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문양 가운데 연꽃이 있다. 사찰 장식의 여러 소재 중에서 연꽃만큼 내밀한 불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도 드물다. 연꽃 문양은 주로 시각적으로 반응하는 현대인들의 눈에는 단순한 치레 정도로 비칠 수 있으나, 진실로 그것은 불교의 정신세계와 불자들의 부처를 향한 신앙심을 짙게 투영하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연화 화생 : 극락왕생의 기원
연꽃은 인도의 고대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고대 인도 브라만교의 신비적 상징주의 가운데 혼돈의 물 밑에 잠자는 영원한 정령 나라야나(Narayana)의 배꼽에서 연꽃이 솟아났다는 내용의 신화가 있다. 이로부터 연꽃을 우주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세계연화사상(世界蓮華思想)이 나타났다. 세계연화사상은 불교에서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 화생(蓮花化生)의 의미로 연결되었다. 모든 불·보살의 정토를 연꽃 속에 들어있는 장엄한 세계라는 뜻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하는 것도 세계연화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염불로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들은 연꽃 속에서 화생하는데, 이 모습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에 연꽃을 연태(蓮胎)라고도 한다.
한편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나 사방으로 일곱걸음을 걸을 때 그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이는 바로 연꽃이 화생의 상징물임을 나타낸다. 사찰 벽화나 불단 장식 중에서 동자가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연밭에서 놀고 있는 모습 역시 연꽃이 화생의 상징임을 묘사한 것이다.
사바세계의 번뇌와 집착을 벗고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불자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모태(母胎)가 필요했다. 그래서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연꽃이 그 모태의 상징형이 된 것이다.
♥팔엽원 - 불법의 진리로 모이는 여덟 장의 꽃잎
연꽃 문양 가운데 여덟 장의 꽃잎을 가진 8엽 연꽃은 불교 교의(敎義)와 신앙체계를 나타내는 상징형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모든 불·보살 등을 그 지위에 따라 배열하여 그린 그림인 만다라 가운데 『대일경』(大日經)의 세계를 형상화한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를 보면 중심에 8엽 연꽃이 그려져 있다. 이 부분을 중대팔엽원(中臺八葉院)이라 하는데 연꽃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인 대일여래를, 주변 여덟 장의 꽃잎에는 각각 네 부처와 네 보살을 배치하였다. 네 부처는 네 가지 지혜를 네 보살은 중생을 불도에 끌어들이기 위한 네가지 방편인 사섭(四攝·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푸는 보시)을 상징한다. 여덟 장의 연꽃잎이 하나하나로 분리되어 있지만 연꽃의 중심에 붙어있는 것처럼, 네 부처와 네 보살은 결국 하나의 법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8엽 연꽃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깨달은 부처의 본성인 불성(佛性)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8엽의 심장 곧 마음의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제천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과 홍천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의 기단부 갑석 밑면에서 8엽 연꽃을 볼 수 있다.
♥청정과 미묘 - 연꽃에 서린 불·보살의 향기
연꽃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펄흙에 물들지 않으면서 맑고 미묘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연꽃의 생태적 속성이 불교의 이상과 부합되어 청정과 고결, 미묘의 상징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연꽃은 네 가지 덕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향(香), 결(潔), 청(淸), 정(淨)이 그것이다. 불·보살이 앉아 있는 자리를 연꽃으로 만들어 연화좌 또는 연대라 부르는 것도 번뇌와 고통과 더러움으로 뒤덮여 있는 사바세계에서도 고결하고 청정함을 잃지 않는 불·보살을 연꽃의 속성에 비유한 것이다. 스님들이 입는 가사(袈裟)를 연화복(蓮華服) 또는 연화의(蓮華衣)라고 하는 것은 세속의 풍진에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손에 활짝 핀 연꽃이나 연꽃봉오리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의 모습은 보살의 청정과 무염(無染), 또는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더불어 관음과 관음신앙의 성격을 상징한다.
이렇듯 연꽃은 미묘한 불법의 세계와 맑고 향기로운 마음의 실상을 드러내는 상징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해탈이요, 그것은 자기의 본성을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견성성불(見性成佛)과 왕생극락(往生極樂)을 내용으로 한다. 연꽃 문양에는 모든 망상과 미혹을 버리고 자기의 천성을 깨달아, 죽어 극락정토에 가서 연꽃 속에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불자들의 종교적 열망과 신앙심이 담겨 있으며, 청정한 부처님의 경지와 미묘한 권능에 대한 숭모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연꽃문양은 불성 그 자체인 우리 근본 심성의 표징이며, 신앙의 가르침과 그 내용을 도상화한 기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연꽃문양은 불교 교의와 신앙 체계를 비롯하여 부처님에 대한 불자들의 신앙심과 종교적 염원 등 여러 가지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불교 상징문양의 극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