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규는 올해 4살입니다.
의성제일교회에서 부목사로 시무하시는 정재훈 목사님의 두 아들 중 막내입니다.
가끔 목사님 댁에 가서 하루 이틀 머물며 속내를 털어놓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서로 나누는 것이 좋아서 목사님 가정을 방문하는데 이따금씩 동준이(큰아들), 동규에게 초콜릿들을 가져다줍니다.
하루는 정목사님께서 동규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답니다.
“동규야, 선교사님은 뭐하는 분이지?”
동규의 대답이 정말 놀라웠고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답니다.
“응, 뚀꼴렛(초콜릿) 주는 사람…”
기쁨이는 올해 여섯 살의 아주 똑똑하고 씩씩한 아이입니다.
저희들이 자주 가서 쉬기도 하고 또 맛있고 건강에 유익한 청국장 보리밥(정말 맛이 일품입니다)을 먹기도 하는 대구 근교의 가창 오동식당(기쁨이네/ 다음카페→“오동기쁨이네”)을 운영하는 아빠 엄마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아이입니다.
기쁨이는 특히 제 아내를 좋아해서 다른 손님들과는 달리 저희 부부만 가면 함께 그림도 그리고 축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치고 또 숨바꼭질도 하자며 놓아주려고 하질 않습니다.
더군다나 제 아내를 “누나”라고 부르고 아빠보다 나아가 많은 저를 “자형”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바빠서 못가면 저희집으로 부리나케 전화를 합니다.
“누나! 언제 와??”
“자형! 왜 안 와? 와서 놀자!!”
그저께 기쁨이 엄마가 기쁨이에게 물었습니다.
“기쁨아, 선교사님은 뭐하시는 분이시니?”
기쁨이가 뭐라고 대답했겠습니까?
저는 외국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친다거나 외국에 가서 교회 다닌다거나 하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선교사님은 놀아주는 사람!!”
기쁨이 엄마도, 제 아내도, 저도, 그리고 함께 갔던 제 아내의 친구들인 표상진 선교사(OM, 둘로스 사역 마치고 귀국)와 김선경 자매도 배를 움켜쥐고 웃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오늘…
문득 동규가, 기쁨이가 정의한 선교사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율치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눈에, 심령에 비친 선교사의 모습…
“뚀꼴렛(초콜릿) 주는 사람…”
“함께 놀아주는 사람…”
자기들에게 대하여 주는 대로 그 사람을 정의하는 아이들의 티 없이 맑고 고운 순수함, 청결함…
그리고 그 아이들이 정의한 선교사의 모습에 대하여 정말 섬뜩할 정도로 경각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며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에 따라 그 아이들의 사고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말입니다.
특히 가정에서 어린 자녀에게 부모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에 따라 그 아이들의 사고가 결정되고 의식이 변화되며 그 아이들의 가치관이, 인생관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늘 어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지도하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신명기)을 심령 깊이깊이 기억합니다.
자녀들을 먹여 살리고 학교에 보내 교육시키는 것보다 부모들이 자녀들 앞에서 경건한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학교의 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직업적으로)는 많아도 선생(먼저 본을 보이며 살아가는 것)은 드물다는 요즈음입니다.
아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선생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존경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 학생들을 올바른 인격체로 자라나게 하는 실로 위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영국에서 선교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필리핀이나 유럽의 사역현장에서, 실제적인 상황에서는 학문으로서의 선교학(Missiology)은 그리 필요치 않았습니다.
학문적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선교사, 목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실제의 삶의 현장이요 사역의 현장에서 도리어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봅니다.
제 경험으로는(1988년부터의 한국, 벨기에, 영국, 필리핀에서 선교사로서의 사역한) 정직한 사람,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헌신하고 섬기는 자세가 오직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제게 선교현장에서 가장 훌륭히 선교를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를 묻는다면 망설이거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분명히 말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특강 요청을 받아 학생들이나 청년들, 교인들 앞에서 말씀을 나눌 때 그렇게 말합니다.
“선교사는 선교 사역지의 이웃들과 함께 열심히 놀아주는 사람입니다.”
저는 선교사로서 특별히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필리핀이나 영국, 독일, 터키 등의 사역지에서 만나거나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그저 단지 한데 어우러져서 놀기도 하고 삶을 공유할 따름입니다.
필리핀에서는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시시덕거리며 놉니다.
때론 닭도 잡아먹고 오리도 잡아먹고 코코넛도 따먹으며 이따금 돼지 바비큐도 해 먹으며 여럿이 모여서 놉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삶을 즐깁니다.
필리핀 아이들과는 함께 장난치고 농담도 하고 춤도 추고 그들의 얘기 속에 뛰어들어 토론도 합니다.
사실 그들과 함께 성경책을 펼쳐두고 성경공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저의 필리핀 동역자인 Cao 목사나 다른 필리핀 목사, 장로, 지체들이 하고 저는 사람들과 놀다가 친해지면서 그들을 단지 교회로 데리고만 옵니다)
필리핀 사역을 한지도 벌써 13년째인데 지금까지 변함없이 계속 그들과 먹고 마시고 즐겁게 놀았을 따름입니다.
다만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모아다 주고 병든 자들에게 약을 갖다 주고 또 한국으로 데리고 와 치료하여 주고 빈곤한 이웃들을 구제하는 일은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놀고만 지냈는데 이상하게도 선교의 열매는 필리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더 풍성하게 맺히며 제가 섬기는 필리핀 교회는 몇 십 배로 성장하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저 논게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청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들을 거짓됨 없이 섬기며 놀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저를 그들이 마음을 열고 선교사로서가 아닌 자신들의 이웃이요 다정한 친구요 가족으로 받아주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선교지의 아이들이 저를 “띠또(삼촌) 크리스챤”이라고 부릅니다.
또 지체들은 “꾸야”라고 부릅니다.
형, 오빠라는 뜻입니다.
제 아내를 부를 때는 “띠따(고모, 이모, 숙모…)” 혹은 “아떼(누나, 언니)”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제가 사역하는 Bansud의 시장님도 저를 “꾸야”라고 부릅니다.
동역자인 Cao 목사님도, 그의 아내인 Lumen 사모님도 저를 형, 오빠라고 부릅니다.
저는 교회의 장로님들을 역시 “꾸야”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그들이 진심으로 가족으로 인정하는 자들이 자기들을 그렇게 부르게 허락합니다.
저희 선교센터를 관리하여 주시는 지체들은 저희 부부를 자기들의 자녀명단에 올려 두었고 저희들은 그분들을 “아마/Ama(아빠)”, “이나/Ina(엄마)”라고 부릅니다.
자화자찬 같지만 저는 꽤 성공한 선교사입니다(제 유럽 field인 영국 Bournemouth와 독일의 Aurich, Bickenbach, 또 터키의 Istanbul, Efes 등지에 있는 지체들, 이웃들 역시 저희 부부를 선교사가 아닌 자신들의 가족으로 먼저 받아줍니다. 참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는, 선교사는 가르치거나 지도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며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고통 받을 때 함께 고통 받으며 삶을 공유하는 자입니다.
초콜릿을 주고 또 함께 놀아주는 자입니다.
학문의 탁월성이나 세상의 그 어떤 뛰어나 보이는 조건(돈이나 기회들…)으로도 열 수 없는 심령의 문은 그들과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나누며 공유하는 자 앞에서 아름답게 열리게 됩니다.
동규와 기쁨이에게 배운 진리이며 지난 저의 사역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체득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나 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너희의 착한 행실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토록 하라!”
“빛을 비추어라. 등불을 켜서 높이 들어 산 위에 있는 동네까지도 환하게 비추이게 하라!”
첫댓글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곧잘 따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말이나 행동하나까지 매우 신중히 해야 합니다. 지금 내모습이 먼 훗날에 내 아이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