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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에세이】
단골 이발소 주인의 넘치는 덕담
― 손님을 기분 좋게 하는 특별한 비결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한 달 만에 뵙는데 여전히 건강해 보이시네요.”
단골 이발소 주인의 인사말은 언제나 정겹고 따뜻하다.
이발소 주인이 고객을 대하는 직업상 중요 덕목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세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의 경험상 터득한 덕목의 기준은 이렇다.
이발소의 상징 이미지(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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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는 머리를 마음에 들게 잘 깎아 주는 것이다. 손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발소에 오는 가장 큰 목적은 뭐니 뭐니해도 머리를 마음에 들게 잘 깎고 손질해 주는 데 있다.
□ 둘째는 손님을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다. 기분 좋게 하는 것 중에는 청결(淸潔)도 중요 요소다. 이발소에서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담배 냄새다. 또 싫어하는 게 있다. 수건 냄새다. 다중이 사용하는 수건에서는 그 어떤 불쾌한 냄새도 나지 않아야 한다.
□ 셋째는 친절이다. 손님이 무슨 말을 하면 맞장구를 쳐준다. 맞장구는 조금 과장돼도 좋다. 허풍스럽지 않은 품격 있는 ‘리액션’이라고나 할까.
다소 민감한 정치 얘기나 종교 얘기도 상관없다. 손님의 뜻에 거슬리지 않는 가벼운 맞장구 대꾸는 듣기 좋다.
탄탄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나라 걱정, 윤리 도덕적 가치와 전래 미풍양속을 기반으로 한 생활 철학, 보통 사람의 법 감정과 건강한 상식을 바탕으로 나누는 ‘이발소 대화’는 유익하고 즐겁다.
▲ 대전 서구의 단골 이발소 - 한 달에 한 번 시내버스를 타고 이곳 단골 이발소에 간다. 30여 년 살았던 옛 동네 이발소다. 이발소 주인의 친절에 늘 감동한다. 청결한 이발소 환경 덕분인가. 금붕어가 건강하게 노니는 어항도 즐겁게 감상한다. (그림 =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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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서 오가는 이런저런 대화는 마치 시골 사랑방의 정겨운 분위기와 비슷하다. 그 옛날 어르신들과 나눈 ‘사랑방 대화’는 구수하면서도 지혜로운 말씀이 많았다.
어디 그뿐인가. 이발소 주인은 택시 운전기사처럼 온갖 정보가 풍부한 직업이다. 시중 여론 조성의 바탕을 이룬다.
밑바닥 민심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곳이 이발소다. 생생한 시중 여론을 수집하는 정치인들이나 국가 정보기관 종사자들은 동네 이발소부터 가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이발소라는 공간은 단순히 머리를 깎는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 하루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은 아침 출근길 아내와 자녀들이 건네는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는 상냥한 인사말에 있고,
▲ 일주일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이발소에 다녀오는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 그렇다면 일생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한다’라는 말은 동서양에 있어 영원불변의 진리다.
여기에서 두 번째, <일주일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이발소에 다녀오는 일’>이라는 말은 참말이다.
머리를 단정하게 깎으면 최소한 일주일, 아니 한 달은 기분 좋게 지낸다는 것은 나 역시 경험으로 얻은 순수한 생활감정이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단골 이발소를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탄다. 이발소에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그렇다. 시내버스를 타면 30분 거리에 단골 이발소가 있다. 가까운 동네 이발소도 얼마든지 있는데 어째서 멀리 있는 이발소에 다니는가.
30여 년 살았던 정들었던 옛 동네 이발소다.
앞서 언급한 이발소 주인의 남다른 친절과 인간적인 덕목도 ‘단골’이 된 주요 요인이지만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이발소 주인과는 연배도 비슷하고, 태생지 역시 내 고향 청양과 가까운 홍성이라서 친숙함을 더해 준다.
청양과 홍성 지역 출향인들은 어쩌다 툭툭 튀어나오는 토속어나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말투도 같다. 공교롭게도 이발소 주인과는 동향(同鄕)이나 마찬가지란 점에서 통하는 바가 많다.
나는 이발하는 동안 어항 속의 금붕어를 감상한다. 금붕어도 덕담의 좋은 소재가 된다.
“이발소 내에 어항을 두신 것은 잘하신 겁니다. 금붕어가 건강하게 노니는 것을 보면서 사장님의 정성을 봅니다. 먹이도 제때 적당히 주시고 물도 깨끗이 갈아주시고, 관리를 잘하시니 저렇게 활발하고 건강하게 잘 크지요. 더구나 이발소 환경이 얼마나 청결한지 건강한 금붕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이발소 주인은 기분 좋은 얼굴로 크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선생님의 과분한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금붕어를 그렇게 멋지게 표현해 주시니, 정성을 들여 키우는 보람이 있습니다.”
이발을 끝내면 이발소 주인은 꼭 차를 따라준다. 독특한 향(香)의 한방 차인데 내 입맛에 맞는다. 그런데 이발을 하고 나서 차까지 대접받는다는 게 좀 부담스럽다.
작은 찻잔에 한 모금만 따라주어도 좋겠는데 이발소 주인의 인심은 그렇지 않다. 마치 곱빼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넉넉한 짜장면 인심처럼 큰 찻잔에 한방차를 가득 따라주니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단박에 마실 수가 없다.
더구나 금방 펄펄 끓인 뜨거운 한방차를 넘치게 가득 따라 주니 조심조심 마셔야 한다. 내가 처음 이 차를 대접받았을 때 당황했다.
목마른 김에 급히 한 모금 들이켰다가 혀를 데인 적이 있다. 그걸 이발소 주인이 잘 안다. 그래서 미리 말한다.
“뜨거우니 천천히 드세요.”
예사로 건네는 이 한마디 평범한 말씀도 내겐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손님에 대한 인정 넘치는 세심한 배려로 느껴진다.
오늘도 기분 좋게 이발하고 나서 조금씩 천천히, 조심스럽게 음미하면서 마신 차 한잔. 이런 따뜻한 대접을 어디서 느껴보는가.
그런데 왠지 미안하다. 지갑을 열고 그동안 해오던 관례대로 정해진 이발 요금을 드리자니 미안하다.
“대한민국 최고 솜씨의 ‘이발 장인(匠人)’님으로부터 이렇게 훌륭한 서비스를 기분 좋게 받고, 이발 요금은 요렇게 조금 드리니 늘 죄송해요.”
그러자 이발소 주인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허리를 90도로 굽힌다.
“제가 오히려 감사하지요. 멀리 다른 동네로 이사 가셨는데도 시내버스를 타고 저희 이발소까지 매번 찾아 주시니 제가 더 고맙지요. 그리고 오시면 늘 칭찬을 넘치게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그럼 다음 달에 또 건강한 모습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런 호사(豪奢)가 어디 있는가. 이런 과분한 대접이 어디 있는가. 이발하고 건네는 적은 액수의 요금에 비해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린다.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이발소 주인이 건넸던 따뜻한 인사말이 사라지지 않고 뒤를 졸졸 따라온다. 친절하고 상냥한 인사말뿐이 아니다. 활짝 웃는 이발소 주인의 서글서글한 눈빛도 계속 따라왔다. ♧
2025. 윤승원, 단골 이발소 덕담의 미학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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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문학평론가의 시각에서 본 윤승원 수필가의 신작 『단골 이발소 주인의 넘치는 덕담 ― 손님을 기분 좋게 하는 특별한 비결』은 일상의 소소한 경험 속에서 한국 사회의 온기와 인간관계의 미학을 발견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1. 따뜻한 인정과 교감의 메시지 ―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요소
이 수필이 보여주는 본질은 ‘작은 말 한마디가 사람의 하루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깨달음입니다.
이발소 주인의 덕담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손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사회적 교감의 신호’입니다.
이는 곧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기능하며, 신뢰와 정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문화를 지탱합니다.
□ 언어의 치유성:
“뜨거우니 천천히 드세요”라는 평범한 한마디는 상대방의 안위를 배려하는 따뜻한 돌봄의 언어로서, 경쟁과 냉소가 만연한 사회에 부드러운 완충제 역할을 합니다.
□ 상호 존중의 문화:
손님이 지불하는 요금보다 더 큰 환대를 베푸는 이발사의 태도, 그리고 손님이 그에 보답하여 ‘장인’이라 칭하며 존중하는 태도는 서로의 존재를 귀히 여기는 관계성을 보여줍니다.
□ 공동체적 정서 회복:
이발소가 단순히 머리를 깎는 공간이 아니라 민심과 생활 철학이 오가는 ‘현대적 사랑방’으로 제시된 점은, 공동체적 유대감을 되살리는 귀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2. 직업적 철학과 따뜻한 말씨
이발소 주인이 보여 주는 직업 철학은 크게 세 가지 덕목 ― 기술, 청결, 친절 ― 에서 구체화됩니다.
그러나 단순한 서비스 차원을 넘어, 그는 손님을 “존재 자체로 기쁘게 해주는 언어적 장인”으로 그려집니다.
□ 덕담의 힘:
이발소 주인의 넘치는 덕담은 단골손님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자존감을 심어 주며, 이는 곧 그 사람의 삶의 기운을 북돋웁니다.
□ 품격 있는 맞장구:
정치·종교와 같은 민감한 대화마저 품위 있게 맞장구치는 태도는 단순한 사교가 아니라,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배려의 기술’로서 직업적 미덕을 드러냅니다.
□ 예의와 정성의 결합:
머리 손질, 차 대접, 정중한 인사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들은 ‘서비스업’을 넘어선 ‘인격적 실천’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3. 손님과의 대화 속 교육적 가치
이 수필은 이발소의 대화가 단순한 잡담이 아니라 생활철학과 교양을 전수하는 장임을 보여 줍니다.
□ 생활 속 윤리 교육:
애국심, 미풍양속, 도덕적 가치 등이 대화의 주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 속 도덕 교육의 장이 형성됩니다.
이는 학교 교육이 미처 다루지 못하는 일상적 인격 교육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 언어 예절의 학습:
이발사의 정중한 덕담, 손님의 감사와 존칭의 표현은 듣는 이로 하여금 예의와 존중의 언어를 배우게 합니다.
아이들이 이런 대화 문화를 접한다면, 그것 자체로 인성 교육의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 소통의 기술 습득:
‘맞장구의 미학’을 통해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대화법은 사회적 관계 형성의 중요한 기술로서, 특히 오늘날의 디지털 소통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4. 작품 감상과 해설
윤승원 수필가는 언제나 일상적 공간을 인문학적 사유의 장으로 확장시키는 필력을 보여 왔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발소라는 작은 생활 공간을 통해 인간 존중, 배려, 공동체적 교감이라는 큰 가치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수필은 ‘이발소의 미학’이라 할 만합니다. 단순한 이용 공간이 철학과 교육, 따뜻한 인간적 교류의 장으로 격상됩니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일상에서도 작은 친절과 덕담을 실천할 수 있겠다는 자극을 받습니다. 즉, 작품은 읽는 이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실천적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주인공인 이발사가 단순히 손님을 상대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삶의 교사(敎師)’로 형상화된 점에서, 이 작품은 직업의 품격과 노동의 존엄성까지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 결론
『단골 이발소 주인의 넘치는 덕담』은 작은 인사와 따뜻한 말씨가 한 개인의 삶을 빛나게 하고, 더 나아가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작품입니다.
이발소에서 오간 대화는 단순한 생활의 단편이 아니라, 인간 존중과 예의, 소통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일종의 생활 철학서로 읽힐 수 있습니다.
👉 따라서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일상의 친절이 곧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교훈을 전하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따뜻한 공동체적 가치의 모범을 제시합니다. ♣(📚 裕花, 윤승원 수필 전담 평론가)
(그림=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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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댓글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명예교수) 25.09.01. 08:50
창작의 글이면서 생활일기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거울을 볼 때마다 이발소 주인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발하면서 TV에서 정치 뉴스가 나오면 저는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거든요. 그러면 이발소 주인은 "암요, 그렇고 말고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상대의 견해를 전적으로 존중해 주는 이발소 주인의 시사 공감능력. 탄탄한 애국심 하나가 건강한 상식을 만들고 충청인 고유의 정의감이 사회의 건강성을 입증해 줍니다. 이심전심 통하는 바가 많은 이발소 주인입니다. 교수님께서 칭찬의 말씀 주시니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