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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하라
누가복음 11장 1절-13절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기도를 한 번쯤 해보았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을 때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을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자들도 기도를 합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이 경건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옳지 않을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기게 해달라는 기도나 자신만을 위한 기도는 너무 이기적인 잘못된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도를 합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기도를 했습니다.
모세도 다윗도 선지자들도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기도를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기도를 했고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 중 하나가 세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 같이
자기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올바로 기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저 기도의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기도를 하거나 기도의 대상도 없이
울부짖는 기도를 합니다.
스스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막연한 대상을 향해 사람들은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도를 했는데 우연히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있지만 기도응답은 없습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도는 대상도 없는 일방적인 기도입니다.
무조건 자기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아무 응답은 없는데 기도하면 위로가 되기도 하고 힘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도는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의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대화하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수도원 원장이 제자들 중에서 어리벙벙한 제자를 편애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원장이 왜 어리숙하고 어리벙벙한 제자를 사랑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수도원원장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매사에 바르고 민첩하게 행동하는 제자들은 사랑해야지 어리벙벙한 제자를 사랑하느냐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원장이 제자들에게 새를 나누어주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새를 죽여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영리한 제자들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찾아서 새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죽인 새를 원장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어리벙벙한 제자는 해가 다지도록 새를 죽이지 못하고 죽은 새를 원장에게 가져가지를 못했습니다.
결국 새를 죽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원장이 어리벙벙한 제자에게 왜 새를 죽이지 못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어리벙벙한 제자가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서 새를 죽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고 계셔서
새를 죽일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수도원 원장이 제자들에게 내가 이 제자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스승이 되는 수도사가 밤새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한 시간을 기도하면 기도할 내용이 없어서 기도하기가 힘든데
스승님은 밤새도록 기도하는 것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제자들이 스승님은 무슨 기도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이 기도할 때 무슨 기도를 하시는지 몰래 숨어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승님은 밤새 기도를 하시면서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라는
기도를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보니 놀랍게도 스승님이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제가 논산에서 목회할 때 어느 집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부자집 외아들로 자란 집사님은 어렸을 때 부모님 말도 듣지 않고 못된 짓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고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을 다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자 어느 날 아버지께서 부르시더니 눈물을 흘리시면서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나는 말리지 않겠다.
그러나 아버지로써 부탁이니 애비없는 놈(호래자식)이라는 말은 듣지 말아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호래자식이라는 말은 듣지 말고 살라는 말씀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로부터는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가 목회자들이 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는 지금 여기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실현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단순히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사는 이유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열매 없는 나무는 찍어 불에 던져 버린다고 했습니다.
열매 맺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의미없는 인생은 없다고 믿습니다.
누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문익환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문목사님께서 감옥에 계실 때 매일 주기도문으로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하지 않아도 매일 아침 8시에 아침을 주고
낮 12시에 점심을 주고 저녁 5시에 저녁을 주기 때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주먹밥이었지만 기도하지 않아도 정확한 시간에 매일 식사를 주니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하실 때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를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큰 충격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감방에서 매일 창밖을 내다 보셨는데 처음 교도소에 왔을 때 깡말라서 들어왔던 죄수가 한 달 정도 지나자
살이 붙어서 몸이 좋아지는 것을 본 순간 충격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죄수가 감옥에 들어와서 몸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자세히 보니 기도문에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가 아니라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사실을 아신 후 부터는
꼬박 꼬박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기도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달라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라는 말의 뜻에는 오늘과 내일 그리고 매일 매일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을 달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굶어 죽는 사람이 지구상에 2만 오천여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일 무엇을 먹을까?’라고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 지구상에 무려 27억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면서 나만 잘살겠다는 이기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에게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가 없이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에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가 있어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간에게 수없이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만 이 모든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분명히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하실 때 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녀에게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기도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문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최소한의 기도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열매 맺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날마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예수의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깁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드립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이지만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열매 없는 인생이 아니라 열매있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ㅁ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