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왜 그런대요?
생협 조합원 몇 분과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식당이 위치한 곳은 일반 대중교통이 다니는 곳이 아니어서 차가 없으면 찾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그렇다고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고 시내 한복판 섬처럼 남은 그린벨트 지역이다.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란 박재란의 노래가사처럼 인천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온다는 남촌이 이 지역의 행정구역명이다.
남동구나 연수구가 분리되기 전 모두 남구였을 당시에도 이곳은 남구의 남쪽에 자리 잡은 곳이다. 소래포구 가는 구길 중에 하나가 문학경기장을 지나 남촌동을 지나 도림고등학교 옆길로 넘어 논고개를 거쳐 갔으니 꽤 오래된 동네이면서도 시골 정취 풀풀 풍기든 곳이었다. 주변이 모두 개발되었어도 개발의 삽질에서 비껴간 수산동과 연결되어 있는 남촌동 그린벨트 지역이다.
도시민에게 숨겨진 전원생활의 향수를 상기시키려는 듯 한 이름을 단 음식점 주변에도 저마다의 색깔을 띤 상호를 단 음식점이 엄청 많이 들어서 있다. 몇 년 전에 한번 이곳을 지나갔던 때를 생각하니, 어느새 이렇게 많은 집들이 지어졌을까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지역은 골프장으로 체육공원으로 개발한다는 시 방침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곳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 큰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음식점 영업을 하니, 축사 하나라도 맘대로 짓거나 고칠 수도 없이 규제하는 곳이라 더더욱 놀랄 뿐이다. 시에서 내세운 골프장건설 명분 중에 하나도 무분별한 난개발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곳을 둘러보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겠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그렇게 말하는 시가 주범이다. 단속권이 자기들에게 있는데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면 누굴 탓하겠는가. 자신을 탓해야지.
자신의 무능을 빌미로 또 다른 사업을 벌이려는 그들의 후안무치가 우습다.
일행이 들어간 집은 칼국수가 주요리로 차례대로 하나씩 음식이 나오는 집이다.
제법 이름이 알려졌는지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자리가 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할 만큼 사람이 많다.
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모두 여자들이라 자연스레 대화는 차를 가지고 식사하러 오는 여자들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곳에 즐비한 식당 모두가 다 여자들 때문에 생겨났다거나 미사리나 춘천 가는 길가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음식점들 모두 여자들이 먹여 살린다는 등등 지역을 넘어 전국구로 이야기를 넓힌다. 식당에 앉아 있는 여자들을 설핏 보면 쓸데없는 정보들만 만들어내고 가공하는 하릴없는 모임처럼 보이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무슨 보험이니 증권이니 예약 석에 적혀있는 회사명이 보인다.
주 요리인 낙지 칼국수의 국수는 전분을 썼는지 밀가루를 치대고 숙성시킬 때 나오는 고유한 쫀득함은 없고, 고무 삶은 것 같은 뻐덩거림이 있어 별로였지만 그 나머지는 깔끔한 게 입에 맞는다.
어떤 모임이든 그렇지만 식사 모임도 주고받는 이야기가 어떤 패턴이 있는 데, 주로 먹는 것에서 시작하다가 다른 식당에는 뭐가 좋다든가 하는 것으로 영역을 확장하다 누군가가 꼭 똥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가 되면 그 다음에 애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리든 디저트든 마무리가 된다.
이 모임이라고 예외는 아니라 이집 음식 품평을 시작하다 이와 비슷한 음식점과의 맛 비교며 가격비교 분위기 비교를 거치다 영역을 확장에 다른 음식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 어디에 뭐가 좋더라도 넘어간다. 이야기가 거기로 넘어가면 모임 있는데 가도 되겠냐 정말 좋냐 양은 어떠냐 새로운 정보획득에 나가더니 누군가가 똥이야기를 한다.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한 사람은 이 모든 과정을 리뷰 하다가 먹는 이야기 끝은 언제나 똥이야기라 일갈하고, 그를 신호로 먹는 이야기는 끝이 나고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 날은 다들 바쁜 와중에 간신히 짬을 내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바쁜 식사라 나오지 않는 음식을 기다리지 못하고 가야된다는 사람을 주저앉히려, 나도 2시에 아이 교복 맞추러 가야하니 같이 가자고 한다. 아이 교복 이야기에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를 둔 학부형은 교복 값이며 줄여 입는 교복 이야기가 자연스레 입질에 올랐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남자들은 왜 그런데요” 애피타이저도 없이 그렇다고 서설도 없이 화가 배인 목소리 물어오니
“뭘 왜 그러냐‘ 고 되물을 수밖에
“아니 왜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하고 외출을 한데요. 더러버 죽겠어”
아마도 어제(일요일)에 이 문제로 사단이 있었나 보다.
“응 아이 교복 맞추러 가는 데 글쎄 떡진 머리에 눈곱도 안 떼고 츄리닝바람에 따라 나서는 데 아이고 더러버라”
이 말을 들은 다른 일행이 자기 남편도 그렇다고 진짜 남자들은 왜 그러냐며 말을 받는다.
일행 중에 남자가 나포함 두 명이니 생각난 김에 물어본다고 다들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와 동행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갔어요”
“아니요 막 뭐라 했더니 떡진 머리에 물만 뭍이고 나오더라고요”
“아니 그럼 모자를 사주면 되지 왜 뭐라 그래요”
뒤이어 옷 입는 것 가지고 말이 나오니 동행인 남자가
”우리 마누라도 내 옷 입는 것 가지고 꽤 뭐라 그래요. 같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혼자 나가는 데도 일일이 다 챙겨주고”
“우리 남편은 매일 출근하니 양복은 제대로 챙겨 입는데 휴일에 캐주얼 입으면 도대체 옷을 못 맞춰 입어요. 이것저것 챙겨줘야 겨우 구색이 갖춰진다니까요”
“아니 그냥 나가고 싶으면 싶은 대로 놔두면 되지 왜 그리 일일이 신경을 써요. 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면 되지. 괜히 마음 써서 신경을 긁을 필요 있어요”
“여자들은 남편을 자기 외투로 생각하나 봐요. 그냥 자기 몸이나 신경 쓰지”
뭐 대강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정작 제일 처음에 나온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집에 돌아와 낮에 있었던 대화가 다시 떠올라 나는 어땠나 생각을 해보니 나 역시 일요일엔 그 사람과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보니 나도 그러네. 그런데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자유나 해방감 뭐 이런 것을 느끼려고 그랬던 것 같다.
일요일은 평일과 달라 누군가의 시선에 매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간이다. 평소 출근하느라 꼬박꼬박 세수 하고 면도하고 머리도 감고 옷도 단정히 입는 행위가 하나의 속박이요 구속이다. 남의 눈에 비치는 나를 의식해 해야만 하는 행위이니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사실 평일 하루는 그렇게 차려입고 나가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일요일 식구들과 나가는 일에서도 똑같이 하기는 싫었을 것이다. 천성이 워낙 깔끔한 사람이야 이렇지는 않겠지만 그 사람과 내가 같은 부류라면 게으름도 게으름이지만 그 뒤에 있는 해방감을 만끽하려는 마음이 깔려있을 것이다.
남편의 차림이 여자의 얼굴로 느껴져 남편이 나갈 때 마다 옷을 챙겨주는 그 마음이 바로 평일 남자가 자신을 꾸미는 마음이라면, 집안에서 펑퍼짐한 옷에 맨 얼굴로 양푼에 밥 가득 비벼 입이 터지도록 쑤셔 넣는 여자의 그 해방감이나 일요일 떡진 머리로 부시시한 얼굴로 거리로 나서는 남자의 해방감 역시 같으리라.
낮에 못한 대답이 될지 모르겠다.
2009.2.24
첫댓글 울집은 반대인데... 울남편은 주말에 집에 있어도 꼭 머리감고 무쓰 발라요.. 전 특별히 나갈데 없으면 세수도 안하고 버티다 혹 동네 슈퍼나 산에 갈때는 대충 모자 눌러 쓰고 나가거든요. 남들이 내 얼굴 자세히 볼것도 아니고 머리 냄새 맡을것도 아닌데 뭐 어때? 하는 생각으로요.. 물론 울남편은 대놓고 뭐라 못하지만 아마 속으로 '여자가 되게 더럽네' 할지도 모르겠네요 ㅎ ㅎ
저도 어제 남촌동에서 아줌마들하고 한정식 먹고 왔는데요 길도 좁은 곳에 왠 음식점은 그리 많고 여기저기서 찾아들어오는 자가용들은 또 그리 많던지요.. 동네 음식점들이 장사 안되는 이유가 있더라구요. 흙이랑이란 한정식집이었는데 간장게장을 한사람당 한마리씩 주는데 맛이 좋아 기억이 남네요..
ㅎㅎ그러는 여자들은 왜 그럴까? 그냥 봐주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