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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정원 스크랩 남미의 티베트- 볼리비아
조항열 추천 0 조회 25 07.06.29 14: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남미의 티베트 - 볼리비아

 

 

당초에 볼리비아까지 가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여행을 하다보면 가보지 안는 곳에 대한 동경이 점점 더 커진다. 더욱이 볼리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금사막 우유니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페루에서 칠레로 바로 넘어가려다가 발길을 볼리비아로 향한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향해서. 그러나 볼리비아는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도 없는 매우 생소한 나라다. 그리고 우리가 멀고도 험한 내륙에 위치안 우유니 소금사막까지 갈수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여행을 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남미의 티베트’로 불린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 볼리비아는 평균 해발 3000m 가 넘는 안데스의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 라파스La Paz(평화라는 뜻)는 해발 3800m에 위치하고 있어 티베트의 ‘라사’보다 높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다. 때문에 비행기로 라파스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심한 고산증세에 시달리게 되어 며칠 동안을 꼼짝 못하고 누워 있기도 한다. 그만큼 남미의 티베트 볼리비아로 가는 길은 험하고 멀다.

 

그러나 볼리비아는 잉카의 탄생 전설을 간직한 티티카카 호수, 소금사막 우유니,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오랜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티아우아나코 유적, 은광산으로 유명한 포토시, 깊고 아찔한 계곡 융가스Yongas, 아마존의 밀림지대 등 천혜의 떼 묻지 않는 자연경관과 신비한 유적지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인구 840만의 볼리비아는 총인구의 50% 이상이 잉카 고유의 언어인 케츄아어와 아이마라어를 쓰고 있는 잉카의 원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11배의 영토를 가지고 있는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로 브라질,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 5개국과 인접해 있다.

 

 ▲볼리비아 내륙 고원지대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우유니 소금사막

 

볼리비아의 역사는 라파스 근교 고원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기원전 7000년경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1500년경부터 아이마라어를 쓰는 원주민들이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정착하여 치리파Chirpa라는 문명을 이루었으나 기원전 200년경에 사라진다. 그 이후 세워진 티우우와나고 왕국이 천년동안 세력을 떨치다가 잉카제국에 흡수되었다가 1535년 스페인의 침략으로 3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다.

 

1825년에 베네수엘라 태생의 볼리바르와 수끄레 장군을 주축으로 한 독립운동으로 독립을 하게 되는데, 볼리비아란 국가이름은 볼리바르 장군의 이름을 따서 생긴 이름이다. 그러나 볼리비아는 1879년부터 1884년까지 칠레와의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여 중요한 수출항구인 안토파가스타(태평양에 인접해 있는 현 칠레 영토)를 잃고, 1903년 브라질과의 전쟁으로 고무 산지인 아마존 유역을 빼앗기게 되며, 계속되는 파라과이와의 전쟁으로 유전지역인 차꼬 지방을 뺏기는 바람에 영토의 절반을 잃게 된다.

 

  ▲지상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융가스 계곡 길

 

그 이후 잦은 군사 쿠데타로 9개월마다 새 대통령을 갈아치우는 등 극도의 불안한 정치상황을 맞게 된다. 1952년 급진주의자인 에스텐소로 대통령의 민주화로 원주민에게 선거권이주어지고 농지개혁법을 선포하는 등 대대적인 개혁을 시행하였으나 여전히 문맹자가 많고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을 매장하고 있는 복 받은 나라이지만 계속되는 전쟁의 패배, 정정불안과 독재자들의 부패로 주요자원은 외국 매판자본에 팔아넘겨져 ‘은을 짊어진 당나귀’, ‘금방석 위의 거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때문에 독재정권에 맛서는 반정부 게릴라 저항도 자주 발생한다. 1965년 ‘나는 정치가가 아니라 혁명가이다. 쿠바에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볼리비아로 잠입하여 반정부 게릴라 부대를 이끌다가 1967년 10월 8일, 미국이 지원하는 볼리비아 반군 추격대에 생포되어 ‘체 게바라’가 총살된 나라도 볼리비아다.

 

화폐단위는 1달러당 6.9 볼리비아노로 ‘솔’보다는 두 배가 낮다. 4000m를 전후안 고지대에서는 요리시간이 길며 압력솥을 쓰지 않으면 밥이 설익고 냄비에 라면을 끓여도 잘 익지 않는다. 고산지대에서는 옥수수가루에 리몬과 계피를 타서 만든 보라색 아삐Api를 마시며, 고산증 해소를 위해 마떼 코카차를 끊임없이 마신다. 원주민들은 늘 코카 잎을 씹어 입이 시커멀 정도다. 또한 아마존 유역에서 생산되는 소고기는 부드럽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코카 잎은 볼리비아 원주민들에게 약방의 감초다. 티티카카 호수 ‘태양의 섬’에서 망코 카팍이 ‘신의 선물’인 코카 잎을 들고 나온 후 고산지대에 사는 원주민들의 허기와 피곤, 추위와 고산증를 해소시키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작물이다.

 

그러나 코카 잎으로 인해 볼리비아는 미국과 코카전쟁(일명 마약 전쟁 The Drug War)까지 하게된다. 1980년대에 코카 잎이 코카인의 원료로 사용되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최종 마약시장인 미국으로 흘러들어가자 미국정부는 볼리비아 정부에 코카잎 생산을 중단하라는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과 외교적인 마찰을 빚게 되었으며  결국 ‘반 마약 전쟁’ 협정을 거부하게 된다.

 

기후는 지리적으로 열대에 속하나 고도에 따라 극한대에서부터 극열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6월~8월 평균기온이 7.5°c, 12월~3월 평균기온은 10.5°로 건조하나, 동부밀림 저지대는 평균기온이 25°로 1년 내내 비가 내리며 고온 다습한 기온을 보인다. 수도 라파스는 낮에는 20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온화하지만 밤에는 외투가 필요할 정도로 춥다.

 

볼리비아는 페루보다 1시간 빠르고, 칠레 서머 타임보다는 1시간 늦다. 라파스에서는 ATM기로 신용카드나 현금카드로 달러나 볼리비아노 현금을 인출 할 수 있다. 알파카 제품, 식료품 등 물가는 매우 싸나 공산품은 비싸다.

 

 

걸어서 볼리비아 국경을 통과하다

 

 

 

그 동안 정들었던 페루를 떠나려고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기에 어느 여행가가 말했던가?

“페루는 단지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되돌아가야 하는 곳이다”라고.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 말한 것처럼 새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온다는 페루. 그래서 '새들이 페루에 가서 죽는다'는 곳. 페루는 나의 첫 남미 여행지다. 남미보다 먼저 멕시코를 다녀오기는 했지만 미국과 가까운 멕시코는 많은 부분이 미국화가 되어 있다. 반면에 남미의 땅 페루에서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르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잉카의 길, 불가사의 한 나스카 지상화, 하늘아래 첫 호수 티티카카,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은 고산증세, 바람처럼 빠른 리마의 도둑… 기쁨과 환희, 그리고 여행자의 고통이 수반된 곳, 그러나 아직도 채 가보지 못한 곳이 있어 늘 그리운 곳이 페루다. 언제나 다시 가보고 싶은 곳, 페루. 그러나 아쉽지만 이제 페루를 떠나야 한다. 더 험한 내륙 고원지대에 위치한 볼리비아로….

 

푸노에서 1인당 30솔(약 8달러)에 코파카바나를 거쳐 라파스까지 가는 버스표를 샀다. 푸노의 킹덤 여행사 직원은 말한다. 미니버스로 코파카바나에 가면 그곳에서 다시 볼리비아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단다.

 

아침 8시. 미니버스를 타고 볼리비아를 향해 푸노를 출발한다. 티티카카 호수를 끼고 줄리Juli, 포마타Pomata를 거쳐 2시간 정도를 달려가니 코파카바나 근처의 볼리비아 국경도시 융구요yonguyo에 도착한다. 볼리비아 비자는 리마에서 미리 받아 놓았기 때문에 비자를 받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볼리비아는 우리나라에 대사관이 없으므로 리마에서 미리 받아 놓은 것이 값도 싸고 시간도 절약된다.

 

운전수는 버스에서 모두 내려 걸어서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이미그래이션 건물이 꼭 창고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국절차를 밟는다. 우리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미니 여권 카피 대금을 10솔을 내라고 한다. 이거야 정말! 비자를 받은 멀쩡한 여권이 있는데도 카피를 하라니. 큰 배낭에 카피가 있기는 한데 꺼내기가 귀찮아 울며 겨자 먹기로 10솔을 지불한다.

 

▲걸어서 볼리비아 국경을 통과하는데 때마침 개 한마리가 길을 인도(?)한다

 

 

▲페루 푸노에서 볼리비아 코파카바나로 가는 육로 길에서 만난 허니문을 택시와

세 그루의 나무 앞에 이상하게 생긴 돌장승이 나그네를 반긴다.

 

국경초소 앞에 있는 세 그루의 파인 트리가 퍽 인상적이다. 그 앞에는 이상하게 생긴 돌장승은 국경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낯익은 얼굴이다. 어쩐지 친근하다. 우리나라 장승같가도 한데...  로키마운틴을 여행 할 때 본 토템풀 같기도 하고. 잉카의 창조주인 비라코차 모형인가? 하여간 뭔가 심지가 깊은, 행운을 주는 그런 모습이야. 그옆에 있는 간판에는 알아먹지도 못한 글씨들이 빼꼭히 들어차 있다. 여러 가지 꽃을 단 빨간색 자동차도 국경을 통과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아마 결혼식을 올리고 허니문 여행을 떠나는 모양이다.

 

“걸어서 국경을 통과하는 느낌이 어때?”
“그저 숨이 찰뿐이에요.”
“그렇지. 여긴 여전히 높은 지대이니까.”

 

다시 미니버스를 타고 20여분 정도를 가니 티티카카 호수 변에 위치한 코파카바나에 도착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버스 정류소에서 세계 일주 여행을 하고 있는 이성일군을 다시 만난다. 그는 쿠스코의 비바라틴에서 함께 머물렀던 한국인이다.

 

세상 참 좁다.

아니 세상이 좁은 게 아니라 길이 하나로 통하다 보니 자꾸만 만나는 거다. 언제 어디서 그를다시 만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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