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새에 DVD로 본 세 편의 영화입니다.
우연히 극장에서 놓친 영화들로 골라 봤는데, 다들 재미있었구요.
우연 뒤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이 있는 영화들입니다.
먼저, '싸인'...
제가 좋아하는 샤이아말란 감독 영화구요. 역시 이 영화에도 반전이 있습니다.
제목이 '싸인'이지만, 원제로는 'Signs' 즉 하나의 싸인이 아니라 여러 개의 싸인들...
처음 영화 시작에는 옥수수 밭에 난 미스터리 써클이 결국 외계 생명이 있다는 하나의 싸인, 계시였구나... 하지만,
영화가 끝날때에야 깨닫게 되는 더 커다란 계시, 즉 생활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계시들...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어쨌든 저는 '언브레이커블'을 보고 좀 실망했다가,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샤이아말란 감독에 다시 경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더 까만 외모로도 카메오 출연 (그것도 꽤 큰 비중으로!)하는 그의 용기에 또 한번 경탄했지요...
안보신 분들에게는 권해드립니다. 의외로 조금 무섭기도 한 영화에요.
연출을 공부하시거나, 시나리오를 공부하시는 분들께는 약간의 서스펜스 교과서적인 장면이 많아 도움이 될 듯.
'도니 다코'
처음에는 조니 뎁의 영화 '도니 브래스코'랑 헷갈렸는데, 보니 정말 독특한 영화네요.
영화는 보는 내내, 사람을 헷갈리게 합니다. 과연 주인공은 제정신일까?
내가 보는 이 장면은 현실일까? 주인공의 환상일까?
과연 이 영화의 끝은 무엇이고, 이 모든 이야기의 결말은 무엇일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적잖이 당황했더랍니다. '뭐야? 이게 끝이야?'
그래서 다시 마지막 몇 챕터를 다시 돌려서 이번에는 오디오를 감독 음성해설로 놓고 다시 보았습니다.
음... 그게 그래서 그렇게 된거군... 아니, 그런게 맞나? 아닌가?
어쨌든 지금은 머릿속에 정리가 되긴했지만, 함부로 권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우연인듯 환상인듯 싶었던 모든 장면들이 무서운 운명의 계시일줄이야...
'세렌디피티'
우연히 뉴욕의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만난 한 남녀가 자신들의 만남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운명에 운을 맡겨봅니다.
서로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은 지폐와 헌 책을 세상으로 내보내고, 그 미미한 확률에 두번째 만남의 운명을 겁니다.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즐거운 한편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과연 이 두 남녀의 인연은 필연인지, 우연인지... 탄탄한 시나리오와 상큼한 두 주인공의 열연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합니다.
시트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좋아할만한 요소가 많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이 세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과연 우리 인생에 운명이란게 있는걸까?
영화 '12 몽키즈'처럼 우리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어서, 어떤 노력으로도 바꿀수 없는걸까?
혹은 운명이란 것이 결국은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생의 결과, 즉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걸까?
저는 극단적 낙관론자로서 후자의 견해를 열렬히 지지합니다.
운명이 어딨나, 그냥 내가 만들어가는거지...
물론 때로는 저도 제가 내린 잘못된 선택으로 후회할 때도 있지요.
그럴때는, 바로 꼬리내리고, '그래, 인생이 항상 달콤하기만 해서는 또 재미없지, 이런게 또 맛 아니겠어?'
하고 비굴한 자세로 자족합니다.
우리네 인생, 우리의 의지대로 반드시 풀려간다는 보장은 없지요.
아무리 용을 써서 인생 개척해보려해도,
꼬이는게 팔자인가? 싶을 때도 분명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위 세 영화 중, 마지막 '세렌디피티'의 두 주인공의 자세를 좋아합니다.
무작정 운명에 맡겨놓고 인연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그 운을 바꿔놓기 위해 뛰어다니는 남녀.
그런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종내에 찾아오는 행운도 느닷없게 느껴지진 않으니까요.
운명이란게 있는건지, 없는건지
과연 신이 있어 우리 앞에 시련을 줄것인지, 복을 줄 것인지, 미리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간의 도리는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사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