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흩날리고 있다
봄비가 한창 내리는 지금 이 밤이 지나면 땅에 흩날리는 꽃잎이 많이 질것이고 거리를 지나다 보면 그 눈꽃송이 처럼 보이는 잎들이 땅에 주저앉아 있을것이다 거기다 바람이 불면 눈꽃이 흩날리듯 흩어질 것이고 그럼 군항제는 3월말이면 개장을 하곤했다
이제는 벚꽃이 우리나라 천지에 봄이면 다 피어서 그 귀함이 없지만 내가 어릴때는 진해 벚꽃놀이가 알아주었다
어릴때 벚꽃나무가 만발한 것을 보면 제일 먼저 초등학교때 등을 가지고 시내로 가서 전야제를 맞이하는 기쁨이 있어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 어찌 그리도 즐거운지 같이가는 여학생들을 보는것이 어찌 그리도 설레이게 했는지 지금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등을 들고 갈라치면 같이 가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그래도 같은 반 여학생이 같이 가니 나도 좋고 줄을 서서 불을 환하게 밝힌 무리가 시내를 향하는 걸음에 마냥 설레인것이다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벼운것은 그렇게 먼 거리인데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특히 시내 분수대의 팔거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행사들을 중심으로 행진을 우리도 하면 뭔가 행사에 도움이 되는것도 같아 우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집에 벚꽃장에서 에피소드는 어릴적 엄마가 큰형님과 둘재 형님을 데리고 시내 나가서 있었던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수많은 인파속에 손을 잡고 갔지만 엄마는 세째형을 업고 큰형과 둘째형을 데리고 갔지만 수많은 인파속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다가 큰형을 잃어버렸다 얼마나 엄마가 놀랬던지 사색이 되어 헤메고 있는데 그때 둘째 형이 따라오면서 하는말 '엄마 이제 큰형이 없으니 내가 큰형이 되는거제?' 엄마는 그말이 얼마나 섭섭하게 들렸던지 그 소리를 자주 하셨다 철없이 한말을 엄마도 그렇게 들었지만 서운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벚꽃장 이야기만 나오면 그 이야기를 자주 하셔서 나는 안다 얼마나 그때가 황당했는지
가좌천에서의 벚꽃나무가 한창 인기가 있을때는 TV 에 베스트 극장에 그곳이 무대가 되어 나왔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 가던 길이라서 화면에 보니 새롭고 좋아 그 작품을 재방송도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벚꽃의 진미는 장복터널이다
무수한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어 봄이 절정에 달한 4월초는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래서 진해 시민은 오히려 군항제가 되면 너무 도시가 시끄러워서 싫어했다 시내에 전국에서 모인 장사꾼들이 오고 인심도 흉악해지고 해서 조용한 분위기를 항상 자아내는 도시에 반대되는 분위기가 보름정도 지속이 되니 그럴만도 한것이다
또한 해군사령부도 일반인에게 공개가 되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벚나무가 오래된 것이 많아 정말 장관을 이룬다 충무동상 근처 도천 초등학교 근처에도 많은 인파가 몰린다 거기서 나는 둘째 화진이를 하마터면 잃을 뻔했다 그때 집이 여고 밑에 있었는데 엄마랑 동근이 화진이랑 같이 갔는데 글쎄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나중에 찿고보니 왠 아줌마가 초등 후문근처 동사무소 에서 데리고 가는것을 보고 찿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미스테리였던 사건이었는데 그때의 심정을 유추해 보니 옛날 큰형을 잃어버릴 뻔 했던 심정을 알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동근이랑 할머니가 벚꽃나무 아래서 할머니가 안고 찍은 사진을 보면 엄마가 많이 그리워 진다
그때 벚꽃이 활짝 피었고 나무 가지를 밑으로 내려주어서 꽃이 동근이 머리에 오도록 엄마가 배려를 해주었다
나이가 들어서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볼때 일본의 벚꽃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스펙터클한 면이 대단했다
그리고 눈처럼 휘날리는 장면은 마치 진짜 눈이 오는것 처럼 장관이었다
금새 확 피었다가 금새 확지는 그 성질이 일본의 성미에 맞다고 해서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심어 식민지를 조장했다고 하지만 그렇게까지 과대 확장해석 할 필요는없을 것 같다 꽃은 원래 누구와도 비교를 하지않고 자신이 피고 그 자태를 뽐내면서 시간이 지나면 진다 감정을 이입해서 무리한 해석은 자제하는 것이 인생을 사는데 좋을 듯 하다
이제 나는 이곳 진주 선학산 근처에 살고 있으니 봄이 한창인 시간에는 큰 벚꽃나무가 동네에 흐드러지게 핀다
하지만 생각이 나는것은 항상 고향 진해에서 벚꽃을 보던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어릴때 축등을 들고 시내로 같이 가던 급우들을 생각하면서 신이나고 돌아오는 걸음도 즐겁고 엄마가 손주를 안아 찍었던 그장면도 오버랩되어 생각이 난다 그래서 항상 고향이 그립다 특히 부모님 살아생전이 ...
수구초심이란 단어가 그래서 생겼는가 !
시간이 갈수록 어릴적 놀던 그 시간들이 더 또렷해지고 더 그리워 진다 부모님과 형제들과 같이 살았던 경화동의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 지고 그 시절이 제일 즐거웠다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뒤의 시간은 왠지 덜 행복하고 보람이 없다 내가 자랑하고 픈 일이 생길때 맛있는 음식이 생겨서 드시게 할 보람도 없고 재미가 없는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해볼때 기뻐하시는 부모님이 없다는 것이 제일 안타깝다
내가 현생활에 만족을 못하는 이유인가 아님 우울증인가!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길 '과거를 돌아다 보는것은 후회가 앞서기 때문이고 미래를 자꾸 생각하는 것은 불안하기 마련인것을 그래서 마음을 현재에 두고 충실하라'는데 나는 왜 그리 과거가 그리워 지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