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예천-문경 용두산 (980m)
꿈틀거리는 백두대간을 에두른 조망 명산
오늘 소개하는 용두산은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과 문경시 동로면 경계에 자리한 해발 980m의 산이다. 우리나라에는 충북 단양군의 용두산(994m), 제천시의 용두산(871m)을 비롯하여 십여 개의 용두산과 용두봉이 있다. 그러나 예천과 문경을 갈라놓은 이 용두산은 국립지리원의 지도를 비롯한 여러 교통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숨어 있는 산이다. 그러나 정수리에 예천군에서 세운 용두산 정상석이 확실하게 자리한, 대부분의 산꾼들이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산이기도 하다.
하얗게 눈이 내린 2008년 1월15일, 2010년 신년벽두에 소개할 용두산 취재산행에 나섰다. 십여 년이란 ㄱ신 세월동안 연재 중인 <사람과산>의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사진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눈이 쌓이거나 단풍이 좋을 때 미리 생각해 둔 산을 찾아가는 필자의 마음을 비록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며 폭설이 쌓인 위험한 새벽길을 달렸다.
백두대간 종주길에 몇 번이나 찾았던 927번 지방도로는 엄청난 눈이 내렸다. 올산(858m)과 선미봉(1080m)을 스쳐 지나는 도로 바닥은 얼어붙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위험한 상태였다. 다행스럽게도 12인승 승합차는 무사히 저수령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폭설로 인해 저수령휴게소조차 문을 닫은 오전 10시, 드넓은 저수령을 둘러보았다.
저수령 이름은 지금의 도로가 생기기 전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을 따라 오르내릴 때 경사가 급해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고 붙여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저수령에서 은풍곡까지가 피난길로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전이 벽해로 변해 드넓은 광장에 휴게소며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고갯마루 남서쪽의 '용두산 입구' 라고 적힌 팻말이 선 곳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쳐가며 능선삼거리에 올라선다. 오른쪽으로 헬기장을 방불케 하는 너른 평지 가운데 무덤이 있는 이곳에서 길은 왼쪽으로 크게 꺾어진다. 며칠간 내린 눈이 황홀한 산경을 연출한다. 수정, 에머랄드, 금강석을 떠올리게 하는 상고대며 눈꽃이 산길에 만발해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예부터 금수강산이라 이름한 우리나라인지라 어느 계절을 막론하고 산이 아름답지만, 만산에 눈이 그득한 겨울산행이야말로 '산행다운 산행', '산행의 꽃' 이라 생각된다.
연신 사진을 찍어가며 느긋한 남녘능선을 이어간다. 발자국이 전혀 없는 너른 헬기장을 지난 곳에는 묵무덤을 만난다. 새하얀 눈이 가득 쌓인 동그란 무덤에 티 한 점 없는 겨울하늘이 내려앉아 국보급 조선백자를 능가하는 아름다운 산경을 연출한다. 소나무 한 그루가 이정표처럼 지킨 좁은 용머리(정수리)에 올라선다. '용두산 정상. 해발 980m. 경상북도 예천군' 이라 표시된 정상빗돌이 자리한 용두산 정수리에서의 조망은 참으로 눈부시다. 북동쪽으로 촛대봉(1080.6m), 시루봉, 유두봉으로 이어지는 눈 쌓인 백두대간이 힘차게 달려간다. 동쪽으로는 용두리계곡과 가재봉(851m)이 손에 닿을 듯 다가든다. 그러나 조망의 압권은 서녘이다. 황장산(1077.3m), 대미산(1115m), 포암산(961.7m)을 이어간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조령산(1026m), 백화산(1064m)으로 하늘다리를 출렁인다. 어찌 그 뿐이랴.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서남녘의 천주산(836m)이 조망의 백미를 이루고, 그 너머의 공덕산(913m)이며 운달산~단산~오정산을 으어가는 문경의 명산들이 첩첩첩 눈이 부신 겹겹의 파노라마를 펼쳐놓았다. 그 누가 말했던가, "아는 만큼 느낀다"고. 눈 쌓인 용머리에 서서 지난날 땀에 젖어 오른 그 청산들을 하나씩 생각하며 형언할 수 없는 감회에 젖어본다.
이윽고 정신을 차려 정상사진을 찍은 후 동남녘의 능선길을 이어간다. 에천과 문경의 시군계를 벗어난 동남녘 내림능선에는 '용두주유소 800m, 청백(석이)버섯 자생지 600m', '법황재 600m, 청백버섯 자생지 600m', '명봉사 임도 600m, 산안재 쉼터 600m' 라고 각각 표시된 세 개의 이정표를 잇달아 만나게 된다. 정수리를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못되어 임도를 만난다. 장승이 눈길을 안내하는 이곳에는 산림도로 안내판과 산림헌장을 새긴 빗돌이 자리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산림헌장을 큰소리로 읽어본다.
'숲은 생명이 숨 쉬는 삶의 터전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과 기름진 흙은 숲에서 얻어지고, 온 생명의 활력도 건강하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숲에서 비롯된다. 꿈과 미래가 있는 민족만이 숲을 지키고 가꾼다. 이에 우리는 풍요로운 삶과 자랑스러운 문화를 길이 이어가고자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숲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에 다 같이 참여한다. -숲의 다양한 가치를 높이도록 더욱 노력한다. -숲을 울창하게 보전하고 지속 가능하게 관리한다.'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는 산림헌장을 곱씹으며 다시 산길을 이어간다. 임도를 지나 782봉에 오르자 능선은 남녘으로 이어간다. 아름드리 굴참나무 군락지와 쉬어갈 수 있는 작은 너럭바위지대를 지나니 이번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굵은 주목이 나타난다. 뒤이어 생명을 다한 고사목과 그 옆에 자리한 어리디 어린 주목이 이채로운 산길을 이어가 가르재에 닿는다. 대형 스테인리스 물통이 놓인 가르재 사거리에는 추목정과 하사마을로 각각 내려서는 농로가 있다.
여기서 능선길을 올라 남동쪽으로 내려간 곳에 벌목지대가 이어진다. 베어 넘긴 나무 사이에 명감나무가 자라 빨간 열매가 눈 속에서 황홀하다. 약간은 희미해지는 동남녘 능선을 계속 내려가 과수원을 지나 태고종 사찰인 광명사가 길가에 자리한 901번 도로에 내려선다.
광명사에서 동쪽으로 포장도로를 이어 15분 만에 사곡버스정류소를 지나 927번 도로와 만나는 사곡삼거리에 당도한다.
*산행길잡이
저수령고갯마루-(30분)-용두산 정수리-(50분)-임도삼거리-(50분)-가르재-(1시간20분)-사곡버스정류소
용두산 산행들머리는 경북 에천군 상리면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를 이룬 저수령 고갯마루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이곳에서 예천군 상리면 방향으로 오른쪽(서쪽) 길가에 '용두산 입구' 라고 적힌 팻말이 있다. 팻말 방향을 따라 서남쪽으로 산길을 오르면 오른쪽에 너른 무덤이 자리하는 능선삼거리가 나온다. 용두산 산길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크게 꺾어진다. 남동쪽으로 느긋이 산길을 이어가면 헬기장을 지나고, 에천군에서 마련한 자그마한 정상석이 자리한 용두산 좁은 정수리에 올라선다.
하산은 예천군과 문경시의 경계를 벗어난 동남쪽 능선길을 따라야 한다. 하산 5분 거리에 이정표가 자리하고 뒤이어 제2, 제3의 이정표를 거듭 만나게 된다. 이어내린 동남녘 능선의 782봉 직전에 만나는 임도에는 산림헌장 빗돌과 임도안내판, 장승 2기가 자리한다. 임도를 지나 782봉을 다시 올라 능선길을 이어가면 능선은 남녘으로 굽어지고, 대형 스테인리스 물통이 놓인 가르재 사거리다. 이곳에서 서쪽은 추목정으로, 동쪽은 하사마을로 각각 농로가 연결된다. 취재진은 계속 능선을 이어 남쪽의 678봉에 오른 후 다시 동남쪽 능선을 이었다. 벌목지대와 명감나무지대를 지나면 과수원에 이르고 뒤이어 광명사가 자리한 901번 도로에 내려선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포장길을 따라가면 사곡버스정류장이다.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예천으로 가는 버스가 1일 15회(06:40~20:00) 출발한다. 2시간30분 걸리며 요금은 14,200원. 예천에서 택시(054-653-8003)로 저수령 고갯마루까지 가면 된다. 요금은 30,000원쯤 나온다.
예천에서 상리면 용두리(06:20, 08:40, 10:40, 13:20, 17:00, 19:40)와 명봉리(07:20, 08:40, 10:40, 12:00, 15:00, 18:00)까지는 각각 하루 6회씩 군내버스가 다닌다. 예천시외버스터미널 앞 승강장에서 타면 된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 저수령 고갯마루에 소백산관광목장(043-422-9270)이 있지만 사정상 2009년 12월27일에 가게 문을 닫는다고 한다. 날머리 상리면 도촌리에 대흥식당(054-652-5758)이 있다. 이외에 이렇다할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없어서 예천읍내로 나가야 한다.
글쓴이:김은남 1943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을 지냈으며 92년 계간 <시세계>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시조집 <산음가1,2,3>, <시조시인산행기>, <일천탑의 시탑1,2>를 펴냈다. simsanmunhak@hanmail.net">simsanmunha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