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요며칠의 추위를 잊게 만들뿐만 아니라 수능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포근한 하루였다.
이런 날은 이웃간에 정이 도타운 어머니가 가장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발품을 팔기 딱 좋은 날이다.
어머니와 함께 산 시간은 내 신혼의 몇 개월을 빼고 함께였으니 어느덧 16년차.
이쯤 되면 걸음에서 새어나오는 바람결만 보고도 오늘의 일할 수준을 가늠할 수 있고
좀 부풀려 말하면 이렇듯 날씨만 보고도 오늘의 마음 동향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유난히 가을의 포근함에 은혜로워할 게 아니라 어머니의 인심이 어디까지 뻗칠지
그 한량없는 일욕심과 날씨의 삼각관계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눈치껏 게으름을 피우느냐가 주 관건이 되겠다.
아, 그러나 며느리는 오늘도 눈치보는 걸 접고 만다. 이 짓은 아무래도 내 체질이 아니라는 것과 함께.
엊그제까지 메주 스무말을 만들어 걸어두고
청국장 주문받은 것 차근차근 다해주고도 모자라
재장(집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온 동네 할머니들 서로 달라고 아우성이라더니
오늘은 심심할 겨를도 없이 두부를 만드신단다.
이웃 할머니와 고마웠던 어떤 분 얘기가 어제 나왔더니 오늘 그 분들께 두부를 드릴 거란다.
어머니는 누가 생각이 나면 얼른 뭔가를 만들어 드려야 속이 시원한 분이다.
우리는 그분들께 드리는 덕에 잘 얻어 먹긴 하지만 더 젊었을 때는
우리를 위해서는 안만드시는 것에 더러 속좁아지곤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와 대화해를 하고 나서 이런 경우 덕보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인심이라는 것이 이렇게 내 노동력으로 탄생되는 진한 산고의 출품이란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어머니가 무언가를 하자고 바람결로 전해와도 의당 그러려니 할 생각이다.
우리들의 현대판 인정이란 것이 얼마나 물질적인 계산이냐는 것에 내 얼마나 진저리 쳤었던가.
어머니와 아옹다옹 살아온 시간동안 내가 어머니 덕에 잘 얻어먹었던 귀중한 땅의 음식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었고, 그 맛의 별다름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는 살아오는 동안 여러번 어머니를 미워했으면서도 그보다 더 여러번 눈물날 만큼 감동먹었다.
그러면서 수많은 기억의 공유를 가진 이 어른과의 살이에서 때론 눈물로 때론 진한 웃음으로
내 밋밋하던 인생에 고비마다 터졌던 그것은,
이것이 인생이라는 찰진 교훈들이었다는..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하루도 엉덩이 땅에 붙일 새도 없다는 말씀처럼 아궁이의 장작불도 꺼질 새가 없었다.
오늘도 어머니가 콩물을 만들러 간 사이 아궁이 장작불은 웅숭깊게 타올랐는데,
쪼그리고 앉아 그 불씨의 타닥거림을 보는 맛은 또 얼마나 나에게 넘치는 행복의 여건들인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살이의 복됨을 몰라 스스로를 넘쳐나는 문명의 이기에 맞추고 살아가지만,
시골은 마음이 태평한 사람이 되어라 일러주는 아름다운 주문들로 넘치는 곳이다.
나는 아궁이 앞에서 대다수의 겨울 사색을 배운 사람처럼 이 형언할 수 없는 불씨의 노랫말을 사랑해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사는 마을의 저녁불빛들이 그러하였고
그 저녁풍경을 감상하는 시선들이 그러하였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아궁이는 겨울저녁 시골마을 언덕배기에 흩어졌던 가난한 촌락이었고
나는 그 촌락을 사랑하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언덕배기를 바라보는 그것이 좋았나보다.
맛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노동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 맛의 철학이었다.
두부를 꼭 짜고 덩어리진 것은 이렇게 따로 모아 콩비지를 만든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하루정도 덮어두면 발효된 콩비지가 되는 것이다.
해마다 이 콩비지로 찌개를 끓여 먹으니 아이들은 청국장이 그러하듯 콩비지도 곧잘 먹었다.
콩비지를 빼낸 콩물을 다시 가마솥에 붓고 드디어 간수를 붓는다.
작은 생수병 1병을 부었는데 이 간수를 위해 또 소금주머니 아래에서 여러 날 동안 받쳐두던 모습이 떠오른다.
간수를 부으면 하얀 덩이를 이루는데 이것이 바로 두부가 되는 것이다.
느슨한 것들을 조여줄 무게있는 녀석들이 동원될 것이다.
이렇게 눌리는 벌을 약 30분 서야 한다.
솥에 남아있던 따뜻한 간수물에 담그면서 드디어 두부 만들기가 완성되었다.
어머니는 네모틀에 눌리어진 두부를 자르는 것만은 꼭 내게 맡기신다.
어머니 손이 갑자기 엉뚱한데로 가는 것도 아니면서 그것만은 젊은 내게 마무리를 하라시는데,
나는 그것에서 어떤 일을 마무리하는 어머니의 마음 씀씀이를 보는 것이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지만 마무리 하나라도 내게 맡기셔서 할 수 있다는 마음 한가닥 불어넣어 주는 것.
나는 늘 어머니 곁에서 시키는 것만 고스란히 따라하며 어깨너머 배운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일 한것처럼 장한데,
어머니는 날마다 일을 찾아가며 그것에다 어머니의 몸을 맞추셨다. 그러기를 또한 멈추지 않으셨다.
콩 한 되에 9,000원 한다.
오늘 두부를 만드느라 콩 세 되를 마련했으니 27,000원, 거기다 콩을 빻느라 6,000원이 들었다.
33,000원. 두부 한 판에 12개가 나왔으니 한 모의 가격 2,750원.
가장 비싼 노동력은 싹둑 잘라먹어도 이 두부를 어떻게 값으로 매기겠는가.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몇 번의 공덕을 거치는지에 대해선 아까워서라도 말을 아껴야는데
그래도 어머니 일이란 것이 아직도 날마다 저 바다와 같아서 그것이 놀라워 이렇게 소문에 나선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돈으로 구분지을 수 없는 거룩한 먹거리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새겨서 한 입 들어가는 입안이 얼얼하다면 그또한 아름다운 받아들임 아니겠는가.
첫댓글 저 두부 정말 먹고 싶은데 어머니의 정성이 바다와 같아서 농담으로도 한 모 달라고 못하겠다. 슬비도 어릴때 비지 찌개 많이 먹었는데... 엄마가 만들던 두부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남 먹는거 군침 흘리며 쳐다보는 거라더니..오늘 언니 모습이 딱 그렇네..이럴때 나는 메롱~이라고 해줘야하나? ㅎㅎ!!
댓글 달다 시가 되어 시 방으로 얼른 옮기고 새로 댓글 씁니다. 두부를 보니 막걸리보다 젓가락 장단에 기찬 어울림이 더 생각나네요. 그리워라! 술 익는 주막에 타는 저녁놀.
댓글이 시라는 생각을 스스로 했단 말여? 오늘 저녁에 그 주막집에 껀수 한번 챙겨볼까나?
어쩜 글도 군침 나게 쓰더니만 다라이에 담아 있는 두부도 군침 나게 만들네.
김치 얹어서 사이다 탄 막걸리와 함께 먹어봤으면....
오히려 언니 댓글에서 침이 마구 돕니다.
살짜기 엿보고 그냥 가기엔 너무나 맛있는 글이랑 꼴깍꼴깍 침 삼키게 하는 두부가 있어서요. 댓글 달아두 되는가여?
처음 뵙겠습니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 댓글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두부를 많이 좋아하시거나 그에 얽힌 추억이 있으신가 봅니다. 포항에 계시다고 전에 얼핏 들은 기억이 납니다. 언제 가자는 이야기 있으면 저도 '낑겨' 가보고 싶습니다. ^^
당근, 초대 영순위입니다.참고로, 저 두부 엄청 좋아하는데.......ㅎ
두부에 막걸리 몇 잔 마시고 무작정 걸었지요. 밤하늘 맑고 밝은 별들이 좋고 싸하게 식은 바람도 알맞은 밤. 은행잎들이 길 옆으로 비껴 앉아 가만히 나를 쳐다보는 늦은 밤. 바삐 걷는 걸음 뒤로 스쳐가는 생각들. 나를 태우러 오지 않은 마누라를 위한 복수의 걸음이 이토록 아름다운 걸음이 되었지요. 나를 보며 씽긋이 웃는 마누라가 스쳐지났던 길가 은행잎처럼 노랗게 예쁘니 밤이 무척 행복했지요. 이놈의 두부와 막걸리가 자굴산에서도 볼 수 있을런지!
탐난다.
사진 표현도 글귀와 함께 구수합니다.
자굴산 등산 하산주 먹을 때 안주가 김치와 두부였었는데..
푸짐했던 총동창회 등산 날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