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산은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극락 왕생을 상징하는 아미타부처의 기운이 서린, 불교적 색채가 강한 산이다. 게다가 통일신라때 창건된, 1300년이 넘은 고찰 유학사를 끼고 있다. 또 고려시대 무인정권기에 최충헌이 이 산에 머무르던 이의민을 척살한, 격랑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압권. 서부 경남 내륙의 웬만큼 유명한 큰 산들은 선 자리에서 모두 조망할 수 있다.
경남 합천군과 의령군의 동쪽 경계에 솟은 미타산은 정상에 선 자리에서 한 바퀴 빙 돌면 지리산 황매산 오도산 매화산 가야산 비슬산 화왕산 등 서부 경남북의 명산들을 파노라마처럼 조망할 수 있다. 멀리 황매산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 |
이번 미타산 산행에서 우선 밝혀 두어야 할 점은 들머리부터 기존 안내 리본이 전무한 새로운 코스라는 점이다. 따라서 초입부에 대해 보다 상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특히 2가지 길이 있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다.
첫번째 방법은 출발점인 바람재에서 곧바로 보이는 파주 염씨 묘 울타리를 끼고 능선으로 치고 오르는 코스다. 능선에서는 희미한 길을 따라 무성한 잡목숲을 헤쳐가며 10분가량 전진하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에 합류해 100m쯤 가면 왼쪽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합쳐지는 삼거리.
두번째 방법은 바람재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적포교 방면(의령군 방향)으로 300m가량 가다 보면 만나는 창고에서 우측 산길을 따라 올라서는 길이다. 무덤 3개를 지나 5분가량 오르면 첫번째 방법에서 언급한 임도 삼거리에 닿는다. 첫번째 방법은 수풀을 헤쳐야 하지만 두번째 방법은 길이 잘 나 있어 수월한 편이다. 양쪽 들머리에 안내 리본을 꼼꼼히 달았다.
들머리인 바람재 표지석. 동쪽의 낙동강 바람과 서쪽의 황강 바람이 마주치며 나그네의 땀을 식혀주던 곳이다. | |
임도 오른쪽 아래 들판 한편에는 잘 가꾸어진 소나무 원형 방풍림으로 둘러싸인 무덤이 보인다. 그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그 곳이 바로 '5만분의1' 지형도에 표시된 '강진산'이다. 실제로는 '강진묘' 혹은 '상장군묘'로 불리고 있다. 이 무덤은 강진 안씨 시조의 세 아들 중 상장군 벼슬을 한 둘째 아들이 고려말 당시 초계고을(현 합천군 초계면)에 입향해 터를 잡은 이후 생긴 것으로 2대 시조와 후손 등의 묘가 십여기 이상 집단으로 조성돼 있다. 무려 600년이 넘은 곳이어서 현재 문화재 지정이 추진중이라고 한다.
송전 철탑을 끼고 콘크리트 바닥 임도를 따라 10분가량 가면 소미산(176m) 옆을 휘돈다. 오른쪽 멀리로 가야산 오도산 등이 눈에 잡힌다. 계속되는 임도. 20분가량 가다보면 왼쪽 계곡 멀리 낙동강과 적포교가 보이는 백촌마을 위 안부다. 임도만 1.9㎞나 타고 온 지점이다. 철탑이 있는 이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 능선길을 탄다. 안내 리본으로 표시해 놓았다. 인적은 극히 드물었던 것 같지만 길은 좋다. 흐릿한 듯하다가 뚜렷해지기를 반복하는데 등산로임은 분명하다. 15분 후 고개마루에 오르고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성산(301m) 정상 아래에 닿는다. 이 곳에서 능선을 따라 왼쪽으로 진행하면 3분 뒤 다시 임도다. 30여분 전 헤어졌던 임도와 재회한 것을 축하 하려는 듯 진달래 몇 송이가 수줍게 연분홍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미타산 정상 아래 석문. 어른 한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다. | |
날머리인 묵방마을 김종돌 이장의 개구쟁이 쌍둥이 자녀. 왼쪽이 딸인 희수, 오른쪽은 아들 준수. 표정이 해맑다. | |
그러나 300m가량 타고가다 보면 방공호 2개와 철탑이 있는 곳에서 마침내 임도는 끝난다. 오른쪽 틈새로 길을 잡는다. 살짝 내려서면 다시 방공호앞 갈림길. 오른쪽으로 방공호를 통과해 50m쯤 가서 무덤 왼쪽으로 능선을 타고 계속 진행하면 무덤 5개가 있는데 이곳을 지나 약간 내려서면 홀로재다. 계속 다음 봉우리쪽으로 오르막을 탄다. 10분 후 완산 김씨 묘를 지나 희미한 수풀을 헤치며 길을 연다. 10분 뒤 425m봉에서 정상이 보이는 오른쪽 내리막으로 길을 잡는다. 10분 후 갈림길. 오른쪽으로는 적중면 두방리로 내려서는 탈출구가 있다. 취재팀은 직진한다. 능선길을 계속 걷다보면 오른쪽 아래로 넓디 넓은 '초계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10분 뒤 373m봉에 오르면 정면에 미타산 정상이 성큼 다가선다. 들머리부터 10㎞ 지점이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번갈아 거치며 20분가량 더 가면 또 하나의 갈림길. 역시 오른쪽은 두방리로 내려서는 길이다. 여기서 왼쪽 정상을 보고 가파른 오르막을 친다. 20분쯤 땀을 빼면 산행 시작 후 처음으로 바위 같은 바위를 만난다. 바위 왼쪽 위로 올라 능선길을 10분가량 가면 첫 전망대. 깎아지른 발 아래로 초계들판이 시원하고 초계 앞산인 대암산, 더 멀리는 오도산과 장군봉 남산제일봉 가야산 능선이 겹친다.
사람 1명 지나갈 크기의 좁은 석문을 지나면 5분 후 두번째 전망대가 나오고 5분 후에는 철탑앞 우뚝선 바위 봉위리다. 이 바위를 올라도 되지만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곧바로 철탑을 지나 왼쪽 사면을 타고 삼거리 역할을 하는 622m 봉우리에 서면 정상석이 우뚝한 미타산이 코 앞이다. 정상까지는 5분이면 충분하다. 이미 해가 넘어가려는 순간.
미타산 정상의 광활한 조망에 숨이 멎을 지경이다. 정상석 옆에서 발걸음 하나 떼지 않고 제자리에서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보자. 서북쪽에 오도산과 장군봉 남산제일봉 가야산이, 동북쪽으로 넘어가면 대구 현풍 비슬산이 보인다. 동남쪽으로 돌아서면 창녕 화왕산과 영취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돌면 멀리 지리산 천왕봉과 그 오른쪽 황매산 둥근 봉우리, 가깝게는 이웃 산인 천황산과 국사봉 대암산까지. 특히 황매산 봉우리 너머로 떨어지는 낙조의 풍광은 비경 중 비경이다.
GPS 트랙 / 트랙 jpg파일 | |
이후부터는 줄곧 내리막. 들머리부터 정상까지 오를 때 길을 찾느라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예정에 없던 야간산행이 됐다. 어둡지만 유학사로 하산하는 길은 비교적 산꾼들이 선호하는 구간이라 편하게 잘 나 있다. 정상에서 출발한 후 20분쯤 내려서면 무덤이 나오는데 좀 더 지나면 갑자기 작은 봉우리. 490m봉이다. 다시 내리막을 달려 무덤을 지나 5분쯤 가면 정면에 큰 봉우리가 떡 하니 막아서고 오른쪽엔 무덤이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정면 봉우리는 시루봉. 하지만 취재팀은 왼쪽으로 거의 직각으로 꺾어 계곡으로 길을 잡는다. 이 길로 20분을 내달리면 4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을 만나는데 의령군 부림면 묵방리 묵방마을이다. 들머리로부터 15.3㎞ 지점.
불과 수년 전까지 합천군 적중면에 속했던 묵방마을 인근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윗대 조상의 묘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묵방마을 김종돌(50) 이장 댁에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도로를 따라 10분가량 내려서면 유학사(留鶴寺)에 도착, 산행을 마무리한다. 유학사로 내려서는 길 옆 계곡은 작지만 기암 절벽을 갖춘 절경이다. 산행 중 식수 보충할 곳은 찾기 힘들다.
◆ 산중정담(山中情談)
- 묵방마을 김종돌 이장님 따뜻한 인정에 감동
산행 종점인 유학사 계곡 위에는 '묵방'이라는 오지 마을이 있다. 의령군 부림면 묵방리에 속하는 이 마을은 한때 20여 가구가 살았지만 현재는 단 4가구에 불과하다. 이 마을 이장인 김종돌(50) 씨는 10여 년 전 부산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귀농자다. 김씨 가족은 부인과 7살 짜리 이란성 쌍둥이인 아들(준수)과 딸(희수) 등 4명. 밭을 일궈 각종 채소 등을 키우며 농사를 짓고, 인근 마을에 공사를 할 때는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김씨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유는 당시 혼자 계시던 부친을 도저히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기꺼이 부인의 동의를 얻어 산골 마을로 돌아간 김씨는 결혼 10여 년 만에 그렇게도 고대하던 자식을 낳았는데 그것이 바로 아들 딸 쌍둥이인 준수와 희수다. 이 마을의 나머지 3가구는 모두 연로하신 분들이 살기에 다른 친구가 없는 준수와 희수는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이자 남매로 살아간다. 아랫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김 이장의 효성에 감복한 하늘이 자식을 낳게 해주고, 그것도 친구가 없을까 봐 한꺼번에 딸 아들을 주셨나 보다"고 전하기도 했다. 세월이 좀 더 흘러 나머지 3가구 주민들마저 세상을 떠나면 이 마을에는 김씨네만 남게 된다. 그래도 김씨와 부인은 "어두운데 산길 내려오느라 정말 고생했다"며 따뜻한 차 한잔과 백설기 떡을 대접해 준다. 상수도 대신 마을 옆 계곡 절벽 바위에서 흘러내린 물을 저수조에 받았다가 쓰는 물이라며 시원한 물맛도 보기를 권했다. 자칫 외로울 수 있을 테지만 나그네를 위해주는 마음만은 한없이 선하고 고맙다. 이런 부모 밑에서 커 가는 준수와 희수가 희망을 잃지 말고 지금처럼 늘 밝게 커 나가길 기원하면서 마을을 떠났다.
◆ 교통편
- 서부터미널서 초계행 시외버스 이용
부산서부터미널에서 산행 들머리인 합천군 청덕면 적포리 바람재로 가기 위해서는 '신반·초계'행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적포교 지나 바람재에서 내려 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오전 8시30분, 10시, 낮 12시 등 하루 7회 출발. 막차는 오후 7시. 요금 9800원(청덕면 요금 기준). 2시간 소요.
자가용의 경우 부산 기점 남해고속도로~칠서~중부내륙고속도로(옛 구마고속도로) 영산TG(도로비 3800원)로 빠져 나간다. 영산TG 앞 사거리에서 창녕 영산 방면 좌회전(79, 5번 국도)한 후 500여m 진행하다 사거리에서 대형마트를 보고 합천 방면(79번 국도)으로 다시 좌회전한다. 79번 국도를 타고 합천 적포 방면으로 가다 동정삼거리에서 합천 유어 방면 우회전 후 유어삼거리에서 의령 합천방면(20, 24번 국도)으로 좌회전해 적포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 적포삼거리에서 합천 거창 방면(24번 국도)으로 5분 가량 가면 바람재에 닿는다. 산행후 유학사에서 바람재까지 차량 회수를 위해서는 택시(016-574-1911 강한영 기사) 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요금 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