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溪 박희용의 麗陽南禪軒 독서일기 2024년 9월 3일 화요일]
김경일 저 『이재유 연구』 제9부 이재유와 일제하 변혁운동]
< 4. 이론과 실천의 통일, 5 미래의 사회를 향하여 >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재유 연구를 마무리한다.
「일제 경찰에 압수된 「압수금품총목록」에서 이재유가 소지하고 있었던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진화론』, 『세계경제월보』, 『중앙잡지』, 맑스의 『공산당선언』과 『임노동과 자본』,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과 『급진주의 공산주의 소아병』이 있다. 또한 『맑스주의 강령문제』,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레닌소문고』, 『레닌학교과서』, 『민족혁명』, 『레닌주의와 민족문제』, 『조선문제』, 『파시즘연구』, 『제국주의론』, 『수정주의에 관하여』, 『국제 적색노동조합 10년사』, 『러시아대혁명사』, 『세계 프롤레타리아 연표』, 『당의 조직구성』, 『좌익 농민운동 조직론』, 『재건 후의 좌익 노동조합 운동사』, 『삐아뜨니끼의 논문집』, 『스트라이크 전술』 등의 일본판 서적과 「코민테른 각 대회 주요 결정사항과 논문집」, 「1928년 12월테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제13차 총회」 등의 자료집이 있었다.」
「이러한 서적과 자료집을 통해 축적한 이론과 노동현장에서 스스로 터득한 실천을 통해 이재유는 10년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활동했지만, 일제의 어용신문인 경성일보로부터 “실천의 교묘함에서는 다른 어떤 지도자도 그의 족하(足下)에도 미치지 못한다”거나 헤방 이후에 김오성 저 『지도자 군상』에서 ‘중일사변 이후 최대의 혁명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제의 보고에 의하면 1934년 이래 공산주의 운동의 관계자로 경찰이 검거 취조한 수는 대략 500여 명에 달하였고, 이 사건으로 송국된 사람이 250명, 기소자가 약 70여 명이라고 하였다. 그룹별로 살펴보면, 권영태의 공산주의자 그룹 86명, 이재유의 경성트로이카 180명, 최선규-최돈근-김덕환의 강릉 재건사건 30명, 이재유-이관술-박영출의 재건그룹 33명, 김윤회-유순희-심계월의 협의회 9명, 권우성-정재철-안용봉의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 24명, 김승훈-김순만-권우성의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 10명, 안승락-안임균-김희성의 혁명적 노동조합 운동 7명, 이재유-안종호의 철원적색농조 운동 3명, 김칠성-이동천의 안변적농 운동 13명, 김희성-박인선-백윤혁의 권영태 그룹 후계조직 사건 45명, 이재유-이관술-서구원의 준비그룹 60명 등이다. 이 중에서 이재유와 직접 관련된 운동자는 328명이다.」
「여러 자료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재유는 대범하면서도 다정다감하고 낙천적이면서도 의지가 굳은 성격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남긴 몇몇 글들을 살펴보면 그가 모든 사물을 근본적 차원에서 생각하였던 사람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작성한 ‘동지 획득에 관한 주의사항’을 보면, 친절한 태도와 함께 신임을 얻기 위하여 언어나 행동에 주의할 것, 처음부터 좌익적 언동을 하거나 자기를 자만하거나 하지 말고 상대방이 말하는 바를 잘 듣고 이에 따라 선전선동할 것, 의식 정도에 따라 좌익 서적을 권하고 언제라도 열정을 가지고 응대하며 토론 등의 경우에 자신의 오류는 힘써 상대방의 면전에서 스스로 지적할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평소 생활태도의 반영일 것이다.」
「이재유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조선의 절대독립과 공산주의 사회의 건설’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한 혁명가는 차디찬 감방 안에서 “사회의 생산력이 고도화되어 높은 수준의 물질적 생활을 영위하며 지배와 억압의 관계가 없고 국가권력이 사회구성원의 자유 의지에 의한 정치적 위원회에 대체되고 가장 고급스런 예술적 생활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즐기며 남녀의 사랑이 끊이지 않고 현재의 우리 사색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진실한 일부일처제의 엄격함이 있는” 그러한 사회에의 이상을 가슴에 품고서 파쇼권력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고문과 가혹한 인격적 모멸이나 학대를 온몸으로 견뎌냈는지도 모른다.
이 시기에 비롯되어 전후 냉전시대의 각인을 받고 이후 역대 군사정권의 악의적이고 집중적인 세뇌를 거친 반공이데올로기를 통해 형선된 공산주의 개념으로는 이재유가 제시한 이상 사회의 이미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는 혁명적이었던 만큼이나 민족적이었으며, 민족적이었던 만큼이나 민중적이었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야말로 조선인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하였던 이재유는 “혁명을 위해 살고,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또 혁명을 위해 기꺼이 죽었던” 것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지식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친일, 복종, 저항 등 세 가지였다. 복종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친일이었다. 저항은 생활을 희생하거나 감옥에 가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 때문에 선택자는 극소수였다. 저항의 길은 무력투쟁과 사상운동 두 가지였다. 저항을 선택한 지식인들 중에서 주로 만주와 연해주 등 북쪽 땅에서 태어난 청년들은 무력투쟁의 길을 걸었고, 반도에서 태어난 청년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선택하여 혁명가의 길을 걸었다. 빈곤문제, 토지문제, 신분차별, 인권문제 등 구시대의 고질이 만연한 식민지 현실에서, 민족주의가 민족성 개량을 목표로 내세우며 일본의 2등 국민이 되고자 친일화하면서 신망을 상실하고, 청년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 경도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시대가 길어질수록 1934년 이래 공산주의 운동의 관계자로 경찰이 검거 취조한 수는 대략 500여 명에 달한 데서 보듯이 “공산주의야 말로 조선인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늘어났다. 해방되기 직전의 전국의 교도소에는 사상범, 공산주의자들로 만원이었다.
1930년대 이재유는 독보적인 항일투사였다. 투쟁의 도구는 공산주의였지만 목표는 민족해방과 조국독립이었다. 한국사는 이재유를 계속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아쉬운 가설, 살았다면 선량한 혁명가로 공산주의 흐름을 한국사의 한 물줄기로 바르게 텄을 것이다. 해방 이후 벌어진 과격과 전쟁, 모순과 이탈이 없었을 것이다.
늦었고 미흡하지만, 2006년 대한민국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했다.
이재유 (1905~1944) : 함평이씨. 함경남도 삼수군 별해면 신소리 출생과 산소. 찾아가 볼 수 있는 언젠가 백골 앞에 제주 한 잔 올리겠다.
권말 자료 2. 「조선민족해방 영웅적 투사 이재유 탈출기」 (저자 금강산인, 異河潤?. 『신천지』 1946년 4, 5월호)를 끝으로 이재유 읽기를 마친다.
이재유는 식민지 조선에서 민족해방과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20세기에 안중근, 손병희, 이승만, 이동휘, 이동령, 이상룡, 이시영, 이회영, 김좌진, 홍범도, 김구, 윤봉길, 이재유, 김원봉, 여운형, 김일성, 김무정, 김두봉, 박헌영 등 많은 인물이 독립투사로 유명하다. 이 중에서 이승만, 김구, 이시영, 여운형은 살아남아 남한에서, 김원봉, 김일성, 김두봉, 박헌영은 살아남아 북한에서 정치를 주도했다. 이 중에서 이승만과 김일성이 각각 남한과 북한에서 국가를 수립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김구와 여운형은 암살된 남한에서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대통령이 되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수상으로 한 조선을 건국하고 박헌영, 김두봉, 김무정, 김원봉 등이 권력서열 상위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국가를 세우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명분과 동력은 독립운동의 공훈이었다.
그런 그들이 6.25전쟁을 일으키고 당한 당사자가 되었다. 김일성과 박헌영 등 북한 지도부가 동족상잔의 전쟁을 도발하여 한국전쟁이란 국제전으로 비화하도록 함으로써 수백만의 임명을 살상하였다. 전쟁 도발을 예방하지 못한 이승만에게도 준하는 역사적 책임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이룩한 독립투쟁의 공을 훨씬 능가하는 과이다. 후세의 史家들은 20세기를 살다 간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엄격하게 하라.
정작 20세기 한국사에 진짜로 위대한 인물은 죽은 자들이다. 그 중의 한 인물이 이재유이다.
凡人들은 태어났으니까 자연의 순리에 따라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出人은 가슴 속에 야망을 품고 살아가다가 기회를 만나면 권력을 노린다. 그러나 진실로 위대한 인물은 평범한 세상일 때는 평범하게 살고, 사회와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한다. 살아남더라도 공을 내세워 권력을 탐하지 않는다.
이재유를 가까이에서 접한 사람들이 남긴 자료를 보면, 이재유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후자의 길을 걸었을 것 같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게 인간의 마음이요 작용이다. 이승만과 김일성이 한창 독립투쟁을 할 때는 순수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남아 귀국해서 벌어지는 정치 상황에 편승하다 보니 어느새 절대권좌에 올랐을 것이다.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정적을 탄압,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재유가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어떤 유형의 정치가가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20세기 중반에 태어나 21세기 중반 가까이 살고있는 나는 20세기 한반도에서 살다간 인물들의 인생 노정을 살펴보면서, 21세기에는 또 어떤 인물들이 명멸할 것인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