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된, 계산될 수 없는 순간 즉흥 놀이
- 크리에이티브 드라마의 <학문외과> 연극을 보고
계산된, 계산될 수 없는 순간 즉흥 놀이, 이게 연극의 참맛이다. 이게 <학문외과>의 매력이다.
매번 다른 연극 관객, 매번 감성 지수가 요동치는 그날 그날의 상황, 이는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 모두 적용된다. 매 순간 마다의 놀이 체험, 그 색갈은 늘 다르다. 내 정서 반응 수치 즉, 그날 나만의 활력과 짓눌림 수치가 어떠느냐에 따라 놀이 공간의 진폭이 달라진다.
예상치 못한 관객의 반응, 따라서 반응 언어 역시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놀이 색조가 뜻밖의 구도로 뒤바뀔수 있다. 이게 연극의 묘미다. 이게 인생의 묘미다. 연극은 공연 직전 까지 그 공연성 색조를 가늠하기 힘들다. 이는 배우나 관객이나 평론가나 문화가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이게 인생의 진리인지 모른다. 연극 예술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그런 삶의 본질, 연극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멋진 공연을 마주함은 행복 그자체다. 엔돌핀 수치는 무한대로 확장될 것이다. 그럴 때 나는 너가 되고 너는 순간 나와 하나된다. 구경꾼은 어느 순간 연희자가 되고 연희자 역시 어느 순간 파트너의 반응을 보면서 구경꾼이되고 관조자가 된다. 이런 연극의 철학은 연극 현장을 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맛을 들여놓기 시작할 때 소극장은 활기를 발한다. 이 놀라운 수용 미학의 본질, 그 실존적 놀이 쾌감을 알아가는 것, 이게 예술 교육이고 삶의 참 본질을 체험케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극단 크리에이티브드라마의 연극 <학문외과>의 미덕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연극놀이를 빚어가고 그 놀이의 쾌감을 공유하게 했음에 있다.
정육점 남자 주인 역할의 김상오님이 돼지고기를 싼 검정 비닐 봉다리 꾸러미를 놓고 관객과 흥정을 벌인다. 심부름 상대 파트너 삼식 역할, 그는 자연스레 건장한 남자 관객을 선정하여 그의 지갑을 열게 한다. 순간 상대의 감성을 건드려 데이트 관극 나온 남녀 관객의 상황을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로 재 변용시켜 놓는다. 관객을 순간 상황 놀이 공간으로 이끌어들이는 김상오의 무대 연희 내공은 가히 놀랍다. 무대에서의 오랜 연륜과 성실한 탐구 내공에 기인함에 있다.
이번 작품은 사라정 역할의 정경아님을 위한 연극이라 할 정도다. 더러운 자들에게나 걸리는 치질, 자신은 그런 류의 사람들과 다르다라는 망상, 그녀가 망상과 허위 의식을 드러낼 수록, 그녀는 조롱감으로 전락한다. 엉터리 속내를 감추고 속이려다가 망가지는 자, 정경아님이 이를 자유자재로 소화하여 관객을 자기 특유의 망상 놀이 공간으로 이끌어들이는 과정은 보기만 해도 즐겁다. 망가지는 강도가 커질 수록 해방쾌감 역시 오랫 동안 유지된다.
치질을 깨끗하지 못한 자들의 질병쯤으로, 그래서 자신의 치질은 그들과 다른 우아한 희귀병 질환이라고 우기는 과정, 그녀의 과대망상 놀이가 극에 도달할 무렵 가짜 약장수에게 속아 은밀하게 약을 뿌리다가 낭패 당하는 그림은 이 연극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망상의 연희 놀이가 무대 전체로 확장될 필요는 없을까, 추함, 천박함, 찌질함, 이를 감추려는 전략, 이를 혐오한다는 허위 정서 연극, 이 두 양 스펙트럼이 무대 전체로 확장되어 망가지면서 드러나는 육체 언어의 맛깔, 관객은 이를 바로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한다는 것, 이제 이를 검토하고 창의적으로 성찰할 필요는 없을까.
술집 여인 수진이 조폭으로 부터 시달리는 상황 역시 긴박감 창출과 줄다리기 연극성 고양에 기여한다. 사채업자 조폭이 여인들의 공격으로 망가지고 무너지는 그림 역시 약간의 작위성이 있음에도 통쾌한 해방 쾌감을 자아낸 바 크다.
청년 실업 중압감에 시달리는 요즘 우리 주변 풍속도를 재치있게 전달하면서 이에 대한 염려와 위로 그리고 전기 관련업에 종사하는 젊은 남성관객을 전파사 일꾼으로 설정, 위안과 자부 정서로 반응케 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희극 놀이 쾌감을 공유케하려는 김상오님의 천부적인 애드립 즉흥 언어 놀이 전략, 예측 불허의 공연성 확장을 유도하였다는 점에서 이 연극의 최대 매력에 속한다.
아는 사람만 보면 퍼주길 좋아하는 자, 정육점 운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푼수기 넘치는 남편, 김상오님은 이를 고난영님과 호흡을 맞추어가면서 절묘한 타이밍으로 망가지고 구겨지는 희극 그림을 빚어놓고 있다.
여자만 보면 사죽을 못쓰는 난봉꾼 기질의 영감, 박복녀 할멈에겐 독재자요, 남존여비 정서의 극도의 이기적 인물, 그런 고집불통 영감 마저 따듯하고 넉넉하게 보듬어가려는 할머니, 유아 색조로 푸념만 쏟아내는 이기적인 영감, 쓴소리와 잔소리가 입에 발려있지만 힘을 잃어버린 자, 그런 무기력한 늙은 영감을 체념과 초월 그리고 보다 큰 어머니 같은 모태 우주로 안아가려는 그 힘, 속사포 같은 잔소리, 쓴소리를 김상오님이 빚어가 쏟아낼 때, 이를 말없이 눈으로, 온몸으로, 관조자적 시선으로 품어가는 여인네의 지고지순한 어머니 이미지, 양정인님은 이를 노련하게 소화해냄으로써 우리네 민족 심상의 원형을 아름답게 일깨워내는데 기여한다.
유아원 아이의 푸념을 마주하듯 모든 것을 초월, 품어가는 위대한 어머니 이미지 창출 과정, 휴대폰 대화를 통한 알송달송한 반응 음성 기호로 궁금증을 유발시켜내는 자연스러움, 첩을 데려 왔을 때 타들어가는 여인네의 아픔을 농밀한 육체 언어로 변용시켜나가는 그림, 양정인님은 이를 자연스레 소화시켜 연극적 아우라를 자연스레 빚어가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는 화술 상의 약점을 오히려 감점으로 보완, 수정해나가는 그 끈질긴 예술가적 정인정신과 성실성 그리고 탐구 철학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예측 불허의 상황 희극 묘미를 다채롭게 펼쳐낸 이 번 공연의 결실은 극단 크리에이티브드라마의 자체 창작극이라는 점에서, 무엇 보다도 매 공연 마다 더 낳은 연극성과 놀이성 고양을 위해 수정 보완을 계속해나갔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기인님의 첫 처녀작을 끊임없는 토론과 재창조를 위한 담론으로 공연 놀이 아우라를 빚어나가려 한 연출가 이행원님의 겸허한 예술 철학과 단원분들의 공동 코웍 정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극단 크리에이티브드라마의 대표 희극 브랜드화되기를 원한다면 이를 위한 몇가지 보완 단상과 제언을 적어 본다.
무대는 사실무대로 갈 것인가, 철저한 상징과 상상 무대로 갈 것인가, 먼저 이를 결정한다면 네 개의 침대 구조물과 관련된 공간 운영 문제는 저절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개의 고정된 침대, 그것에서 제한된 재연 그림, 벌거벗은 사실성 코드에 짓눌리다 보니, 그 소품과 관련 다양한 상상 그림이나 놀이 그림이 평면적 보고 언어로 처리되어야 하는 취약점이 노출되기도 한다. 관객은 가장 적나라하게 망가져가는 그림을 보고 싶어 이곳 공연 현장을 찾는다. 감추고 싶었던 것들, 가면을 쓰면서 살아왔던 일그러진 가짜 허상이 까발려질 때의 조롱 쾌감, 이를 상징과 추상의 오브제 공간을 통해 빚어가려는 전략, 이에 대한 보다 성찰과 탐구가 뒤다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좌욕 도구를 들고 벌이는 춤과 노래, 이게 볼거리와 들을거리로서의 심미성과 유발과 놀이 무대로서의 활력의 쾌감을 유발시켜 놓고 있는가. 동시에 이 유희 그림이 실존적 애환을 상징하는 장치로 적용되고 있는가. 치질 여인네들의 눈물과 말못할 애환, 이를 춤과 노래로 변용시켜 무대는 요지경 놀이이자 동시에 우리네 문제된 현존을 일깨워내는 상징 전략, 이를 상기시키는 춤과 노래를 통한 이미지 변환과 응용 전략이 보강된다면, 더 나아가 아기자기한 소극 색조로 그치지 않고, 오밀조밀한 언어 유희 구조에 함몰되지 않고 이를 뛰어 넘는 상징 장치로서 역동의 춤과 노래 장치가 모색되기를 원한다면 필자는 지나친 욕심일까.
그럼에도 이 번 연극은 극단 크리에이티브드라마가 자체 소극장 공연을 통해 공연성과 놀이성 확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간 창작극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극배우 이기인님의 작품을 단원분들 모두 연습 과정을 통해 수정, 보완해 왔었다는 점, 무엇 보다도 양질의 연극 놀이 바이러스를 빚어 놓으면 어떤 관객이든 찾아온다는 그 지고지순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번 공연의 의미와 성과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몇년간의 관객 반응을 토대로 끊임없이 소통과 피이드백 과정을 거치면서 튼실한 연극성과 놀이성을 빚어오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외과> 공연은 광주 문화가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도전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시디아트홀이 남도연극의 메카이자 실험과 창조의 공연장으로 자리매김 되길 문화가 사람들은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김길수 (연극평론가, 국립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첫댓글 애정이 넘치고 세밀한 평론 감사드립니다. 더욱 매진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