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국 지
삼국지를 다시 한 번 읽었다. 며칠에 걸쳐 집중도를 높여 이문열의 평역한 10권을 모두 읽었다. 과거에 읽었던 내용과 등장인물의 속성이 좀 더 심도 있게 다가왔다. 처음 삼국지를 읽은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인 1968년도이다. 당시 한권으로 된 아동용 삼국지를 밤새 읽으면서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부침에 인생무상을 느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후 몇 차례 삼국지를 읽은 기억이 있다. 학과공부에 지쳐 있을 때 삼국지를 읽으면서 수많은 인물 중에 자신의 역할과 견주어 보면서 무한한 꿈을 꾸기도 했다.
삼국지 내용 중에서도 유비와 관우, 장비가 어지러운 난세에 대의를 품고 도원결의를 맺어 한 세대를 풍미하는 내용이 가장 마음에 들어온다. 삼국지연의를 지은 나관중이 위, 오, 촉 중 촉에 중점을 둔 이유도 있지만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 나름대로 옳은 뜻을 품고 나라에는 충을, 부모에게는 효를, 형제간에는 우의를 내세운 면이 사뭇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무수한 등장인물 중에 꾀를 내는 책사들인 문인들과 창칼을 잘 쓰는 무인들의 빼어난 활약은 읽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성격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운명 지어지는 영웅들의 죽음을 보면서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 일깨워주는 바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도원결의의 맏형 유비는 한실종친인 유황숙으로 불리며 백성을 아끼는 마음으로 삼고초려를 통해 제갈공명을 얻어 촉을 열어 솥 발 같은 삼국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조조는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면서 적재적소에 인재를 기용하는 실용정신을 바탕으로 한을 폐하고 위를 세워 삼국통일의 초석을 마련하게 된다. 손권은 강동의 지리적인 이점과 위와 촉과의 줄타기 외교로 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도원결의 형제 중 관우가 지나친 자부심과 자만심으로 먼저 목숨을 잃고, 성정이 우락부락한 장비도 조급하게 굴다가 부하에게 허망하게 목이 잘리고, 유비도 지나친 복수심과 자만으로 목숨을 잃게 되니 모두 타고난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선주인 유비의 뒤를 이어 후주가 된 유선은 조운이 장판교 싸움에서 위 대군을 뚫고 구해온 아두(유선)로 유비가 오히려 장군을 잃을 뻔 했다며 던져버렸던 어린아이였다. 그 때 머리가 잘못되어서인지 선주의 유지를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오히려 환관 황호의 아첨과 향락에 빠져 나라를 통째로 위에 바쳐 항복하는 수모를 겪게 되어 무수한 호걸영웅들의 피땀이 물거품이 되는 한을 남기게 된다. 오나라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선대의 지략과 애국충절은 한낱 후손들의 난장판으로 막을 내려 인생무상을 느끼게 한다. 위나라도 결국 통일을 이루지만 못나고 힘없는 후손은 사마씨에게 통째로 나라를 넘겨줘야 하는 운명으로 전락해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삼국지는 한 편의 영화나 흘러간 역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이에게도 현재진행형임을 일깨워준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늘의 정한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는가 하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군주를 섬겨야하는 신하들과 백성들은 항상 어려움에 빠져 들고, 남의 힘없음에 힘으로 찬탈하면 오래지 않아 힘 있는 자에게 찬탈당하는 역사는 반복된다. 옳고 그름조차 없어 보인다. 유비가 선한지 조조가 악한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선악의 개념도 없다. 오히려 오늘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유약한 유비보다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사람을 뽑아 쓰는 간웅인 조조가 더 각광을 받는 시기가 되었다. 시대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역할과 평도 달라지는 것이다.
삼국지를 읽는 이들은 자기의 능력에 따라 좋아하는 등장인물들과 자신을 견주어 보게 된다. 나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는 도원결의를 높게 평가한다. 보통사람으로 태어나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복숭아나무 밭에서 “천지신명께 고하나니 한 날 한 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죽을 때는 같이 죽으며 대의를 위해 한목숨 바치겠습니다”는 도원결의를 통해 구름처럼 영웅들이 몰려들고 한 시대를 풍미하였으니 아무리 난세라 하지만 멋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또 조조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두꺼운 얼굴과 검은 마음을 감추면서도 영웅을 부리는 통솔력은 오늘을 사는 CEO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기도 한다.
삼국지는 그러나 아무리 역사라지만 너무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사람목숨이 마치 파리 목숨에 불과하다. 상대를 죽여야만 자신의 입지를 지킬 수 있는 먹고 먹히는 제로섬 관계이다. 명령에 의해 죽이든지 공명심에 의해 죽이든지 간에 너무 많은 민초들이 죽어 나간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판을 친다. 한 목숨 늘리기 위해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모두 대의를 위해 역적을 죽이는 명분을 내세운다. 누가 역적이고 누가 의로운지는 살아남은 자가 결정한다. 오늘날 정치나 경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오래 살아남느냐가 핵심이다. 사람도 구구팔팔이삼사로 건강하게 살고, 기업도 이익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 영웅호걸이나 이름 없는 민초나 모두 스러져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모질게 사람을 해치며 이득을 논하는 이들의 말로가 헛수고인 것을 어찌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아등바등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애쓰고 작은 권력마저도 완장을 차기위해 아부와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현실은 인간사회가 있는 한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역사의 교훈은 ‘뿌리면 뿌린 대로 거둔다’고 가르치지만 현실은 당장 손아귀에 움켜잡기 위해 피를 부르기도 한다. 이기적인 삶이 아닌 이타적인 삶을 모두가 추구하는 영원히 함께하는 시대를 갈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