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의 18세때 모습 첫번째 왕비 '케서린' 두번째 왕비 '엔 볼린' '제인 시무어'
(세번째 왕비)
'헨리' 8세는 르네상스적 인간이었으며, 그의 궁정은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학구적이며 예술적인
혁신의 중심지였다.그는 음악가, 작가, 그리고 시인이었다. 그러면서도 또한 ,그는 욕심 많은 노름꾼이었
으며 주사위 선수였다. 그는 운동에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무예와 마상 경기, 사냥,테니스 실력
이 뛰어 났다고 한다 . 어느 면에서는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와도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로 써 다방면에
서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지적인 소유자이나 여성 편력에서는 역대 어느 황제나 제후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는듯 하다.
세번째 부인 '제인 시무어'가 세상을 떠난지 3년 후 '헨리' 8세는 정치적인 이유로 계승을 보다 확실하게
하려고 '클리브즈 엔'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모로 보나 인물이 쫌 떨어지고 매력을 느끼
지 못하여 겉으로는 공손히 그녀를 대하였지만 신하들에게는 그녀를 '플란다스 암말'이라 부르며 뚱뚱한
추녀 라고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한번도 왕과의 동침을 한적은 없고 매일 밤 이마에 키스로 대신했
으며, 오히려 왕비의 어린 시녀 '케서린 하워드'에게 연정을 느끼고 이혼을 결심 하게 되었다. 이로써 1540
년 6월 '클리브즈 엔'은 '헨리' 8세에게서 황궁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게된다. 그녀는 '왕의 누이'라는 칭호
를 받고 '메리 볼린'의 가족들이 이전에 거주했던 '히바성'에 들어가 살게 해주었다.
'헨리' 8세는 어린 시녀 '케서린 하워드'에게 사랑을 느끼고 '클리브즈 엔' 왕비를 추방한뒤 곧바로 결혼식
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케서린 하워드'는 '헨리' 8세의 눈에 띄기 전에 이미 왕의 시종 '토마스 컬퍼퍼' 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는데, 왕비가 된후에도 '컬퍼퍼'에게 공공연히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로써,
1541년 11월 2일 '헨리' 8세는 '케서린 하워드'가 처녀가 아니었으며 간통을 하고 있다는 밀고를 받고도 처
음에는 애서 믿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녀의 배신이 곧 분노로 바뀌었다. 겁에질린 '케서린 하워드'는 사실을
실토했지만, 1542년 2월 13일, '케서린 하워드'는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18세에 불과
했었다.(계속됩니다)
첫댓글 인간의 잔인성은 한이 없군요 . 어떻게 한 이불덥고 잔, 그래도 한때는 사랑했던 애처을 도끼로 내려처 닭 목을 치듯이 단번에 죽이다니,
물론 고통을 덜기위한 수단이라고는 하나 ,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사약을 내려 죽게 하는것이 훨씬 신사의 짓이 잖아요. 영국이
신사의 나라 라고 했더니 야만족의 나라 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