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일본 교토입니다. 지금부터 서울대와 도쿄대의 친선 야구경기를 중계방송해 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양교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선수들이 도쿄대보다 체격 조건이 좋아 보이죠?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체격이 좋은 것과 체력이 좋은 건 다른 얘깁니다. 말씀드리기 민망합니다만, 2005년에 양교 친선경기가 시작된 이후 서울대는 4전4패를 기록 중입니다. 그것도 모두 콜드게임(점수차가 커 경기를 중단하는 것)으로 말이죠.
-아니 서울대나 도쿄대나 모두 체육특기자를 받지 않는 걸로 아는데요. 똑같이 최고 명문대에 입학한 양국 공부벌레들의 실력 차가 그렇게 크단 말입니까.
-그게 두 나라의 교육 환경이나 문화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우리는 어릴 적부터 ‘공부할 아이’와 ‘운동할 아이’가 분명하게 갈립니다. 운동하는 친구들은 수업을 거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훈련에 매달리고, 반면 일반 학생들은 정규 체육 시간도 빼먹고 공부에 전념하도록 강요받죠. 그러니 체력을 키우고 스포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 시작됐습니다. 초반부터 도쿄대가 연속 안타를 터뜨리며 대량 득점을 하는군요.
-네, 반면에 서울대 선수들은 도쿄대 투수의 빠른 공을 쳐내기가 힘겨워 보이는데요.
-마침 중계석에 일본 지지통신 서울지국장인 요시다 겐이치씨가 나와 계시는데요, 한·일 학교체육 현장을 비교해 보셨을텐데 어떤가요?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은 소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일주일에 두세 시간 체육 수업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강제적으로 하는데 반발은 거의 없습니다. 일본은 ‘공부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건강해야 하니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요시다씨는 아드님이 서울 덕수중학교 야구 선수라고 들었습니다만.
-네 아들이 좋아서 야구를 하는데, 솔직히 야구 하는 시간이 많아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래도 야구를 하면서 배우는 점이 많아 좋습니다.
-쓰쿠바대에서 체육철학 전공하신 김정효 박사님도 나와 계신데요. 쓰쿠바는 ‘괴물 축구선수’로 불린 히라야마가 입학한 대학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박주영과 비교되던 스타 선수인 히라야마가 명문 쓰쿠바에 입학한 게 당시 큰 화제가 됐는데요. 히라야마는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쓰쿠바의 논술 시험을 당당히 통과했습니다. 일본은 운동 선수들도 진학을 앞두고 1년 정도는 입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줍니다.
-호남의 축구 명문 금호고를 맡고 계신 최수용 감독님도 옆에 계신데요. 웬일이십니까.
-제가 이번에 호남대에서 박사 논문을 제출하는데요. 주제가 ‘한·일 고교축구 선수들의 운동참여
동기와 운동만족, 운동지속 의도의 관계분석’입니다. 설문조사를 해 보니 양국 축구선수들의 운동에 대한 인식에 뚜렷한 차이가 있더군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쉽게 말씀드리면, 한국 선수들은 학력이 떨어지니까 운동을 통해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운동 수행의 향상과 사회적 인정을 중요시하고 운동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운동을 하고, 축구에 대한 만족을 더 느낀다고 해석된다, 이 말씀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가 끝났습니다. 도쿄대가 서울대에 21-4, 7회 콜드게임으로 이겼네요. 서울대는 이로써 5연속 콜드게임패를 당했습니다. 옆에 서울대를 나오신 한준희 축구해설위원이 계신데요. 한 말씀 해주시죠.
-우리는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격차가 너무 큽니다. 일본은 작고요. 운동뿐만이 아닙니다. 악기를 다루든, 그림을 그리든 우리는 직업으로서 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하지만 그걸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의 실력은 많이 떨어지죠. 즉 우리가 가진 시간·돈·에너지를 직업이 아닌 쪽에 투자하기에는 한국 사회가 아직은 불안한 구조라는 점이죠.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격차가 줄어들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여유로워져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자, 내년에도 경기가 열리는데 서울대가 또 콜드게임으로 지는 것 아닐까요.
-안타깝지만 내기를 한다면 콜드게임패에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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