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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시 12:1-8)
할렐루야!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온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오늘 읽은 시편은, 세상이 너무 험해지고 어려워질 때에, 통탄하면서 쓴 시입니다. 혹시 이 시편은 사울 정권 말기에 기록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불미스러운 일이 많았던 사실을, 이 시편을 읽으면서,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비록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습니다. 감동을 주고, 기쁨을 주는 이야기보다는, 분노하게 하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라는 말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더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 좋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무서워서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점점 삭막해지고, 점점 사랑이 식어버리고, 점점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는 세상입니다. 타인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고, 섬기기보다는, 타인을 이용하고, 타인의 것을 빼앗고, 타인을 종처럼 부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환경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좋은 환경을 만들고,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다가오기에 불편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타인에게서 진실을 원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속고 속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속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거짓의 사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진실할 때,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진실하십시오.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악한 도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소돔과 고모라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입니다.
유다서에서 이런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7절)
성경에서 가장 악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아마다 가인일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11절)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악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16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19절)
이것은 타락한 시대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옛날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도 타락한 세상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너무나 타락한 시대입니다. 누구나 종말의 때라고 말합니다. 곧 지구가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세상 종말이 빨리 올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는 차라리 세상 종말이 빨리 와서, 나쁜 사람들 심판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들어 있습니다. 선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 심판 받으면, 혹시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심판의 자리에 있을까요? 칭찬의 자리에 있게 될까요? 종말이 오면, 누구나 두렵습니다. 우리의 행함을 통하여, 칭찬 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심판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종말이 이르기 전에, 우리는 심판 받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우리는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진실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타락한 시대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거짓입니다. 진실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습니다. 신뢰가 없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속이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아멘.
시인은 경건한 자가 끊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진실한 사람들입니다.
충실한 자는 사람됨이 믿을 만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충성스런 사람들입니다.
악한 시대, 타락한 시대는, 거짓의 세대입니다. 진실함이 없습니다. 서로가 속이고 속는 세상입니다. 어디를 가나 가짜입니다. 물건도 가짜, 사람도 가짜입니다. 그러므로 믿을 수 없는 세대입니다. 불신의 세대입니다. 따라서 불안한 세대입니다.
세상에 가장 불행한 것은 서로가 믿지 못하는 일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믿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을 믿지 못하고, 부모가 자녀를 믿지 못하고, 자녀가 부모를 믿지 못하고, 형이 동생을 믿지 못하고, 동생이 형을 믿지 못하고, 사장이 사원을 믿지 못하고, 사원이 사장을 믿지 못하고, 상관이 부하를 믿지 못하고, 부하가 상관을 믿지 못하고, 여당이 야당을 믿지 못하고, 야당이 여당을 믿지 못하고, 남한이 북한을 믿지 못하고, 북한이 남한을 믿지 못하고, 정부가 국민을 믿지 못하고,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한다면 이것은 가장 큰 비극입니다.
여러분! 이런 비극이 어디서 왔는지 아십니까?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마귀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속인 데에서부터, 인간이 타락하고, 그 수법을 사람들이, 하나하나 배우게 된 것입니다. 거짓은 언제나 범죄의 길잡이입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도, 모두 선을 행한다고 하면서, 거짓말하면서, 악을 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타락한 시대의 사람들은, 진리를 듣기 싫어합니다. 진리를 말하기 싫어합니다. 거짓을 좋아하고, 아첨을 좋아하고, 듣기 좋은 말만 좋아합니다.
디모데후서 4:3-4절을 보면,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했습니다.
바른 교훈을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듣기 싫어합니다.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시편 12:2절을 보면,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시대의 특징 중에, 또 다른 하나는, 아첨하는 사람들이 판을 칩니다. ‘아첨’이란 말의 뜻은 ‘미끄럽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런 근거 없이, 쉽게 거짓말을 꾸미는 것이, 아첨입니다. 실행은 따르지 아니하고,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 그리고 말이 말랑거리는 것, 그러니까 듣기만 좋게 하는 것을, 아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두 마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표리가 부동한 생활입니다. 한자 성어 가운데, “구밀복검”이란 말도 있습니다. 입에는 꿀처럼 달게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 하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말만 많이 할뿐, 그 말을 실천할 시간이 없는 사람입니다. 말로 모든 것을 다 하는 사람입니다. 행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말을 많이 하다보니, 앞뒤가 틀린 말이 나옵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를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한 말로 인하여, 자기의 꾀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한 말을 무조건 옳다고 주장합니다. 앞뒤가 맞지 않아도 다 맞는 말입니다.
말을 많이 하고, 행함이 없는 사람보다는, 말은 없을지라도 행함이 있는 사람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우리가 아첨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의 틈에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사자들 가운데서 사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잠언 6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16-19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거짓된 혀를 싫어하십니다.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이 시편은 말세에 대한 비탄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말세는 거짓말과 아첨의 말이. 그 모든 행사의 방법입니다. 심지어 교회에까지 파고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을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12:3절에도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진실하십시오. 속임수를 쓰지 마십시오. 진실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자를 언제까지 그대로 놔 둘 것이 아닙니다. 아첨하는 자의 말을 그냥 내버려 둘 것이 아닙니다. 그 혀를 끊어 버려, 거짓말하지 못하게, 아첨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참 무섭고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시대가 어두워지고, 절망적인 상황에 이른다 해도, 성도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성도는 머리를 들고, 가까워 오는 소망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큰 어두움은 밝은 서광이 비쳐 올 전조이기 때문입니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때입니다. 가장 어두운 때가 밝은 빛이 비추어오는 가장 이른 시간입니다.
세상이 종말의 때라고 말합니다. 지구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때가 하나님이 오실 때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십니다.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신 우리 주님이 무엇을 하실까요?
여러분! 하나님은 아첨하는 혀를 끊으십니다. 자랑하는 혀를 끊으십니다. 다시 말해서, 거짓말이나 아첨을 삶의 수단으로 삼지 못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는 것이, 없도록 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을 속이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로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거짓의 삶을 버려야 합니다.
4절을 보면,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혀가 이기리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이것 역시 거짓된 생각입니다. 그들은 실행은 없이, 힘으로 모략을 꾸며서 이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길 수 없습니다. 사필귀정입니다. 그렇게 얻은 승리는 승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중상 모략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이 승리한 것 같았습니다. 악이 선을 이기고, 어두움이 빛을 이기고, 거짓이 진리를 이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갔습니까? 삼일 만에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 어두움의 권세, 거짓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승리는 언제나 진리 편에 있습니다. 진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시인 롱펠로우는 “하나님의 연자맷돌은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만 매우 부드럽게 갑니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악이 우세하고, 거짓이 판을 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고 보십시오. 결국은 진리가 승리합니다. 선이 이깁니다. 선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이것은 인본주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우리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바로 사용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입술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인 우리 입술로 거짓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아첨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입술로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36-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우리는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모두가 거짓된 세대에서 누구를 믿을까요? 세상에 믿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을 믿지 않아야 합니다.
선거철이 다가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믿어달라고 합니다. 자기를 믿으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금껏 우리는 그들에게 속아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한번만 더 믿어본다. 저 사람보다는 이 사람을 믿어본다”고 하면서, 투표를 합니다. 정말 믿을 수 있을까요? 그래도 믿음의 사람들이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습니까? 한번 더 믿어 보는 것이지요. 믿어봅시다.
요한복음 2:23-25절을 보면,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의지하다가 실망할 일이 많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지할 이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믿을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은 거짓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합니다.
5-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아멘.
여기에서 말하는 “가련한 자, 궁핍한 자”는, 물론 성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그의 자녀들이 억울하게 어려움 당하는 것을 그냥 버려두시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으시다가, 이제 일어나 구원의 역사를 하십니다.
예레미야 33:3절을 보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언제나 일하십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모세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7-8절)고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왕 바로의 속박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거짓되다 하여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을 믿는 동안, 실망하지 아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다 같은 성격은 아닙니다. 어떤 말씀은 교훈적이요, 어떤 말씀은 위로의 말씀이요, 어떤 말씀은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순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셨든지,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든지, 사도들을 통해서 하셨든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믿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표현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똑같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합니다. 흙 도가니에 일곱 번이나 단련하여,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은과 같이 순결합니다. 다윗이 말한 대로 “주의 말씀은 진리로소이다”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에는 악이 섞이지 아니했습니다. 주의 계명들은, 정의로우며, 올바릅니다. 과오가 없는 순결한 책입니다. 물론 그 말씀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 잘못이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자체에는, 아무런 과오가 있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떤 결점도 없습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그 약속이 틀림이 없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은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가 말씀하셨으니 그가 행하지 아니하시겠는가?”
주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된 것을 보셨습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는데, 아직까지는 하나님의 약속이 잘못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을 믿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다 이루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정제된 은과 금과 같은 것입니다. 금이나 은은 귀중한 금속입니다. 은행에서 발행하는 수표나 지폐와 같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귀중한 그 자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고 귀중할 뿐 아니라 영원합니다. 흙 도가니에 단련한 은 같아서 변하지 아니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마귀는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없애버리려고, 문자 그대로 불같은 시험을 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의 말씀의 진가가 드러났습니다. 성경은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0:8절을 보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이 거짓되면 거짓될수록, 진리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다. 이 세상이 악하면 악할수록,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다. 이 세상이 불순하면 할수록, 순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십시다.
루터는 “하나님께 참된 사람은 사람에게도 참되다”고 하였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은 그 행위를 나타내실 때 반드시 말씀에 의해서 나타내신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시대에도, 진실된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는데, 믿음과 사랑을 찾아보기 힘든 말세가 가까워오는 이 때, 어떻게 믿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지막 때 우리는 마음과 혀를 지켜야 합니다.
혀로는 진리를 말하고, 마음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악한 마음의 더러운 열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서 겸손하여 복종하지 않으면, 뿌리째 뽑히는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보존하시리이다” 아멘.
이 말씀은, 이 세상이 있는 한, 거기에는 교만하고, 사악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비열한 수단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하므로” 믿음을 파괴하려고 위협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까지 지키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0:28-29절에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거짓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고,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팔 아래 있을 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말씀 위에 튼튼히 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십니다. 거짓이 없으십니다. 진실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순결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축복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풍성하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진실하신 아버지! 우리로 진실하게 하옵소서.
거짓을 버리고, 오직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