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당첨 되셨어요, 어디로 가실래요?
경로당, 도서관, 청소년 회관, 학교, 동네 한 바퀴, 마음에 드시는 곳으로 선택 하세요,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도 있어요”
몇 년을 두고 신청했지만 탈락을 하다 어느 날 전화 벨 속에서
샹냥한 목소리의 읍사무소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로또 당첨된 것도 아닌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기다리던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돼 첫 발령이 났다. 몇 급 공무원인지 나도 모르지만 나의 근무지는 ‘동네 한 바퀴’였다. 한 달에 삼 십시간 근무, 월급은 이십 구 만원이다. 일이 끝나면 시원한 공원 나무 그늘이나, 비나 눈이 오면 경로당에 모여앉아 쉬고 있으라는 담당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읍사무소에서 건내준 집게, 모자, 장갑, 장비를 착용하고 그 옛날 스물여섯 살 된 손주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통에 비료 포대 한 장을 끼워 넣고, 마스크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출근을 했다. 첫날이라 그런지 쑥스럽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지만, 내 짝 할머니와 구석구석 모여 있던 쓰레기와 담배꽁초, 플라스틱 커피 통을 찝어 비료포대에 담으니 금방 한 자루가 되었다.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묵은 쓰레기를 치우고 나니 동네가 훤해지고 내 마음도 즐겁고 개운했다.
어느 날, 지나가던 승용차가 빵빵대며 길 건너에서 멈추더니
“언니, 영숙이 언니, 집게 공무원 일해, 있는 돈이나 쓰다 죽지 무슨 집게를 한다고,
어ㅡ이구 못살아, 수고 하세요”
고개를 돌리고 본척도 안 했는데 혼자 떠들다 휙 지나갔다. 반응 없으면 가던 길이나 갈 것이지, 남이야 쓰고 가든 지고가든 오지랖도 넒은 친구였다.
그렇지 않아도 쑥스럽고 일도 서툰데 누가 들을까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날이었다. 하루 이틀 지나다보니 일도 익숙해지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한 바퀴 돌고나면 우리 동네가 깨끗해지고, 평소에도 게을러 다운받아 영화 보는 건 좋아해도, 운동하기 싫어하는 나에겐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할머니들과 대화하는 것도 즐겁고 힘들지도 않은 그런대로 할 만한 일이었다.
일이 끝나고 공원에 모여 앉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기가 입으로 만 오르신 할머니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시작 된다, 자식자랑도 하시고 며느리도 흉보고 어떤 날은 입씨름을 하다가 다투기도 하신다. 우리들의 살아가는 인생이야기 속에는, 노후의 외로움과 쓸쓸함, 왠지 모를 소외 되어가는 자신의 남은 인생의 고통을, 의연 중에 토해 내기도 한다.
아들이 주말에 집에 왔다. 늙으막에 나라에 녹을 먹는 공무원이 됐다고 자랑을 하며 일하는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또 일 년에 두 번씩 근로 장녀금도 있고, 내 인생에 마지막 직업이니 하는데 까지 성실하게 해야겠다고 했다. 건강이 허락지 않아 집게 일도 못하고 집에서 아니면 요양원에서 누워 있는 인생 선배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엄마, 집게 공무원 안 하면 안 돼, 용돈이 모자라서 하는 거야.”?
나는 아들에게 내가 왜 일을 하는 이유를 자세히 일러주었다.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면 돈이 되는 일이건 안 되는 일이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고, 바쁘게 살아야 노후의 외로움도 무료함도 극복 할 수 있고 건강해진다고, 그럭저럭 집게 공무원으로 근무한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몸에 익숙해져 선수가 되었다. 내 나이77 세 이젠 그만 퇴직하라고 나라에서 자르지 않으면 사는 날까지 건강을 위해 일해야겠다. 오늘도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근무지인 동네 한바퀴로 일하러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