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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롤로그 6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내가 사랑에 대해 무엇을 말했는가?
나는 인간에게 선물을 가져가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선물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추상적인 문장에 불과하다.
늙은 성자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한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말라.
그들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인류가 진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위대한 가치를 지닌 선물을 남겼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다.
그러나 인류가 그에게 한 짓은 무엇인가?
그는 독살을 당했다.
늙은 성자의 말은 진실을 담고 있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말라.
그들로부터 짐을 빼앗아 그것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 낫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그대를 즐겁게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좋으련만!
그리고 그대가 그들에게 주고자 한다면 적선을 해주는 것 이상을 주지 말고 그들이 그것을 구걸하도록 만들어라!"」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심리의 당연한 측면이다.
그대는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가 받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대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을 상대방에게 베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고타마 붓다, 예수 그리스도, 차라투스트라에게 과연 무엇을 베풀 수 있겠는가?
그대는 가진 게 없는 거지이지만, 그들에게 뭔가를 주어야 하고 그 일로 그대가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그들은 그대에게 엄청난 보물을 내줄 수도 있지만, 그들은 주는 자이고 그대는 받는 자이기 때문에 그대는 그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대는 거지이다.
그대를 거지로 만든 누군가를 그대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늙은 성자의 충고는 매우 중요하고도 깊은 심리학적 사실들에 근거하고 있다.
그들에게 그저 적선하라.
그들에게 너무 많이 주지는 말라.
그들에게 너무 많이 주면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꼬리를 흔들며 그대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들이 구걸할 때에만 주면 그들은 행복해할 것이다.
그대는 적어도 그들을 거지로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구걸을 한 것이다.
그것은 그대의 잘못이 아니므로 그대에게 화를 낼 수 없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와 같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적선하지 않겠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부자이다.」
너무나 멋진 문장이다.
타인을 구걸하게 만드는 것, 아주 적은 양만 주고 더 큰 열망을 심어주는 것은 나의 빈궁함을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나 부자이다.
나는 풍족하다.
《사랑, 평화, 진실, 지혜, 자유가 모두 풍족하고, 이 모든 것을 따로 떼어서 줄 수 없다.》
그것들은 오직 하나의 전체로써 주어진다.
진실은 여러 조각으로 나룰 수 없다.
사랑도 여러 조각으로 나눌 수 없다.
전부를 주거나 아예 주지 않는 것 밖에 없다.
그러나 그대가 주기만 한다면 온 마음을 다해서 전체를 주어야 한다.
그들이 그대를 십자가에 못 박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그대로 인해서 화가 나거나 괴롭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자가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그대의 보물을 받아들이는지 잘 살펴보라!"」
그들은 언제나 그 보물을 거절해왔기 때문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보물을 원하지만, 누군가 그들에게 보물을 주려고 하면 그들은 그것을 거절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거절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뻐한다.
그대가 왜 붓다나 마하비라나 예수를 거절했겠는가?
거절함으로써 그대는 그들에게
'당신은 보물을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받을 정도로 가난하지 않다.
당신은 그것을 갖기에 충분히 풍족하다.
우리는 당신보다 더 풍족해서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늙은 성자의 조언은 대단한 지혜를 담고 있다.
「그들이 그대의 보물을 받아들이는지 잘 살펴보라!
그들은 수행자를 신뢰하지 않으며, 우리가 베풀어주려 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사는 길거리에서는 우리의 발걸음이 너무나도 쓸쓸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들은 밤에 침대에 누워서 태양이 떠오르기 한참 전에 누군가 걸어가는 소리를 듣고는
'저 도둑이 어디로 가는 것인가?'
라고 혼잣말을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로 가지 말고 숲속에서 머물러라.
차라리 동물들을 찾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동물이 순수하다고 말하는 늙은 성자의 조언이 마음에 든다.
동물은 그대를 거절하지 않을 것이고, 그대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며, 그대를 십자가에 처형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동물에게 가고, 나무들에게 가라.
그들은 너무나 예민하다.
인간은 거의 무감각해졌다.
더 큰 가치가 있을수록 인간은 더 무감각해진다.
인간은 돈, 권력, 명예의 언어만 이해한다.
인간은 사랑의 언어, 환희의 언어, 춤의 언어를 잊어버렸다."
「왜 그대는 나처럼 곰들 사이에 곰이 되고, 새들 사이에 새가 되려하지 않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물었다.
"그럼 성자는 숲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성자가 대답했다.
"나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노래를 만들 때 웃고 울고 중얼거린다.
그런 식으로 나는 신께 찬양을 올린다.
노래하고 울고 중얼거리며 나는 나의 신께 찬양을 올린다.
그런데 그대는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가져왔는가?"
차라투스트라가 이 말을 듣고 성자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
나는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
내가 그대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 소년이 웃으며 헤어지듯이 그들은 그렇게 서로에게서 멀어져갔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가?
그대는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만들고, 기쁨이 넘친다.
그대는 홀로 있어도 절대적으로 행복하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나는 떠나야 한다.
내가 그대에게서 뭔가를 빼앗지 않을까 걱정된다.
나는 이미 노래와 축복으로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 짐이 너무 많다.
그대는 곰으로서 곰들과 살고, 새로서 새들과 살고, 나무로서 나무들과 살기로 했다.
나는 인간에게 돌아가 인간으로서 살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대는 이미 그것을 가졌다."
늙은 성자와 차라투스트라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이해했다.
그리고 두 소년처럼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차라투스트라가 혼자가 되자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과연 그 일이 가능한가!
신은 죽었다는 사실을 늙은 성자는 이 깊은 숲속에서 아직 전해 듣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진리, 진정한 종교성,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즉, 신은 단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문장은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신은 생존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신이라는 개념을 고안해낸 교활한 마음과 인간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가설일 뿐이다.
《그것은 계시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세뇌를 통해 강요된 상상일 뿐이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가슴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새들과 나무와 동물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노인이 신은 죽었다는 말을 자신이 살던 숲속에서 듣지 못했다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래서 그는 여전히 신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차라투스트라와 니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단지 다르게 표현할 뿐이다.
나는 신이 한 번도 생존한 적이 없으며, 그 어떤 신도 존재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자 한다.
《신神은 삶에 대한 두려움, 욕심, 실패를 감추기 위한 발명품이다.》
신神은 진정한 삶의 기술을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궁여지책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춤을 출 수 없기 때문에 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은 제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절름발이가 되었다.
삶은 주의 깊음, 지성, 끈기,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이러한 요소들을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삶은 잘못된 것이고, 그래서 삶을 부정해야 한다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대가 부정함으로써 얻게 될 더 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신은 가장 큰 욕심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을 부정하면 신을 얻을 수 있다는 욕심이다.
세상을 부정하면 그대는 천국을 얻을 수 있다는 욕심이다.
《이것은 도피주의자, 절름발이, 뒤쳐진 자,
진정한 사랑과 삶의 기술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
노래할 줄 모르는 사람들,
춤 출줄 모르는 사람들,
이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발명품이다.》
춤을 출줄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춤을 비난할 것이다.
노래를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은 노래 부르는 것을 비난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자신의 단점과 무지를 은폐하기 위한 방어수단이다.
《신神은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어리석은 자의 창조물이다.》
《신神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예들이 만든 창조물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삶과 그 삶이 부여하는 모든 것에 사랑을 갖고 있다.
그는 삶을 전적으로 긍정하는 유일한 신비주의자이다.
삶은 존재계의 선물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포기하고 단념할 이유가 없다.
삶을 즐기는 방법을 배워라!
삶 안에서 즐거워하라!
나무들과 춤을 추고 별들과 춤을 추어라!
아무런 질투심 없이 사랑하라!
경쟁심 없이 사랑하라!
그 누구도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그러면 어떤 신神도 필요 없게 된다.
천국을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 대지를 신성한 존재계로 변형할 수 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신성godliness의 실현이 될 수 있다.
신성은 그대가 배울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나는 전적으로 신성이라는 개념에 동의한다.
신神은 단지 죽은 관념일 뿐이다.
신神이라는 관념을 빨리 버릴수록 좋다.
그런 관념에 대한 집착은 그대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기도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석상을 숭배한다.
《그들이 살아있는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데 어떻게 죽은 석상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물론 석상은 편리하다.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그대는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
물이나 우유를 끼얹을 수도 있고, 썩은 코코넛을 올려놓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석상은 거절하지 않는다.
그대는 석상에게 옳은 말이나 틀린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을 수 있다.
거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랑에는 실제로 살아있고 생명이 있는 상대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상대방을 사랑하려면 그대는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전 세계의 대학들 가운데 그 어떤 곳도 사람들에게 삶의 기술, 사랑의 기술, 명상의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어리석음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나는 사랑, 삶, 명상, 웃음이 가장 높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대는 훌륭한 의사나 기술자나 과학자가 될 수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유머감각, 사랑의 기술, 삶의 기술과 같은 위대한 가치들이 꼭 필요하다.
이것을 알게 되면 그대는 놀랄 것이다.
나는 사랑, 삶, 웃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배경으로 명상을 가르친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이러한 나의 가르침을 교육 과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지리, 역사, 화학, 물리와 같이 삶의 세속적인 내용들을 가르쳤다면, 그들은 이것을 교육과정으로 인정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과목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런 과목만 교육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 과목은 낮은 단계의 교육이 되어야 하고, 대학은 삶의 진정한 가치들을 배울 수 있는 수준 높은 교육기관이 되어야 한다.
《지리를 배운다고 해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며, 화학을 배운다고 해서 더 명상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기존의 대학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유머감각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
대학 교육을 통해서는 진정으로 웃을 수도, 내면의 춤을 출 수도, 진심의 노래를 부를 수도 없다.
삶은 황량한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그대의 삶이, 새들이 노래하고 꽃이 피고 나무가 춤을 추고 태양 빛이 기쁨으로 넘실대는 정원처럼 되기를 바란다.
차라투스트라는 삶을 절대적으로 긍정했기 때문에 많은 추종자들을 모으지 못했다.
독약과 같은 파괴적인 자들은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린다.
그래서 사랑과 삶을 자신의 메시지로 삼은 독창적인 스승이자 신비주의자 차라투스트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종교를 갖게 되었다.
차라투스트라의 종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유일한 종교가 되어야 한다.
그 밖의 모든 종교는 무덤에 파묻어야 한다.
《삶이 유일한 신神이며, 사랑이 유일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끝.
오쇼의 차라투스트라 1
오쇼 강의/박형진 옮김. 젠토피아 출판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