 본문에 기록된 죄악이 나를 넘어뜨릴 때도 있다.
그러나 또 말씀 앞으로 나아가면 성령께서 십자가를 붙들게 하신다.
성령께서 말씀 안이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도 안전한 주님 품 안에 거하는 자가 되게 하시니, 어찌 주님을 잊을 수 있을까?
묵상을 마무리하려는데 세종학당 운영위원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난 토요일 복생캠프 때 한 학생에게 문자가 왔는데 ‘비록 장학금은 받지 못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주님과의 실질적인 교제에 대해 알게 되어 너무 기뻤다.’ 라는 내용이라고....내게 알려주고 싶어서 그대로 문자로 보내는데 잘 가지지 않는다고 전화를 해 온 것이다.
그 학생으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 성령님께 감사를 드린다.
사사건건 기쁨을 주시는 주님이시니, 어찌 주님을 잊을 수 있을까?
(묵상 기도)
주님,
헛것이요, 안개요, 먼지요, 지푸라기 같은 인생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 되어 주님께서 열어주신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성령을 보내주셔서 이끌어 주시는 주님의 다 이루심을 알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된 맹세를 그치고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합니다.
세상에 오염되어 주님을 잊어버리는 자 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