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교와 북한선교의 세 공통점
<중주> 가족 여러분, 새봄을 잘 맞이하고 계시지요?
지난 3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방역조치가 완화되고 대면행사들이 가능해진 가운데 맞이하는 올해의 봄은 유난히 반갑고 활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재치 있는 말을 잘 하는 이웃이 “지난 3년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고 올해는 춘래사춘(春來似春이로다” 하더군요.
“춘래불사춘”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뜻이지요. “춘래사춘”은 이 분이 만든 말인데 “봄이 오니 봄 같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봄다운 봄의 향기가 점점 진해지는 3월에 <중주> 가족 여러분께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랍니다.
기본적인 공통점
저는 우연한 기회에 중국선교와 북한선교를 나란히 놓고서 살펴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세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는 기본적인 것으로, 사회주의권을 대상으로 한 선교라는 점입니다.
중국은 중국적인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 국가이고, 북한은 기형적인 모습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야 하겠지만 둘 다 사회주의 국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중국선교, 북한선교, 그리고 소련선교(개방되기 이전에는 지금의 러시아를 소련이라고 불렀지요)를 묶어서 <공산권선교>라고 했습니다.
그때 공산권선교에는 몽골선교와 베트남선교가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산권선교>가 <사회주의권선교>라는 말로 슬그머니 바뀌더니 얼마 안 있어서 <북방선교>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지금도 중국선교와 북한선교를 묶어서 <북방선교>라고 부르는 글이나 강연을 종종 대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북한이 사회주의권선교라는 기본적인 공통점을 가직 있다는 것은 두 선교를 살피면서 예측하고 효과적인 선교의 길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도 중국선교화 북한선교는 밀접한 관계를 괒고 있다고 말 하게 됩니다..
사라져야 할 공통점
여러 해 전부터 중국선교와 북한선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공통점의 이름은 ‘심한 제약’입니다.
북한선교는 원래부터 그 담장이 높았습니다.
그래도 한때는 틈새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대북지원 NGO>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출입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여러 차례 북녘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동행들에게 “우리가 북녘의 거리에 서서 ‘예수를 믿으시오’ 외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무엇인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면,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여준다면 그것도 전도가 됩니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방북길에 오를 때 평안하고 미소가 흐르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거울을 보며 얼굴을 매만진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 그런 얼굴을 주시고, 입술에는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언어를 담아주옵소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 탈북민들을 통해 북녘에 있는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전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탈북민 선교에서는 탈북의 통로인 중국이 큰 역할을 했지요.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간 탈북민들은 조중접경 지역에 있는 조선족교회들을 통해 도움을 받았고, 복음과 접했습니다.
중국 여러 곳에 ‘쉘터’라고 불리는 탈북민 돌봄장소가 만들어져 선교에 잘 활용되었습니다.
중국 여러 곳에 짐작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의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데 이들을 선교대상으로 여기며 선교의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중국에는 인신매매를 당해 중국인과 동거를 하고 있는 동포 여성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있는 분돌도 많습니다. 북한선교를 하고 있는 분들은 이 일을 <평강공주 사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여성의 몸에서 출생한 자녀들도 중요한 선교대상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이나 북한의 선교활동이 거의 스톱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중국선교가 멈춰지다시피 한 일에 대해서는 이 <중국을 주께로>에서 여러 번 다뤘으니까 새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최근에는 중국이 ‘위쳇’ 그룹 체팅방에서 기독교 용어가 들어 있는 글의 접근을 제한하고, 그룹 채팅방에 올라온 기독교 영상은 빠른 시간 안에 삭제하고 교회 홈페이지와 SNS를 삭제한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있씁니다.
대학생들에게는 학교 내 종교활동 금지가 강화되고 있고 가정교회에 대한 탄압도 거세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교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공통점은 속히 해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화되어야 할 공통점
세 번째는 강화되어야 할 공통점인데 이럴 때일수록 선교의 기본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중국선교나 북한선교 모두 지금은 선교의 기본적인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교의 기본적인 방법, 다시 말해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관심의 산물이기도 한데요, 중국선교를 위한 기도는 ‘우리가 중국 15억의 영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라디오를 들 수 있습니다.
중국은 지금 디지털을 통한 선교를 심하게 단속하고 있는데 라디오 청취는 제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화대혁명의 엄혹한 시기에도 라디오는 중국인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신앙생활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거의 유일한 젖줄 역할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중국 성도들 가운데 단파방송을 청취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단파보다 훨씬 쉽게, 안정적으로 청취할 수 있는 중국선교용 중파 채널이 둘 송출되고 있습니다.
교육도 중요합니다. 지금 국내의 북한선교단체들은 통일선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통일소망선교회라는 단체는 지역별로 북한선교학교를 확산해 나가고 있고. 오픈도어선교회도 이 일에 힘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선교학교를 운영하는 교파와 교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북한선교학교 개설 광고들을 볼 때마다 중국선교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금 우리는 기도, 방송, 교육, 그밖에 가능한 중국선교의 방법을 찾아 착실하게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하게, 나가서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중국대륙을 복음화시키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3월호는 “중국 잡지 속 삼일운동과 오사운동 속 기독교를 통해 미래 중국선교를 생각하다”라는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삼일운동과 오사운동은 한국과 중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 두 운동과 기독교, 그리고 중국선교를 삼각으로 연결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기획 글을 집필해 주신 문영걸 박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문 박사님은 중국교회를 치밀하게 연구하고 계시는 연구자이신데 중국교회와 무슬림 문제, 그리고 중국교회의 <천풍(天風)>에 대한 세심한 분석으로 한국교회의 중국교회 이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분입니다.
봄은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절기입니다.
이 기획 글들과 <중국을 주께로>의 모든 글들이 이 봄에 중국복음화에 대한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깨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