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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제4장
내세에서 정화를 겪는 영혼들의 벗들과 조력자들
어느 시대에나 연옥 영혼들의 벗들과 조력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과 보속 그리고 함께 고통을 나누면서 그들과 통공하였다. 위대한 성인들과 거룩하게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각 시대마다 출현하여 우리에게 참된 모범을 보여 주며 우리를 교화시켜 왔다. 불쌍한 영혼들은 이러한 벗들과 조력자들의 도움을 간구하였으며 도움을 얻은 후에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불쌍한 영혼들의 많은 벗들과 조력자들은 환영(幻影)과 개별적인 계시를 통해 연옥을 보았으며 그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묘사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묘사에는 때때로 명확치 않은 일시적 환상 작용으로 인한 과장이 섞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세에서 정화되는 연옥 영혼들의 훌륭한 벗들과 조력자들에 관한 다음의 개요적(概要的)인 기록들이 이 진리를 확고하게 뒷받침해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연옥에 관한 진리의 두 가지 측면은 첫째, 내세의 정화소인 연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 고통스러운 정화과 정을 겪고 있는 연옥 영혼들을 지상 나그네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이 이른바 "대원" 양식으로 도울 수 있으며 또한 도와야 한다 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것을 실천하자! 분명히 우리가 그로 인하여 스스로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1. 불쌍한 영혼들의 한 무명의 벗(기원전 50년)
이 절은 마카베오 하권을 기술한 익명의 저자에 관한 내용이다. 이 사람은 기원전 50년경에 이집트 남부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성령의 감도(感導)를 받아 위대한 부활을 간절히 희구하면서 마카베오 하권을 썼다고 한다. 사람은 죽은 후에도 내세에서 속죄를 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와 보속의 희생을 바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는 확신했다.
그는 용감한 유다 마카베오와 그의 부하들에 관해 기술하였다. 아둘람(Adullam)이라는 도시에서 살육의 전투가 끝난 후 "유다와 그의 부하들은 전사자의 시체를 묻어야 할 날이 촉박하였으므로 시체들을 거두러 가야만 했다. 그 시체들을 다음날 조상들의 묘소에 운반하여 친족들의 옆에 함께 묻어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체 하나하나의 옷을 들추어 보니 그들은 압니아(Jamnia) 의 우상을 부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유다인이 이와 같은 물건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은 율법이 금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은 것이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다. 그들은 숨은 일을 모두 드러내시는 정의의 재판관이신 주님을 모두 찬양 하였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범한 죄를 모두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고결한 유다는 군중에게 죄지은 자들이 받은 벌이 죽음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았으니 이제는 그들도 죄를 짓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그리고 유다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그가 이와 같이 숭고한 일을 한 것은 부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허사이고 무의미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2마카 12, 39-45).
이러한 성서 구절에 고무되어 기원전 1세기 동안에 경건한 유다인 사이에 다음과 같은 믿음이 생겨났다. 곧 내세에서도 속죄할 수 있으며 속죄 방법에는 살아 있는 이들의 기도와 그들이 바치는 속죄의 희생 제물 등이 있다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마카베오 하권의 저자는 성령의 감도(感導)를 받아 유다 마카베오의 태도를 찬양하면서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갸륵하고 거룩한 생각이라고 하였다.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들을 죄(죄과와 보속)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평화로운 하느님의 품 안에 머무르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1.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저자(70-80년경)
디모테오 후서 1장 16절 이하의 내용에 의하면 이 사목 서간의 저자가 성령으로 충만된 이 저자가 성 바오로 자신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불쌍한 영혼들의 벗,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 바오로의 동료인 고(故) 오네시포로의 벗임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주께서 오네시포로의 집안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감옥에 갇힌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로마에 와서는 나를 찾느라고 굉장히 애쓴 끝에 나를 만났습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큰 도움 을 베풀었던 동료 오네시포로의 이름(이익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을 빛내 준 이 사도의 기도는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교적 관례를 증명해 주는 것이다.""
1. 성녀 페르페투아(202년 3월 7일)
북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출신인 이 초대 교회의 순교자로부터 우리는 연옥과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효과를 확신했던 초대 교회의 믿음을 명백히 찾아볼 수 있다.
귀족 가문 출신인 페르페투아(Perpetua) 부인은 다른 네 사람, 곧 펠리치타스(Felicitas), 레보카투스(Revocatus), 사투루스(Saturus), 사투르니누스(Saturninus)와 함께 체포되었다. 이들은 모두 세례를 받기 위해 교리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투옥되기 직전에 세례를 받았다. 페르페투아는 "곱게 자라서 명망 있는 가정으로 출가했고, 부모가 살아 계셨으며, 남동생 둘과 젖먹이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는 대략 22세였다." 그녀 자신이 자필로 기록한 순교자전 3장에서 10절까지에서 그녀는 자신의 순교 과정을 적고 있다. 그때 막 세례받은 그녀의 동료들과 함께 처형되기에 앞서 그들이 받았던 고통스러웠던 심문과 학대에 관해 그녀는 먼저 기록 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감옥에서 겪었던 체험담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 뒤)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우리가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것은 디노크라테스(Dinokrates)의 목소리였다. 그 이전에는 한 번도 그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순간 나는 퍽이나 놀랐다. 나는 비참했던 그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즉시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를 위해 하느님께 간구의 기도를 바쳤다. 그날 밤 나는 다음과 같은 영상을 보았다. 찌는 듯이 뜨겁고 메말라 보이는 어두운 공간으로부터 디노크라테스가 더러운 옷을 걸친 채 창백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죽을 당시에 그의 얼굴에 입었던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디노크라테스는 바로 내 사랑하는 남동생이었다. 동생은 얼굴에 생긴 암종으로 고생하다가 일곱살 때 죽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죽음을 끔찍스럽게 여겼었다. 내가 (죽은 동생인 얘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그와 나 사이에 커다란 공간이 생겨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다. 디노크라테스가 있던 자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곳에는 물이 가득 채워진 큰 물통이 하나 있었다. 그 물통의 가장자리 높이는 동생의 키보다 훨씬 더 높았다. 목이 마른 동생은 물을 마시려는 듯이 손을 뻗치며 발돋움해 댔다. 물은 가득 차 있었으나 그 물통의 높이 때문에 동생은 물을 마실 수가 없었 다. 나는 그러한 동생의 모습을 볼 때 견디기 어려운 슬픔에 잠겼다. 그 순간 나는 깨어났고, 내 동생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동생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 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우리는 진영 (陣營)에 있는 감옥으로 옮겨졌다. 왜냐하면 그날이 게타(Geta) 황제의 생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진영 근처에서 벌어지는 향연 중에 맹수들과 싸워야 하는 까닭이다. 나는 탄식의 눈물을 흘리면서 디노크라테스를 어둠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밤낮으로 기도를 올렸다.
우리가 감옥 속에 갇혀 있던 날 나는 다음과 같은 환영(소)을 보았다. 이전에 내가 보았던 그 자리에서 이번에는 옷을 잘 차려 입고 휴식을 취하는 디노크라테스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의 상처 는 모두 나아 흉터만 있었으며 물통의 높이는 동생의 손이 닿을 수 있을 만큼 낮아져 있었다. 그래서 동생은 계속해서 물통의 물을 퍼 마셨다. 물통 위에는 또한 물이 가득 차 있는 황금빛 잔이 놓여 있었다. 디노크라테스는 그리로 다가가 그 잔의 물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 잔의 물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물을 충분히 마신 뒤에 그는 어린애같이 즐겁게 놀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깨어났는데, 그가 벌에서 풀려 났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성녀 페르페투아는 죽은 동생을 위해 열절하게 많은 기도를 바침으로써 연옥의 고통으로부터 동생이 벗어나게 된 것을 환영으로 보았고 그 사실을 순교자전에 보고했던 것이다.
1. 테르톨리아누스(220년 이후)
수사학에 있어서나 법률학에 있어서 고도의 지성을 갖추었던 카르타고(북부 아프리카) 출신의 교회 저술가 테르툴리아누스 (Tertullianus)는 205년에 교회를 떠나 몬타누스파의 엄격주의에 가담했기 때문에 성인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여러 저서 속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신자들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사실을 두드러지게 증언하고 있다. 그들은 죽은 이들이 내세의 정화의 벌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기도를 바쳤다. 테르톨리아누스는 군인의 화관(De corona militis)」이라는 작품(제3권)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죽은 이들의) 기일에 우리는 그들을 위해 속죄의 제물을 바친다." 그리고 일부 일처 (De monogamia)」라는 작품(제10권)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녀는 참으로 남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그의 부활을 간구하며, 그 의 기일에 속죄의 제물을 바친다." 이와는 반대로 절덕(節德)에 대한 권고(De exhortatione castitatis)」라는 작품(제11권)에서 그는 부인과 사별한 남자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그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매년 속죄의 제물을 바친다."
1. 성 아우구스티누스(430년 8월 28일)
대주교이며 교부인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의심할 바 없이, 불쌍한 영혼을 돕는 일로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언젠가 그는 설교 중에 갑자기 닥쳐온 죽음 앞에서조차 당장의 눈앞의 일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준 경솔한 무리로 인해 크게 분노한 적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죽어 무덤으로 옮겨질 때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합니다. 곧 이런 말들을 합니다. '아, 불쌍한 사람, 아직은 무척 정정했었는데', '어제까지도 산책을 했었는데' 혹은 '나는 그를 일주일 전에도 길에서 보았지. 그때 그는 내게 이것저것을 이야기했었는데, 인간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조문할 때나 빈례(濱禮), 장례식 그리고 시신(屍身)을 꺼낼 때, 장례식의 행렬 속에서, 매장할 때,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분명히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이가 묻힐 때, 그런 생각들도 함께 묻힙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사라져 버립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자기들 이 누구를 매장하고 왔는지조차 잊어버립니다. 그들은 다시 사기와 도둑질, 위증, 폭음 그리고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애욕의 쾌락으로 되돌아갑니다. 더더욱 나쁜 것은 매장된 사람을 생각하면서 건강한 인간들이 이성을 포기하는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우리 역시 죽을 것이 4.'")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이들의 매장이나 무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에 대해서 특히 염려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아직 내세의 정화장소에 있는 경우, 그들은 우리의 기도와 거룩한 미사 제물의 봉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 이 주교는 "죽은 이를 돌봄에 대하여 (De cura gerenda pro mortuis)"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죽은 이를 교회 안에 있는 순교자들의 유골 곁에 매장하는 것이 어느 정도 뜻 깊은 일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신자들이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기억하게 될 것이며, 아직은 내세의 정화를 필요로 하는 그들을 위해 순교자 들이 중재자로서 도와 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죽은 이들, 곧 불쌍한 영혼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고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 물론 화려한 장례 의식과 무덤의 장식으로가 아니라 기도와 죽은 이를 위한 거룩한 미사 제물의 봉헌을 통해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책 고백록의 제9권 11, 12, 13장에서 그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Monika)의 죽음과 관련하여 아주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먼저 아우구스티누스는 10장에 그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와의 감동적인 문답을 기록했다. 거기서 아들은 자기의 세례식과 서품식 이후로 세상의 즐거움들이 자기에게 아무런 매력도 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답하였습니다. 내 아들아, 나로 말하면 이 인생의 어떤 것도 나를 유혹하지 못한단다.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더 시작해야 할지, 그리고 왜 아직 내가 여기 있는지 나는 알 수 없구나. 이 현세에서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지상에 머물기를 원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죽기 전에 가톨릭의 그리스도인인 너를 보고 싶은 오로지 그 한 가지 소망 때문이었다. 나는 네가 현세의 모든 즐거움을 등진 하느님의 종인 것을 보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했던 것보다 더 풍부하게 이루어 주셨지. 이제 내가 여기서 무엇을 더해야 하지? -내가 그 질문에 대해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후 아마 닷새쯤 지난 후였을까요-어머니는 실신해서 잠시 의식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한테 달려 갔고 어머니는 곧 의식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나와 내 형이 침대 옆에 서 있는 것을 마치 무엇인가를 알아내고 싶기 라도 한 듯 보고는 말하였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었지? 어머니는 그때 우리가 고통과 슬픔으로 충격을 받은 것을 알아차리고 말하였습니다. '에미를 여기(오스티아)에 묻거라!' 나는 말없이 복 받치는 울음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내 형은 무어라고 말하였는데, 어머니가 낯선 땅이 아니라 고향에 묻히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그런 생각을 품은 데 대해 터무니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형에게 거절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말하였습니다. '들어 봐라! 쟤가 무어라고 말하는지!' 그리고 나서 우리 둘에게 말하는 것이었습 니다. '이 내 육신은 그저 있던 곳에 묻어라. 육신을 가지고는 도대체 염려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에게 부탁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너희가 어디 있든지 간에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 다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에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과 장례 그리고 어머니를 위한 장례 미사와 그 밖에 그를 가득 채웠던 커다란 슬픔 등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모든 자애로운 사랑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그는 어머니가 생전에 저지른 작은 실수들과 결점들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내세의 정화를 필요로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들이 주님의 제단에 거룩한 제물을 바치며 어머니를 기억하라는 것을 강조하였을지 모른다. "임종이 가까워 올 때, 어머니는 화려한 장례식이나 몸뚱아리가 향료로 치장되어 묻히는 것은 중요한 일로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비석을 원치 않았고 고향(아프리카)에 묻히는 것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우리에게 명(命)하지 않고 단지 한 가지, 주님의 제단 (오,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기억해 주기만을 바랐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 우리의 부채를 없애 줄 거룩한 제물 봉헌을 하루도 건너뛰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악마는 우리의 죄악을 합산(合算)해 놓고 또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내고서는 미리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원수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승리하게 해주시는 우리의 구세주로부터는 그 무엇 하나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누가 주께서 죄 없이 흘리셨던 그 피의 대가를 주님께 되돌려줄 수 있겠나이까? 누가 원수로부터 우리를 구하기 위해 치르신 그 희생의 대가를 그분께 되돌 려줄 수 있겠나이까? 당신의 여종(오, 하느님)은 자신의 영혼을 믿음의 끈으로 우리 구원의 성사(Sakrament)에 매었나이다. 누구도 당신의 여종을 그로부터 떼어 내거나 당신의 보호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사자나 용의 힘이나 술수가 그 사이에 끼여들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무런 죄도 없다고 변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활한 고발자가 어떻게든 그녀를 굴복시켜 그의 권세 안에 끌어들이려고 할 때, 당신 여종은 오히려 내 죄가 빚진 바 없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고 아무런 대가도 받으시지 않는 분에 의해 갚아졌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당신 여종이 다시 남편과 평화롭게 휴식하게 해주소서. 남편 이외에 다른 사람과 전에도 후에도 결혼한 일이 없으며 그를 위해 당신께 오 하느님, 인내로써 열매를 드리며 섬겼나이다. 그리고 나의 주이신 하느님, 내가 마음과 말과 글로 봉사하는 당신의 종들, 나의 형제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소서! 그들 중 누구라도 이 글을 읽으면 당신의 제단에서 당신의 여종 모니카와, 전에 그의 남편이었던 파트리시우스(Patricius) 를 기억하게 하여 주소서! 그분들은 바로 당신이 저에게 육신을 허여(許興)하신 통로였나이다. 지나가는 이승에선 내 부모요,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님과 교회의 자녀들로서는 내 형제이며, 당신 의 백성이 돌아가는 길에서 그리워하며 가닿는 중에 있는 저 영원한 예루살렘에서는 한 겨레인 그들을 경건한 마음으로 기억하게 해주소서! 이러한 나의 고백으로써 어머님이 내게 하셨던 마지막 당부가 나 자신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연옥에 대한 믿음과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참조할 수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 중에서 특히 그의 소책자 엔키리디온」 (Enchiridion-믿음, 희망, 사랑에 관한 소책자, 110) 제29장 가운데 한 절은 특히 명백하면서도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의 죽음과 마지막 부활 사이의 중간 시간 동안에 그가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비밀에 부쳐져 있던 장소에 머무르게 된다. 이때에 살아 있는 가족들의 경건한 봉사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바쳐지거나 교회 안에서 자선이 행하여진다면, 죽은 이의 영혼의 고통이 보다 경감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후일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행위를 살아 있는 동안에 실천했을 때, 그 도움을 받게 된다. 죽은 후에 그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나, 그렇다고 그런 도움이 소용이 없을 만큼 나쁘지도 않은 삶의 형태가 있는가 하면, 그런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삶도 있다. 지상의 생명이 끝날 때, 이미 그런 도움이 전혀 불가능할 만큼 좋지 않은 삶도 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공덕들은 이미 이 지상 생활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가 지상에서 게을리 했던 것들이 죽은 후 하느 님에 의해 공덕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식의 기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해 하는 일들은 다음과 같은 사도의 말과 부합되는 것이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가는 날에는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한 일들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잘한 일은 상을 받고 잘못한 일은 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코린 5, 10). 어떤 사람이 죽은 후에 그를 위해 제물로 바쳐질 선행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면 그가 아직 육체를 가지고 살고 있을 동안 그 은총에 합당한 삶의 형태를 갖추어야만 한다. 그런데 모든 영혼들이 그러한 선행의 도움을 똑같이 받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살아온 삶의 형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제단의 제물이나 어떤 자선이 세례받고 죽은 모든 이들을 위해 바쳐질 때,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 간 영혼에게는 그것이 감사의 제물을 의미할 것이며 그다지 나쁘지 않게 살다 간 영혼에게는 죄의 제물이 될 것이다. 지극히 나쁜 생활을 했던 영혼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그 희생 봉헌의 도움을 받게 되면 용서를 받을 경우에는 완전한 용서를 받게 될 것이며, 계속 형벌을 받게 될지라도 견딜 만큼 경감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피앗미희님이 카톡으로 보내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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