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만 해도 초기 불교는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였다. 간화선을 최상승의 수행법으로 믿고 있는 선방에서 위빠사나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화두 타파에 실패한 자의 넋두리쯤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었고, 불자나 일반인 중에서도 위빠사나 수행자는 소수였다. 초기 경전도 마찬가지였다. 부처님의 원음을 고스란히 담은 경전인데도 한역(漢譯) 경전에 익숙한 나머지 그 존재가 알려지고 한참이 지나서도 초기 경전을 읽는 이는 드물었다.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 경전을 해독할 수 있는 이가 드물었던 탓이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재가자들 사이에는 불교교양대학을 중심으로 초기 경전 읽기 붐이 일고 있고 스님들 역시 대학원 전공과목으로 대승불교, 선불교에 이어 세 번째로 초기 불교를 꼽을 만큼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선운사에는 초기 불교 전문교육기관인 불학승가대학원이 올해 3월 문을 열었다. 강원에서도 올해 2학기부터는 팔리 삼장 가운데 논장인 아비담마를 정규 과목으로 배치했다.
이런 변화의 밑거름을 놓은 이가 남원 실상사 화림원 원장 소임을 맡고 있는 각묵 스님(54)이다. 각묵 스님은 1989년부터 10년 동안 인도 푸나대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돌아와 2002년부터 지금까지 비구니 대림 스님과 함께 초기 경전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실상사에서 걸어서 10분쯤 거리에 있는 화림원으로 찾아가 스님을 만났다. 각묵 스님은 최근 머리 수술을 받았다. 건강검진을 하다 머리 안에서 제법 큰 종양이 발견돼 제거했다. 잠시 요양 기간을 거친 스님은 금세 공부하고 강의하고 번역하는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화림원은 안거 중에는 참선을 중심으로 경론 연구를 병행하고 해제 기간에는 경론 연구를 중심으로 참선을 하며 이론과 실천의 균형과 조화를 모색하는 수행 공간이다. 2008년에는 조계종 교육원이 학림령을 개정해 2년제의 전문과정인 학림에 3년 기간의 연구과정을 신설함에 따라 실상사 화엄학림 9기와 10기 졸업생 가운데 6명을 뽑아 화엄학림 연구과정을 이곳에 열었다. 6명 중 2명은 중도에 떠나고 4명이 3학년으로서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부산 사투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스님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털털하다. 경장(니까야·아함경), 율장(위나야 삐따까), 논장(아비담마 삐따까) 등 초기 불교 삼장의 완역을 필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스님에게 번역 상황부터 물었다.
아직 반환점도 돌지 못했어요.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맛지마니까야』(전 4권)를 올해 부처님 오신 날 전에 낼 예정이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되네요. 어쨌든 『디가니까야(장부 아함경)』, 『앙굿따라니까야(증지부 아함경)』, 『상윳다니까야(상응부 아함경)』에 이어 올해 안에는 『맛지마니까야(중부 아함경)』까지 4부 니까야의 번역·출판을 끝낼 생각입니다. 내년부터 2017년까지는 율장과 논장을 번역할 계획인데 제가 논장을, 대림 스님이 율장(전 5권)을 맡았어요. 아비담마 칠론(七論)을 번역하는 데만 5년은 걸릴 것 같아요. 칠론은 경장에 대한 상좌부 장로 비구들의 해설서인데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이 한역 경전에서 ‘법집론(法集論)’이라고 하는 제1권 『담마상가니』(‘법의 모음’이라는 뜻)예요. 이 『담마상가니』의 주석서인 『아타살리니』까지 번역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그다음에 『쿳다까니까야(소부 아함경)』을 2018~2022년까지 번역하면 삼장을 완역하게 됩니다. 걱정도 되지만 부처님 ‘빽’ 믿고 해야죠.”
초기불전연구원이 지금까지 내놓은 책은 25권에 달한다. 『니까야』는 물론 『아비담마 길라잡이』, 『청정도론』, 『네 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전 3권), 『들숨날숨에 마음 챙기는 공부』,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초기 불교 이해』 등 대중의 공부를 돕기 위해 다양한 책을 선보였다. 다행히 초기 경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들 책은 꾸준히 팔리고 있다고 한다.
“가령 『상윳다니까야』는 권당 650쪽 이상, 총 4,000쪽이 넘는 책인데 여기에 단 주해만 3,500개를 넘고 주석들이 다 길어요. 이걸 번역하는 중에 오십견까지 와서 정말 끙끙 앓았죠. 2008년에 『상윳다니까야』 주해를 마치고 나니 때마침 불교TV에서 초기 불교 강의를 25회에 걸쳐 해달라고 해서 방송용 교재를 만들었는데 이를 다듬고 정리한 것이 작년에 나온 『초기 불교 이해』입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돈을 준다고 해도 못 할 일이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여기까지 왔어요. 수만 명의 우리나라 스님들 중에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영광이죠.”
각묵 스님이 처음부터 초기 불교나 번역에 뜻을 둔 건 아니었다. 1979년 화엄사로 출가한 그는 선방에서 7년 동안 화두와 씨름하던 수좌 출신이다. 그런 그가 1989년 초기 불교 공부를 위해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물론 그전에도 초기 불교와 인연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잃은 그는 일찌감치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직면했다. 고교 땐 부산고등학교 옆 소림사 독서실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며 철학 책을 파고들었다. 그때 서점에서 뽑아든 『마음』이라는 책에 푹 빠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청담 스님이 쓴 책이었는데 그 속에 평소 고민하던 문제가 다 들어 있었다.
마침 부산 대학생불자연합회 법회가 소림사에서 열렸는데 젊은 사람 수십 명이 모여 주고받는 이야기가 마음에 관한 것이었다. “나도 대학 가면 저런 거 해봐야지” 생각했던 그는 부산대 수학과에 들어가자마자 제 발로 대불련에 들어갔고, 재가법사들로부터 초기 불교 이야기를 듣게 됐다. 부산 범어사로 법문을 하러 온 광덕 스님의 영향도 컸다. 법정 스님의 『숫타니파타』, 마스타니 후미오(增谷文雄)가 쓴 『아함경 이야기』와 『초기 불교 개론』 등도 읽은 터였다.
“1987년 여름 지리산 칠불암에서 안거할 때였어요. 반철을 살고 나니 외국에 가본 적도 없는데 외국 나가서 수행하는 망상이 자꾸 생기는 겁니다. 그런 망상이 하루도 안 빼놓고 계속되니 이상하다 싶었어요. 해제 후 안의포교당(경남 함양)에 가니 함현 스님(봉암사 전 주지)이 스리랑카에 가서 팔리어를 배우라고 난리예요. 팔리어 삼장 번역의 원을 세운 ‘고요한 소리’의 활성 스님이 선방 수행자 가운데 한 사람을 남방으로 유학 보내기로 하고 함현 스님한테 추천을 부탁했는데, 제 생각이 딱 나더라는 겁니다. 참 희한한 인연이죠.”
그러나 스리랑카 행은 타밀반군과의 내전 때문에 연기됐고 그 사이 스님은 서울 법련사 청년회 지도법사를 하면서 영어와 팔리어를 공부했다. 1년이 지나도 스리랑카 내전이 끝나지 않자 “산스크리트어부터 하는 게 인연인가보다” 하며 인도로 가는 길을 모색했다. 현장 스님이 일러준 바라나시의 삼뿌르나난다 대학에서 가(假)입학 허가가 났으나 막상 가보니 영어가 통하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인도에서 외국 유학생이 가장 많은 푸나대학이었다. 대림 스님을 만난 것도 거기에서였다.
푸나대에 가자마자 개인 교수를 정해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인도에서 공부하는 내내 저를 지도해준 노(老) 교수님인데 그분 집에서 바가바드기타, 우파니샤드는 물론 학교 교재도 가져가서 산스크리트어 어근이며 활용법, 자이나교 텍스트까지 두루 배웠죠. 저는 베다를 전공했는데 다들 참 잘해주셨어요. 그래도 산스크리트어는 정말 어려워요. 단어도 많고 동사와 명태 형태 변화도 복잡하고…. 그 많은 걸 외워서 번역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컴퓨터였다. 수학과 출신인 스님은 유학 가기 전부터 서울에서 컴퓨터학원에 다니며 기본적인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조립식 컴퓨터도 사서 써본 터였다. 1992년 인도에서 중고차 한 대 값인 100만원가량을 주고 컴퓨터를 산 스님은 DB를 만들기로 했다. 다행히 산스크리트어는 한국어와 어순이 같다. 한국어처럼 격변화도 한다. 따라서 단어의 벽만 넘어서면 큰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서 팔리어 사전 6~7종, 산스크리트어 사전 7~8종을 다 입력하고 나니 스님의 컴퓨터에는 20만~30만 단어가 확보됐다. 세상에 있는 팔리어, 산스크리트어는 다 섭렵한 셈이었다.
“한번은 베다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제 컴퓨터를 시험하느라 어려운 책에 나오는 아주 어려운 단어를 찾아보라고 문제를 냈어요. 컴퓨터에서 금세 찾아드렸죠. 책이나 사전으로 찾으려면 한나절 걸릴 일을 ‘톡’ 하는 순간에 해결하니 깜짝 놀라더군요. 제가 쓴 『금강경 역해』가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는 산스크리트어 때문이에요. 산스크리트어는 과거형이 어려운데 델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온 사람이 그 책에서 잘못 번역된 게 있나 하고 다 뒤졌지만 결국 못 찾았거든요.”
그래서 스님의 ‘보물 1호’는 컴퓨터다. 스님은 번역에만 집중하기 위해 2003년부터 일 년의 절반가량은 태국의 한 호텔방을 작업실로 삼아왔다. 국내에선 강의나 법문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태국에서의 일상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하루 중 21시간을 방에만 있으니 하루에 몇 걸음을 걷는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번역은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10~11시간 번역에 집중하고 나면 한계에 부딪힌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면 더 무리해도 된다. 하지만 평생을 건 일인 만큼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하루에 한 번 점심때 바깥출입을 하며 한 시간씩 꼭 걷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나날이 시계처럼 반복되는 생활….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 무던함이 없으면 못할 일이다.
국내에서도 한가로이 지낼 여유는 없다. 번역 원고를 다듬고 책 출간을 준비하면서 강의, 법문, 연구, 초기불전연구원 인터넷 카페(http:// cafe.daum.net/chobul) 회원들과의 만남 등 할 일이 많다. 현재 카페 회원이 5,400여 명인데 불교 공부를 많이 한 이들이 대부분이고, 특히 젊은 남성이 많다고 한다.
팔리 삼장을 완역한 후에는 뭘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때까지 살랑가 몰라요”라고 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부터 11년 후, 스님이 만 65세가 되는 때에 삼장이 완역되니 요즘처럼 평균수명이 긴 때에 괜한 걱정이다 싶다. 그래도 “죽음은 멀다면 멀지만 가깝다면 너무 가까우니 살아 있는 동안 번역 인연을 많이 늘려야겠다는 간절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스님의 말이 빈말로 들리지 않는 것은 팔리 삼장 완역 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사진|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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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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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일상과 실상사 화림원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워요.
초기불전연구원의 번역 스케줄을 만날 수 있는 것도 큰 소득이고요.
이번 기회에 초기불전연구원과 카페가 더욱 널리 알려져서
더 많은 분들이 초기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길 기원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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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동 기자님께서 스님의 이야기를 잘 전해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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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나마 초기불교 공부를 하게되고
동호회 공부모임에서 스님 모시고 공부할 수 있는 인연에
감격합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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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저도 컴퓨터를 하루에 12시간이상 다루는 직업으로 오십견이 심했으나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효과를 보았습니다.
가벼운 역기(10~20키로그램)를, 몸을 바로 선 상태에서, 역기를 넓게 잡고
머리위에서 올렸다 내렸다하고(몇세트 반복), 배에서 머리위까지 바로 올렸다 내렸다하면(많이 하기 힘듬) 좋습니다.
운동할 때는 몇세트(8~12회를 1세트라 함) 하는 것이 좋습니다.
걷는 운동도 좋습니다만 시간이 오래걸리나 역기는 아주 짧은 시간에(20분이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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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면 더 무리해도 된다. 하지만 평생을 건 일인 만큼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스님!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고, 유쾌하신 모습 자주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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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건강을 기원드리면서 역경불사가 원만히 성취되어지기를!
스님 건강 유의하십시요-()-()-()-
_()_()_()_ 삼보님께 귀의합니다.
스님, 지난 9일 백장암 대웅전 낙성식에서 멀리서나마 뵈었지요. 10일 일요일 도법스님의 보현법회를 마치고 약수암 길을 돌아 화림원에 갔었는데, 적막 중에 사진 몇 컷하고 조심 조심 내려왔습니다.. 스님들의 번역불사가 인재불사로 이어져 부처님의 본 가르침이 우주가 끝나는 그날까지 만물의 근간이 될 것을 기원합니다. 평안건강.편안건강.평화건강하십시오 _()()()_
스님의 원력에 찬탄을 보냅니다..늘 불보살님들의 가피와 함께 심신 모두 청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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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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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_ 스님 내내 건강하세요.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든든한 가피력으로 원력을 완성하시기를...^^
스님의 원이 꼭 이루어지시기를 기도하며 건강하세요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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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 하십니다...존경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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