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네 미장원이 살아남는 법
동네에서 영업하고 있는 작은 미장원의 주인 아주머니들이 서로 연합해서 그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거나 혹은 전문가들에게 ‘한미 FTA가 영세 서비스업인 동네 미장원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용역을 맡길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까지
세상 돌아가는 걸 잘 알고 있고, 공동대응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정도로 약삭빠르다면
이미 프랜차이즈로 규모화와 자본화의 길을 걸어갔을 것 아닌가? 동네 미장원은 어지간하면
가까운 데서 퍼머를 하려는 소비자들에 의해서 ‘자연독점’이 벌어지는 특수시장이다.
워낙 규모도 작아서 지켜주려고 하면 정부가 아주 쉽게 지켜줄 수 있는 서비스산업이다.
그야말로 동네를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자영업종이다.
약식의 현황보고서를 하나 만들고, 동네 미장원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문장 한 개만
FTA 협상문 속에 넣어주더라도 장기적으로 동네 미장원 약 20만개 정도는 이 큰 파도에도
생존할 수 있다. 물론 모두 어려워지면 이 사람들에게도 평균적인 충격이 오겠지만,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연마한 기술 하나만 믿고 큰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조건 정도는 정부가 마련할 수 있다. 아무리 미국이 협상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왔을지라도
2억원 미만의 소규모 미장원에 대해서까지 별도의 전략을 수립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관련규정을 한국이 제안하면 별 어려움 없이 최종 협상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미국이 협상과정에서 그렇게 작은 것까지 미리 검토하고 들어올 정도로
‘쪼잔’하고 무자비하지는 않다.
사실 이렇게 서민들의 생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야 하는 이유는 한미 FTA가
채택하고 있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 때문이다. 호주와의 FTA에서 처음 등장한 이 새로운
방식은 기존의 ‘포지티브 리스트’와 범위와 질을 전혀 달리한다.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은
열거된 업종들과 분야들만 개방을 하지만, 한국에 적용될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은
열거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예외 없이 개방하고, 별도로 명시되지 않았다면 아무런
보호장치를 둘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별 특이점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동네 미장원도 “이건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특별히 우리 측에서 요구하지 않는다면,
미장원 프랜차이징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미국 회사가 생겨나 한국 시장의 잠재력에
눈을 돌리는 순간, 언제라도 20만개의 동네 미장원이 허공으로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동네 미장원의 경우와 같이 소규모 도시 자영업에 해당하는 모든 업종이 사실상 개방
대상이다. 어지간해서는 귀찮더라도 그런 업종에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경우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다. 동네 구멍가게가 없어지는 날이 올 줄 1990년대까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프랜차이징 편의점이 등장했고, 구멍가게들은
1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망했다. 또 동네 빵집들이 통신사 회원할인의
수혜를 받는 프랜차이징 빵집에 밀려서, 그야말로 도미노처럼 쓰러진 것이 바로
최근에 벌어진 일이다. FTA로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휴대전화 중계망들이라고 해서
안전하지는 않다. 미국의 소위 전문적인 ‘망장사’들이 한국의 정보통신회사도 할 줄 알았던
할인카드 전략을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또 계열사를 연계한
대자본 프랜차이즈 회사가 한국 시장을 겨냥해서 새로 생겨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이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측면들 때문이다. 현재 시장 정보가
별로 없는 업종들에 대해서도 미리 예상해서 집어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살기가 어려워져서
남편은 세탁소를 운영하고 부인은 미장원을 운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게가 생긴다고 하자.
이 경우도 미리 분류해서 집어넣어야 할까?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가게마다 개별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는 휴대전화 대리점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의 휴대전화 망을 인수한 미국 회사가
직영으로 핸드폰 대리점을 운영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운영에 대해 별도의 요금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은
근본적으로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면밀하게 검토하고 빼곡하게 채워 넣으라는 의미다.
만약 특별히 명시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을 협약에 물을 수 없게 되어있는 무서운 방식이다.
동네 미장원을 챙겨야겠다고 마음먹은 국회의원 한 사람만 있다면 아직은 동네 미장원 정도는
지킬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은 이순신 장군이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 ‘부지런한 머슴’들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서민들을 지켜줄 ‘국민의 공복’은 보이지 않는다.
-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