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마을
동창마을(홍천군 내촌면)
행정구역상 홍천군 내촌면 물걸 1리에 위치한 동창마을은 중종 때 대동미 수집창고가 위치해 있었던 마을이다.
홍천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창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 지역에는 벼락구비 전설과 삼형제바위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다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근대사에는 동학군의 마지막 격전지였고 허홍천군의
3.1독립만세운동을 불붙인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 때문에 ‘물걸리’하면 ‘동창만세운동’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을이다.
‘물걸리’하면 어디냐고 하지만 ‘동창’하면 금방 알아듣는다. ‘동창’이 있었던 자리는 지금
‘농협비료창고’ 터다.‘동창’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중기 이후 사창(司倉) 제도에서 비롯된다.
사창은 ‘대동미’를 수집 보관하는 창고다. ‘
대동미(大同米)’는 조선 중기이후 ‘대동법(조선 선조41년-1608년-이원익에 의하여 실시;중앙에 선혜청을 두었다)’
에 의하여 공물(貢物-지방의 특산물을 바치는 것)을 미곡(쌀)으로 통일하여 바치게 하던 납세 미곡을 말한다.
‘동창’이 물걸리에 들어섰던 이유는 영서 내륙의 교통 중심지였고 강을 이용한 물류 운송이 가능했다는 점이라
추정한다.
홍천군지에도 ‘홍천에는 동서남북 4방에 동창 북창 서창 남창으로 불리는 대동미 창고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동창에 서석 내촌 인제부 일부지역의 특산물과 ‘대동미’를 수집·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따라서 물걸리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장마당이 형성되고 주막거리와 마방이 들어서게 되었다.
사창을 관리하기 위하여 중앙의 관리나 현감 등의 순찰이 잦았고 이들의 행적이 많이 남게 되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비석거리’다. 대부분 선정비나 공덕비인 비석에는 이곳에 부임을 하거나 순방한 관리들의
이름이 남아있었다고 한다.‘비석거리’는 원래 지금이 팔열각 앞 길 건너편이었고 다리 건너에 마방과
주막거리가 있었다. 지금 그 흔적은 볼 수 없는데 1964년의 대홍수 때 다 쓸려 내려갔다고 하고 그나마 남은
비석들은 만세공원 뒤편에 세워져 있다.
최근에는 김덕원 의사를 비롯하여 부장두 전성열의사, 팔열사를 추모하는 기미만세공원이 새로 조성되었고,
마방터, 척야산, 용호강, 남강로, 김군보 등을 공원으로 단장하여 찾는 이의 발길이 많아진 곳이다. 또한 ‘
동창 물리침술원’도 물걸리를 알리는데 빼놓을 수 없다. 대동여지도 홍천부분 내촌에는
‘물거리(物巨里)’가 등재한다. 큰 재물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물걸리(物傑里)로
바뀌었다.
물걸리의 중심은 동창과 탑둔지와 주막거리이다. 동창은 대동미창고를 중심으로 팔렬중고등학교(대안학교)와
지금의 시장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다. 특히 주막거리에는 전영균(팔열사중 한분)의 약방 겸 글방
(당시 대형태극기가 게양되었고 한다)이 있었고 김덕원의 마방(지금이 마방터 건너편)이 있었고,
4.3 동창만세 운동 거사계획을 밀고한 ‘김홍이(당시 이장)’가 술을 먹었던 ‘김달홍의 주막’과
‘김도명의 술집’도 주막거리를 이루는 장마당에 있었다. 장마당은 지금의 마방터 공원, 길 건너편으로
개울가에 들어섰다.
당시 시위에 모인 군중들은 비석거리와 장마당, 탑둔지, 가루개고개, 구미터까지 꽉 메웠다고 한다.
‘가루개고개’(가루개, 갈현, 갈고개)는 수하리 절골과 맞닿은 고개다. 우마꾼들과 사람들의 발길로
고갯마루가 낮아졌다고 할만큼 왕래가 많았다고 한다. 수하리 ‘푯대봉’ 능선에 이어지는 ‘가루개고개’는
그리 높지 않고 험하지도 않은데 골이 길다. 고개를 넘어서면 푯대봉 쪽으로 난 골은 ‘메네골’이고,
왼쪽으로 ‘지당골’과 ‘양창골’에는 금광이 있어 큰 부락을 이루었다. 새목골도 있었다.
고개를 넘으면 항곡초등학교 뒤편이 나온다. ‘큰배골’과 ‘큰동회골’ 어귀에는 주막거리와 화약고가 있었다.
중지골'‘작은동회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합쳐 개울을 이루어 숫돌머리를 돌아 흐른다.
‘샛골’에서 ‘덕고개’를 넘으면 복골이다. ‘가루개고개길’과 ‘남강로’가 만나는 삼거리에는 주막이 있었고
다리를 건너면 ‘널나드리’다. 지금은 시멘트 다리가 놓여있고 그 위쪽에는 보가 놓여있어 벼락구미의 풍광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동호골’은 팔렬중학교 오른쪽이다. 복골과 동호골 사이의 능선에는 동창교회가 자리한다.
학교와 울타리를 맞대고 동창 정보화마을 사무실이 있다. 뒷길을 따라 오르면 ‘대동미 수집창고’였던 ‘동창’
터에는 농협비료창고가 서있다.
역사가 숨쉬고 있는 이곳이 정보화마을로 지정되었으며 마을정보센타에서는 마을을 홍보하고 농산물인터넷판매와
단호박축제로 부촌낙원을 꿈꾸며 동창에 충절의 역사를 지켜가며 동창마을을 앞서가는 농촌마을로 만들어가고 있다.
-허병직 시인의 기행문에서 자료인용-
동창마을 바로가기 : http://dongchang.invi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