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취업.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중견 증권사인 A사에 입사한 박신입 씨. 부푼 꿈을 안고 회사에 들어왔지만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복사는 기본이고, 자료 정리, 스크랩, 심지어 잔심부름까지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저녁에는 원치도 않는 술자리에 불려 다니기에 정신 없다. 그런데 부서 상사인 김고민 팀장은 신입사원들에게 일만 시킬 뿐 하는 일이 별로 없다. 이사에게 아부나 떨고 팽팽 노는 것 같아 김 팀장이 얄밉다. 그 밑에서 일하는 걸 그만 두던지, 빨리 승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든다.
장면 2 A사의 최비전 사장은 아침부터 저기압이다. 증권사 매출은 정체돼 있다. 거래량이 없어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고 있다. 퇴직연금, 국외사업 등 신 성장동력 발굴도 시급하다. 국내 영업소도 바짝 뛰어줬으면 좋겠는데 현장 실무진들이 따라주질 않는다. 지시를 내려도 듣는 둥 마는 둥 성과보고가 없다. 임원들은 열심히 지시를 수행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실무적으로 일을 꾸려가는 과장, 차장, 부장 등 중간관리자들이 잘 못한다. 아침부터 김고민 팀장을 불러 국외 사업이 왜 지지부진하냐며 호통을 쳤다.
장면 3 김고민 팀장은 오늘밤도 어깨가 처진 채 퇴근한다. 신입사원들이 들어와 잘 해보려 했는데 도통 업무를 파악하지 못한다. 증권업이 무얼 하는 곳인지는 알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배우기는 기대도 안 한다. 하나라도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사장은 맨날 호통이다. 회사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고 기획을 해보라고 한다. 그런데 당장 책상에 놓인 현안도 수십 개다. 후배들이 도와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부하직원들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똑똑하게 처리를 못해 오히려 일감을 늘린다. 위에서 쪼이고, 아래에서 치이고 힘들어 죽겠다.
과장급 약한 조직 성공하기 어려워 정체하는 회사의 전형적인 모습이 이렇지는 않을까? 경제전문지 기자인 필자는 다양한 업종의 기업을 취재한다. CEO부터 과장, 차장, 부장 등 중간관리자, 또 말단사원까지 인터뷰를 한다. 그러면서 잘 되는 회사와 쇠락하는 회사를 스스로 나눠보곤 하는데, 필자가 매우 중시하는 기준 중 하나가 중간관리자가 조직 내에서 자리잡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다.
앞서 언급한 A사는 최고경영자부터 말단사원까지 중간관리자인 팀장을 비난한다. 말단사원이 보기엔 일만 잔뜩 시키고 팀장은 인터넷 검색만 하며 노는 것만 같다. CEO가 보기에는 아이디어도 팍팍 내고, 후배 직원들도 잘 다독거려야 할 위치에서 어영부영하는 것 같아 불만이다. 위에서 보나 아래에서 보나 팀장급들이 맘에 안 드는 것이다.
그런데 과장을 비롯한 차장, 부장 등 중간관리자들을 욕할 일만도 아니다. 중간관리자들에게 회사가 요구하는 역량은 정말 슈퍼맨급이다. 회사별로 리더십이 가장 많이 차이 나는 직급도 바로 중간관리자다.
과장급을 예로 들어보자. 이들은 실무와 관리를 모두 잘하기를 요구 받는다. 회사는 10년 가까이 업무를 했기 때문에 실무에 밝은 동시에 후배직원들을 잘 이끌어 성과를 내기를 원한다. 또 하나 경영자와 말단직원을 유연하게 잘 연결시키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통해 회사의 새로운 혁신과 변화를 주도해나가길 기대한다.
요약하자면, 자신의 일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내야하고, 동시에 사원들과 최고경영진들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축구로 비유하면 최고의 미드필더가 돼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역량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회사에 몇 년 다닌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꿈꿔보는 과정이 있다. 바로 경영학석사, 이른바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이다. 지금은 그 위상이 약해졌지만 과거 미국 유명 MBA를 나오면 연봉이 몇 배씩 뛰고 직급도 올라가던 사례가 있었다. 환상의 자격증으로 꼽히는 MBA의 목표는 다름 아닌 제대로 된 중간관리자의 양성이다. 연봉을 몇 배씩 올려주고 데려왔을 만큼 중간관리자의 중요성을 인정했던 것이다.
중간관리자가 제대로 못하면 A사와 같은 일이 생긴다. CEO가 어떤 지시를 내려도 말단사원까지 그 취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실무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배들의 존경을 받지 못해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무조건 ‘성과를 내라’는 식으로 다그치는 팀장을 따르는 조직원은 별로 없다. 반대로 말단직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최고경영자의 귀로 들어가지 않는다. 승진을 위해 윗사람에게만 잘 보이려고 하는 중간관리자가 밑에서 올라오는 바른 소리를 전달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관계로 CEO부터 말단사원까지 연결 중간관리자가 중요하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그 중 캐나다 맥마스터대의 릭 해커트 교수의 연구는 인상적이다. 그는 중간관리자는 조직을 인간화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했다. 차갑고 추상적인 조직에 인간적인 위상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162곳의 작업장을 분석해 봤더니 효율적이고 존경 받는 중간관리자가 있는 곳은 부여 받은 업무량 이상의 성취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간관리자들은 리더의 방침을 인간적인 접촉을 통해 하위조직에 적절하게 전달해 결과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킨다. 이렇게 개별적인 접촉을 통해 쌓인 신뢰와 충성 등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이 생산성을 높인다. 또 하나, 일터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하고, 이들이 혁신과 첨단기술 개발에 주도적으로 나서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정도가 컸다. 이런 이유로 릭 해커트 교수는 “교만하고 억압적인 중간관리자나 지나치게 비대한 중간관리 조직은 노동생산성을 저해하지만 비용 절감을 이유로 중간관리층을 대폭 축소한다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팀장급들의 역량은 어느 정도일까? 몇 해전 한 언론사는 재미있는 설문을 진행했다. 국내 기업과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기업 직장인들 8백여 명을 대상으로 직장상사의 만족도를 물었다. 결과는 100점 만점에 45점이었다. 부서 상사의 리더십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이다. 이렇게 낮은 리더십이라면 직원들의 사기와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이직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중간관리자도 할 말은 있다. 그 동안 자기 일만 묵묵히 해오고 승진만 보고 살아왔지 어떤 역할이 주어졌는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중간관리자의 중요성을 인식해 기업들도 중간관리자들의 리더십과 역량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과거 김쌍수 전 LG전자 부회장도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중시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중간관리자는 조직의 허리로, 경영진과 사원을 이어주는 가교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업무를 관리 수행하는 일선 지휘관이라고 정의했다. 최고의 경쟁력을 발휘하려면 조직이 건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구성원의 건전한 정서가 필수인데, 중간관리자들이 구성원의 동기부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리가 튼튼한 LG전자가 그의 경영방침이었다. 그래서 역량교육도 탄탄하게 시켰다. 이처럼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중간관리자를 교육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직급별로 요구 받는 인재상 다르다 앞서 과장급이 요구 받는 인재상에 대해 언급했다. 각 직급별로 요구 받는 인재상이 다르다.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가 올해 초 조사해봤다. 잠깐 소개한다. CEO를 비롯한 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판단력, 신속한 결단력, 의사결정능력이다. CEO의 단 하나의 판단이 회사를 몇 배 이상 성장시킬 수도,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업무와 회사 사정에 밝은 동시에 시장, 경제흐름을 놓치면 안 된다. 외부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꾸려나가는 것도 임원의 몫이다
역시 중간관리자인 부장은 직무 측면에서는 프로페셔널로서의 정체성을 완성해 낸다. 스스로 조식의 성과를 촉진하고 관리해 기업에 수익을 내줘야 한다. 떨어지는 실무 감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대리급이라면 관리보다는 실무능력이 중요한 때다. 실무를 가장 많이 다루는 시기로 책임감과 열정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사원급이다. 커다란 성과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실무와 함께 직장 예절, 부서간 업무협조,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 등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밝고 낙관적인 자세로 기업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만들고 스폰지처럼 뭐든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월간 리더피아 201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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