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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이곳 한국신문에 난 짤막한 기사가 나의 흥미를 끌었다.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의 아들 金辰교수가 처음으로 밝히는 가족 이야기,
"그땐 그 길이 왜 그리 좁았던고" 출판기념회가 Stanford 대학 부근의 어떤 한인 교회
에서열린다는 내용이었다.
김진 교수는 내가 대학 4학년때 한 학기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 선생님이 아니신가?
그 샌님같은 김진 교수가 나혜석의 아들이라고? 50년전에 처음 만났던 김 교수님은
금방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멋쟁이 미남 청년으로 한 세대를 주름잡던 女傑의
아들이라고는 도무지 번지수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김 교수께서는
San Diego 부근에 은퇴해 계신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었는데 무슨 연고로 北加州
에서 출판기념회를 그것도 어머니날에 열다니? 도무지 파즐이 풀리지를 않는다.
하여튼 지정된 장소에 부지런히 가서 김교수님을 만나보고 또 한번 더 놀랐다.
김진 교수님은 1926년생으로 금년 84세의 파파 할아버지여야 할 터인데 우리네보다
확실히 젊어보이고, 머리카락도 나보다 더 검은 童顔의 중년신사를 보고 쇼크를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하나, 김교수께서 Yale Law School에 다닐때 얻은 따님의 이름을 "예일"로 지었다는
얘기를 학교 다닐 때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예일씨가 그 자리에 아버지와 함께
한 것이 아닌가?
"I heard of your name, Yale, 50 years ago." 어찌된 영문인지 한국어가 안통한다.
"Oh, Really? That's amazing, isn't it?"
책 한권을 사서 저자의 Sign을 받고 파안대소하며 옛얘기를 나누었다. 집에와서
책을 잠시 뒤적여보니, 김교수께서 생후 3개월 되었을 적에 어린 갖난 아기를
숙부댁에 맡겨두고 부모님들은 세계일주 여행에 올라 1년 9개월만에 귀국한 이야기.
그 여행중 Paris 에서 3.1 독립운동 33인중의 한분인 최린과 눈이 맞아 결국 이혼으로
까지 치달은 못말리는 신식 여성 나혜석의 시대를 뛰어넘는 튀는 행동.
남녀평등 (심지어 남녀의 정조관념에 이르기 까지)과 여권신장을 부르짖는 그 당시
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급진적인 이상주의자의 모습들....
김교수께서 4살 때 부모님들은 이혼을 하고, 어머니는 잠시 서울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등, 재기의 몸부림을 쳤으나 사회의 싸늘한 冷待를 이기지 못하고 산속으로
잠적, 잠시 一葉스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은 행려병자로 죽어 무덤 조차 없이
사라진 나혜석의 불행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특히 김교수께서 대전중학에
다닐 때 남루한 차림에 병색이 짙은 여자가 10여년만에 느닷없이 나타나 "내가 네
어미다" 하면서 눈물로 만난 10분간의 마지막 모자상봉 이야기....
자기가 나혜석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일생을 산 것은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한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응어리 때문이었으나, 이제 80을 훨씬 지난 나이탓에
다 털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파란만장한 家族史를 알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출판사: 해누리기획. 책값: 10,000원
저자: 김진, 이연택
사진 설명: 위 책표지
아래 김진 교수님 그리고 따님 예일씨와 함께
첫댓글 진짜 80 노인 같이 안 보이네.Palo Alto에 사는 모양이지?
김진교수님은 아직도 San Diego에 사시는데 口術한 이야기를 글로 쓴 共著者가 이곳 북가주에 살아서 북가주 한국文人들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한 모양일세나. 인생살이에 中庸之道가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됬구만.... 너무 앞서가도 너무 뒤쳐져도 안되지. 좌우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나는 일편단심 우향우입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