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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세상의 황폐한 광야 지대를 두루 다니다가 어떤 곳에 이르니 거기에는 굴이 있었다. 나는 그 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한 남자를 보았는데,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 내려가면서 몸을 떨고 울고 있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슬픈 목소리로 “어찌해야 하나?”라고 울부짖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자식들에게 큰 불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이 도시가 잿더미가 될 것이며 구원 받지 못하면 모두가 죽고 말 것인데, 그는 아직도 그 길을 찾지 못했다며 절망적으로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가족들은 모두 놀라며 그에게 광증이 생긴 것으로 짐작했다. 어느 날 그에게 전도자가 찾아와 영문을 물었다. “크리스찬, 당신은 왜 울고 있습니까?“ 크리스챤이 대답했다. “이 책을 읽어보니, 나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게 되어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러자 전도자는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적혀있는 두루마리를 하나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광채가 빛나고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으로 가면 좁은 문이 나타날 것이며 문을 두드리면 누군가 나와서 당신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크리스챤은 앞만 향하여 정신없이 뛰었다. 그러자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 가운데 고집쟁이(Obstinate)와 온순(Pliable)이 급히 따라왔다. 고집쟁이는 이 세상 향락들을 다 버리고 찾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크리스챤에게 물었다. 크리스챤은 성경을 가리키며 결코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으며 쇠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집쟁이는 크리스챤을 따라온 것을 후회하며 온순에게 되돌아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온순은 크리스챤과 동행하여 그것을 지으신 분의 피로 증명된 진리를 찾겠다고 다짐하며 고집쟁이의 권유를 물리쳤다. 그리하여 고집쟁이는 집으로 돌아가고 크리스챤과 온순 씨가 오순도순 함께 넓은 평원을 걸어 나가는 것을 나는 꿈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온순이 물었다. “영원히 멸하지 아니할 아름다운 왕국입니다. 그곳에서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그 왕국의 지배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책에 모두 기록해놓았습니다. 우리가 은총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 그분은 조건 없이 마음껏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등에 진 이 무거운 짐 때문에 빨리 걸을 수가 없군요.” 이때 나는 꿈속에서 그들이 이야기에 팔려 진흙 수렁에 빠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수렁의 이름은 절망의 늪이었다. 크리스챤은 등에 짊어진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진흙 수렁 속으로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 본 온순은 여태껏 말해준 행복이 겨우 이것이냐고 벌컥 화를 내며 늪가로 기어 올라가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도움이라는 남자가 크리스챤에게 다가가더니 그를 구해주는 것을 보았다. 나는 도움에게 다가가 왜 여행자를 위하여 수렁을 고치지 않는가 물었다. 수렁은 1600여 년 동안 하나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메워지지 않았으며 마침내, 하나님이 수렁 한 가운데 커다란 디딤돌을 갖다 놓았지만 그것도 오물과 진흙탕을 토해놓기 때문에 잘 보이질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챤이 외롭게 평원을 걷고 있는데 세속현자가 다가왔다. 그는 크리스챤이 멸망의 도시를 떠나 영생을 구하러 떠났다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는 터였다. “안녕하시오? 내가 조언하건대 우선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시오. 짐을 벗지 않으면 하나님이 베푸는 축복의 은혜도 기쁜 마음으로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세속현자의 말에 크리스챤이 대답했다. “만일 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만 있다면 도중에 어떤 고통과 어려움을 겪게 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부터 그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습니까?” “내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을 읽은 후부터입니다.” “그럴 줄 알았소. 모든 연약한 인간들에게 일어나기 쉬운 갈등과 오류에 당신도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위험을 피해서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드리겠소.” 세속현자는 손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 저쪽에 있는 도덕이라는 마을에 합법이라는 신사분이 살고 있습니다. 그분이 도와줄 것입니다. 그가 집에 없다면 그의 아들 예의를 찾으면 됩니다. 그도 역시 아버지 못지 않은 판단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당신의 짐을 쉽게 덜어 줄 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도덕의 마을로 방향을 바꾸어 언덕을 오르는데 언덕은 가파르기 그지없었다. 그는 다른 길을 찾다가 그만 언덕 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 만났다. 그는 두려움과 무서움에 땀을 흘리며 떨면서 세속현자의 말을 따른 것을 후회하였다. 그때 전도자가 엄숙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길을 바꾸게 된 경위를 물었다. 크리스챤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자세히 말했다. 그러자 전도자는 하나님의 권고를 물리치고 파멸과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세속현자를 협잡꾼이라고 단정하고 자신의 말을 하나님이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커다란 불길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크리스챤이 크게 후회하며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는가 묻자 전도자는 다시는 옆길로 나아가지 말도록 충고했다.
얼마 후 크리스챤은 좁은 문에 도착했다. 그 좁은 문에는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크리스챤이 문을 두드리자 선의란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지기는 크리스챤이 여기에 오기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상관하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주님께서 ‘나는 결코 내쫓지 않을 것이니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크리스챤은 문지기가 가르쳐주는 길을 보며 길을 잃어버리거나 방해물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주저하는 이유를 눈치 챈 문지기는 “그러나 바른 길은 단 하나뿐이며 그 길은 매우 좁고 곧게 뻗어있으니 분간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챤이 아직도 그의 등에 지워져 있는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선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비록 당신의 짐이 무거울지라도 구원의 장소에 이를 때까지는 참고 그대로 지고 가십시오. 거기에 이르면 저절로 당신의 짐이 등에서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선의 씨가 일러준 대로 해석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해석자는 크리스챤을 반갑게 맞이하며 온통 먼지투성이인 넓은 객실로 인도하였다. 해석자가 하인에게 청소를 시키자 너무도 많은 먼지가 일었다. 그가 소녀에게 물을 뿌리라고 이르자 많던 먼지가 갈아 앉고 이내 말끔히 청소가 되었다. 이윽고 해석자가 말했다. “이 객실은 복음의 달콤한 은혜로 성화된 일이 한 번도 없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먼지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방을 쓸기 시작한 사람은 율법이고, 물을 뿌린 아가씨는 복음입니다.”
꿈속에서 보니 해석자는 크리스챤을 다른 방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벽난로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물을 끼얹어 불을 끄려고 했으나 불은 점점 더 뜨겁게 타올랐다. 해석자는 그 광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불을 끄려고 노력하는 자는 마귀이고 불은 사람의 마음에 작용하는 은총입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해석자는 크리스챤을 벽 뒤로 인도했다. 거기에는 한 사람이 기름통을 들고 끊임없이 불 위에 기름을 끼얹고 있었다. “이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이미 넣어준 은총을 보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은총의 기름을 부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한번 악마의 속임수에 빠진 영혼에게 그 은총을 유지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감사의 말을 건네고 해석자와 헤어졌다.
그때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챤이 올라가고자 하는 길 양쪽에 높은 울타리가 둘려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울타리 이름은 구원이었다. 크리스챤은 무진 애를 써서 한 언덕바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십자가가 서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무덤이 입을 딱 벌린 채 놓여 있었다. 크리스챤이 십자가 위로 막 올라가려는 순간 그의 어깨로부터 짐이 풀어져 등에서 벗겨지더니 계속 미끄러져 내려와 마침내 무덤의 입구에서 그 속으로 굴러 떨어져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크리스챤은 홀가분함과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주께서 괴로움을 당함으로 내게 평안을 주셨고 주께서 목숨을 버리사 내게 영생을 주셨나이다.” 그때 세 사람이 다가와 그에게 “평안할 지어다.”라고 인사하며 죄의 사함을 받았으므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며 새 옷으로 갈아입혀주고 나서 크리스챤의 이마에 표를 달아주었다. 또한 그들은 봉인된 두루마리를 건네며 천국문에 이르렀을 때 그것을 제시하라고 말한 후 떠났다. 크리스챤은 기쁨에 못 이겨 서너 번 껑충껑충 뛰고 나서 노래를 부르며 길을 떠났다.
나는 꿈속에서 크리스챤이 산 아래 겸손의 골짜기에서 난관에 봉착한 것을 보았다. 괴물 아볼루온을 만난 것이다. 아볼루온은 자신을 배반한 죄에 용서를 빌고 섬기지 않는다면 심한 벌을 주겠노라고 외쳤다. 그러자 크리스챤은 “나는 이미 네가 아닌 다른 분, 즉 왕 중의 왕이신 분께 몸을 바쳤으니 다시 네게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큰소리로 대항했다. 그러자 아볼루온은 크리스챤이 절망의 늪에서 결심이 흔들렸던 일과 세속의 유혹에 넘어갔던 일 등을 열거하며 주님에게 불충분했기에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빈정댔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말했다. “네가 한 말이 사실이기는 하나 내가 섬기는 주님께서는 모든 걸 용서하시었다.” 그러자 아볼루온이 벌컥 화를 냈다. “나는 네가 섬기는 그 왕과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야. 그의 인격, 율법, 그의 백성들까지 모두 미워하고 있어. 그래서 너를 일부러 방해하려고 이렇게 나온 거야.” 이때 아불루온이 전력을 다해서 공격해왔지만 하나님이 도우사 크리스챤은 마귀를 물리칠 수 있었다. 정말 일찍이 보지 못한 가장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전투 광경이었다. 전투가 끝나자 크리스챤은 “사자의 입으로부터 나를 구해주시고 마귀 아볼루온과의 싸움에서 나를 도와주신 주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말하고 찬송을 드렸다.
계속 길을 가던 크리스챤은 한 언덕에서 믿음이 여행을 재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꿈에 보니 그들은 매우 사이좋게 함께 걸어가면서 순례 여행 도중에 그들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에 대해서 다정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혹시 온순이란 이웃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크리스챤이 물었다. “네, 들었지요. 그는 도시의 모든 계층으로부터 멸시를 받고 있으며 당신과 함께 떠나기 전보다 일곱 배나 더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저버린 길을 멸시하면서도 그가 변절자이고 진실하지 못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를 목을 매어야 한다고 합니다.” 믿음이 말했다.
믿음은 곤고산에서 기만의 도시에 살고 있는 첫 사람 아담을 만난 일을 크리스챤에게 이야기했다. “아담이란 노인은 자기와 함께 살면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자신의 세 딸과 결혼하여 살기를 권했지요. 나는 그의 이마에 쓰여 있는 ‘그의 행위를 살펴보아 노인을 멀리하라’는 글자를 읽고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어요. 그러자 그가 나의 팔을 비틀어 당기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외치며 나를 쫓아오더군요. 그렇지만 마침, 어떤 구원의 손길이 이끌어주어 나는 산 위로 무사히 피했답니다.” 그 말을 들은 크리스챤은 그가 바로 모세라고 일러주었다.
믿음은 또 그 산에서 수치를 만났는데 그 철면피는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자였다. 믿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교를 들으면서 슬피 우는 것도 수치스러운 행동이며,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한숨짓고 괴로워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하더군요. 또한 용서를 빈다거나 돈을 빌리고 돌려주는 것도 수치스럽다고 주장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수치야, 물러가라. 너는 나의 구원을 방해하려는 원수로다.’라고 소리 질러 뿌리쳤지요.” 크리스챤은 그의 용기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광야를 거의 벗어날 무렵 그들은 전도자와 다시 만났다. 크리스챤과 믿음은 전도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며 겪은 고난의 이야기를 듣고 난 전도자는 인내로 견디면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라며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전도자는 앞으로 그들이 지나치게 될 도시에서 그들이 겪어야 할 환난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두 사람 모두 또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피로써 하늘의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나는 꿈에서 그들이 광야를 벗어나자마자 금세 하나의 마을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는데, 그 마을의 이름은 허영이었다.
이 시장은 오천 년 이래로 존속되고 있었는데 언제나 요술사들, 사기꾼들, 도박꾼들, 바보들, 악한들 등 온갖 쾌락과 악에 젖은 무리들이 술렁거리고 있는 곳이었다. 예수도 천국으로 가기 위하여 이 거리를 통과하였지만 결코 허영에 대해서는 한 푼의 돈도 허비하지 않으신 채로 그 도시를 떠나셨으므로 무사히 천국에 이르신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들 두 순례자들도 천국으로 향하기 위하여 반드시 이 도시를 통과해야 했다. 두 순례자는 의복이며 말씨가 시장 사람들과 판이하게 다른 데다가 그들이 허영의 시장에 놓인 상품을 거들떠보지도 않자 상인들이 불쾌하게 여기며 길을 막으며 비웃었다. 그래도 그들이 대꾸도 하지 않자 시장이 소란해지고 마침내 두 순례자는 심문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순례자들은 자신들은 영원한 본향인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중이며, 혹시 상인을 불쾌하게 하였다면 물건을 사지 않고 진리만을 구하겠노라고 대답한 일밖에 없으니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재판관은 그들을 정신병자라고 단정하고 마구 때리고 흙투성이로 만든 후 옥에 가두어 구경거리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그들에게 퍼부어지는 수치와 경멸을 온유함과 인내로 받아들였다. 이때 그들은 전도자의 말을 떠올리며 고통이 정해진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자신의 최고 행복이라고 여기며 처분을 기다렸다. 다시 재판이 시작되고 질투와 미신 그리고 아첨이라는 증인들이 등장하여 순례자들을 죄인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믿음에게는 사형이 선고되고 곧바로 형이 집행되었다. 그때 나는 수많은 군중들 뒤로 마차 한 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의 고통스러운 환난이 끝나자마자 곧장 그를 태워 나팔소리를 울리며 구름 사이를 헤쳐 나가 지름길로 천국문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유예되었던 크리스챤은 얼마 후 감옥을 탈출하여 결국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보니 크리스챤이 홀로 걸어가지 아니하고 한 동행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소망이었는데 허영의 시장에서 크리스챤과 믿음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꿋꿋한 언행으로 이를 극복하는 태도를 지켜보고 감동을 받아서 스스로 소망이라는 이름을 짓고 형제로서 언약을 맺은 다음 동행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한 사람이 죽자 또 다른 한 사람이 그의 재 가운데서 일어나 크리스챤의 순례 길에 동행하게 된 것이었다. 소망은 또한 크리스챤에게, 머지않아 허영의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향한 순례의 길에 따라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다시 꿈속에서 보니 두 순례자가 평원의 맞은편에 이르자 여인이 돌기둥으로 변한 것 같은 기둥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비석의 머리에 쓰여 있는 이상한 글자를 한참 해석한 후 크리스챤은 그 글귀가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크리스챤은 아주 적절한 시기에 보게 되었다고 반가워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길을 오던 중 만났던 데마(바울의 제자로 세상을 사랑하여 배교한 자)의 유혹에 빠졌더라면 우리도 저 돌기둥으로 남아서 후세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소망은 자신이 데마의 유혹에 넘어갈 뻔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봄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 쾌적한 강가에 이르렀는데, 다윗 왕은 이 강을 가리켜 ‘하나님의 강’이라고 불렀었다. 그들은 탐스러운 백합화와 각종 열매가 달린 나무들이 늘어선 강가에서 며칠 밤낮을 지내며 여독을 풀었다. 이내 원기를 회복한 그들은 다시 길을 재촉하여 나아갔다. 길은 갈수록 더 험해졌고, 그들은 점차 지쳐갔다. 그 때 그들은 두개의 길을 발견하고 잠시 망설였다. 잠시 후 그들은 그 가운데 편한 길을 택해 가기로 했다. 얼마쯤 걷다보니 앞서가던 헛된 확신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크리스챤은 이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헛된 확신은 그 길이 천성문으로 통하고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크리스챤과 소망은 안심하고 길을 가는데 주위에 어둠이 찾아오자 앞서 가던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헛된 확신은 잘난 체하는 바보들을 잡기 위해 파놓은 웅덩이에 빠져 이미 온몸이 갈가리 찢어진 후였다. 소망이 그 비명을 들으며 크리스챤에게 자신이 다른 길을 택하자고 충고하였으나 그가 귀담아듣지 않은 것을 나무라자, 크리스챤은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소망은 곧 크리스챤을 용서했다.
그들은 결국 길을 잘못 든 탓으로 ‘의심의 성’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의 영주인 ‘절망 거인’에게 붙들리게 되어 지하 감옥에 처박혔다가 간신히 탈주한 후 도착한 곳은 기쁨의 산이었다. 그들은 양치기에게 천성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아있는가 물었다. 양지기는 멀어서 못가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 갈 사람들은 다 가더라고 대답했다. 목자들의 이름은 지식, 경험, 경계, 성실이었는데 크리스챤과 소망에게 음식과 따뜻한 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다음날 목자들은 그들을 오류라는 산으로 인도했다. 산 아래에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목자들은 그 들이 바로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떠드는 후메내오와 빌레도의 말을 듣고 오류에 빠졌던 자들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곳을 지나 그들은 지옥으로 가는 샛길인 조심이라는 산을 지나쳐 청명이라고 불리는 높은 산으로 인도되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장애물 때문에 그들은 망원경으로 사물을 똑똑히 볼 수 없지만, 이를 통해 대문 같은 것과 그곳의 영광을 약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목자들과 헤어져 길을 떠나는 것을 보고 나는 잠을 깨었다.
내가 다시 잠들어 꿈에서 보니, 그 두 순례자가 천성으로 가는 큰 길을 따라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산 바로 앞 왼쪽에 기만의 나라라는 곳이 있었다. 그들은 구부러진 오솔길에서 무지라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천성을 향해 가고 있는 길이었다. 크리스챤은 무지가 좁은 문을 통해서 들어오지 않고 구부러진 오솔길을 통해 들어왔으므로 그는 심판의 날에 천국은커녕 도둑이요, 강도라고 책망 받게 될 것이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무지는 자신도 주님의 뜻을 잘 알고 있고, 남들보다 착하게 살았으며 늘 기도하고 금식하고 십일조도 바치고 자선을 베풀었으므로 천국으로 가는 것은 염려 없다고 자신했다. 크리스챤과 소망은 무지가 지혜로운 체 하는 것을 보고 우매자를 일깨워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궁리했다. 곧 소망이 결심을 말했다. “우리가 그냥 앞서 가다가 그가 알아들을 만한 때에 다시 이야기해서 권면합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계속 길을 갔고, 무지는 뒤에 처져 걸어갔다.
얼마 후에 그들은 무신론자를 만나게 되었다. 무신론자는 그들이 시온 산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는 우스꽝스러운 여행을 한다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왜 웃는가를 묻자 무신론자는 그들이 꿈꾸는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존재하지 않는 성을 찾지 말고 자기와 함께 돌아가 즐기자고 권했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그의 동료 소망에게 말했다. “저 사람의 말이 정말일까요?” 그러자 소망은 기쁨의 산에서 그 성의 문을 보았던 것을 상기시키며 말했다. “내 형제여, 청컨대 그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이룹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그를 떠나갔고, 무신론자는 그들을 비웃으면서 자기 길로 갔다.
내가 꿈에 보니, 그들이 마법의 땅으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그곳은 공기를 마시면 자연히 졸립게 되는 곳이었다. 소망이 비틀거리자 크리스챤이 다급하게 말했다. “목자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일러준 곳입니다. 잠을 쫓기 위해 좋은 말이나 주고받읍시다.” 소망은 자신이 받은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하여 말하며, 자신은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그분을 보았다고 말했다. 크리스챤은 그 계시를 받은 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이를 통해 나는 세상이 아무리 자기 의를 주장해도 이는 저주 받은 상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비록 정의로운 분이시지만 자기에게 나오는 죄인들을 공의롭게 의롭다 하실 수도 있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또 이로 인해 나는 예전의 사악한 생활을 심히 부끄러워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의 무지를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깨달았고, 거룩한 생활에 대한 사랑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예. 만약 내 몸에 100갤런의 피가 있다면, 이것을 주 예수님을 위해 다 쏟아 부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꿈에서 소망이 고개를 돌려 무지가 뒤따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크리스챤에게 말했다. “보세요. 저 멀리 뒤에서 그 젊은 친구가 빈둥거리며 오네요.” 크리스챤이 무지에게 물었다. “지금 하나님과 당신 영혼 사이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무지가 자신감을 세우며 말했다. “하나님과 천국이 있다는 데에 동의하기 때문에 좋으며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과 천국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내 마음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혜자가 이르기를,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과 생활은 잘 일치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망은 든든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죠.” “누가 당신의 마음과 생활이 잘 일치된다고 말했습니까?” “내 마음이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크리스챤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단정적으로 말했다. “내가 도둑인지 아닌지 내 친구에게 물어 보라고 한다더니, 당신 마음이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다구요? 이 문제에 관한 증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할 수 있는 것이요, 다른 것들의 증거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무지는 크리스챤의 말에 동의하지 않으며 두 순례자에게 먼저 떠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크리스챤이 소망에게 말했다. “자, 나의 친구 소망이여. 우리는 우리끼리 걸어가야 할 것 같소.” 그리하여 내가 꿈에 보니, 그들은 멀찍이 앞서 가고, 무지는 뒤에서 절름거리며 따라갔다. 크리스챤이 다시 자기 동행에게 말했다. “저 불쌍한 사람 때문에 마음이 몹시 상하는군요. 틀림없이 그는 결국 몹쓸 일을 당하게 될 겁니다.”
꿈에 내가 보니, 이제 순례자들은 마법의 땅을 벗어나 쁄라(회복된 이스라엘을 상징)땅에 들어갔다. 그곳의 공기는 매우 상쾌했으며, 길은 그 지방을 똑바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곳은 천국의 경계선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가고자 하는 성의 모습이 잘 보였다. 여기서 그들은 포도주의 궁핍을 느끼지 않았다. 이곳엔 모든 것이 풍성했다. 그들은 천상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커다란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거룩한 백성, 주님의 구속을 받은 자, 주께서 찾으신 자’ 등으로 불렀다.
이제 내가 꿈에 보니, 그들은 천성문이 보이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다리가 없는 깊은 강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 강을 본 그들은 넋이 빠져버렸다. 그러나 저들과 함께 간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들은 이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성문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챤은 강이 얼마나 깊은가를 물었다. “당신들이 저곳 임금님을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더 깊어질 수도 있고 더 얕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순례자들은 서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강으로 들어갑시다.” 물로 들어간 크리스챤은 자기 몸이 점점 빠져들자 친구인 소망을 보며 외쳤다. “큰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 2 : 3).”
칠흑 같은 어둠과 공포가 크리스챤을 덮었다. 그는 빠져 죽어 천성문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소망이 몇 번씩이나 그를 건져냈지만 그는 이내 가라앉기를 거듭했다. 소망은 그를 위로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면서 말했다. “형제여, 저기 천성문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우릴 영접하려고 서 있군요.” 그러나 크리스챤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요. 내가 당신을 안 후로 당신은 늘 소망을 갖고 있었지요.” “당신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아, 형제여. 내가 분명히 올바르게 행했다면 지금쯤 그가 일어나사 나를 도와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죄로 인해 그가 나를 올무 가운데 몰아넣으시고 날 떠나셨습니다.” 그에게 소망은 이렇게 말했다. “기운을 내십시오. 환난 때에 그에 의지하여 사는지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당신을 온전케 하십니다.” 그때 크리스챤이 큰 음성으로 외쳤다. “아, 내 눈에 다시 그가 보입니다. 그가 내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라(사 43 : 20).'" 이에 두 사람은 용기를 가다듬었고, 그 후에 원수는 그들이 강을 건너갈 때까지 돌처럼 잠잠히 있었다. 그리하여 크리스챤은 곧 설 땅을 찾았고, 나머지 강물은 아주 얕아져서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천성문으로 나아갔다. 그 성은 높은 산 위에 서 있었지만, 순례자들은 두 사람이 팔로 그들을 잡고 인도한 덕분에 쉽게 그리로 올라갈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강에 그들의 육체의 겉옷을 벗어놓고 왔다. 그들은 강에 들어갈 때는 그 옷을 입고 있었지만, 강에서 나올 때는 옷을 벗고 나왔던 것이다. 천성터는 구름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자신들을 접대해 주는 영광의 동반자들을 만난 그들은 마음이 평안해져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갔다. 그들이 빛나는 자들과 나눈 이야기는 그곳의 영광에 관한 이야기였다. 빛나는 자들은 그곳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감히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말했다. “여러분이 가는 곳은 시온 산,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천만 천사와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이 있는 곳입니다(히 12 : 22~23). 당신들은 지금 하나님의 낙원으로 가고 있는데, 거기서 여러분은 생명나무를 볼 것이며 결코 시들지 않는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거기 도착하면 흰 옷을 받게 되고 임금님과 매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계 2 : 7, 3 : 4, 22 : 5). 거기서 여러분은 아래 세상에서 보았던 것들, 예를 들면 슬픔과 병고, 괴로움과 죽음을 다시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예전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사 65 :16).' 당신들은 이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선지자들과 하나님께서 장차 악에서부터 건져내사 이제 침상에 누워 쉬게도 하시고 그의 의로우심 안에서 걷게 하시는 이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천성문을 향해 나아가는데 보니, 한 무리의 천군들이 그들을 맞으러 나왔다. 두 빛나는 자들이 그 천군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세상에 있을 때 우리 주님을 깊이 사랑하고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들입니다.” 그러자 천군이 말했다. “주께서 우리에게 이들을 모셔오라 명하시기에, 여행을 마친 이분들이 기쁨으로 구속자의 얼굴을 뵙도록 하려고 모셔가는 길입니다.” 그러자 다른 천군들이 큰소리로 외쳤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9 : 9)." 마침내 순례자들은 천성문 앞에 이르렀다. 그 문 위에는 금으로 이렇게 써 있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 : 14)."
내가 꿈에 보니, 그 두 사람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리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의 몸은 변화되었고 의복은 황금 같이 빛났다. 또 사람들이 수금과 면류관을 가져와 그들에게 주었다. 수금은 찬양하는 데 쓰는 것이었고 면류관은 영예의 상징이었다. 대문이 활짝 열려 내가 안을 들여다보니, 성은 마치 태양처럼 빛났다. 또한 거리는 금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와 노래하는 데 쓰는 황금 수금을 들고 있었다. 이 후에 문이 닫혔는데, 그곳을 들여다본 나도 거기 들어가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제2부
나는 최근에 볼일이 생겨 다시 크리스챤이 살던 곳에서 1마일쯤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되었는데, 숲 속에 숙소를 정한 나는 잠을 자면서 다시 꿈을 꾸었다. 꿈에 나는 현명이라는 노인과 동행을 하게 되었기에 그와 함께 크리스챤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현명은 크리스챤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가 사는 곳의 왕께서 이미 그에게 궁정 안에 매우 호화롭고 안락한 거처를 하사해 주셔서 모든 이의 재판장이신 왕의 호의와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일부 사람들의 예측인데요. 그 나라의 주관자인 왕의 아들께서 머지않아 이곳으로 오사, 왜 그의 이웃들이 크리스챤을 그리도 박대했는지, 또 그가 순례자가 되고자 함을 알고는 왜 그리도 그를 조롱했는지 혹시 그들이 이유를 댈 수 있으면 그 이유를 알아보실 것이랍니다(유 15). 크리스챤은 지금 왕자님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있기 때문에 왕자님은 그가 순례자가 되었을 때 사람들로부터 당한 불경한 일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 모든 일들을 마치 왕자 자신이 당하신 것처럼 판단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왕자님을 사랑했으니 왕자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지요(눅 10 : 16)."
나는 단호히 말했다. “참 잘된 일입니다. 크리스챤이 모든 수고를 그치고 원수의 사정권 밖에서 살게 되었으니 잘됐습니다. 또한 그에 관한 소문이 이 온 지방을 시끄럽게 하였다니 잘됐습니다. 그것이 뒤에 남아 있는 적어도 몇몇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 생각난 김에 여쭤보겠는데요. 그의 아내와 자식들에 관한 소식도 들어보셨습니까? 불쌍한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현명이 답했다. “크리스티아나와 그의 아들들도 크리스챤처럼 순례길을 떠났지요. 마침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봐 두었으니까 당신께 자초지종을 말해드리지요. 내가 보기에 당분간 우리가 동행을 할 것 같으니 잘 되었습니다.”
“크리스티아나는 남편이 안절부절못하면서 신음 소리를 내고 쓰디쓴 눈물을 흘리며 스스로에 대해 탄식하던 모습과 더불어, 자기와 함께 가자고 아내와 아들들에게 사랑으로 호소하고 설득하는 남편의 말을 묵살하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나 몹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남편의 부르짖음이 그녀의 귀에 가장 슬프게 울려왔답니다. 이에 그녀는 아이들에게 심경을 털어놓고 순례의 길을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녀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한 사람이 요란하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비밀이라고 밝힌 후 그녀가 높은 곳에 오고 싶어하며 과거 남편에게 완악하게 대한 것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편지를 건넸습니다. 편지에는 그녀도 남편인 크리스챤이 행한 대로 행하기를 바라시는데, 그 길만이 왕의 도성에 와서 영원토록 그와 함께 즐거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아나가 길을 떠나려는데, 이웃인 겁쟁이 부인과 자비심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겁쟁이 부인은 고집쟁이와 온순의 일, 또한 사자와 아불루온과 죽음의 그림자 등 많은 위험을 그녀의 남편이 겪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크리스티아나를 말렸습니다. 그리고 허영의 시장에서 당한 위험을 잊지 말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크리스티아나는 “내 이웃이여, 나를 시험하지 마세요.”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무안을 당한 겁쟁이 부인은 자비심에게 돌아가자고 했지만 자비심은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그녀의 마음이 크리스티아나에게 끌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녀의 관심이 자기 영혼에 쏠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리하여 크리스티아나는 네 명의 아들과 그 처자, 그리고 자비심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나의 나이 많은 친구는 계속 이야기를 해 나갔다. “크리스티아나의 일행은 남편이 겪었던 절망의 늪을 통과하여 무사히 길을 걸었습니다. 그때 자비심(그녀는 아직 젊은 여자였습니다)이 크리스티아나에게 자신도 그녀처럼 좁은 문에서 따뜻하게 영접 받는다는 확실한 소망이 있다면, 절망의 늪 따위가 자신을 실망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크리스티아나는 수다한 고난을 겪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드높은 영광을 얻기 위해 참아야 한다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이때 현명 노인은 나 혼자 꿈을 꾸도록 놓아두고 혼자 떠나갔다. 그리하여 나는 크리스티아나와 자비심과 소년들이 모두 다 좁은 문 앞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크리스티아나는 그의 불쌍한 남편이 했던 대로 거듭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러자 무서운 개의 짖는 소리가 들려와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다. 문지기가 나오자 개의 짖는 소리도 그쳤다. 문지기는 크리스티아나를 알아보더니 그토록 순례자의 생활을 싫어했던 사람이 순례자가 된 것을 매우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문지기는 그녀의 손을 잡아 안으로 인도하였고, 또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막 10 : 14)."고 말하면서 아이들도 인도하였다.
그들이 다시 길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두 사나이가 여인에게 곧장 다가와 길을 막으며 말했다. “당신의 생명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바라는 거요. 응한다면 영원히 여자다운 여자로 만들어 주리다.” 그러자 크리스티아나는 그들이 몸과 영혼을 다 차지하려는 것을 눈치 채고는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 그러자 악당들은 도망하였고 구조자들은 안내자를 따르게 하지 않은 실수를 탓하며 “주님께서 그의 순례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마련해 놓으신 모든 숙소에는 어떠한 시험도 막을 수 있는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그들이 해석자의 집에 도착하여 순례를 나서게 된 사정을 설명하자 해석자는 크리스티아나가 남편의 순례에 반대했던 사실을 상기하며 매우 반가워했다. 이튿날 해가 뜰 무렵 그들이 길 떠날 준비를 하자 해석자는 순서를 밟은 후 떠나라며 그들을 목욕탕으로 안내했다. 그들이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한결 더 아름답게 보였다. 해석자는 그들에게 세마포 옷을 선물했다. 그러고 나서 해석자는 담대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칼과 방패로 무장을 갖춘 후 그들을 아름다움의 집으로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그들이 길을 떠나자 해석자는 “하나님이 돌보시기를!” 하고 인사했다.
계속 길을 가던 그들은 마침내 곤고산 기슭에 이르렀다. 담대는 그들을 샘물로 인도하여 그곳이 예전에 크리스챤이 물을 마셨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샘은 더렵혀져 있었다. “악한 자들이 순례를 방해하기 위해 저지른 악행입니다. 하지만 염려는 없어요. 물은 자연히 맑아질 테니까요.”라고 담대가 일행을 안심시켰다. 그들이 길을 재촉하여 산을 오르는데 자비심과 크리스티아나의 막내아들이 쉬어야겠다며 울기 시작했다. 그들을 담대가 부축하여 간신히 왕자의 정자에 다다랐다. 이때 자비심이 말했다. “고단한 자들에게 휴식은 얼마나 달콤한지요!(마 11 : 28)." 그들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산에 오르던 도중 사자의 공격을 받았으나 담대가 물리쳤으므로 무사히 빠져나와 아름다운 집에 도착하였다.
일행이 도착하자 문지기 경계 씨는 크리스티아나가 크리스챤의 아내라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일행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모두가 기쁨의 탄성을 터트리며 반가이 맞이했다. 순례자 일행이 이 집에 머무른 지 일 주일쯤 되는 날, 쾌활이라는 남자가 자비심을 찾아왔다. 교양을 약간 갖추기는 했지만 세속에 깊이 물들어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자비심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자비심은 용모가 훌륭하고 매력적이고 부지런한 처녀였다. 자비심은 그녀의 영혼에 거리낌이 되는 일은 피해야 하므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내가 꿈에 보니, 아름다운 집을 나선 그들은 크리스챤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난과 시험들을 물리치며 고통을 인내하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 후 그들이 한 언덕배기에 이르러, 겸손의 골짜기를 향해 산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골짜기에 도착하자 함께 일행에 합류한 경건이 크리스티아나에게 말했다. “이곳은 당신 남편이 악한 마귀 아볼루온을 만나 큰 싸움을 벌였던 곳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곧바로 담대가 말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화를 자초하지 않는다면, 여기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까요. 이 골짜기는 사나운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누가 여기서 무서운 일을 당했다는 이야기만 듣고 못된 마귀가 득실거린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여기서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주님께서 이 골짜기에 오두막을 지으신 일이 있었지요. 그는 여기 내려오시는 걸 무척 좋아하셨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풀밭 위를 걷는 것도 좋아하셨습니다. 겸손의 골짜기에는 한적함과 평정만이 있습니다. 여기 오면 묵상하는 데에 방해받을 일이 없지요. 이 골짜기는 순례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습니다. 비록 크리스챤이 여기서 아볼루온을 만나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는 했으나, 그것은 그가 미끄러지며 소란을 피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 지나간 사람들 중에는 여기서 천사를 만나기도 하고 진주를 발견하기도 하고 생명의 말씀을 얻기도 했습니다(호 2 : 4~5). 또한 주께서는 이 땅을 사랑하며 지나가는 자들을 위해 연금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그 돈은 저들이 계속해서 이 길을 지나다니며 용기 있게 순례길을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일정한 절기마다 저들에게 신실하게 지불됩니다.”
이제 내가 보니, 계곡을 벗어난 그들은 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는데,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전망대가 있었다(그곳은 크리스챤이 그의 형제 믿음을 처음 만난 장소였다). 그들은 전망대에 앉아 쉬면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방금 전 그들을 위협했던 철퇴와 같이 위험한 원수의 손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즐거워하였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동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아래 깊은 잠에 빠져있는 한 늙은 순례자가 있었다. 담대가 살며시 그 노인을 깨웠다. 그러자 정직이라는 노인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우둔이라는 마을에서 온 순례자라고 소개했다. 크리스티아나가 자신과 아들을 소개하자 정직은 웃음을 가득 담고 그들에게 무수한 축복을 빌어주었다. “당신의 남편 이름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고 있으니 흡족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의 믿음과 용기와 인내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은 성실성이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보니 그들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어가는데, 정직 씨가 자의 씨(Mr. Self-will)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순례자인척 했지만 그가 좁은 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눈치 챘지요. 그는 다른 사람의 인격이나 주장, 예증 같은 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요. 그는 제 마음에 내키는 일이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이 순례자들의 공덕뿐 아니라 악덕을 따라도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요. 그 두 가지를 다 행할지라도 틀림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자 담대는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정직이 계속 말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처음에 낙원을 향해 출발할 때는 긍정적으로 ‘그런 곳이 있어’라고 말하다가, 천국에 거의 다 와서는 ‘그런 곳은 없어’하며 돌아서기도 한답니다. 또 자기의 순례길을 막는 자가 나타나면 해치워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떠났다가 거짓된 경고에 놀라 믿음과 순례의 길, 그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는 소식도 들었지요.”
그들은 여행을 계속하다가 주님의 존경받는 제자 가이오가 살고 있는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가이오는 크리스티아나에게 그녀의 시아버님과 시할아버지까지 다 알고 있다며 그녀를 매우 반겨주었다. 소년들이 자비심의 인도로 잠을 자러 올라갔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앉아서 이야기로 밤을 새웠다. 그들과 가이오는 너무나 의기 상통하여 서로 작별의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님에 대한 이야기, 자신들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노라니까 정직 노인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담대 씨가 수수께끼를 내어 정직 씨의 잠을 깨웠다. “남을 죽이려 하는 자는 먼저 정복을 당해야 하고, 밖에서 살고자 하는 자는 먼저 집 안에서 죽어야 한다.” 정직은 한참 생각한 후 답을 내었다. “죄를 죽이려 하는 자는 먼저 은혜로 정복을 당해야 하고, 살아있음을 남에게 증거하고자 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한다.” 가이오는 옳다면서 자신의 경험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날이 샐 때까지 그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계속 했다. 가족들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자 크리스티아나는 아들 야고보에게 성경을 한 장 읽으라고 명했다. 야고보는 이사야 53장을 읽었는데, 그가 읽기를 마치자 정직 씨가 물었다. “성경 말씀에 왜 구세주께서는 ‘마른 땅’에서 나오는 줄기 같아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고 했을까요?” 그러자 담대 씨가 말했다. “우선 마른 땅에서 나오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성장하신 당시의 유대 교회가 종교적 활기와 정신을 거의 다 상실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는 말은 불신자들이 그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왕자님의 마음을 들여다볼 눈을 갖지 못한 불신자들은 그의 초라한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발견한 보석을 보통 돌인 줄 알고 던져버리는 사람들과 같지요.”
순례자들은 길을 가는 도중에 주저 씨를 만나 함께 허영의 도시로 향했다. 거기서 그들은 나손 씨의 집에 머물면서 뜻이 통하는 친구들, 그의 딸인 은혜와 그녀의 친구들인 통회 씨, 거룩 씨, 성도 사랑 씨, 무 허위 씨, 참회 씨 등을 만나 순례의 어려움과 기쁨을 이야기했다. 그들이 나손 씨의 집에 머무는 동안 괴물 하나가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죽이고,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가서는 새끼들처럼 자기 젖을 빨도록 가르쳤다. 이 괴물은 몸은 용 같고 일곱 개의 머리와 열 개의 뿔이 있었다. 그 괴물을 조정하는 자는 어떤 여인이었다. 괴물은 사람들에게 조건을 제시하였는데, 자기 영혼보다 이 세상 삶을 더 사랑하는 자들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에 담대 씨는 나손 씨 댁에 머무는 순례자들을 방문하러 온 선량한 사람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이 짐승과 싸우기로 약속하였다. 담대 씨와 협력자들은 결국 괴물을 물리쳐서 마을에 명성을 날렸고, 아직 물욕에 빠져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들에겐 찬사와 존경을 보냈다.
이제 내가 보니 그들은 기쁨의 산에 도착했다. 이곳은 예전에 크리스챤과 소망이 여러 장소를 둘러보며 기분을 전환하던 곳이었다. 목자들은 예전에 크리스챤에게도 말했듯이 기쁨의 산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목자들은 일행을 몇 군데 새로운 장소로 인도하여 경이의 산과 결백의 산, 그리고 자애의 산을 차례차례 보여주었다. 자애의 산에서는 어떤 사람이 옷감 한 필을 앞에 놓고는 자기 주위에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겉옷과 속옷을 끊어주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옷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순례자들이 무슨 의미인가 묻자 목자가 말했다. “가난한 자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필접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물을 주는 자는 자신도 물을 얻게 됩니다. 옛날 한 과부가 선지자에게 떡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 과부의 밀가루 그릇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왕상 17 : 16).”
기쁨의 산을 출발한 일행은 진리의 용사 씨와 합류하고 마법의 땅을 무사히 지났다. 그 후에 나는 그들이 쁄라 땅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밤낮으로 태양이 비치는 곳이었다. 이 땅에서 그들은 자기네 마음과 몸에 거슬리는 것은 하나도 듣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았고 만지지도 않았고 냄새 맡지도 않았고 맛보지도 않았다. 이곳에는 이전의 모든 순례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행한 유명한 행적의 역사가 다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그들이 거기에 거하며 좋은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천성으로부터 한 우체부가 순례자 크리스챤의 아내 크리스티아나에게 보내는 중요한 소식을 갖고 왔다는 소리가 마을에 퍼졌다. 우체부의 편지는 이러했다. “착한 여인이여, 평안할지어다. 주인님께서는 당신을 부르셨고, 열흘 이내에 당신이 불멸의 옷을 입고 그의 앞에 서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크리스티아나는 일행 중 가장 먼저 강을 건너게 되었음을 깨닫고는 안내자인 담대 씨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담대 씨는 축하해주며 여행에 필요한 사항들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그리고 나서 크리스티아나는 아이들을 불러 축복해 주었다.
이제 크리스티아나가 떠나야 할 날이 왔다. 길에는 그녀가 떠나는 것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강 너머에는 크리스티아나를 성문까지 모셔가기 위해 내려온 말과 마차들이 가득하였다. 강가에 다다른 그녀는 환송 나온 여러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보내면서 강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주여, 제가 당신과 함께 거하며 주를 기리기 위해 갑니다.”
강 건너편 넓은 지대에 말과 마차, 나팔 부는 자, 피리 부는 자, 노래하는 자, 현악기 연주하는 자들이 가득 모여 천성의 아름다운 문으로 줄지어 올라가는 순례자들을 환영하는 모습은 영광스럽기 짝이 없었다. 크리스티아나가 데리고 온 네 아들과 그들의 처자는 내가 그곳을 떠나 올 때까지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다. 내가 돌아온 이후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그들은 아직 살아 거기 거하면서 교회를 확장시키고 있다 한다. 만약 내가 또 다시 그 길을 지나갈 기회가 있다면 여기서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을 원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겠다. 그 동안 나의 독자들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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