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는 아버지 !!!!
친정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싶은마음이야 늘 한결 같지만 나도 가정이 있어니 그리하지 못하여 눈물이 쏟아진다 .. 여자라는 이유,딸이라는 말도 안되는이유 ,,,
나도 7남매 맞며늘이 시누이 시동생이 6명 으아 말도 말아요 .. 시아버님 올해 92세 시어머님 84세 충북 단양에 시골에 계십니다 ......
친정 아바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몸은 몽롱하고 가슴은 떨리고 손은 힘이 없고 어쩌나 아니 돌아가실 분이 아닌데.... 우리아버지는 힘이 장사였습니다 ..
우리마을에서 나무를하여 지게에 지면 동네에서 나무짐 가래가 제일 컸서요, 1960년대 70년대 80년 이때는 나무를해서 땔감을 하였기에 모두 알겠지요 .. 용당소 신작로 길 닦을때 아침마다 돌깨었는것 2개씩 지고와서 시골집 뒤안 축 쌓았어요. 1968년도에 동네에서는 아직도 우리아버지 나무짐 높이 따라오지 못했어요 이제는 깰분이 없겠지요 ..
고향집에서 새벽에 별세 나중에 발견하여 둘째언니가 마침 2틀전에 시골에 가있어기에 알고 대구로 모셔와 어머니 빈소차린 곳으로 결정 ... 대구 성서에 있는 100세 요양병원 3남3녀 6남매 상주 부럽지않은 자녀를둔 우리부모님
우리 형제와 몇몇 문상객은 왔지만 20일날 금요일은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21일오전 9시에 입관하고 22일 아버지는 고향으로 장지, 아버지 돈 300백만원 있는것은 유언데로 상석을 바로 맞추어 산소 쓰면서 놓았습니다. 장지는 성당 뒷산 삼강 문중산 선조할아버지가 계시는곳 그곳이 좋다고하여 산소는 어머니와 합품...... 우리아버지는 3남매. 맞이로 고모님 백부님과 우리아버지 세대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
친정 아버지가 뱃가에서 막걸리 드시고 그래서 인사 드리고 동네 아제 분과 함께 ㅎㅎ <<<이사진들은 2008년 10월 2일날 찍은사진입니다.>>>
집에가니 아버지는 들에 가시고 안계서서 ㅡ 이렇게 들로 찾아갔어요 이렇게 아버지가 계시는 밭에는 곡식들이 고루고루 심어져 있고요 저는 ㅡ 단술과, 동그랑땡 사과 배 대강 동동주 ㅡ 생선하고 잔뜩 갔다드리고 챙겨 드시라고 하고 산에 지천으로 떨어져 는 알밤 주워서ㅡ 무우 배추 감 ㅡ 고구마 호박 석류 등을 가지고 왔습니다
충북 대강 동동주 청와대 ㅡ 만찬주 납품 되는 동동주 저는 아버지께 꼭 사가져 갑니다 많이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지요 ㅎㅎ 아버니는 너무 좋아하셔요 너때문에 이런것도 마셔 본다면서 충북까지 누가 가서 사다주노 하십니다 ㅎㅎㅎ
요것은 맑은 동동주입니다 맛이 정말 좋테요 우리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용궁막걸리보다 대구 불로 막걸리보다 헐 맛이 좋테요 ㅎㅎㅎ 청와대 만찬주로 유명한 단양 대강막걸리
아버니는 팥을 따고 계시고 ㅡ 예전같으면 뽑아서 지개지고 집에와서 도리깨로 타작하고 하였는데 ㅎㅎ 이제는 조금만 하시는 저렇게 익은것만 손으로 따고 계시더군요 아궁이 불땔 일이 없어니 집에 가져오면 갈거치니 ㅡ 밭에서 거름으로 활용
청명한 날씨에 감이 벌시러 다 익어 따서 감홍시 고감 해야 되겠더군요 홍시도 따먹었지요 ㅎㅎㅎ얌얌 ㅋㅋㅋ
아버지가 심어놓은 메밀 입니다
이것은 결명차 입니다
콩 ㅎㅎ
두릅나무ㅡ 밭뚝에
요렇게 아버지가 지으놓으신 배추 무우 몇개 얻어왔습니다 ㅎㅎ
팔에 잠자리가 앉았어요 ㅎㅎ이사진은 2008년 10월2일 찍은사진입니다 ..
화요일 24일 삼호제 지냈습니다 .. 이제 고향집도 주인을 읽고 쓸쓸하겠지. 6월이면 감자 마늘 8월이면 옥수수, 9월이면, 고구마. 밤, 10월 11월에는 감이 주렁주렁 밤나무 밤은 처치곤란 세벽이면 제일 큰것으로 알밤을 주워 두었다 자녀들에게 나눠 주시던 아버지 야야 감좀 따가라 하시던 그말씀도 이제는 들을수가 없다.. 참깨는 올깨를 하여 벌써 8월에 쪄서 추석전에 짜서 해마다 참기름을 댓병으로 4개를 짠다 아들은 댓병 주고 딸들은 물병 작은것 한병씩 준다 돈이 아쉽지만 팔지않고 자녀주는 재미로 일을 하셨습니다 .난 갈때마다 넉넉히 용돈을 배로 드리지만 얻어오면 몇배로 용돈 드리고, 옵니다 ..
아버지 아버지 편히 쉬세요 ..
어머니가 2002년에 쓰러져 5년을 모시며 밥해서 드시느라 먹여드리고 빨래며 집안일을 하시던 아버지 5년이후 자녀들한테 책임을 지우시고 홀로 계시며 얼마나 외롭고 쓸쓸 하셨을까요 ,,어머니는 2009년 11월 16일날 별세, 자주가서 돌봐드렸지만 자주간들 얼마나 되겠습니까 ..
병중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먼제 돌아가시기를 늘 염려하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아버지는 내앞에가서 내가 꼭꼭 묵어주고 이제는 내가죽으면 된다 하시던 아버지 ,, 어머니와 손잡고 웃으며 계시기를 바람니다 ..세째딸로 테어나 내정성 다하였지만 그래도 늘 부족하고 잘못한게 너무 많아 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근심걱정 마세요 .. 내일 오빠집에가서 오빠병원치료받게 제가 힘쓸께요 ,, 나보다 3살 많은 오빠 알콜중독으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아들을보며 너무나 속이 상해 하셨지요.오빠는 겨우 30키로 조금 넘어요,, 나도 속이상한데 아버지는 오죽 하셨을까요 ??..
돌아가시기전 일주전에 대구 덕영치과에서 아버지를 만나 점심 대접하고 용돈 드리고 몸이 안좋아 병원에 입원 5일만에 퇴원하여 오빠집에 계신다기에 아버지가 좋아 하시는 찐빵 젖깔 과일을 사서 갔더니 힘이 없어 누워 계시기다 깨워서 드리고 용돈을 또 좀 드렸지요 국수를 너무나 좋아 하시기에 내일 택시타고 서문시장 국수 드시러 오시라면서 손에 돈을 쥐어 드렸답니다 ..
우리집으로 가자니까 딸집이라 불편한지 안갈려고 하시며 내일 고향 갈란다 이곳에 있어니 밥만 먹고 눕고 밖에도 못나가고 다리도 쓰지못할것 같다 시골은 그래도 밖에도 나가고 마당도 쓸고 뒤안에 풀도 뜯고 내사 대구는 덥고 4층이라 꼼짝도 못하고 못있겠다 하시더만 고향가셔서 6일만에 별세 날이 더워서 그런지 식사를 잘 못드시기에 제가 찐빵 5개를 사드렸더니 두유와 빵2개 반을 드시고 그만 바로 자리에 눕기다 난 잠이 오나싶었지요 그리고 누워계시는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 평소 하시는데로 난 유언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대구에서 고향가신지 6일만에 별세
얼마나 사시는게 힘이 드시는지 무더운 날에 하늘나라 가셨습니다 .. 오빠집에서 누워계실때 눈치도 못채고 여름이라 더워서 기운이 없는가 하고 생각했지요 난 아버지가 돌아가신다고 정말 생각 안했지요 정정하시고 건강 하였기에 입맛을 잃어 빵을 달게 드시던 아버지 죄많은 여식 눈물로 아버지께 인사 드리며 이글을 올림니다.
선선한 가을이 오면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백일홍 나무와 측백나무인지 묘 가에 심는것 사다 예쁘게 심어 드릴께요..
이제는 난 고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녀라도 4남매 있어니 위로받고 있어요. 어머니가 돌아 가셨을때는 오랜 병석에 계셔서 그런지 슬퍼지만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는데 아버지가 떠나시니 정말 가슴아파요 .. 고향집에가서 아버지 하면 문을 열어주시던 아버지 이제는 문도 내가 열어야하며 불러도 대답이 없겠지요 ..
아버지 편히 계세요 저도 멀지않아 그곳으로 갈것입니다 .. 그때는 제가 아들이 되어 시중들고 잘 모실께요 .. 아버지 어머니 불효여식 눈물로 이글을 씁니다 ..
|
|
첫댓글 마음이 찡합니다 님은 보통자녀들 보다 열열 효녀입니다
정재숙님의 효심이 읽혀지네...늦었지만 고인의 명복 빌어드립니다.
삼가 고인에 명북을 빌어 드림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재숙님 가슴이 찡하네요.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