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자존심을 접고는..... 다시 일본 도쿄시간으로 바꾸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에피소드가 생각나니...... 금강산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하는데 북한이 서로 약속한 시간 보다 “반시간이나 늦게 시작” 을 하는지라.... 우리측
인사들이 매우 불편했다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상봉 행사 두세달 전 이었던가요?
북한이 광복 70주년인 2015년 8월 15일부터 우리 표준시를 사용하게 된다고 발표했습니다.
YTN 은 일본 아베 총리가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는데 (실제 성사되지는 않았음)
아마도 북일 정상회담으로 납북자 문제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사죄로 과거사와
배상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는....... 동경 135도인 일본 도쿄시간을 버리고 동경
127.5 도인 평양(서울) 시간을 채택해서 “친일잔재 청산을 완료” 하고 싶었던 모양 입니다?
우리나라는 해의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정오” 가 12시가 아니라 “12시 반” 인 것은 우리 한반도 시간이
아니라 "동경 135도 일본 도쿄 시간" 을 빌려서 사용하기 때문 입니다. 조선말에 도피했던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한 고종은...... 1897년 8월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9월 원구단을 세운후 10월 대한제국
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후... 그후에 시차를 정하면서 “동경 127.5도 한반도 서울” 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고종은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허무니.... 당시 독립협회 회장인 이완용은 그 자리에 독립문
을 세우고는 조선의 명필 답게 스스로 “독립문” 이라는 글씨를 써서 현판을 달았는데, 고종은
일본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1896년에 엄상궁의 가마 뒷자리에 끼여 타고 새벽에 경복궁을 탈출
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피했듯이 중국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한제국을 선포했던 것 입니다.
고종에게는 청나라에는 굴욕적인 사건으로 구원이 있었으니..... 1890년 신정 왕후 조대비가 죽자 청나라
황제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당신의 신하 조선의 왕 이희는 어머니 조씨가 서거했음을 공손히 알립니다.
저는 폐하 앞에 큰 걱정과 슬픔에 잠겨 무릎을 꿇습니다. 종은 폐하께서 자비롭게 배려해 주시기 청합니다.”
시진핑은 2017년에 베이징을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저런 연유로 인해 “한국은 과거에 중국의
일부” 였다고 말했던 것이지요? 중국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 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1592년에
7년간 연인원 25만에 달한 대군을 파병해서 조선을 구한 것을.... "항왜원조" 라고 부른데서 따왔습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서 병력을 동원해 조선을 구한(?) 원세개는 이 참에 조선이 중국의 속국임을
서양 외교관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고자 했으니....... 조문 사신이 오자 경기감영 까지 영접나간
고종은 2번 무릎을 꿇고 8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이궤팔고두례 二跪八叩頭禮 후에 꿇은채 황제
의 칙서를 받이 근정전으로 모셨으니..... 서양 외교관들에게는 체면을 구긴 것이라 분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청나라 황제는 “ 주변국 중에 이희만큼 충성스러운 신하가 없다” 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4년후
동학농민이 봉기하자 임진왜란, 임오군란, 갑신정변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청나라 군대를 청해
진압하려다가 청일전쟁 된서리를 맞았는데 고종은 칙서 7년 후에는 보란듯 대한제국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후 일본 식민지가 되면서 "조선 총독부가 도쿄 시간" 을 가져와 사용했으며 해방 후인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는 다시 "동경 127.5도 서울 시간" 을 기준으로 정하면서...... "일본과는
30분 시차" 가 나니 그만큼 시간이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1948년 되는 해를 버리고.....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해에서 시작하는 단기 4281년으로 바꾸기도 했지요?
이승만 대통령 당신은 독실한 기독교인 이면서도 예수님 오신 해 부터 시작하는 서기인 1948년
을 과감히 버리고 단군 기원을 따라 4281년을 택한 것인데... 이후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주한 미군사령관은 일본에 주둔중인 미군과의 작전 등에
시간이 달라 불편하다면서 한반도 기준 대신에 “일본 도쿄 시간” 을 사용할 것을 요청합니다.
박정희 정권 이야 군사 쿠데타로 집권 했으니 정통성에 문제 가 있는지라.... 미국의 지지가 간절히 필요한
때니 미군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 시간" 으로 변경하였지요? 이때 단기 4295년도 서기 1962년으로
바꾸는데, 공문서 언어도 한문에서 한글로, 행정 서식도 기존의 조선 총독부 양식을 한국식 으로 바꿉니다.
그런데 몇년 전에 북한이 한반도 평양(서울) 기준으로 시간을 변경했었는데,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일본
동경시간을 버리고 서울시간을 사용했더라면..... 하지만 그 북한도 3년만에 경제협력 욕심과 불편한
현실에 굴복해 다시 "일본시간" 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럼 언제쯤이면 시간 주권을 되찾을 날이 올려나!
런던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 차링크로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 그리니치역에 내려 항구에서
400년전 중국에 홍차 무역을 한 "커티샥호" 를 보고 공원을 지나 언덕을 올라 산 정상에 "그리니치
천문대"를 구경한 적이 있는데, 그 유명한 "날짜 변경선" 그러니까 자오선(표준시를 정하는데 경도
0도)을 본 기억이 나니... 세계의 시간이 런던에서 시작 된다는 뜻이니 대영제국의 영화의 한 흔적일른지?
대항해 시대를 지나면서 지구에 기준선을 긋는 문제가 대두되니 본초자오선의 결정인데.... 이 선은 지구
의 남극과 북극을 잇는 자오선 중에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었으니 유럽의 각 나라들은 자기네 국가를
지나는 기준자오선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자오선 중에 하나를 결정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각 국가마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으니 대부분은 자기나라를 지나는 자오선이 기준 자오선
으로 결정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지만 지구 위의 값(상대값, 절댓값)을
일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아조레스 제도, 로마, 런던, 코펜하겐, 예루살렘,
페테르스부르크, 피사, 파리, 필라델피아, 카디즈, 리스본, 나폴리, 리우데자네이루, 스톡홀름 등이라....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1884년 워싱턴에서 국제자오선회의 (International Meridian
Conference) 를 열었고 이때 출석한 25개국 중에 22개국이 영국 그리니치 왕립천문대를
지나는 선을 본초자오선으로 인정하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각 국가마다 다르게 설정된
기준자오선은 종말을 고하고 그리니치를 지나는 자오선이 기준자오선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때는 시간의 기준도 명확하지 않았는데, 지구의 기준선인 본초자오선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시간
의 기준도 정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으니 지구가 15°씩(360÷24) 돌아갈 때마다 1시간씩
변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기준(00시 00분 00초)을 어디다 정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으니
시간의 기준도 영국의 그리니치로 채택되고 경도 180° 지점에는 날짜변경선이 설정되었습니다.
런던에서 서쪽으로 12시간이면 서반구이고, 동쪽으로 12시간이면 동반구로서 서로 마주치는
곳은 태평양 바다의 한가운데가 되니 여기가 국제날짜변경선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상
에서 하루가 가장 먼저 시작하는 곳이 뉴질랜드를 비롯한 태평양 상의 조그마한 섬들로
1925년 초에 “하루의 시작을 정오(正午)” 에서 지금과 같이 “자정(子正)” 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시간을 계산하면.... 한국이 1월 1일 오전 9시라면 이때 동쪽의
LA는 12월 31일 오후 4시가 되고, 서쪽인 런던은 12월 31일 밤 0시(24시)가 되니
한국에서 1월 1일 오전 9시에 비행기를 타고 LA에 간다면 1월 1일 새벽 2시에
LA에 도착하므로...... 비행기 출발 시간이 되려면 아직 7시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반면에 같은 시각에 런던으로 출발했다면 1월 1일 오전 10시에 도착하였으므로 불과 1시간
만에 런던에 도착한 꼴이 되는데 이 계산은 각각의 비행시간이 10시간으로 동일하다는
가정을 전제하였으며....... 런던은 - 9시간의 시차가 있고 LA는 -17시간의 시차가 있는
것이며 또 10시간 걸려 뉴질랜드 웰링턴에 가면 +4시간 시차로 1월 1일 밤 11시기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