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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청량사'
소백산맥 청량산 연화봉 기슭, 이제 막 벙그는 연꽃 모양의 열두 봉우리 사이에 꼭꼭 숨은 천년 고찰 청량사. 흔히 사람들은 청량산을 '입 벌리고 들어갔다가 입 다물고 나온다'고 말한다. 청량산의 수려한 경치에 놀라 입 벌리고 들어갔다가, 나올 적엔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고 해서 유래한 말이다.
경상북도 최북단 봉화군 청량산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예전에도 몇 번이나 청량사 답사를 시도하다가 엄두가 나지 않아 번번이 포기하고 말았는데, 마침 <광주교사불자회>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사찰 탐방에 어렵사리 동행할 수 있었다.
토요일 오후 2시 30분 비엔날레 주차장을 출발한 버스는 88고속도로 지리산 휴게소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4시간여를 달려 중앙고속도로 안동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이른 저녁을 들고 바로 출발한 일행은 이내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로 알려진 35번 국도로 접어들었다. 이제 막 물오르기 시작한 어린 모들이 저녁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세상의 어떤 꽃보다 싱싱하다.
저 날것의 어두운 밤길을 걸어
차에서 내려 내청량사 진입로인 육모정까지 어두운 산길을 걷기로 한다.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산 사이로 이어지는 산길은 불빛 하나 없는 칠흑이다.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준비한 랜턴을 끄고 걷는다. 불빛 하나 없는 '날것의 어둠 속'을 이렇게 걸어 본 적이 실로 얼마 만인지. 나직한 목소리로 도란거리며 어두운 밤길을 걷는 이 느낌이 참 좋다.
가쁜 숨을 내쉬며 1 시간여만에 도착한 청량사의 밤하늘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총총한 별 밭이었다. 지현 주지 스님의 따뜻한 응대를 받고 심검당 숙소로 안내 받아 잠자리에 든 것이 열 한시, 기나 긴 여정의 하루였다.
새벽은 그렇게 찾아오고
청량사는 가람을 앉히기엔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파른 경사면에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 절대 공간이 여유롭지 못해 건물 배치가 어렵다. 이런 지형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적절한 간격과 높이로 석축을 쌓아 안심당과 범종루 그리고 유리보전과 심검당 등의 당우를 제 자리에 앉힌 빼어난 안목과 조촐한 불사가 돋보인다.
지상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법고에 이어 범종과 목어 운판이 차례로 울리면서 새벽 예불이 끝자락에 이르렀나 보다. 새들이 가장 예쁘게 노래한다는 새벽 다섯시. 유리보전 앞 오층석탑에서 바라보는 청량사 산세는 깊고 도도하다. 금탑봉과 축융봉 그리고 연화봉에 둘러 쌓인 청량사의 수려한 산세가 비로소 한눈에 조감된다. 청량산 열두봉 벙그는 연꽃잎에 둘러 쌓인 청량사의 명성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첩첩산중 미타불(彌陀佛)이라"
“첩첩 산중 미타불(彌陀佛)이라.”
응진전(應眞殿)을 향해 하산길을 서두른다. 응진전 가는 길목, 어풍대(御風臺)에서 바라보는 청량사 조망에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어풍대(御風臺)에서 잠깐 땀을 식히고 나면 이내 곧 응진전(應眞殿)이다. ‘진리에 응한다’는 뜻을 지닌 응진전은 석가모니불의 제자 중 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 중에서 상수제자(上首弟子) 16명을 모신 불전으로 한 마디로 ‘지혜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다.
축융봉에서 금탑봉과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유리보전 앞 조망이 숨막히도록 수려한 경관이라면 응진전 앞 조망은 넉넉한 육산의 포근함으로 사람을 안온하게 감싸주며 위로해주는 경관이다. 원나라에도 고려에도 속하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생애를 마친 비운의 왕비 노국공주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안온한 산세가 참· 좋·다·
여행의 마무리
폐사나 다름없던 청량사를 오늘의 청량사로 만들어 낸 것은 직접 경운기를 몰고 마을을 찾아다니며 포교를 마다하지 않았던 지현 스님의 노력이다. 조심스럽게 법문을 청했을 때 스님은 '받는 불교에서 베푸는 불교로' 짧은 한 마디로 정리하신다.
스님은 사찰 음악회를 처음으로 기획하여 산사음악회의 붐을 일으키게도 했다. 산사체험(Temple-Stay)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모든 이들에게 청량사의 문호를 열고 환영할 것이라 했다.
막힘이 없다. 그래서 천년 고찰 청량사가 오늘에도 더욱 아름다운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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