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은 바람에도 유연하다
김옥전
거미줄은 엄마의 손금이다
파산한 아버지가 생명선을 지운 후
변두리로 이사한 엄마는 골목길의 거미가 되었다
낮에는 김치 다라를 이고 김치 팔러 가고
밤에는 먹자골목 곰탕집에서 설거지를 했다
밤과 낮을 분주히 돌면서 돈을 벌었다
줄어 든 수면만큼 길어진 시간은
직선의 축이 되고 곡선의 실이 되어
새로운 운명선을 손바닥에 새겼다
아침이 되어 화장실에 가면
거미는 밤새 실을 뽑아 집을 지어 놓았다
나는 그것을 걷어내며 엄마를 불렀지만
엄마는 언제 들어왔다가 언제 나갔는지
방 안에는 밥상만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나는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냉큼냉큼 받아먹는 철없는 새끼거미
밥상 위의 밥들을 먹어치우며 허공의 꿈을 키웠다
걷어내면 다시 생기는 거미줄의 역사
아버지가 남긴 가난은 메워도 메워지지 않았고
점점 커지던 구멍은 마침내 블랙홀이 되었다
거미줄의 조건은 허공
허공일수록 거미는 집을 잘 짓는다
깨진 유리컵에 손바닥이 찢어진 엄마는
반창고를 상처에 붙이며 끊어진 손금을 이었다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가난처럼
엄마의 희망은 걷어 내도 걷어 내도 걷히지 않았고 마침내
바람에도 유연하게 흔들리는 거미집을 만들었다
손바닥에 박힌 상처가 견고하고 깊은 재물선이 되었는지
잔주름 가득한 엄마의 인생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다
23년 《고양작가회의》 17호
첫댓글 견고한 거미줄의 동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
배부른 거미는 집을 짓지 않아도 될까?
지어야 겠지요 .. 곧 배고플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