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년 6월 15일 〈마그나 가르타〉가 제정되었다. 흔히 대헌장大憲章으로 번역되는 Magna Carta는 역사에 남을 대단한Magna 법률Carta 정도의 뜻이다. 그렇게 평가를 받는 이유는 마그나 가르타가 귀족들의 봉건적 권리를 지키는 내용으로만 채워진 것이 아니라 “자유인은 누구나 자신과 동일 신분자의 합법적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금‧부동산 점유를 당하지 않으며, 추방 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침해받지 않는다” 같은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왕은 존이었다. 그는 〈마그나 가르타〉에 서명을 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와 싸워 국토의 절반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거두려다가 귀족들의 봉기를 맞아 자칫하다가는 처형될 위기에 몰린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했다. 이로부터 영국 입헌 정치의 초석이 다져졌다.
우리나라의 6월 15일에도 뜻 깊은 역사가 서려 있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2003년 6월 15일 세상을 떠난 미국 작가 험 크로닌은 배우이기도 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중에 〈의혹의 그림자〉가 있다. 찰리는 평온하게 살아가는 어떤 집안의 장녀인데, 요즘 몹시 지겹다. 너무나 평화로워 따분할 지경이다. 뭔가 흥미로운 일이 불쑥 생기기를 잔뜩 바라고 있다. 그래서 궁리한 것이 자신과 이름이 같은 삼촌의 출현이다. 그런 일이 생기면 썩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러는 중 어느 날, 외삼촌 찰리가 정말 나타난다. 놀라운 것은 외삼촌이 연쇄 살인 사건의 두 용의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다. 〈마그나 가르타〉도 ‘6‧15 남북 공동선언’도 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인간행동인데, 이쯤 되면 영화 속 두 찰리가 다 함께 잘 살아가기는 글렀다.
실제로도 영화가 끝날 때가 되면 서사는 그렇게 진행된다. 또 다른 용의자가 도주 중 사망하자 형사 잭 일행은 외삼촌 찰리에 대한 의심을 걷고 사라진다. 그런데도 외삼촌 찰리는 조카 찰리를 살해하려다가 실수로 본인이 죽는다. 인간 내면에서 충돌하고 있는 선과 악의 대립을 영화는 이어지는 긴장감 속에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에 견주면, 1940년 6월 15일 출생한 최불암의 기나 긴 연속극 〈전원 일기〉는 전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겨운 삶을 참으로 은은하게 보여주었다. 〈전원 일기〉는 1980년 10월 21일부터 2002년 12월 29일까지 MBC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1088회나 이어졌다.
오늘날 ‘6‧15 남북 공동선언’ 때와 같은 설렘과 평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바라는 바는 금수강산 삼천리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의혹의 그림자’ 없이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전원 일기’를 쓰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