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문호병(雲門餬餠) ― 운문호떡 >
<벽암록(碧巖錄)> 제77칙에 나오는 말로서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와 어떤 무명승과의 이야기이다.
운문 선사는 중국 당 말에서 오대를 거쳐 북송 초까지 활약한 선승으로서,
광진 대사(匡眞大師)라고도 한다.
법명은 문언(文偃)이고, 운문종(雲門宗) 창시자이다.
그는 뛰어난 화두로 유명한데, 특히 ‘간시궐(乾屍厥) ― 마른 똥 막대기’라는 화두가 유명하다.
어느 스님이 운문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여하시불/如何是佛]?”라고 물었을 때,
운문 스님 답이 ‘간시궐[乾屍厥) 마른 똥 막대기]’이었다.
흔히 우리는 진리는 성스럽다고만 생각한 나머지 성스러운 커튼에 가려 진실을 제대로 못 볼 수가 있다.
‘무슨 똥 막대기 같은 소리인가!’
충격적인 이 말은 ‘진리는 성스럽고 고귀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을 열게 해주고, 깨달음을 얻게 해 주기 위한 화두였다.
“부처는 똥 막대기다. 그렇게 형편없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것도 부처다.
그러니 부처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나. 쇠막대기도, 금 막대기도 모두 똑같은 부처다.
그 공(空)한 바탕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온 세상이 부처다. 너도 부처고, 나도 부처다.
우리는 부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운문 선사는 그렇게 똥과 금의 경계를 지웠다.…
우리는 부처의 세계에 살면서도 자신의 지옥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 백성호
이처럼 운문 선사 어록의 특색은 상대방 질문의 포인트를 잡은 간단명료한 어구에 있다.
운문 선사는 어록을 남기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 스님이어서
그의 설법은 흘러가는 구름과 같이 막힘이 없었지만 누가 그것을 기록이라도 하면 반드시 야단을 쳤다.
헌데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 종이로 만든 옷을 입고 그 옷에 몰래 받아 적어 간수했기에 오늘에 전한다.
그래서 저서는 따로 없고 그의 말을 기록한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眞禪師廣錄)>이 전한다.
또 어떤 스님이 운문 문언 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부처님의 말도 조사의 말도 하도 들어서 싫증이 나는데,
부처와 조사의 말씀을 초월하는 말은 무엇입니까?[如何是超佛越祖之談]
그들을 뛰어넘는 말 한 마디를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이에 운문 선사가 답하기를, “호떡(餬餠)!”이라 했다.
자기 자신은 너덜너덜 누더기 걸친 남루한 거지꼴인 줄도 모르고
분별심을 일으켜 감히 부처와 조사를 능가하는 말을 해 달라는
그 호언장담하는 건방진 모습, 얄팍한 언어에 꺼들리고 분별심을 가진 승려,
그 입을 틀어막은 ‘호떡!’, 이 공안은 지극히 간단한 선문답이지만,
이에 대해 원오 극근(圜悟克勤, 1063~1135) 선사는 평했다.
“혀가 입천장에 딱 붙었다”라고 착어(着語)했다. 기막힌 공안에 기막힌 평이다.
한 입 가득히 호떡을 물고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부처나 조사의 경지를 초월하는 진정한 법문이 말로써 가능할 리도 없다.
언어로도 말할 수 없는(言詮不及)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경지이고, 바로 깨달음의 세계이며,
부처나 조사라는 망념을 초월한 경지이다. 그런데 함부로 언설을 늘어놓다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진 옷 틈, 벌어진 분별심 구멍[입]에다 호떡으로 틀어막았지만
호떡이 달라붙어있지 않으니 소용이 없다.
이 진의를 알아차리지 못한 천하 중들은 호떡을 붙이기에 정신없구나.
이 말은, 분별심을 호떡으로 틀어막았으나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현상에 집착해서 불법의 근본을 체득하지 못한 채 천하의 중들은 미망[착각]만 거듭하고 있구나, 이 말이다.
그래서 원오 선사는, “지금도 천하의 많은 수행자들이 착각하고 있다.
운문이 스님들을 위해 호떡으로 정법의 안목을 바꾼 방편법문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다.
헌데 부처와 조사에 분별심을 일으켜 구분 못하는 건방진 태도도 문제지만
부처와 조사에 구애 받는 것 역시 수행자로는 마땅치 않는 모습이다.
자기보다 앞선 사람들에게 얽매임이 있어서는 결코 그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다.
어떤 전통이나 권위에도 얽매이지 말고,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어야만
읽은 경문이나 들은 법문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래야만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 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살불살조(殺佛殺祖)] 했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만나는 것(우상)은 모두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친척을 만나면 부모⋅친척을 죽여라. 기존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해 부정하는 것이다.
‘우상’으로 떠받드는 부처와 조사, 무명(無明)이라는 이름의 아버지와
탐애(貪愛)의 상징인 어머니를 죽이라는 정신적 인격적 살인이다.
한마디로 ‘우상 타파’다.
이 같은 우상에 얽매이거나 진리라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즉, 기존 문화적 습관이나 전통에 갇혀 있는 자신을 뛰어넘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집단적, 개인적 우상들을 과감히 타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당시 당나라엔 안사(安史)의 난에 이어 지방권력이 강해졌고,
불교교단은 841∼847년 사이 ‘회창(會昌) 파불(破佛)’ 사건을 당하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사람들은 파불의 죄업을 참회할 수 있는 교리를 찾고자 노력했고,
이에 임제 선사는 오무간업(五無間業)과 해탈 문제를 해결하고자
살불살조라는 파격적인 법어를 설한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오무간업을 짓더라도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造五無間業 方得解脫)”라고 한 것은 이 같은 정치 사회적 상황에서나온 말이다.
※회창의 법란(會昌破佛, 845~ 847)---당의 무종(武宗) 이염(李炎)에 의한 법란.
회창(會昌) 원년으로부터 6년간(841∼847년)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먼저 무종 자신은 도교를 신봉했다.
내우외란에 시달리던 당 황제 무종은 유학자들의 권유로 불교를 탄압했다.
이때 불교는 패망의 위기를 맞을 정도로 폐허가 다 됐다.
당시 장안과 낙양에는 각각 4개 사찰만을, 각 주에는 1주에 1개 사찰만을 남기고 모조리 폐사시켰고,
경전들이 불살라지고 사원이 파괴되며 승니들이 거의 죽거나 환속됐다.
이후 교학은 쇠퇴하고 선종과 정토신앙이 주류를 이뤄나가게 되고,
더 은둔적이고 산중불교식으로 변모해 갔다.
※오무간업(五無間業)---오무간업이란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업,
즉, 오역죄(五逆罪)를 말하는 것으로 임제 스님은
“➀아비를 죽이고, ➁어미를 죽이며, ➂부처의 몸에 피를 흘리게 하고, ➃출가자의 화목을 깨뜨리고,
➄경전이나 불상을 불사르는 것을 무간지옥에 떨어질 다섯 가지 행위라고 했다.
이는 결국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뜻으로 살불살조의 의미와 서로 통한다.
옛 선사들 역시 인간의 욕망이 세상을 혼란시키고, 비참을 증폭시키는데,
언어가 그 첨병 역할을 한다고 역설한다.
선(禪)에서 언어의 이 같은 모순적 측면을 극단적으로 부각시켜 드러낸
언어 혐오증이 이른바 ‘불립문자(不立文字)’다.
선은 이런 우상들을 부셔버리라고 외친다. 이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있으면
냉철한 실제와 만날 수 없고 열반의 경지에 끝내 도달하지 못한다.
「석가모니와 노자는 별 볼일 없는 마른 똥 막대기이고(釋迦老子是乾屎棍),
문수⋅보현보살은 변소 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文殊普賢是擔屎漢).
12분교(分敎) 교학은 귀신장부이고, 종기고름을 닦아내는 휴지일 뿐이다.
(十二分敎是點鬼簿 拭瘡紙).」 이는 덕산 선감(德山宣鑑, 782~865) 선사가 한 말이다.
선문답에 ‘호떡’이라 답한 것은
부처나 조사의 이상적인 이미지나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질타하며,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아 자유인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수행자의 길이라는 말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