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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에스겔에 환상 중에 본 새 예루살렘
설교본문 : 에스겔 42:1~43:12(참고 40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16년 4월 24일
에스겔 40~43장은 구약의 말씀이라기보다 신약의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가깝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성전의 시설물에 대한 측량을 전하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하고자 하는 말씀을 다른 사람은 잘 알지 못하게 암호와 같은 방식으로 증거하는 것을 ‘묵시문학’이라고 합니다.
묵시문학적 방법으로 기록된 모든 말씀들이 그러하듯 이 말씀도 그 당시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암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로 돌아가서 그들의 마음으로 이 말씀을 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이해하기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어렵다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때보다 감동적이라는 느낌이 조금 덜 하더라도 이 말씀을 주목해서 읽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에스겔 40~43장을 읽는 법
1) 성전의 바깥담 안에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에스겔 40~43장에서 에스겔이 본 환상 가운데 가장 바깥담 안에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구원받은 백성들입니다. 이 말씀에서 나열된 성전의 시설물들은 단순한 건물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여러 시설물들을 통해 구원 받을 백성들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2) 성전 안에 방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귀하게 여김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방의 성격이 무엇인지,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는지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방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 특별한 취급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을 때 어떤 방들이 있는지를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3)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성소입니다.
에스겔에 본 환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전의 가장 내전인 지성소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 바로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시설물이 지성소와 얼마나 가까운가, 또는 지성소와 어떻게 연결되었나 하는 것으로 그 방의 주인과 하나님이 어떤 관계인지를 이해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성소와 얼마나 가까운지, 지성소와의 연결구조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어떻게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1.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환상
1)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새 예루살렘 성전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온 지 25년, 예루살렘성이 함락된 지 14년이 된 주전 573년 1월 10일에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하셔서 그를 환상 중에 이스라엘 땅의 지극히 높은 산으로 인도하십니다. 거기에서 에스겔은 성읍 형상을 봅니다. 에스겔이 이때 본 성읍은 멸망한 예루살렘성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예수께서 심판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새로 회복시키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2) 왕실 잣대로 측량함(40:5) :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준대로 살아라
에스겔은 놋쇠 같이 빛난 이가 삼줄과 측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성전 곳곳을 측량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측량하는 자가 일반인과 다릅니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자의 1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까지로 45.6cm인데, 여기에서는 팔꿈치에서 손가락까지의 길이에서 손바닥 하나를 더한 것을 한 규빗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왕실에서 사용하는 자로 일반인의 1규빗에 손바닥 하나의 길이가 더해진 53.2cm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일반인의 잣대로 측량하여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 에스겔에게 보여주시는 새 예루살렘 성전은 왕실 잣대로 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켜보실 때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기준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이시는 기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성전을 측량하는 이 : 모양이 놋쇠처럼 빛나는 이(40:3)
에스겔이 보니 성전을 측량하시는 이의 모습이 마치 ‘잘 닦아 놓은 놋쇠처럼 빛나는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모양이 놋쇠처럼 빛나는 이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15을 보면 요한 역시 예수님을 빛난 주석 같은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환상 가운데 보이신 새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실 이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세워질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영원한 그의 백성들입니다.
4) 두께와 높이가 한 장대인 담(40:5) : 세상과 분리된 교회
구약의 성전은 이방인의 뜰이 성전 담 바깥에 있었는데, 에스겔이 본 새 성전에는 바깥뜰이 담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깥뜰 밖에 있는 담의 두께가 무려 한 장대(3.2미터)나 됩니다. 담의 두께가 이렇게 두꺼운 것은 교회와 세상이 분리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담 안에 있는 그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습니다.
5) 세 문이 열리면 중앙에 있는 제단을 볼 수 있는 구조 : 이방인들이 천국 백성들이 됨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구조는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합니다만, 간단히 요약하면 뜰 중앙에 제단이 있고, 그 제단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과 동쪽에 각각 문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세 문이 열리면 바깥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제단에서 거행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바깥뜰은 이방인들의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제단과 이방인들의 처소 사이를 막고 있는 그 문이 열리면 이방인들도 제단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두 폭으로 찢어진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제단이시며 우리의 제물이 되셔서 이 문들이 모두 열렸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인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6) 바깥으로 닫힌 창(40:16)
에스겔이 본 새 성전의 모습 중에 가장 이상한 것이 곳곳에 있는 창의 모습입니다. 이 창들은 모두 바깥으로 닫힌 창인데, 안쪽으로 올수록 넓고 바깥으로 갈수록 좁은 형태의 창입니다. 그래서 맨 바깥에는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좁은 형태의 창이라 본문에서는 닫힌 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창의 특징은 안쪽으로는 열려 있고 바깥으로는 닫혀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의 가장 중앙에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는 열려 있고, 우리를 유혹하려는 세상을 향하여는 닫혀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바깥으로 닫힌 창은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 묵상 :
세상과 분리된 교회, 세상으로 닫힌 창을 보고 무엇을 느낍니까? 나는 혹시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하나님께 닫힌 창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예배에만 참석했지 마음은 세상으로 향해 있는 것은 아닌지 각자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1) 문지기들의 방(40:7) :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라
문지기들이 방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봉사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방입니다. 그런데 이 문지기의 방이 사방 한 장대(3.2미터)의 방이면 약 3평 남짓한 방으로 그리 크지 않은 방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큰 방을 찾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것을 뜻합니다. 작은 방에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는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교회 사찰집사님이나 청소하시는 분들 중에 마음의 고통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분들에게는 교인들이 전부 시어머니입니다. 교인들이 예배드리러 올라가면서 여기도 청소해라, 여기는 왜 그냥 놔 두었냐 하니 교인들이 전부 사장님이고 시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랍게도 천국에는 그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며 고상한 척 예배에 들어간 자들의 자리는 없고, 그들에게 마음 상하며 교회 고치고 청소한 사찰집사님과 청소하신 분들의 방은 있다는 것입니다. 문지기의 방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2) 노래하는 자들의 방과 제사장들의 방(40:44, 46)
한글 개역성경에는 44절에 ‘노래하는 자들의 방’이 없지만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래하는 자들의 방과 46절의 제사장의 방이 같은 곳에 위치합니다. 그러므로 후대의 사람들이 어디 감히 노래하는 자들이 제사장들의 방에 함께 있나 싶은 생각에 44절에서 노래하는 자들이란 말을 빼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의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말씀하는 것이니, 이 말씀을 우리들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지기들의 방은 바깥뜰 쪽에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노래하는 자들의 방과 제사장들의 방은 뜰 안쪽인 성전 중심부에 함께 위치하고 있습니다. 노래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입니다. 제사장들의 방이 성전 중심부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겠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의 방이 제사장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예수님의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을 이처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 묵상 : 찬양할 때 온 몸과 마음을 다해 하십시오.
찬양은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찬양을 부르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한 찬양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찬양을 드리십시오. 그 찬양에 내 믿음을 담아 드리십시오. 주께서 이런 자를 기뻐하십니다.
3) 길이와 너비가 모두 같은 작은 방(40:7)
문지기들의 방이나 노래하는 자들의 방이나 제사장들의 방은 각각 그 방들의 길이와 너비가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들 사이의 균형을 뜻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만 주목해야지, 세상 것을 움켜쥐려는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 것을 더 움켜쥐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일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 묵상 :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목회자들의 삶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현실은 본문의 말씀과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목사님들 간의 삶의 차이가 너무나도 큽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르니 가난한 목회자들이 때로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약한 중에 열심히 섬기는 자들을 주께서 기뻐하시니 세상 것에 시험 들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3. 에스겔 40~43장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
1) 삼줄과 측량하는 자(40:3) : 성경말씀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놋쇠 같이 빛나는 이가 측량한 ‘삼줄과 측량하는 자’입니다. 그가 삼줄과 측량하는 자로 새 성전의 모든 것을 측량하셨습니다. 삼줄과 측량하는 자는 주께서 심판하시는 심판의 기준을 뜻합니다. 무엇으로 심판하십니까? 바로 우리에게 주신 이 성경말씀으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일곱 개, 여덟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40:22, 31) : 믿음이 자라가야
각 문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단까지 가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우리의 마음이 위로 올라가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요한계시록 4:1). 그런데 그 계단이 일곱 개나 여덟 개라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단계적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함에 이르도록 한 계단 한 계단 자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묵상 : 말씀으로 자라가는 믿음
이 두 가지를 합하면 항상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자라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에서 가장 정결한 짐승을 소로 여긴 것은, 소가 항상 우물우물하며 되새김질을 하기 때문입니다.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항상 말씀을 묵상하여 날마다 믿음이 자라가는 자가 되십시오.
4. 새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가심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안에 들어왔습니다. 이로써 이 성전은 이 땅의 성전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보좌를 말씀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예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 예루살렘을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돌아옴(43:1)
에스겔에게 성전의 모든 것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이제 그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동쪽 문을 통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전에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의 동쪽 문을 통하여 떠나 간 것(에스겔 10:4, 18~19, 11:22~25)의 반대로 진행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43:2, 5)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성전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모세가 성막을 만들었을 때에도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고(출애굽기 40:34~35),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을 때에도 그러했습니다(열왕기상 8:11). 그러나 모세의 때와 솔로문의 때는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으로 나타나 성전 안이 캄캄해져서 앞을 볼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아주 찬란한 광채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전 안에 여호와의 영광으로 인하여 빛이 났습니다.
5. 내가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리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는 것은 이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려면 하직 한 가지가 더 남았습니다.
1)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을 멀리하여라(43:8~9)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자리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려면,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을 멀리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의 신전을 바로 곁에 두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동시에 우상을 음란하게 섬기는 신앙적인 혼합주의를 행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죽은 왕들의 기념비를 세워 그것을 우상처럼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 느무갓네살에게 맡겨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리에 다시 이전처럼 여호와의 영광이 들어오게 하려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시기는 것을 먼저 제거하여 멀리 떠나보내고,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2)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을 알려라(43:10~13)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가 본 성전 환상에 대한 것을 설명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본 성전의 구조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이 설명을 들으면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한 죄를 지었는지를 깨닫고 스스로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면 그 후에 이 성전의 구조에 담긴 모든 법도와 율례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글로 써서 알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하면 하나님을 알게 되리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채로 하나님께 가까이하면 도리어 하나님의 저주를 더욱 받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의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의 깊은 곳에 들어가니 더욱 교만해져서 예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가룟 유다 역시 자기의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수님 곁에 있으니 예수님과 더욱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3) 이는 내 보좌의 처소요 내 발을 두는 처소요(43:7)
그러나 자기의 죄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들이 그 죄를 자기에게서 멀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예배를 드리면, 그 예배의 자리가 하나님의 보좌요, 하나님께서 그 발을 그곳에 두시는 처소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 묵상 : 회개의 첫 걸음은 자기의 죄를 부끄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회개의 첫 걸음은 자신의 죄를 부끄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4). 자기의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그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천국의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니 자기의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그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자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6. 신령한 직분
1) 특별히 귀하게 여김받는 제사장들
제사장이 성전에서 예식을 행한 후에 밖으로 나올 때에는, 그 예복을 입고 나오지 말고 반드시 그 거룩한 방에 예복을 벗어두고 일반 다른 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나와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 특히 다른 사람의 예배를 돕는 예배와 관련된 직분을 가진 자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귀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2) 여기에서 제사장은 예배를 위한 직분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이 말씀이 예루살렘 성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제사장도 구약의 제사장이 아닙니다. 신약의 백성들인 우리들입니다. 우리들 중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참여하는 예배 위원들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제사장들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의 직책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참여하는 직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예배 위원의 자리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많은 경우에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은 귀하게 여기지만, 예배 인도자나 성서 낭독자나 헌금위원이나 안내자, 성가대, 반주자 같은 예배 위원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목사, 장로, 권사와 같은 직분보다 다른 사람의 예배를 돕는 위원들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런 자들의 방이 이 말씀에서 가장 귀하게 취급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6. 거룩한 담 : 구별된 삶
3. 거룩한 담 : 구별된 삶(42:15~20)
그 다음에 빛난 놋쇠 같은 이가 에스겔을 데리고 바깥 동문으로 나와서 사면의 담을 측량하였더니 담이 가로 세로가 모두 500자(262.5미터)로 정사각형이었습니다. 그는 에스겔이게 이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해줍니다.
1)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구약의 방식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구약의 방식은 다분히 교육적이고 예방적입니다. 가령 항상 되새김질을 하는 소를 보고 항상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고, 두 종류 이상의 것으로 혼방을 한 옷을 입지 말라고 한 것이나, 한 밭에 두 종류 이상의 씨를 섞어서 뿌리지 말라고 한 것은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예방적 차원의 경고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먹는 것과 입는 것과 관련된 율법이 많았습니다.
2)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신약의 방식
그러나 중요한 것은 먹는 것과 입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과 혼합주의에 빠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혼방으로 된 옷을 입지 않았고 먹지 말라 하신 부정한 음식을 단 한 번도 먹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과 다른 신을 함께 섬겼다든지,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의 거룩한 것의 구별법은 그 마음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신약의 거룩함의 구별법입니다.
3) 골방의 위치를 기억하십시오(41:5~11).
골방의 위치는 지성소와 성소의 벽에 붙어있습니다. 벽 바깥에 바로 붙어 있는 방이 바로 기도의 골방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나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 묵상 : 더 건강한 신앙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해
내 마음을 세상으로 향하게 할 만한 유혹거리들을 멀리 하십시오. 바쁘다는 핑계로 말씀 묵상하는 일을 자꾸만 미루지 마십시오. 말씀 묵상을 미룬다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멀리하십니다.
주님
우리의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개하여
주께로부터 죄 없이함을
받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도록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