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여행사진작가 이형준(46)씨의 여권은 어지럽게 찍힌 출입국 스탬프 때문에 빈 자리를 찾기 힘들다.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사진작업에 나서 16년동안 116개국 1000여개 도시를 돌아다녔으니 전 세계가 그의 작업 무대인 셈이다.
‘동화를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행-유럽편’(즐거운 상상)은 그가 처음으로 펴낸 여행서적이다. 항공사 기내지와 사보,리빙잡지 등에 여행관련 사진과 글을 기고하며 왕성하게 활동해온 그의 경력을 감안하면 뜻밖이다.
“여행서적을 내보자는 제안은 많이 받았지만 비슷비슷한 명소를 중심으로 기념사진 찍기 좋은 곳을 안내하는 책을 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화마을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가족과 함께 하는,문화가 있는 여행이 될 수 있거든요.”
책에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무대인 스위스 마이엔펠트부터 안데르센의 자취가 남아있는 덴마크 오덴세까지 유럽의 22곳 동화마을이 정성들여 찍은 270컷의 컬러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다. 책에 담긴 동화마을의 모습과 동화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표정은 그 어떤 동화보다도 아름답다.
이씨가 동화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9년. 독일의 대학도시인 마르부르크에 들렀던 그는 ‘브레멘 시청 광장에서 동물음악대 야외극을 공연한다’는 포스터를 발견하고 모든 스케쥴을 제치고 브레멘으로 달려갔다. 브레멘 사람들의 동화에 대한 애정과 자원봉사자들이 꾸민 야외극에 감동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동화책을 찾아보고 세계 각지의 동화마을을 찾아다녔다. 15년간 찾아다닌 동화마을만 50개. 계절에 따른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열번 이상을 찾은 곳도 있다.
“동화마을에 가면 일본사람은 많아도 한국 사람은 거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유럽 큰 도시의 역이나 도심이 한국인들로 붐비는 것과 대조적이죠. 아직은 우리 여행문화가 패키지로 명소를 찾아다니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그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어린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가족단위로 동화마을을 찾아와 동화책을 읽으며 즐기는 그들의 여행문화. 이 책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의 여유와 즐거움을 독자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소망이 담겨있다. 실제로 그는 비용부담과 작업차질을 감수하면서 틈틈이 아내와 딸을 여행일정에 동반한다.
“저도 처음 2∼3년 정도는 일 때문에 늘 불안하고 초조하게 살았지요. 스위스 융프라우에 들렀을 때 산양떼가 언덕을 내려오는 장면을 봤는데 산양 한 마리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더군요. 쉬어갈 때는 쉬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1급 여행사진작가로 대우받으면서도 돈과는 거리가 먼 그가 자신의 직업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삶의 여유와 가족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인 듯 싶다.
송세영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