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산에 오르다
처음 어느 산이나 산행을 하고자 할 때 나는 언제나 두가지 문제에 관하여 스스로에게 묻는다.
산에 대한 외경(畏敬), 즉 두려움과 기대감에 관한 두 가지의 문제.
이 산은 얼마나 높을까, 경사가 얼마나 급할까. 얼마나 힘들까. 그리고 정상에 올랐을 때 나는
어떤 기분과 만족감을 가지게 될까.
둘째로, 내 몸에 대한 불안이다. 오늘 내 몸은 어떤 수준에 있는가, 내 다리는 저 산을
오를 만큼 단련되어 있고 준비되어 있는가. 내 허리의 상태는 어떠할까. 내 관절은,
내 심폐기능은? 등등…
그러나 나는 미리 알고 있다.
처음 몇 십 분 걷고 나면 내 몸의 모든 부분들, 기관들이 마치 예열을 끝내고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하는 기계처럼, 이완되고 게을렀던 몸의 그 동안의 나태로부터
녹슨 관절의 구석구석을 서서히 일깨워 주고, 서로 유기적인 협동을 통해, 또 땀을
흘리고 난 상쾌한 피곤으로부터 얻는 기분의 고양에 의해 이러한 걱정들이 서서히
기우로 퇴색하고 마침내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다라는 것을.
오늘의 산은 <아홉산>이다. 더욱이 뜬금없이 혼자 오르기로 했다.
혼자 가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라 늘 나를 데리고 다니던 두산,흑송,돌풀등 친구들이
제각기 일들이 있다고 해서 막상 나 혼자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홉산은 새벽에 자주 오르는 우리 집 뒷산 윤산에서 오륜대 호수를 사이에 두고
가장 가까운 산, 마치 오륜호수를 담고 있는 듯한 산, 가까우면서도 아직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근교산이다.
아홉산은 봉우리가 아홉개가 있대서 붙인 이름이다.
대부분 회동동 (물돌이동이란 뜻이겠지)에서 올라 가는 것이 보통이나 나는
철마에서 거꾸로 오르기로 했다.(실제 아홉 봉우리의 제 1봉은 철마에서부터
시작한다) 회동동에서 오르는 길을 제대로 찾기 어려울 것 같아서이다.
모든 시작은 힘든다. 힘들지 않다면 등산이 아닐 것이다.
오래 걸어야 할 발, 베낭을 맨 어깨, 허리,허벅지뿐 아니라 기관지와 폐 등등 몸
구석구석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즐거움은 그냥 주워지는 것이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며, 그러므로 즐거움은 배가되는 것이다.
황씨 집에서 시작하여 제 1봉을 오르는 경사는 제법 가팔라서 숨이 찼으나
처음부터 느슨해지기 싫어서 쉬지 않고 올라 30분을 걸으니 봉우리 위에 올라 섰다.
이 곳에서 부터는 별로 힘든 곳이 없다. 그냥 걸으면 되는 것이다.
걷는 것에는 꿈이 담겨 있다.
걷는 것은 행동이고 도약이며 움직임이다. 한편 걷는 것은 사색이고 꿈꾸는 것이고
명상이다.
일년 내내 푸르던 나무들의 잎새들이 낙엽져서 이 등산로에 카페트를 깔아 놓은
듯하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발 밑에 밟히는 낙엽의 감촉과 소나무와 활엽수가
밀식되어 있는 산길의 주변을 천천히 감상하며 걷는다.
걸으면서 나는 꿈꾸고 명상한다.
안개 피어 오르는 호수, 초겨울이 되어 더욱 붉어진 망개 열매들을 보는 것,
키작은 관목림의 수풀 속에서 분주히 노니는 작은 산새들의 유희를 스쳐 보는 것,
걸음을 멈추고 길 가 나무의 그루터기에 앉아 베낭에서 꺼낸 뜨거운 커피 한잔과
사과 한 쪽을 먹는 것, 걷는 일이야 말로 이런 것들을 하기엔 더 없이 적합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것들을 즐기면서, 일상에서 떠나 한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느림과 침묵에 목말라 있은 것은 아닐까?
빨리 걸을 필요는 없다. 누구를 따라가야 할 강요도 없고 누군가를 기다려 줄 의
무도 없다. 천천히, 천천히 나는 걷는다.
이 등산길은 너무 한적하여 너무 좋다. 두시간 남짓여 만난 등산객은 불과 서너명,
이름없는 산이 이렇게 더 좋을 줄이야.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너무 바쁘게 뛰어 다녔다. 언제나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과연 시간이 부족했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니었다. 부족했던 것은
마음의 여유였다. 자신에 대한 성찰이었다. 쉬어가지 않으면 제대로 목표에 다다
르지 못하는 법이다. 왜 바빴던가. 일하고 공부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러나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은 낙오되지 않기 위하여. 제 때에 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낭패감에 허덕이며. 아직 쉬어서 안되겠다는 터무니 없는
불안에 채찍질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이 산길을 혼자 걸으며 나는 깨닫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겐 급할수록
쉬어가고 천천히 걸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아홉산은 오륜호수와 남매사이다.
산의 능선을 걷는 것은 호수의 굴곡을 따라 걷는 것과 같다.
게다가 언제나 도시의 내부에서 외곽을 향해 보는 것에 익숙한 것에 반하여 오늘
은 도시의 밖에서 안을 향하여 보게 된다.
호수를 건너 저기 저 도시는 아름답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쟁과 질시, 격정과
분노, 이기적인 탐욕들이 골목들을 흐르고 채운 곳. 그러나 결국 인간의 애환이
있기 때문에 마을은 아름답다.
아홉 봉우리이면 계곡도 아홉인가.
이 한적한 산길을 걸어오며 나는 즐거움에 뻐져 있다.
누가 왜 등산을 하는가라고 묻는단다. 어차피 다시 내려 올 걸 왜 힘들게 올라가느냐
고 한단다.
정상에 올라서서 또는 숲을 빠져 나와 갑자기 앞이 튼 개활지에서 멀리 원경을 바라
볼 때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 더 멀리 능선과 능선을 이어 끝없이 겹쳐지다가 운무
속으로 희미하게 하늘이 되어 버리는 산,산,산.
뿐인가, 이제 초겨울인데도 자세히 보면 진달래는 여린 가지에 벌써 내년 봄의 개화를
준비하고 있다. 게눈처럼 남에 눈에 뛸라 조심스레 돋아나는 꽃순을 보는 것은 우주를
보는 것이다.
또한,우리의 정신은 때론 육체를 혹사함으로써 더 명징(明澄)해 진다는 아이러니도
있다. 게으른 돼지가 진주(眞珠)로 무시당하는 것은 아마 이 탓이 아닐까.
정신과 육체는 서로 일깨워주고 꾸짖고 격려하는 관계라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 안일하고 평온함을 찾으면 서서히 쇠퇴하고 타락하는 것이 아닐까?
천천히, 그리고 조심하여 산비탈을 내려왔다. 언제나 내려 오는 길이 더 겁나는
것은 발목에 대한 충격이 올라갈 때보다 더 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서서히, 발 끝에서부터 피로가 느껴져 온다.
내 몸, 특히 중요한 페달인 발에서 느껴지는 미미한 피로의 징후에 대해서 조금
도 경계를 늦출 순 없다. 나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장기환자”이며
백두대간은 지레 꿈꿀 수 없는 아마튜어 초보인 것이다.
오륜호수의 수문이 있는 곳, 저 천성산 계곡에서 시작하여 흘러내린 개울이 모여
고인 호수가 회동동에서 다시 호수를 빠져 나와 금사동을 지나 수영만으로 흘러
마침내 태평양이 되는 곳. 그 회동동에 세상에서 가장 낮은 저녁 빛이 살고 있었
다.
얕은 개울에 수초들이 물결따라 흔들리고 산그림자가 서서히 어물어물 집으로 돌
아가는 몇마리 저녁오리들의 발목을 홍건히 적시는 저녁이다.
가늘게 눈발이 흩뿌리기 시작했다. 산 밑 이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색창연한
기와집 울타리 마른 국화에 반 뼘 남은 저녁햇살이 잠시 머물다가 이내 슬어지고,
나는 집으로 가는 생소한 버스에 올라,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 온다.
다음 산행을 꿈꾸며.
첫댓글 悠悠自適 정말 좋군요,또한 갑자가 회동하는 새해엔 기쁨만 가득하기를....
혼자 하는 산행은 우리한테 여러가지 생각할 꺼리를 준다.오르고 내리는 것은? 빠르고 느린 의미는?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길은?우곡 !부지런히 산에 오르고 건강하게나
새해초에 자신을 되돌아 볼수있는 시간을 갖은 우곡은 행복하여라,홀로 산길을 걷는것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