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 산치오 Raffaelo Sanzio(1483-1520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을 완성한 화가이며 건축가로 꼽힌다. 라파엘로는 스물네 살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의뢰를 받는다. 바티칸 궁정 2층의 교황 집무실 네 곳을 새로 꾸며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1509년 첫 번째 완성된 작품이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ratura'의 한쪽 벽면을 장식한 '성체에 관한 논의Disputa dol Sacramento'이다.
'성체에 관한 논의'에서 라파엘로는 최후의 만찬이 아니라 성체를 그림의 중심에 놓았다. 성체가 천상과 지상을 잇듯 한가운데에 모셔져 있다. 성체의 위쪽 하늘에는 성 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 부활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쪽과 왼쪽 에는 마리아와 세레자 요한이 구름 위에 앉아 계신다. 그 조금 아래로 오른쪽에는 구약의 성조들, 예언자들, 왕들이 있다. 왼쪽에는 순교자 스테파노, 라우렌시오. 요한 복음사가,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등 신약의 인물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지상에는 성체께서 성광 안에 모셔져 제대에 현시되어 있다. 그리고 성인들, 교회 교부들, 교황과 주교들, 신학자들, 수도자들, 평신도들이 성체를 둘러싸고 있다. 서로 "기적 중의 기적'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고, 성경과 또 여러 책에 나와 있는 것을 연구하고,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과 이단에 맞서 변호하고 있다.
라파엘로는 교황의 집무실 중 하나인 이 '서명의 방'의 사면 벽을 네 가지 주제로 그렸다. 가장 먼저 완성된 <성체에 관한 논의Disputa del Sacramento>는 신학을,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 은 철학을, <추기경과 신학적 성덕과 법 Virtu Cardinall e Teologali e la Legge>은 정의를, <파르나소 산의 정경Scenario di Parnasso>은 시학이 주제이다. 천장은 절학, 신학, 정의, 시학의 개념을 동서남북 4개로 구분하여 여신으로 의인화하였다.
그렇다, 전 시대에 걸쳐, 성체의 현존은 감동을 일으키고 명석한 두뇌의 사고를 발휘하게 하고 자극시켜왔다. 그러나 성체 안에 계시는 주님을 사랑하고 흠숭하는 이들에게조차도 성체의 신비는 결코 그 깊이를 완전히 열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학자이며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성령의 영감으로 이처럼 아주 아름다운 성체 찬미가를 썼다.
엎드려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써 믿음 든든해지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참된 진리 없나이다.
십자가 위에서는 신성을 감추시고
여기서는 인성마저 아니 보이시나
저는 신성, 인성을 둘 다 믿어 고백하며
뉘우치던 저 강도의 기도 올리나이다.
토마스처럼 그 상처를 보지는 못하여도
저의 하느님이심을 믿어 의심 않사오니
언제나 주님을 더욱더 믿고
바라고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사여,
사람에게 생명 주는 살아 있는 빵이여,
제 영혼 주님으로 살아가고
언제나 그 단맛을 느끼게 하소서.
사랑 깊은 펠리칸, 주 예수님,
더러운 저를 주님의 피로 씻어 주소서.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
예수님, 지금은 가려져 계시오나
이렇듯 애타게 간구하오니
언젠가 드러내실 주님 얼굴 마주 뵙고
주님 영광 바라보며 기뻐하게 하소서.
아멘.
거의 비어있는 성합
요한 보스코 성인이 서른두 살 때, 이탈리아 토리노의 미사에서 일으킨 기적이 우리에게 전해진다. 그날 천 명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많은 사람이 그 미사에 참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성체를 모시려는 사람이 성합 속의 성체보다 많은 그날, 예수님께서는 몸소 성체가 많아지는 기적을 통해 성체가 주님이심을 입증하셔야 했다. 물 위를 걸으신 것처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처럼...
교황 비오 11세(1922-1939년 재워)는 젊은 이들의 사도 요한 보스코 성인(1815-1888년, 축일 1월 31일)에 대해 "그의 삶에서는 초자연적 현상이 거의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아주 특별한 일들이 일상적이 되었다."라고 말했다.이 말대로 요한 보스코 성인은 놀랍고도 아주 잘 증명된 기적 중의 하나인, 위에 언급한 성체의 기적을 일으켰다. 돈 테레지오 보스코는 성 요한 보스코와 살레시오회 역사에 정통한 사람인데, 성 요한 보스코의 영적 아들 중 하나인 당시 열여섯 살의 주세폐 부제티(룸바르디아의 벽돌공)의 믿을만한 목격담을 듣고 다음과 같이 썼다.
요한 보스코 성인의 교리수업에 참가하고 감동한
1학년 중에 열 살짜리 벽돌공 실습생인
주세페 부제티가 있었다.
그는 나중에 오라토리오에서 감사와 사랑으로
영적 아버지 요한 보스코를 46년 동안 섬겼다.
“1848년 9월 8일 복되신 성모 마리아의 탄생 축일이었다. 그날 300명의 소년들이 오라토리오(가난한 아이들의 기숙사인 동시에, 마음껏 뛰어놀며 인성교육과 직업교육을 받는 학교였고, 올바른 신앙생활로 이끌어주는 성당 같은 곳)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성체를 영할 준비를 했다. 돈 보스코는 평소처럼 성체가 가득 든 성합이 감실 안에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미사를 시작했다. 성합은 그러나 거의 비어있었다. 제의실 담당 복사인 주세페 부제티가 성변화 축성을 위해 제병이 든 또 하나의 성합을 제대 위에 준비해놓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주세페는 성변화 축성 후에야 그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돈 보스코가 성체 분배를 위해 성합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8, 9개의 성체만이 있었다.
300명의 아이들이 영성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며 돈 보스코는 놀라서 멈칫했다.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시 정신을 모아 기도했다. 부제티는 자신이 만든 이 사태가 너무나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돈 보스코는 몇 안 되는 성체를 보며 속으로 외쳤다. '이걸로는 안 돼.이것으론 충분하지 않아!'
돈 보스코는 그러나 성체를 쪼개지 않고서 한 명 또 한명 조용히 성체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부제티의 차례가 되었을 때 성합을 보니, 처음처럼 8, 9개의 성체가 남아있었다!
부제티는 이 일을 친구들인 루아와 까글리에로에게 모두 말했다. 그들은 나중에 살레시오회의 첫 사제들이 될 소년들이었다. 훗날 루아는 사제가 되어 돈 보스코의 첫 번째 후계자가 되었고, 까글리에로는 살레시오회의 첫 번째 주교이며 추기경이 되었다. 그날 미사 후 이 두 사람, 루아와 까글리에로는 주세페 부제티가 저지른 이 일에 대해 상의하려고 부제티와 함께 돈 보스코를 찾아갔다. "돈 보스코, 부제가 저희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꾸며낸 말인가요? 아니면 사실인가요?" 그러자 돈 보스코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래, 사실이란다. 성변화의 기적을 이루실 수 있는 분에게 성체를 많게 하는 일이 뭐가 어렵겠니? 그런데 나는 성체의 기적보다 하느님 갈망에 흠뻑 젖은 너희에게 매우 놀랐다. 하느님께서 너희 안에 그러한 갈망을 넣어주셨구나!"
< Triumph des Herzens nr. 166>
이선영 옮김
박규희 옮김
(마리아지 2024년 3•4월호 통권 24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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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처 : 아베마리아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