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정관에 ‘사역자는 자비량으로 한다’고 정했습니다. 해서 매일 새벽 우유와 녹즙배달을 합니다. 새벽기도는 배달을 하는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하고요. 교회가 성장해 자립할 수 있다고 해도 저는 계속 일할 겁니다.”
지난 2009년 일산 무지개교회를 개척, 자비량 목회 중인 박성진 목사의 말이다.
▲교회2.0목회자운동은 '목사도 직업을 가질 수 있나'라는 주제로 정기포럼을 열었다. ⓒ뉴스미션
목사의 직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 필요
교회2.0목회자운동은 17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목사도 직업을 가질 수 있나’라는 주제로 정기포럼을 열었다.
바울은 세 차례에 걸쳐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텐트 만드는 일을 꾸준히 했다. ‘자비량 목회’의 모델인 셈이다. 하지만 바울의 이런 삶이 한국교회에서 ‘직업 있는 목사’ 개념으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목사가 직업을 가져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의 몰이해와 편견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이 제시됐다.
직장사역연구소 방선기 목사는 오랫동안 직장선교사역을 하다가 목사가 됐지만, 성경적으로 목사도 충분히 직업을 가지고 사역하는 것이 가능하고 권장할만한 일임을 역설했다.
방 목사는 “한국에서 목사가 되기로 결정하는 순간, 누구든 세상에서 하던 일은 다 포기한다. 목회에 전념하기 위해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며 “그런데 그런 결단을하고 목사가 됐는데 목회지가 없을 때가 있고, 목회지가 있더라도 경제적 필요를 채우지 못할 때 충분히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에는 시골에 작은 교회 목회자에게 사례를 충분히 줄 수 없을 때 자비량 목회를 한다” 면서 “이런 목회자들의 연합모임도 있다”고 소개했다.
“육체노동 목회자, 이중의 고통 겪고 있어”
하지만 한국교회에서는 교수나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종의 자비량 목회는 받아들이면서 다른 직종의 직업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이 존재하고 있음을 방 목사는 안타깝게 여겼다.
방 목사는 “아이러니칼하게도 화이트 칼라 직업을 가진 목회자들은 자비량 목회를 인정 받고 있다”며 “하지만 여전히 육체노동을 하는 목회자 분들은 목회자로서 일한다는 자책감에다가 그 일자체가 사회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이유까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성경적 직업관을 갖는다면 바울이 텐트를 만들든지, 노예가 온갖 노동을 하든지 주의 일이 될 수 있다”며 “자비량 목회는 성경적으로 근거가 있으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성경적인 직업관을 갖지 못했기 생기는 오해”라고 말했다.
“교회 자립하고 성도 늘어도 일은 할 겁니다”
이날 포럼에는 목회를 하면서 직업도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개척한 지 4년차 되는 새들녘교회 박태순 목사는 평일 밤 세차를 하고, 주일에는 목회를 한다.
무지개교회 박성진 목사는 이른 새벽 배달을 한다. 목회자가 재정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일과 목회를 겸하기로 결심했다.
박태순 목사는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매일 60대 정도 세차를 한다”며 “일을 하면서 직장인으로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겸손을 배운다. 일터에서는 목사도 한 명의 일꾼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성진 목사도 “목사가 직업인가, 직분인가라는 고민끝에 ‘직분’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성도들처럼 일을 하기로 했다”며 “배달 일을 하면서 목사라고 밝히는 것이 굳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밝히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알려지더라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양심껏 성실히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포럼 중에는 최근 목회자 수급 불균형 등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젊은 목회자 중에 이렇듯 직업과 목회를 병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이에 대한 신학적 논의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방선기 목사는 “현실적으로 자비량 목회자들이 존재하는데 이에 대한 신학적 정리는 아직 없다”며 “목회자 배출은 많고 목회지는 줄어들고 있는데, 자비량 목사가 많아진다면 바람직한 교회 방향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