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의 노을
허 열 웅
섬들은 바다에 멈춰있다. 물길 따라 흐르다가 한 순간 얼어붙은 듯 서 있다. 그래서 섬이다. 사람들도 그 섬들처럼 어느 날 문득 바쁜 발을 멈추고 저 하늘의 붉은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추억을 더듬는다. 해맞이 명소가 동해라면 해넘이 명소는 역시 서해다. 이곳의 3대 아름다운 낙조落照를 꼽는다면 ‘연인의 눈동자마저 발갛게 물들이는 변산반도 채석강 절벽의 노을’ 과 ‘넓은 백사장에 들불처럼 타오르는 안면도의 꽃지 해수욕장의 낙조다’ 그리고 ‘한 병의 포도주를 엎지른 듯 섬 전체가 물들고 있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석모도의 자두 빛 노을이다. 이 외에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은 통영의 소매물도에서 통통배가 싣고 오던 조개구름에 물든 노을과, 마라도의 억새밭에서 바라본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녹아들듯 사라지는 순간의 먼 낙조였다.
갈매기 날개에서 부서지던 햇빛이 바다를 헤집을 무렵 펜션에 짐을 풀고 바닷가로 나갔다. 저녁 빛이 뻘 웅덩이에서 퍼덕거리며 갯벌을 파고드는 파도조차 숨을 멈춘둣한 고요가 선홍색으로 변했다. 내가 어스레한 황혼 속으로 들어가면 노을은 더 먼 곳으로 물러가는 것이어서 노을 속에 노을을 만질 수 없었다. 타는 놀 뒤편으로는 갯고랑을 타고 올라오는 잔 생선을 향해 갈매기가 곤두박질하는 모습의 생동감도 보였다. 석모도의 가을 낙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동안 내 가슴에 엉켜있던 그리움을 소금 배인 바닷바람이 매듭을 풀어주고 지나갔다.
십 여 년 전만 하드라도 일출을 좋아했다. 짙푸른 바다를 홍시 빛으로 물들이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섣달 그믐날 차를 타고 밤새껏 달려간 곳은, 동해안의 정동진, 삼척의 촛대바위, 여수의 향일암 그리고 포항의 호미곶 등이었다. 바닷물에 씻긴 불덩이가 하늘을 찢고 첫 빗장을 열어놓을 때, 보다 많은 물질과 명예와 지위를 달라고 한 해의 소원을 두 손 모아 빌었다. 이른 새벽 어부가 깨운 갯벌을 거닐며 중환자 소리를 내는 발동선이 아니라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에 승선하는 신분이 되겠노라고 의지를 불태웠던 시절이었다. 해맞이와 해넘이를 함께 보고 싶을 때에는 서천의 마량리나 당진의 왜목 포구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두 풍광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지형이 형성된 곳이다. 그러다가 이순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일몰이 일출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어 해넘이 장소를 더 많이 여행하게 되었다. 붉게 물든 노을 길을 천천히 걷노라면 해와 달과 지구의 운행보폭에 걸음을 맞추는 기분이 들었다.
일출이 끝없는 욕망의 덧셈이라면 낙조는 멈춰있는 탐욕의 뺄셈일 것이다. 정상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멈출 줄 몰랐던 유아독존적 자존이 시들해지고 뭔지 알 수 없는 허무가 어느 날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이 가슴을 헤집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얻으려고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더란 말인가 하는 회의가 일었다. 성장한 아이들이 독립해나가 내가 젊은 날 상상도 해보지 못한 국내외 낭만적 여행뿐만 아니라 값비싼 뮤지컬 관람 등으로 그들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나, 젊은이들이 붐비는 강남의 화려한 로데오 거리, 관광객들이 밀려드는 인사동 쌈지 길을 걷다보면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 평생을 바쁘게만 살아온 것이 후회가 되고 나 자신을 위해 좀 투자도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정수리를 짓누른 때가 많다.
섬은 바람의 나라다. 풀은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엊그제 고희古稀가 바람처럼 내 앞을 지나갔다. 이젠 몸에서 힘을 빼고 바람이 불면 슬쩍 드러누웠다가 바람이 지나면 다시 일어설 줄도 아는 부드러운 풀잎처럼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가을의 채색인 단풍이 물들고 억새의 판타지가 시작되는 징하게 이쁜 섬 석모도의 밤은 깊어 갔다. 함께 간 문학기행 일행들은 그 동안 살아오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풀려는 듯 목청 높여 노랠 부르고 섬이 가라앉지나 않을까 걱정할 정도로 온 몸으로 뛰며 춤을 추었다.
섬에서의 고독은 어두워지면서 빛난다고 했던가, 음치에다가 몸치까지 갖춘 나는 함께 어울리는 것을 포기하고 슬그머니 나와 노을이 수평선에 누워있던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상현달이 발길을 안내해주고는 있었지만 소금 배인 바람은 차겁고 주변은 어두워 무서움마저 느꼈다. 섬에 와서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려하지도 말고 ‘나’를 놓아버리라는 말처럼 밀물에 실려 오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을 거는 파도에게조차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해넘이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내가 노을이 되어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도 채석강 절벽을 물들이거나 꽃지해변에서 쥐불같이 번지는 노을처럼 아름다운 황혼을 만들 수 있을까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해본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낙조落照 속에 태워버리고 좋은 일들만, 좋은 사람들만 기억하고 살아야 하겠다는 약속 편지를 소인 없는 우표로 섬 끝 하얀 등대로 띄웠다. 지친 하루가 어제의 노을로 물들어 떠났으니, 갓 건진 희망의 내일은 붉게 솟아오르는 석모도의 일출과 함께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것이다.
(2013,10,12 창수문인 가을세미나에서)
첫댓글 "한 병의 포도주를 엎지른 듯 섬 전체가 물들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격려해주시는 덕택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작품의 행간마다 숨을 몰아쉬는 빛나는 문장들. 와우! 선생님..
아쉬움이 있다면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여기서
각주를 달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슬며시 드네요. 용서 하소사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변명을 하자면 김수영 시인의 짧은 詩句이고 수필이기에 생략했는데 시인의 이름을 넣은 글로
퇴고 해야겠습니다.거듭 고맙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석모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가본듯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한 번 쯤 ...너무 상업화 되어가는 섬이기도 하여 아쉬웠습니다.
동감입니다. 노을이 아른다워 보이기 시작하는건 내가 노을이 되어가기 떄문이라는 말
저도 요즘은 많니 늒ㅂ니다.
집 부엌쪽에 서향창이 있는데 요즘은 저녁 시간에 거기 자주 머뭅니다.
노을 구경에 넋이 나가서 ...
감사합니다. 아직 젊으시고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