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테러를 당한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WTC)’내에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들어 있었다면”, “그래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세계적 거대기업들의 트레이딩 데이터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면” , 아마도 세계경제에 미치는 충격의 강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속단이다.
뉴욕증권거래소는 세계 최고의 백업센터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물론 미국의 주요 은행들은 거의 완벽한 2~3중의 실시간 원격지 백업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100km에서 멀리는 500km까지 떨어진 곳에 제2, 제3의 백업센터를 구축해 놓고 전용선을 이용, 데이터를 백업하고 있다. 전면적 핵전쟁으로 발전돼, 재해지역이 반경 1000km로 확대되지 않는다면, 세계경제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재앙’으로 비약될 가능성은 이론적으로는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나스닥(NASDAQ)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여의도에 있는 증권거래소를 예로 들자. 놀라운 얘기지만 우리나라 증권거래소는 백업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결국 뉴욕에서처럼 테러리스트에 의해 불시에 완파돼버린다면 그날의 일일거래데이터는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버린다. 한국의 경우, 이번처럼 불시에 주요 금융시설이 파괴된다면 ‘경제 공황’이 즉시 현실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증권거래소는 내년 1월2일 가동을 목표로 현재 백업시스템 구축 계획을 추진중이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증권전산의 데이터센터 공간을 빌려 이 곳에 백업장비를 갖다놓고 전용선으로 데이터를 실시간 백업받는 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위치가 서울에서 매우 가까운 분당(약 30km)이기 때문에 기능상으로만 백업이지, 엄밀하게 말하면 물리적으로 최소 100~120km이상 떨어져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원격지백업’으로는 볼 수 없다.
한국은행도 최근 들어서야 SKC&C를 주사업자로 선정하고 충남 대전 부근에 백업센터 구축을 진행중이다. 그러나 한은 백업센터의 경우, 왠만한 공격에도 끄떡없어야 하는 ‘전용 백업센터’ 건물이 아니다.한국은행 지점 건물에 백업장비만 설치하는 것이다. 원격지이긴 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백업센터’라고는 볼 수 없다. 일반 은행권도 자체적으로 백업센터를 가진 은행이 신한은행 정도이며, 나머지는 자체 전산센터 외에 현대정보기술· 삼성SDS· LG―EDS 등의 데이터센터를 임대해 백업센터로 이용하고 있다. 그나마 은행권은 나은 편이다. 작년 11월, 사무실 지붕에서 물이 새는 바람에 전산기기가 물에 젖어 시스템가동이 중단된 D증권의 경우처럼, 국내 증권사들의 백업센터 체계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전산실은 만약 화재가 나더라도 절대로 물을 사용할 수 없다. 전산기기가 특히 물에 민감하기 때문에 특수한 ‘소화(소방)가스’를 쓰도록 규정돼 있다. 신영증권 등 1~2곳을 제외하곤 아직 백업센터를 갖추지 않고 있다. “증시가 안좋아 백업센터 구축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게 이유다.
IT업계 관계자들은 “금융권의 안전불감증은 도를 넘고 있다. 전자금융인구가 1000만을 넘은지 이미 오래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