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수 배호 - 일생스토리 —-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 왔다 울고가는 삼각지
불세출(不世出)의 가객(歌客)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三角地)'라는 곡(曲)이죠.
역사인물열전,(歷史人物列傳) 오늘은 스물아홉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夭折)하면서도 300여곡의 히트곡을 남겨 대중가수(大衆歌手) 최초로 도로명(道路名)(용산구 한강로1가 121번지)까지 명명(命名)된 전설적(傳說的)인 불후(不朽)의 스타 배호에 대해 알아볼까요.
1.가수 데뷔 전까지 -
1942년 중국 산동성 제남(濟南)에서 태어난 그는 광복군(光復軍) 출신(出身)인 아버지(배국민)을 따라 해방(解放) 직후(直後)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동대문구(東大門區) 창신동(昌信洞)에서 생활하게 되죠.
그의 호적상(戶籍上) 이름은 배신웅(裵信雄)인데 출생당시 이름은 배만금(裵晩今) 이었으나 중학생때 배신웅으로 개명(改名)했다. 배호(裵湖)는 1963년 그가 가수활동을 시작하며 지은 예명(藝名)이죠.
그는 서울에서 창신초등학교를 다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부산으로 내려가 이모의 모자원에서 생활하며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죠. 이후 그는 음악(音樂)을 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혼자 서울로 올라와
외삼촌(外三寸)에게 드럼을 배우면서 부평 미군부대 클럽에서 2년간 악단생활(樂團生活)을 하기도 하죠.
참고(參考)로 평생을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그는 평생(平生)을 독신(獨身)으로 살았고, 아무리 자료(資料)를 뒤져도 그 흔한 러브스토리 한 토막 찾을 수 없는데, 대신
그의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이라는 노래라도 한 곡 소개(紹介)할까요.
사랑이라면 하지 말 것을
처음 그 순간 만나던 날부터
괴로운 시련 그칠 줄 몰라
가슴 깊은 곳에 참았던 눈물이
야윈 두 뺨에 흘러내릴 때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
2.두메산골 -
1964년 낙원동 프린스 카바레의 밴드 마스터로 뽑혀 '배호와 그 악단'이라는 밴드를 꾸려 드럼을 치며 노래하는 가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같은 해 반야월 작사, 김광빈 작곡의 '두메산골'을 타이틀로 한 1집 음반 '황금의 눈'을 내고 공식 가수로 데뷔하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고향 찾아서
너보고 찾아왔네 두메나 산골
도라지 꽃피던 그날 맹세를 걸고 떠났지
산딸기 물에 흘러 떠나가고
두번 다시 타향에 아니 가련다
풀피리 불며불며 노래하면서 너와 살련다
이후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9도의 음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수려한 가창력과, 흐느끼는 듯한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가요계를 장악하게 되는데, 특히 '섹시한 모음의 가수'로 불린 그는 유난히 여성팬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3.돌아가는 삼각지 -
1966년 신장염에 걸려 음악 활동을 중단하고 청량리 단칸방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 그는 작곡가 배상태를 만나게 되면서 대표곡이자 최대 히트곡인 '돌아가는 삼각지'를 발표하죠.
이 노래는 노래말이나 곡 뿐만 아니라 특색(特色)있고 호소력(呼訴力) 깊은 그의 음색(音色) 덕분(德分)에 엄청난 인기(人氣)를 끌게 되는데, 실제(實際) 그는 가쁜 호흡(呼吸)때문에 가사(歌詞)를 짧게 끊어서 노래를 했는데 이게 오히려 그만의 창법(唱法)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죠.
우리나라 최초(最初)의
입체(立體)로타리로
1967년 건설(建說)되어 27년간
주요(主要) 교통시설(交通施設)로 이용되었으나, 교통체증과 지하철(地下鐵) 개통(開通) 및 구조물(構造物)
노후(老朽)로 1994년 철거(撤去)의 비운(悲運)을 맞아 역사속으로 사라진 삼각지 로타리,
사랑을 잃은 한 사나이가 옛사랑의 흔적을 찾아 왔지만 도리없이 서글피 울며 돌아설 수 밖에 없는 쓸쓸함,
둘은 절묘(絶妙)한 조화(造化)를 이루면서 결국 불멸(不滅)의 대히트곡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4.안개 낀 장충단 공원 -
남산의 동북쪽 기슭에 있는 장충단 공원은 조선 영조 때 도성의 남쪽을 수비하던 '남소영'이 있던 자리인데, 을미사변 때 희생당한 궁내부 대신 이경직, 시위대장 홍계훈 등의 영령을 위로하고자 '장충단'이라는 사당이 건립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죠.
그가 이 노래를 발표할 당시 공원은 차력사, 개싸움, 뱀장수, 팔자 타령하며 술 취해 늘어진 과부, 문둥이라 불린 한센병 걸인들의 독무대였는데, 그는 이 노래 한 곡으로 공원을 모습을 아름다운 사랑의 명소로 바꾸게 되죠.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달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 공원
5.최고 전성기 -
1969년 MBC 10대 가수상 수상(受賞)과 더불어 왕성(旺盛)한 활동을 다시 시작한 그는 '안녕', '누가 울어',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 등 주옥(珠玉) 같은 노래들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도 '내 생애 최고의 한 해'라고 부를 정도의 전성기(全盛期)를 누리게 되죠. 1970년에는 29개 상을 수상하여 그 해의 모든 가요상을 싹쓸어버리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기록(記錄)을 세우게 되죠.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같은 이슬비
누가 울어 이 한밤 잊었던 추억인가
멀리 가버린 내 사랑은 돌아올 길 없는데
피가 맺히게 그 누가 울어 울어
검은 눈을 적시나
개인적으로 그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누가 울어'라는 곡인데,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영혼을 울리는 불세출의 가객’이라는 그에 대한 평가(評價)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이 새삼 실감나네요.
6.마지막 잎새 -
무리한 활동으로 신장염(腎贓炎)이 재발(再發)하여 다시 입원(入院)한 그는 1971년 '마지막 잎새'와 '0시의 이별'을 녹음(錄音)하고 명동 코스모스백화점 공연 중에 각혈로 쓰러지게 되죠. 이후 그는 세브란스병원에서 혼수상태(昏睡狀態)로 사경(死境)을 헤매다 더 이상 가망(可望)이 없자
퇴원(退院)하여 미아리 집으로 가던 중 결국 사망하는데, 그의 장례는 예총회관(藝總會館)에서 가수 협회장(協會葬)으로 치러지고 시신은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 공원 묘지에 안장되죠.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지고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래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온 몸의 진액을 짜내어 흐느끼듯 노래하는 창법으로 일세를 풍미한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 비와 안개 등을 소재로 하여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것들인데,
가사·곡조·음색이 모두 처량하고 슬프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과 그의 비극적 운명과는 과연 연관이 있을지··
7.마치며 -
가슴 깊숙히 심금을 울리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며 대중 가요사에 지워지지 않는 불멸의 자취를 남긴 배호,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색안경을 낀 채 절규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러 반박자 느린 슬픔의 미학을 보여 주었던 배호, 그는 1980년 MBC에서 실시한 가요 60년사 조사에서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되었고, 2003년부터는 '배호 가요제'가 매년 열리고 있죠.
전국에 그의 노래비가 7개 세워져 있다
그중 정식으로 4개의 비석이 있는데 삼각지에 '돌아가는 삼각지'의 노래비와 그의 동상이 있고 배호의 묘지에는 '두메산골'의 노래비가 있고 경주와 강릉에 각각 '마지막 잎새'와 '파도'의 노래비가 있다. 노래 실력만큼이나 댄디하고 신사적인 매너,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따뜻한 인간성, 고유한 민요풍에 팝과 재즈까지 가미한 세련된 노래의 배호.
불세출의 가수 배호 -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 동영상 - https://youtu.be/Yn1xOqvpeWo?si=BuuzW7Rm7VXxH7Ff - 링크허용중 참고.
엘토 색스폰 연주 - 돌아가는 삼각지 -
https://youtu.be/yxww7t6fc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