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으로 딸 잃은 뒤 필리핀 며느리들 딸로 삼아 한국말과 음식 가르쳐주며 친정 부모 노릇 '톡톡히' 보살핌 주고 받으며 사랑으로 뭉친 가족 행복 가득
▲ "모두가 서로에게 사랑이에요." 필리핀 딸 아홉 명을 얻은 김수용 백웅남씨 부부가 딸과 손자들 사이에서 미소짓고 있다. 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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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의 한 국수집. 한국어교실 수업을 막 끝낸 필리핀 여성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백웅남(수산나, 53)씨가 뒤따라 들어온 아이들 신발을 벗겨주자,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하라버지~"하며 김수용(바오로, 60)씨 품에 덥석 안긴다.
"심 서방 몸은 좀 어때?" "괜찮아, 3월부터 다시 일해."
딸들(필리핀 여성들)의 안부를 묻는 백씨 표정이 친정 어머니같다. 서로 언니 동생하는 딸들은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다.
"아휴, 이렇게 모이면 정신이 없어요."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김씨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딸들이 다 온건지 모르겠다"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종이에 딸들 이름이 빼곡히 적혔다. 호세피나(46)ㆍ이사벨(45)ㆍ펠리사(42)ㆍ줄리(41)ㆍ리사(41)ㆍ페비(39)ㆍ이일린(29)ㆍ마우린(27)ㆍ미셸(26). 자그마치 아홉 명이다.
다섯째 딸 페비의 생일이다.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이자 손자ㆍ손녀들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초콜릿을 찍어 먹느라 난리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다.
#하나를 잃고 아홉을 얻다
"너희들을 수양딸로 삼고 싶은데, 어떠니?"
지난해 11월. 양구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씨 부부는 춘천교구 양구본당 미사에 참례하는 필리핀 여성들에게 물었다. 한국인 남편에게 시집 와 5~10년째 필리핀 며느리로 살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 해 7월 김씨 부부는 청천벽력같은 일을 당했다. 갓 결혼한 딸이 뇌종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매일 밤 눈물로 슬픔을 달래던 부부는 타국에서 친부모 없이 생활하는 이주 여성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다. 갓 결혼한 딸의 죽음이 다른 딸들의 고통을 돌아보게 한 것이다.
본당 정원일 주임신부는 이들 부부의 뜻을 필리핀 여성들 가정에 알렸고, 정 신부는 새 가족이 탄생하는 조촐한 결연식을 마련해줬다.
김씨는 처음 수양딸로 4명을 맞았지만 지금은 9명으로 늘었다. 가족들끼리 모일 때마다 "나도 딸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얼굴을 비추면서다.
#"엄마, 나 아파요…"
갑작스레 대가족을 이룬 김씨 부부는 요즘 부쩍 바빠졌다. 과수원 일도 일이지만 딸들에게 관심갖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전화벨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린다.
"아부지, 뭐해? 떡국 많이 먹었나?"
존칭어 사용이 서툰 딸들 전화에 김씨 부부는 배꼽을 잡는다. 한참을 웃다보면 딸 잃은 슬픔은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다. 부부는 "우리가 이들을 보살펴주려 딸로 삼았는데, 오히려 우리가 보살핌을 받네"하며 서로 미소짓는다.
김씨는 주일마다 운전기사가 된다. 딸들이 성당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 아침 일찍 차를 몰고 딸과 사위들을 태워 성당으로 온다. 성당에만 가면 "어쩜 이렇게 보기 좋으냐"며 다들 한마디씩 거든다. 이들에게 밥 한끼 대접하겠다고 약속한 이도 있다.
평소 딸들은 친정집에 올 때 항상 맛있는 음식을 들고온다. 친정 어머니와 함께 시댁이야기를 나누며 모녀지간의 정을 나눈다. 딸들은 친정 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우며 시어머니와 남편 사이에서 느끼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말고, 아프면 꼭 전화해."
딸들은 어머니의 이 말에 늘 가슴이 뭉클해진다. 속상했던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맏딸 호세피나씨는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데 부모님이 함께 병원에 가 주셔서 참 좋았다"고 말한다. 페비씨는 "지난번 아팠을 때 어머니가 큰 냄비에 호박죽을 끓여와 엄청 많이 울었다"며 울먹인다.
#가족, 또 하나의 가족
이 대가족은 주위에 소문이 나면서 꽤나 유명해졌다. 길을 가다가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이들이 있으면 김씨는 먼저 말을 건넨다.
"우리 딸들이에요. 참 많죠? 허허."
2001년 해병대 원사로 전역한 뒤 사과와 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하는 김씨. 이들 부부는 딸 잃은 슬픔을 달래며 살았지만 이제는 새 딸들과 새 삶을 산다.
"친딸 같아요. 사위들이 속썩이면 마음 아픈 것도 똑같고…."(어머니) "하느님이 주신 딸들이에요. 딸 하나를 데려가시더니, 딸 아홉을 거저 주셨어요."(아버지)
아버지 김씨는 "손자ㆍ손녀들 유치원가는 것까지 신경쓰다보면 슬퍼할 겨를이 없다"며 흐뭇해했다.
취재를 거절해온 김씨는 "우리 딸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주 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켜야 겠다"며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딸들의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닌다.
"기사를 본 독자들만이라도 이주 여성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필리핀 며느리들에게 친정 집이 하나씩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날 국수와 비빔밥을 맛있게 먹은 이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어깨를 포개고 섰다.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하는 양부모님 집은 어느덧 필리핀 딸들의 고향이 됐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해요"라고 외치는 필리핀 며느리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더 이상 그늘은 보이지 않는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 김수용 백웅남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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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손녀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 양어머니 백웅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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