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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1-11절 *종려주일 – 호산나의 목적!
오늘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주신 하나님 아버지 경배하며 찬양한다!
[우리 서로 인사하자.] -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오늘은 [종려주일 – 호산나의 목적!] 이란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한다!
*종려주일 :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성경에서 종려나무는 의와 아름다움, 승리 등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날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며,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스가랴 9장 9절에 예언된 그대로였으며, 그래서 '호산나주일'이라 불리기도 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길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호산나는 보통 할렐루야와 비슷하게 찬양의 선포로 여겨지지만 호산나는 사실 구원을 간청하는 것이다. 호산나의 히브리어 어근을 시편 118: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야샤’(구원)와 ‘안나’(간청)가 합쳐져서 “호산나”라 번역되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문자 그대로, 호산나는 “구원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또는 “제발 구원해주세요!”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외쳤던 구원의 목적과 의미가 예수님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유월절 명절에는 예루살렘에 대략 200만명이 모일 정도로 엄청난 유대인들이 모여들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삼대 명절때가 되면 전 세계에서 모임!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나귀를 타시고 입성할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상태였다. 그들은 해방을 원했다. 지금 당장 여기 식민지 상태에서 우릴 구원해 달라고 외쳤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소원과 다른 구원을 위해서 예루살렘 성으로 오신 것이다.
며칠 후 호산나를 외치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했던 그들의 외침은 이렇게 바뀌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Crucify him!
우리들도 내가 원하는 호산나! 나의 호산나! 지금 이 문제/내가 필요한 것 해결하소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예수님 당신에게 기도하며 간구했던 것을 당장 이루소서!
그런데 나의 호산나가 아닌 주님의 호산나로 이뤄가실 때 우리는 어떤가?
예수님께서 이루신 호산나를 통해서 나의 호산나가 예수님의 호산나와 동일!
1. 예수님의 호산나의 목적은 불신앙으로부터 구원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사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수많은 일들을!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을 전하고 때론 기적을 행하시고,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더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에게 나오길 바라시며 주님의 몸되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기 보단 교회를 떠나기까지 한다.
먼저 믿은 우리 성도님들을 통해서 불신앙의 자리에 있는 우리 가족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 구원을 전하며 교회에 나오도록 전도하지만 불신앙!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 400여년 전 말라기 선지자까지만 해도 끊임없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도록 부르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이것은 개개인의 종교적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믿고 안 믿는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 왜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데 주저/거부하나?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靈)이라.” in which you used to live when you followed the ways of this world and of the ruler of the kingdom of the air, the spirit who is now at work in those who are disobedient.
고린도후서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The god of this age has blinded the minds of unbelievers, so that they cannot see the light of the gospel of the glory of Christ, who is the image of God.
에베소서 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They are darkened in their understanding and separated from the life of God because of the ignorance that is in them due to the hardening of their hearts.
불순종/ 불신앙의 영은 인간의 죄성가운데 제일 먼저 우리를 지배하는 영이다.
우리들 가족들/ 부모/ 배우자/ 자녀들/ 형제들 가운데서 평소엔 너무 좋다.
어떤 부탁이라도 대부분 다 들어주거나 함께 하면서, 여행도....식사도...영화.... 그런데 교회에는 오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때론 내가 싫어도, 피곤해도, 좋아하지 않아도 가족이니까, 친구니까 함께...... 그런데 교회에 오는 것, 하나님 믿는 것은 절대로 따라오지 않는 것이 왜 그런가?
우리 인간의 죄성인 불순종/ 불신앙의 영이 아직도 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앙과 불순종의 영에게 지배받음으로 가장 불행한 저주를 받았던 가룟유다!
그는 예수님을 3년6개월이나 따라다니면서 수많은 기적들..... 예수님의 설교말씀들과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직접 들었던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마음속에 개인적 야망과 욕망들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3년6개월이란 기간이 있었고, 예수님과 마지막 식사를 할때도 예수님께서는 가룟유다에게 너의 속으로 계획 하는 일이 마귀의 일임을 알도록 주의를 줬다. 그럼에도 가룟유다는 불신앙의 영으로, 불순종의 영으로 지배를 받고 있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우리 안에 있는 불신앙/불순종의 영이 물러가길!
우리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 심령의 중심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불순종의 영의 세력이 물러가게 되었다. 우리 마음의 불신앙의 장벽들이 무너진다.
여기에 있는 우리들도 불신앙과 불순종의 영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었지만 놀랍게도, 기적처럼 그렇게 고집스런 내가, 그렇게 의심많던 내가 불신앙적인 나의 자아를 포기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있는 이 사건은, 이 현장은, 이 증거들은 진정한 호산나의 축복이 이뤄졌다는 것임!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호산나 외침은, 예루살렘 성에서 외쳤던 그들의 호산나와 달라야만 한다.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어디로부터? 무엇을 위해? 지금 당장 내가 필요한 무엇을 먹고, 마시는데 필요한 일상의 일들이 아니라 우리 가족들 가운데, 우리 이웃들을 지배하는 불신앙의 영들을 물리치시고 지금 그들을 구원하소서! 외치는 호산나가 되길!
2. 예수님의 호산나의 목적은 죄로부터 구원하심이다!
예루살렘 성문 옆에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야라고 믿었던 예수! 작은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을 열성적으로 환영하는 그들 가운데 몇 명이나 예수님의 호산나의 목적을 생각해 봤을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메시야가 이 땅에 왜 왔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며 메시야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했던 사람은 몇 명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그 호산나의 목적을 이뤄달라고 그렇게도 열렬히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 마태복음 9:12-13절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On hearing this, Jesus said, "It is not the healthy who need a doctor, but the sick. But go and learn what this means: 'I desire mercy, not sacrifice.' For I have not come to call the righteous, but sinners."
로마서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For if, when we were God's enemies, we were reconciled to him through the death of his Son, how much more, having been reconciled, shall we be saved through his life!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인류에게 닥친 모든 문제와 고통의 근원은 죄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무엇보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많은 문제들 – 생명연장/ 질병퇴치/ 정보통신발달/ 문화/ 교육/ 정치/ 경제 등 이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해결했다고 하여도 사람에겐 여전히 남아 있는 결론은 죄로 인한 심판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하셨기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했다.
오늘 우리는 종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호산나! 지금 우리를 죄에서 구원......!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찬송가는
작시 : 민로아 (Frederick S. Miller, 1866~1937)
작곡 : 장 자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1892년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로 파송받아서 낯선 조선땅에 도착한 민로아(閔老雅, Frederick S. Miller, 1866~1937) 선교사 부부, 자녀가 없어 고민하던 그들에게 입국 6년 만에 첫 아들이 태어났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첫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들의 시신을 양화진에 묻었다. 3년 뒤, 아픔이 아물어 갈 때쯤 둘째 아이가 생겼다.
열 달을 뱃속에 품고 세상 밖으로 나올 날을 기다렸다. 1902년 3월 7일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루 만에 아이를 데려가셨다.
1년 뒤 아이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이 모든 일들을 지켜봐왔던 조선 사람들이 선교사에게 물었다. ‘당신이 전하는 예수가 누구기에 이처럼 당신을 힘들게 하는거요?’ 그들의 물음에 선교사는 대답 대신 찬송을 지어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찬송이 바로 96장이다.
이 찬송가의 3절 가사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은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 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민로아 목사는 1893년 서울에서 예수교학당(경신학교) 책임자가 되어 교명을 ‘민로아학당’으로 고치고 자신의 교육방침대로 발전시켰다. 안창호를 비롯한 많은 인재를 길러내어 기독교 교육에 힘썼다. 그는 서울과 청주지역에서 45년간 선교활동을 하였다. 1937년(71세)에 별세하여 양화진 제2묘역에 온 가족이 안장되었다.
예수님의 호산나는 우리 모두를 죄로부터 구원하심으로 성취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빠져서 내가 원하는 호산나만 바라보고 예수님의 죄사함과 구원의 호산나는 외면하고 있는 불쌍한 우리 가족들/ 이웃들이 있다.
오늘 종려주일예배를 드리면서 ‘호산나 – 주님 저들의 죄에서 지금 구원하소서!’
3. 예수님의 호산나의 목적은 교회 본질의 회복이다!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우리 예수님은 곧바로 예루살렘 성전으로 직행했다.
그곳에는 지금 유월절 축제와 제사를 위한 제물로 사용되어지는 새/ 동물/ 환전 등 다양한 것들이 매매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곳에 가셔서 이렇게 하셨다. 마태복음 21장12-13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Jesus entered the temple area and drove out all who were buying and selling there. H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 changers and the benches of those selling doves. "It is written," he said to them, " 'My house wi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but you are making it a 'den of robbers.
그리고 나서 성전에서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왔는가? 14절 “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The blind and the lame came to him at the temple, and he healed them.
예수님 당시 유월절 축제가 벌어지는 그 때에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전에 들어오게 되었다!
오히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처럼 돈벌이 하는 곳!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 누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빈부의 귀천, 차별이 없이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며 구원받음을 서로 감사/기쁨!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배! 그러나 이 당시의 예배는 거짓되고 타락한 예배!
예배의 형식은 있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상한 심령, 통회자복하는 영혼.... 불신앙과 불순종에서 돌아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감격으로 예배하는 사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회개하며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탕자와 같은 사람!
병들고 아픔으로 고통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며 소망으로 회복되는 사람!
복음이 필요한 심령이 가난한 자, 죄와 마귀의 포로된 영혼들, 영적세계를 보지 못하는 영적으로 눈먼 자들,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멸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갇힌 영혼들이 주의 은혜를 바라보며 나아와 예배하며 구원받는 교회의 본질은 우리 구세군의 선교헌장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본질, 이것을 회복하는 예수님의 호산나가 완성되는 날까지 교회가 교회되는 영적 갱신과 변화를 지금도 우리 교회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정리]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의 환영을 받으셨다.
그들이 외치는 호산나의 노래를 듣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그들은 호산나,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Save us now! 종려나무 가지들을 흔들며 외치고 또 외쳤지만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예수님의 마음은 더 무거우셨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 우릴 구원해 달라고 하는 목적은 예수님의 목적과 너무나도 달랐다.
오늘 우리들의 종려주일 외치는 호산나는 어떤가?
1. 예수님의 호산나의 목적은 불신앙으로부터 구원하심이다!
2. 예수님의 호산나의 목적은 죄로부터 구원하심이다!
3. 예수님의 호산나의 목적은 교회 본질의 회복이다!
이 시간 찬양하고 기도: [찬송가 96장! - 예수님은 누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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