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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부하는 이 화엄경(華嚴經) 그 중에서도 입법계품은 바로 그 선재동자라고 하는 불교 모든 수행자의 대표가 되고 또 모든 수행자(修行者)를 대신하는 그런 구도자(求道者)로서 결국은 53명의 스승을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가 우리 공부하는 이 화엄경입니다. 아직도 스승이 제대로 나타나질 않고 지난시간에 문수보살이 처음으로 조금 그것도 조금 나타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지식(善知識) 혹은 스승이란 뭐 이렇게 뭘 아는 것이 많고, 모양새를 제대로 갖추고, 뭐 경험과 경력이 스승으로서의 손색이 없고, 이런 걸 우리가 얼른 떠올리기 쉬운데 의외로 정말 의외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만나는 선지식 또는 선재동자의 스승이라고 하는 이들은 뜻밖의 어떤 인물이 스승으로 등장을 하게 됩니다. 그 많은 53명이라고 하는 그런 선지식 한 분 한분 친견(親見)하는 또 친견하면서 자신을 갈고 닦아가는 그러한 내용인데.
사람이란 그렇죠. 사람 사는 일이라고 하는게 평생 배우는 일이고, 평생 자기 자신을 갈고 다듬는 그런 과정입니다. 다른게 아니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실은 전부가 수행자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자세만 갖추고 있으면요. 인생이란 항상 갈고 다듬고 이렇게 자기발전을 도모하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사람이 사는 모습이다. 라고 하는 그런 기본적인 마음자세만 우리가 제대로 갖추고 있다면 그 생각만 잃지 않고 산다면은 사실은 스승은 도처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뭐 하필 석가모니나 무슨 달마나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나 이런 이들에게만이 스승으로서의 가르침을 우리가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일 자세만 갖춰져 있다면 뭐 한 송이의 꽃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고 꿋꿋이 서 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에서도 또 얼마든지 삶의 교훈을 또 배울 수가 있고요. 일체 세상에 널려있는 모든 사물 또 모든 생명들 그 무엇 하나, 그리고 또 매일매일 수천만가지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건들, 인간이 저질러 놓은 사건이던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든지, 그런 모든 사건들이 또 전부 스승이고 선지식입니다. 전부가 우리들 자신에게 뭔가를 일깨워주고저 존재하는 것이고 나에게 뭔가 새로운 가르침을 주려고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래요. 틀림없이 이제 그렇게 다가올 것입니다. 요는 이제 단, 자기 자신의 발전을 꾀하려고 하는 그런 마음의 준비만 갖춰져 있다면... 그렇게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죠. 오늘 51쪽 중간 과목부터 좀 보겠습니다.
중간과목에 보면 지말법회(枝末法會)의 53선지식이라고 그렇게 돼 있고 십신위의 선지식(十信位의 善知識) 그렇게 돼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나눠드린 유인물을 책에 붙이라고 그랬는데 붙였죠? 이게 늘 필요합니다. 우리가 53명을 친견하면서 나아가는 길이 52위(五十二位) 52단계의 수행점차(修行漸次)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어요. 그럼 한 분 만날 때마다 한 계단씩 올라가는 거에요.
그런데 처음 문수보살을 만났는데 문수보살은 십신위(十信位) 십신위라고 하는 것은 뭐 낱낱이 나눌 수도 없겠습니다마는 믿음이 충만한 상태를 십신(十信)이다. 그러니까 믿음이 완전한 상태를 십신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공부가요. 근본법회(根本法會), 다시 말해서 선지식을 친견할 그런 분위기 조성이 충분히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다. 그리고 그 ‘선지식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라고 하는 그런 근본적인 정신이 지금까지 공부한 것 속에 다 담겨있지요.
그래서 그것은 이제 핵심은 그 안에 있으면서 또 서론의 역할을 합니다. 서론에서는 보면 대개 글의 서론에는 보면 본론에서 이야기할 핵심이 거기에서 소개되고 있지요. 요점만 소개돼 있는 그런 입장. 그래서 지금까지의 공부를 근본법회(根本法會), 여기서 이제부터는 53명을 친견하면서 한분한분의 가르침과 또 그분의 행적과 그분의 하는 일과 그분의 덕행(德行)과 그분의 지혜(智慧), 이런 것들을 소개받고 또 이해를 하면서 넘어가는 그런 과정인데요. 그래서 처음에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등장을 했었습니다.
문수보살은 불교의 4대보살, 문수(文殊)·보현(普賢)·관음(觀音)·지장(地藏), 이렇게 해서 불교 안에서 성인(聖人)으로 모시는 4대보살 중의 한 분입니다. 그냥 아시는 바와 같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자비를 상징하는 자비의 화신(慈悲의 化身)이고,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원력을 상징하는 대원력(大願力)을 뜻하는 원력의 보살(願力의 菩薩)이 지장보살이고, 그 다음에 이제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지혜(智慧)를 뜻하지요. 그래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 이렇게 합니다. 지혜를 뜻하고, 그 다음에 이제 보현보살(普賢菩薩)은 행(行), 실천(實踐)을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나타내는 그런 보살로서 보현보살 그래요.
그래서 문수와 보현은 여기서는 비로자나불의 좌우보처(左右補處)이기도 하고 또 석가모니부처님의 좌우보처이기도하고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서두에도 나왔지만 문수는 동자(童子)로 표현이 되구요. 보현은 장자(長子)로 표현이 되고 그렇습니다. 장자로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관음·지장은 일단 거론을 하지를 않고 문수와 보현은 화엄경에서 꼭 거론해야할 그런 보살이지요. 그래서 문수(文殊)는 동자(童子)이고 또 지혜(智慧)를 뜻하고 바람직한 지혜를 뜻하고 그 지혜가 갖춰졌다면은 반드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뒤따라야한다. 그래서 보현행(普賢行) 그것은 이제 보현행이라고 하는 것은 보살행(菩薩行)을 대표하는 행이 이제 보현보살의 행동인데, 그래서 이제 보현보살이 몸으로 직접 보이는 그런 입장에서 보현보살 그래 문수와 보현은 짝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그 두 분이 조화(調和)를 이루었을 때 완전한 부처님이 되고 부처님의 세계가 된다. 그래 한 가정에다 비유를 한다면은 아내는 문수가 되고 남편은 보현이 돼요. 그래서 남편은 밖에 나가서 활동해야 되는 것이 대체적인 경우로 돼 있습니다. 그게 원칙으로 돼 있어요. 아내는 집에서 어떤 지혜를 짜내고 살림살이를 하고 또 가사를 거두고하는 그런 일을 하도록 돼 있는게 경전상의 이야기 입니다.
이건 우리나라하고 같은지 다른지 난 모르겠어요. 모르는데 어쨌든 경전 상에는 여자가 문수가 되고 남자는 보현이 되고, 또 경전에서는 가리사(家裏事), 도중사(道中事) 그래요. 가리사(家裏事)라고 하면 집안일 하는 사람 그러면 당연히 문수예요. 그럼 도중사(道中事)라고 하면 길 가운데서 일한다 하는 말은 보현보살이 밖에서 활동한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활동해야할 그런 자기의 역할과 집에서 집안의 일을 잘 추슬러야한다는 아내로서의 역할, 이것이 조화를 잘 이루었을 때 바람직한 가정이 형성이 된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은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실천이 잘 조화(調和)를 이루었을 때 부처의 삶 부처의 세계가 거기서 표현이 된다 나타난다고 하는 그런 입장입니다.
그럼 한 개인으로 또 치면요. 이 문수·보현 어디 갖다 맞추면 어디 안 맞는 데가 없어요. 한 개인으로 치면은 정신(精神)은 문수가 되는 거고 육신(肉身)은 보현이 되고 그렇습니다. 그래 마음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몸으로나 말로 표현을 하지요. 그게 조화(調和)를 이루어야 되는 거에요. 그래 정신, 생각이 발라야 행동이 바른 거지요. 그 지혜와 실천이 아주 조화를 잘 이룬 것입니다. 또 육신 이 하나만 몸 이 하나만 가지고 좌우로 나눴을 때 어떻게 되겠어요? 왼쪽이 문수가 되고 오른 쪽이 보현이 되고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그 분위기 조성 한 집안의 분위기 조성이라고 하는 것, 그것은 문수가 되고요. 말하자면 다른 어떤 경제적인 감정적인 면을 이끌어가는 것은 여자의 입장이고, 여자가 그 알아서 해야 되는 거에요. 그런데 생활하는데 실제적으로 생활하는데 어떤 경제적인 면이라든지 이런 것은 남자의 책임이에요. 집안 분위기는 여자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경제적인 면은 남자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한 이야기다. 경전상으로 이치는 그렇게 돼 있습니다. 문수보현을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좌우, 정신과 육체, 안과 밖, 그런 식으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찰에서 보면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딱 나눠가지고, 오른쪽에는 본래 활동하는 사람들, 사찰행정(寺刹行政)을 하는 사람들이 앉도록 돼 있습니다. 왼쪽에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앉아요. 선방(禪房)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강원(講院)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왼쪽에 딱 앉고. 그래서 공부하는 입장과 살림 사는 입장 그것이 조화(調和)를 딱 이뤄야 그게 이제 온전한 사찰이 선다하는 그런 뜻으로도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화엄경(華嚴經)에서 처음에 문수(文殊)가 이렇게 나타나고 결국은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는 것은 보현행(普賢行), 보살행(菩薩行)을 중심으로 해서 나아가는 그런 것으로 그래 돼 있지요.
그래서 여기 보면은 처음에 이 문수보살이 부처님을 하직(下直)을 하고 남쪽으로 떠나요. 처음에는 문수동자가 그렇게 떠납니다. 문수동자가. 문수동자가 그렇게 출발을 하는데 그 다음에 이제 문수동자가 부처님을 하직하고 남쪽을 향해서 인간세계로 간다. 지난 시간에 그 마지막 줄에 보면은 사퇴남행(辭退南行)하야 왕어인간(往於人間)하시니라. 그랬어요.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을 여러 바퀴를 돈 뒤에 부처님께 가지가지로 공양(供養)하는 것을 마치고 부처님에게 사퇴(辭退)를 하고 남쪽을 향해서 인간이 사는 세상으로 가고 있어요 문수보살이.
그래 가니까 오늘 보면은 (2) 舍利弗尊者와 六千比丘 그랬어요. 육천 명의 비구가 문수보살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는 나도 따라 나서겠다 그래요. 그래 문수보살을 뒤를 따라갑니다. 육천비구(六千比丘)가요. 그래도 그냥 따라나설 수는 없지요. 그러니까 부처님에게 가서 “부처님이시여 문수보살이 저렇게 남쪽을 향해서 구도의 길을 떠납니다. 우리도 문수보살을 따라서 가고 싶습니다.” 이런 말을 해요. 그런 말을 하니까 부처님이 허락을 합니다.
그래서 모두 부처님을 떠나서 남쪽을 향해서 문수보살이 앞장서고 그 많은 보살들이 뒤따르고 그러고 온갖 신장(神將)들이 지난시간에 있었죠. 신장들이 호위(護衛)를 하고 그렇게 출발을 하는데 육천 명의 비구(比丘)가 뒤따르죠. 그 다음에 이제 오백 우바새·우바이(五百 優婆塞·優婆夷). 그러니까 남자신도 오백 명, 여자신도 오백 명이 죽 뒤따라 나서요. 참 그걸 영화로 찍어놔도 아주 좋을 그런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오백동자·오백동녀(五百童子·五百童女). 또 동자 오백 명이 척 나서고 그 다음에 또 동녀들도 우리도 그냥 있을 수 없다 해서 또 오백 명의 동녀가 또 그 뒤를 따라나섭니다. 한껏 분위기가 문수보살이 선두에 턱 나서니까 뭐 오색 깃발이 펄럭이고 야단이겠죠 뭐 어쨌든. 그렇게 나서니까 육천 명의 비구가 척 따르고, 그 다음에 이제 우바새 남자신도 오백 명 척 나서고, 그 다음에 여자신도 오백 명, 그 다음에 동자 오백 명, 동녀 오백 명, 이렇게 쭉 나서는데 그 가운데 선재동자라는 분이 오백 명 동자중에 한 사람 끼어있는 거지요.
그러는데 그중에 특별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선재동자(善財童子)를 탁 찍어가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대상은 여러 사람이겠지만 다 이름을 부를 수가 없으니까 선재동자를 대표로 찍어서 이야기를 하는데... 출발은 문수보살이 출발을 해요. 그래놓고 나중에 또 문수보살은 선재동자에게 그 선두(先頭)를 내 줍니다. “선재동자야 그대가 함께 이 한 떼의 수행자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덕운비구(德雲比丘)를 찾아서 행각을 떠나라.” 그래요. 그럼 이제 그 다음부터는 바톤을 선재동자가 맡아가지고 앞장서서 나갑니다. 문수보살하고는 하직을 하고요. 그래 이제 문수보살 새로 만난게 그렇게 인연이 되고. 그 다음에 이제 문수보살하고 하직하고 덕운 비구 만나고, 그 다음에 해운비구(海雲比丘) 만나고, 그 다음에 또 만나고 또 만나고, 이런 식으로 점점이 53명을 만나게 되는 그런 이야기로 이야기의 줄거리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사이사이에 어떤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냥 간단하지가 않아요. 하 그 분은 이러이러한 德을 갖췄고, 이러이러한 중생을 위해서 하고, 이런 지혜가 있고 이렇게 살아왔었고, 뭐 구구절절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오늘은 육천비구(六千比丘), 사리불존자(舍利弗尊者)를 우두머리로 한 육천 명의 비구를 일단 만나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앞 시간에 사퇴(辭退)하고 남쪽으로 향해서 인간을 향해서 가고 있었다.
(2) 舍利弗尊者와 六千比丘
爾時에 尊者舍利弗이 承佛神力하야 見文殊師利菩薩이 與諸菩薩衆會莊嚴으로 出逝多林하사 往於南方하야 遊行人間하고 作如是念하사대
그 때에 이시(爾時)에 존자사리불(尊者舍利弗)이 존자(尊者)는 어른이신, 아주 높으신 사리불께서 승불신력(承佛神力)하사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받들어서 견문(見文), 보았다. 무엇을 보았느냐? 사리불이 문수사리보살이 제보살중회장엄(諸菩薩衆會莊嚴)으로 더불어 여러 많은 보살들의 그 참 장엄스러운 그런 모습으로 더불어 출서다림(出逝多林)하야, 서다림이라고 하는 거긴 부처님도 계셨고 여러 사람이 있었죠. 서다림에서 나와 가지고 왕어남방(往於南方)하야, 남방을 향해서 남방을 가고 있었죠. 그래서 유행인간(遊行人間), 인간 세상에 유행(遊行)하는 것, 인간 세상에 걸어가는 것을 보고. 사리불이 이제 문수동자가 그렇게 가는 것을 보고서 작여시념(作如是念)하대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我今當與文殊師利로 俱往南方호리라하고
아금당여문수사리(我今當與文殊師利)여 내가 마땅히 문수사리보살로 더불어 구왕남방(俱往南方)호리라. 나도 함께 남방으로 갈 것이다. 저 문수사리(文殊師利)가 저런 행차를 떠나는데 저 좋은 수행의 길을 떠나는데 나도 따라갈 것이다. 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시(時)에 존자사리불(尊者舍利弗)이 여육천비구(與六千比丘)로 육천 명의 비구,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에요 평소에. 그러니까 육천 명의 비구의 우두머리는 사리불(舍利弗)이라는 뜻이 되겠죠. 그래 사리불은 또 지혜제일 사리불(智慧第一 舍利弗) 그래 돼 있지요. 그러니까 지혜가 뛰어나시고요. 이분은 지혜만 뛰어난게 아니라 통솔력(統率力)도 뛰어나고, 본래 다른 종교의 지도자로 있었습니다. 다른 종교의 지도자로 있었는데 이백오십 명인가 오백 명인가 그런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있다가 출가를 했던 그런 분인데 어떻게 해서 출가를 했는가하면 그 출가동기가 또 재미있어요. 자기들도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또 좋은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길을 가다가 어떤 노란 가사를 입은 스님을 봤어요. 그래서 멀리서 그 스님을 보니까 옷 색깔도 특이하고 머리도 깎았고. 그런데 그 멀리서 봤지마는 거기서 풍기는 모습이 너무나도 품위 있어 보여. 너무나도 멋있어 보이고 인격이 아주 뛰어난 것같이 그렇게 보이는 거야. 그것을 멀리서 이 사리불은 워낙 눈이 밝은 분이라서 그런 것을 멀리서부터 그 사람의 풍기는 품위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뛰어갔어요. 가 가지고 그때 그 옆에 목련존자도 있었다고 그럽니다. 목련존자하고는 본래 한 스승을 모시는 친구였어요. 마을에서부터 친구였고 출가해서 다른 외도를 섬길 때도 역시 친구로 같이 있었고 그래서 그 종교단체에서 두 사람이 다 우두머리였고 그랬어요.
그래서 가서 물었어요. “당신 누구냐?” 하니까 자기는 마승이라고 말 마자 수승할 승자 馬勝이라고 하는 비구라는 거에요. 그런데 “당신은 어떤 가르침을 따르고 또 어떤 스승을 모시고 수행하기에 당신의 모습이 그렇게도 멋있어 보이고 품위 있게 보이고 교양미가 절절 흐르느냐? 도대체 당신은 어떤 가르침을 따르고 있느냐?”고 이 사리불이 워낙 종교에 뛰어난 분이다 보니까 그런 식으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마승이라고 하는 스님이 있다가 “나는 싣달타 태자라는 분이 출가를 해서 수행해가지고 도를 이루었는데 그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이렇게 했어요. “그러면 그 분은 뭘 가르치느냐?” 이렇게 묻는 거야. 뭐를 가르치느냐하니까 “나는 초심자가 돼서 잘 아는게 없다 그러나 그 분에게서 자주 들은 이야기 한 마디가 있는데 그것은 내가 전할 수 있다.” 라고 하면서 언젠가 내가 말씀드렸죠. “제법종연생 제법종연멸 아불대사문 상작여시설(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이라. 모든 이치는 모든 일은 인연을 쫓아 생긴다. 어떤 일이든지 다 인연이 게재되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모든 일은 인연(因緣)에 의해서 소멸(消滅)이 된다.”
누가 뭐 주재자가 있어가지고 절대전능한 전지전능한 주재자가 있어가지고 무슨 바둑돌 옮겨놓듯이 이리 옮겨놓고 저리 옮겨놓고 이렇게 만들고 저렇게 만들고 그렇게 하는거 아무것도 아니다 이거야. 그런 사실 없고 모든 것이 인연의 이치에 의해서 생겼다가 소멸하고 없어지고 흥하고 망하는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인연에 의해서 그렇게 설명한다. 아불대사문(我佛大沙門) 우리 크게 깨달으신 부처님 대사문께서도 늘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더라. 그래 그 말을 딱 전했어요. “그 이치가 너무나도 당연하고 지극한 가르침이어서 나는 그거 하나 그저 겨우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난 초심자라서 깊은 것은 모른다.” 라고 아주 겸손하게 사리불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리불이 그 이야기를 딱 듣고는 당장에 마음이 밝아져가지고 당장에 당신 스승에게로 인도하라는 거에요. 그래서 마승이라는 사람이 이 사리불과 목련존자를 부처님에게 인도를 해서 부처님께 소개를 하게 됩니다. 소개를 하자마자 보자마자 그냥 부처님 모습에 감동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었죠. 제자가 되어가지고도 아주 참 부처님의 제자 중에 뛰어난 제자 역할을 다 합니다. 그래서 경전마다 사리불이 뭐 소개 안 되는 경전이 없을 정도지요. 법화경에 처음에 사리불이 나오지 여기서도 사리불 나오죠. 뭐 반야심경(般若心經)에도 사리자 시제법공상(舍利子 是諸法空相) 그 사리자라는게 사리불존자를 말하는 것이고. 그렇지... 경전마다 이 사리불이 제일 많이 나요죠? 제일 많이 나온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사찰, 기원정사(祇園精舍) 그 기원정사를 짓는데 기원정사가 어마어마한 사찰이었거든요. 지금은 터만 남아있습니다마는 아주 불교역사상 최고가는 사찰이었어요. 그런 사찰을 짓는데 공사총감독을 맡았던 이가 또 사리불이기도 합니다. 그 뭐 도통한 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일을 주선해 나가는 사에도 그렇게 밝았던 그런 분으로 아주 그 참 사리불이 돌아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그런 제자입니다.
그런 분이 여기 또 비구의 대표로서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척 남쪽을 향하니까 그걸 놓칠새라 하고 따라나서는 그런 결단을 내릴 수가 있었던 것도 사리불(舍利弗)이 아니면 못 하는 거지요. 왜냐? 부처님이 계시는데 부처님을 하직하고 문수보살을 따라나선다고 하는 것 이거 대단한 일이거든요. 보통 용기가 아니면은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 우리 공부하는 데가 어디죠? 문수원이죠. 그것도 잘 기억해서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래 우리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살림에는 뭐가 보배죠? 눈이 보배죠. 살림에 눈이 보배이듯이 지혜(智慧)라는 것은 안목(眼目)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을 말하는 거지요. 사람의 눈을 뜻하는게 지혜에요. 그러니까 인생을 사는데는 뭐니뭐니해도 지혜의 안목이 밝아야 제대로 살 수있다하는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時에 尊者舍利弗이 與六千比丘로 前後圍遶하야 出自住處하야 來詣佛所하사 頂禮佛足하고 具白世尊하신대 世尊이 聽許어시늘 右遶三帀하고 辭退而去하야
시(時)에 그 때 존자사리불(尊者舍利弗)이 육천비구(六千比丘)로 더불어 전후위요(前後圍遶)해서 앞으로 뒤로 죽 둘러 쌓여가지고 육천 명에게 둘러쌓였으니 대단하지요. 출자주처(出自住處)하야 자주처(自住處), 자기가 머물던 그 곳에서 나와가지고서 내예불소(來詣佛所)하사 부처님 계신 곳에 떡 일단 나아가서 부처님에게 하직인사를 해야겠지요. 정례불족(頂禮佛足)하고 부처님 발에다 정례(頂禮)를 하고 그 발에다 예배(禮拜)하는 거에요 본래. 그 저 제일 나중에 석가예배를 하는데 머리로써 이마로써 하니까 예(禮)의 극치(極侈)지요. 하고 구백세존(具白世尊)하신대, 함께 세존에게 고(告)하신대 世尊이 청허(聽許)어늘 세존에게 고했다고 하는 것은 나도 문수보살을 따라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같이 구도(求道)의 길을 나서겠습니다. 이런 말을 했지요. 그러니까 세존이 청허락(聽許諾) 허락을 들어줬다 이거야. 허락하시거늘 그리고 우요삼잡(右遶三帀)이라. 부처님을 이렇게 세 바퀴 돌고는 사퇴이거(辭退而去)라. 부처님을 하직하고 떠나갔더라.
往文殊師利所하시니 此六千比丘는 是舍利弗의 自所同住라 出家未久니 所謂海覺比丘와 善生比丘와 福光比丘와 大童子比丘와 電生比丘와 淨行比丘와 天德比丘와 君慧比丘와 梵勝比丘와 寂慧比丘라
떠나가서 왕문수사리소(往文殊師利所)하시니 문수사리가 있는 곳에 턱 가니까 워낙 대중이 많으니까 가는데도 한참 걸리겠죠. 문수사리 처소에 가니 이 육천비구(六千比丘)는 육천 명의 비구는 사리불의 자소동주(自所同住)라 함께 스스로 함께 머물던 사람이다. 그래 육천 명 비구하고 사리불 존자하고 늘 같이 있었다. 출가미구(出家未久)니 출가한지가 크게 오래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소위 누구누구냐? 덮어놓고 육천 명이라 하지마라 이 말이야. 해각비구(海覺比丘)·선생비구(善生比丘)·복광비구(福光比丘)·대동자비구(大童子比丘)·전생비구(電生比丘)·정행비구(淨行比丘)·천덕비구(天德比丘)·군혜비구(君慧比丘) 또 범승비구(梵勝比丘)·적혜비구(寂慧比丘) 이러한 등등이다. 육천 명 이름을 다 열거할 수는 없고 이쯤 한 열명 정도의 이름만 열거했지요.
如是等其數六千이 悉曾供養無量諸佛하야 深植善根하며 解力廣大하며 信眼明徹하며 其心寬博하며 觀佛境界하며 了法本性하며 饒益衆生하며 常樂勤求諸佛功德하니
여시등(如是等) 이와 같은 등의 그 수가 육천 명, 육천(六千)인데 실증공양무량제불(悉曾供養無量諸佛)하야 일찍이 다 모두들 다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에게 공양을 해서 심식선근(深植善根)하여 선근(善根)을 좋은 뿌리를 선(善)의 뿌리를 깊이 심었으며. 해력(解力)이 광대(廣大)해. 이해하는 힘이 아주 넓다 이 말이야. 광대(廣大)하다, 이해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 뛰어나며 신안명철(信眼明徹)해. 믿음의 눈이 또 명철(明徹)해. 아주 밝고 뛰어나. 기심관박(其心寬博)이야. 그 마음이 너그럽고 널쩍해 아주. 관박(寬博)이라. 아주 너그럽다. 저기 큰 바다처럼 그 마음이 바다처럼 널찍하며. 관불경계(觀佛境界)하며 육천비구에 대한 德을 이야기하는 거지요. 부처님의 경계를 잘 관찰을 해. 또 요법본성(了法本性)이라. 어떤 도리의 본성을 어떤 일의 본성을 전부 깨달아 알아. 요법본성(了法本性)하며 요익중생(饒益衆生)이라. 중생들을 이익하게 해. 요익(饒益)하게 한다. 불교에는 이익(利益)이란 말보다 요익(饒益)이란 말을 더 많이 써요. 이익(利益)이라고 하는 말은 이익할 이(利), 이익할 익(益)인데 여기는 넉넉할 요자(饒), 이익할 익자(益)에요. 그러니까 훨씬 좋지요 뜻이. 중생들을 넉넉하게 하고 이익하게 한다. 요익유정(饒益有情) 뭐 요익중생(饒益衆生) 이런 말을 잘 쓰지요. 중생들을 요익(饒益)하게 하며. 상락근구제불공덕(常樂勤求諸佛功德)하니, 항상 부지런히 부처님의 공덕(功德)을 구하기를 즐겨한다. 그러니까 부처님 부처님처럼 나도 되고 싶다. 부처님이 하신 일이 다 어떤 일들인가? 이걸 본받아 배우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으로 충만 돼 있는 사람이다. 그런 말입니다.
皆是文殊師利의 說法敎化之所成就러라
개시문수사리(皆是文殊師利)의 설법교화지소성취(說法敎化之所成就)러라. 그런데 이들이 다 문수사리보살이 다 설법(說法)하고 교화(敎化)해서 성취(成就)한 바야. 그래서 이런 말 때문에 문수보살은 삼세제불(三世諸佛)의 스승이다. 그래서 수행(修行)하는 도량(道場)에는 언제나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상주(常住)한다 그래요. 그래 오대산도 문수도량이죠. 청량산 혹은 청량산이라고도 하고 오대산이라고 하는데 강원도 오대산은 문수도량입니다. 또 한 곳도 문수도량으로 유명한데 혹시 아세요? 지리산 칠불. 지리산이 또 문수보살 도량으로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옛날부터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주 피나게 정진할 때 언제나 문수보살이 대중의 일원으로 와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하는 그런 여화들이 더러 있어요. 그 칠불사(七佛寺)도 보면은 문수동자(文殊童子)가 화현(化現)으로 나타나가지고 공부하는 스님들을 대신해서 그 *하공부상자*를 골탕먹이는 그런 일들이 그런 예들이 많아요.
어떤 데서 스님들이 삼년결사(三年結社)할려고 작정을 딱하고 삼년간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공부할려고 사람들을 다 이렇게 짰어요. 그런거 할려면 짜거든요.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다고요. 같이 할만한 사람들을 탁 짜가지고 하는데 그런데 방을 짤려고 하는 시간 방 짠다고 한다는 것은 내일부터 삼년결사 들어간다고 하면 오늘 저녁에 이제 소임(所任)을 전부 짜요. 그걸 방(榜) 짠다 그래요. 결제(結制) 전날 방(榜) 짜는 날이거든요. 소임을 전부 누구는 공양주맡고 누구는 채공맡고 누구는 청소하는 담당 부전 맡고 누구는 목탁 치는 부전 맡고 이런 식으로 전부 소임을 짜는 시간인데 방 짤라고 이렇게 하는데 어떤 노인이 떡 이제 걸망을 지고 들어오는 거라. 그래 와서 결사하는데 자기도 받아달라는 거야. 우리 다 인원이 다 찼고 자리도 없단 말이야. 자리도 없고 노인이 우리 젊은 사람들하고 공부 어떻게 따라할라고 하느냐고 안 된다고 안된다고 해도 기어이 떼를 쓰는 거야. 하도 떼를 써 가지고 뭐 우리가 지금 용맹정진(勇猛精進)하면은 저 노장 삼일이면 나가떨어지고 자기가 아마 도망 갈 거니까 그냥 받아주자고 그래놓고 우리 한 삼일만 잘 참으면 저 사람 갈거 아니냐고 그렇게 나중에는 의논을 해 가지고 그 노인을 받아줬어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날부터 방을 짜고 정진을 하는데 이 노인이 뭐 힘이 있습니까? 꾸벅꾸벅 조는 거야. 그러니까 젊은 스님들은 이제 보란 듯이 장군죽비를 가지고 사정없이 후려치는 거야. 그래 못 견디고 가라고 일부러 이제. 그렇게 했는데 삼일 다 돼도 매~ 그 모양으로 얻어맞으면서 그래 졸거든. 그래 삼일이 이제 다 돼 가지고 그때쯤 가려니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이 노인이 살살 정신을 차리더니 그 다음부터는 안 조는 거야. 그때부터 대중이 졸기 시작하는 거야. 삼일이 지나면 그때부터 존다고요. 용맹정진하면 삼일까지는 거의 안 졸아요 보면. 삼일까지는 대개 처음이다 보니 정신 바짝 차리고 안 조는데 삼일 되는 날부터 대개 졸거든요. 그 때 이 노인이 정신을 차리고 자기가 장군죽비 들고 잠자는 젊은 스님들을 사정없이 후려치면서 경책을 해 가지고 삼년결사를 잘 마쳤다 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게 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의 화현(化現)이다. 라고 그래 이제 기록에는 그래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여기보면 개시문수사리(皆是文殊師利)의 설법(說法)하고 교화(敎化)해서 성취(成就)한 바더라. 그 육천 비구를 과거에 다 이 문수사리보살이 설법하고 교화했던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실례(實例)들이 수행처(修行處)에는 많이 있지요. 七佛의 이야기가 역시 또 그렇고요.
그 다음에 사리불의 문수공덕찬(文殊功德讚)이라. 그래요 사리불존자가 우리가 이제 문수사리보살을 쫓아갔는데 문수보살은 이러이러한 분이다 하면서 그걸 이제 자기를 따르는 육천 명에게 설명을 해 주고 있지요. 그 대목이 여기입니다.
(3) 舍利弗의 文殊功德讚
爾時에 尊者舍利弗이 在行道中하야 觀諸比丘하고 告海覺言하사대 海覺아 汝可觀察文殊師利菩薩淸淨之身의 相好莊嚴을 一切天人이 莫能思議하며
이시(爾時)에 존자사리불(尊者舍利弗)이 재행도중(在行道中)하야 행도중(行道中)에 있어서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있으면서 길을 걸어가면서 관제비구(觀諸比丘)하고 여러 자기를 따르는 비구를 관찰을 하고 고해각언(告海覺言)하사대 그 해각이라고 하는 비구가 처음에 소개된 비구지요. 해각에게 고해 말하되 海覺아 누군가 대표이름을 불러야 될 거 아닙니까? 해각이여 여가관찰문수사리보살청정지신(汝可觀察文殊師利菩薩淸淨之身)의 상호장엄(相好莊嚴)을 문수사리보살의 청정한 몸 그 상호장엄을 볼 수 있느냐? 보느냐? 보라. 이런 뜻이죠. 그 문수사리보살의 상호장엄 그 잘 생긴 그 모습은 일체천인(一切天人)이 막능사의(莫能思議)야. 일체 천 하늘사람이나 땅사람이나 간에 능히 생각할 수가 없어. 사의(思議)할 수가 없어. 막능사의(莫能思議)야. 생각할 수가 없어. 헤아릴 수가 없어. 그런 것을 너는 잘 관찰하라 너희들은. 그 뛰어난 문수사리보살의 상호장엄을 잘 보라. 그런 뜻이죠.
汝可觀察文殊師利의 圓光暎徹하야 令無量衆生으로 發歡喜心하며
여가관찰문수사리(汝可觀察文殊師利)의 원광영철(圓光暎徹) 가히 문수사리보살의 원광영철이라고 하는 것은 뒤에 둥근 빛이 부처님의 탱화에 보면 둥근 빛이 있죠. 뭐 후광(後光)이라고도 하고 배광(背光)이라고도 등배자(背) 써서 이라고도 하고 또 뭐 요즘 오로라(aurora)라고도 하지요. 뒤에 나는 전자파 그게 이제 부처님은 후광(後光)이 되는데 그게 강하면 보통사람의 눈에도 보이고 또 그것을 볼 수 있는 그런 눈이 있는 사람은 또 모든 사물 모든 사람들에게서 후광이 있는 것을 다 본답니다. 그래 뭐 티베트사람들은 그런 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모든 사람에게 다 있어요. 모든 물질에게 다 있습니다. 그래서 뭐 화가 나 있으면 좋지 아니한 전파가 몸 밖으로 발산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 색깔이 다르거든요. 그리고 또 아주 기쁨에 좋은 건전한 생각과 기쁜 마음에 들떠있는 사람은 노란 빛 푸른 빛 이런 것이 몸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그래요. 여러분들에게 다 그게 있어요. 있는데 눈이 모두 어두워가지고 못 보는 거지요.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부처님에게서 그걸 봐요. 본대로 그려놓은게 그게 배광(背光)이요 후광(後光)이라. 부처님 뒤에 둥그렇게 그려져있는게 그거에요. 그게 원광이라 원광영철(圓光暎徹)이야. 문수사리의 원광영철함을 볼 수 있느냐? 영제중생(令諸衆生)으로 그 원광(圓光)이 영철(暎徹)한 문수사리에게서 둥근 광명이 밝게 사무치는 그런 모습은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발환희심(發歡喜心)한다. 환희한 마음을 발하게 한다.
汝可觀察文殊師利의 光網莊嚴이 除滅衆生의 無量苦惱하며
또 여가관찰문수사리(汝可觀察文殊師利)의 광망장엄(光網莊嚴)하는가? 너는 문수사리의 광망장엄을 볼 수 있느냐? 광망장엄(光網莊嚴)이라고 하는 것은 그 원광(圓光)이 영철(暎徹)한데 거기서 아주 미세한 그물같이 짜여진 미세한 광명, 지엽적인 광명들을 광망(光網)이라 그래요. 그물망자(網)써서. 그 광망장엄(光網莊嚴)은 모든 중생들의 무량한 고뇌를 소멸한다. 한량없는 고뇌를 그 광망장엄이 소멸한다 이 말이야.
汝可觀察文殊師利의 衆會具足이 皆是菩薩往昔善根之所攝受하며
또 그대는 문수사리의 중회구족(衆會具足)을 볼 수 있느냐? 말하자면 문수사리보살에게 많은 보살이 따르고 그리고 많은 신장들이 따르면서 호위하고 있는 사실을 너는 볼 수 있느냐? 그런 많은 대중들이 구족(具足)해서 따르고 있는 이것은 개시보살왕석선근지소섭수(皆是菩薩往昔善根之所攝受)로 이것은 다 문수보살이 옛날에 선근을 많이 닦아가지고 그 선근을 통해서 포섭(包攝)하고 섭수(攝受)한 그런 바의 대중들이다.
汝可觀察文殊師利의 所行之路에 左右八步가 平坦莊嚴하며 汝可觀察文殊師利의 所住之處에 周廻十方에 常有道場이 隨逐而轉하며
또 여가관찰문수사리(汝可觀察文殊師利)의 소행지로(所行之路) 너는 문수사리의 가고 있는 그 길을 볼 수 있느냐? 좌우팔보(左右八步)가 평탄장엄(平坦莊嚴)이라. 문수사리가 가는 길은 어느 길을 가던지 왼쪽으로 여덟 걸음 오른쪽으로 여덟 걸음이 전부 평탄하게 장엄이 돼 있어. 이거 뭐 저기 포크레인으로 안 밀어도 저절로 평탄하게 왼쪽으로 여덟 걸음 오른쪽으로 여덟 걸음 좌우팔보(左右八步)가 평탄하게 장엄돼 있다. 여가관찰문수사리(汝可觀察文殊師利)의 소주지처(所住之處) 문수사리가 머무는 그곳을 관찰하느냐? 잘 보라. 이 말이죠. 주회시방(周廻十方)에 두루두루 돌아가면서 시방에 상유도량(常有道場)이야. 항상 도량이 있어가지고서 수축이전(隨逐而轉)이야. 늘 따라다닌다 그 말이야. 그러니까 문수보살은 머무는 그곳이 늘 무슨 뭐 회전무대같이 늘 따라오는 도량이다 이겁니다.
汝可觀察文殊師利의 所行之路가 具足無量福德莊嚴하야 左右兩邊에 有大伏藏하야 種種珍寶가 自然而出한다.
여가관찰문수사리의 소행지로가 구족무량복덕장엄하야 좌우양변에 유대복장하야 종종진보가 자연이출한다.
이것도 문수사리가 가고 있는 그 길에 소행지로(所行之路) 거기에는 한량없는 복덕장엄(福德莊嚴)이 구족(具足)해 있어가지고 좌우양변(左右兩邊)에 오른쪽이나 왼쪽 양쪽에 유대복장(有大伏藏)이야. 큰 그 말하자면 땅속에 진주 금 은 유리 뭐 다이아몬드 이런 것들이 가득히 이렇게 땅 속에 묻혀있다. 큰 묻혀있는 창고같은 그런 것이 있어가지고서 종종진보(種種珍寶)가 가지가지의 아주 진귀한 보배들이 저절로 거기서 땅에서 솟아나 가는 곳마다.
汝可觀察文殊師利가 曾供養佛하야 善根所流로 一切樹間에 出莊嚴藏하며
또 여가관찰문수사리(汝可觀察文殊師利)가 증공양불(曾供養佛)하야 문수사리가 일찍이 부처님께 공양해서 그래서 선근소류(善根所流)로 그 선근으로써 그 문수사리가 닦은 선근으로써 흘러나오는 일체수(一切樹) 사이에 일체 나무에 출장엄장(出莊嚴藏)하며 장엄 그 나무에도 그냥 뭐 싱겁게 올라간 나무가 아니라 나무 사이사이에 전부 온갖 장엄이 꾸며져 있다 이거에요.
汝可觀察文殊師利에 諸世間主가 雨供具雲하고 頂禮恭敬하야 以爲供養하며
여가관찰문수사리에 제세간주가 우공구운하고 정례공경하야 이위공양하며
요건 이제 문수사리가 이제 가는 곳에 마다 모든 세간(世間)의 주인(主人)들 무슨 어디가면 군(郡)에 가면 군수, 면에 가면 면장, 도에 가면 도지사, 가는 곳마다 세간의 주인들이 온갖 공양구의 구름을 비 내리듯이 내려가지고서 예배올리고 공양 공경하고 정례공경(頂禮恭敬)하고 그것으로써 이위공양(以爲供養) 공양을 올린다. 올리는 것을 잘 관찰하라. 그런 것을 잘 살펴보아라. 관찰이란 말은 그런 뜻이에요.
汝可觀察文殊師利에 十方一切諸佛如來가 將說法時에 悉放眉間白毫相光하사 來照其身하고 從頂上入이어다
여가관찰문수사리에 시방일체제불여래가 장설법시에 실방미간백호상광하사 내조기신하고 종정상입이어다
또 여가관찰문수사리(汝可觀察文殊師利)에 십방일체제불여래(十方一切諸佛如來)가 장설법시(將說法時)에 또 문수사리는 시방일체 모든 여래가 장차 설법할 때 실방미간백호상광(悉放眉間白毫相光)하야 시방여래(十方如來)가 설법하면서 미간백호(眉間白毫)로 광명을 놔. 미간에 있는 백호에서 광명을 놓아가지고서 내조기신(來照其身)이라.
그 몸을 착 이렇게 비치는 것을 비친다 이거야. 그건 이제 말하자면 우리가 연극같은거 볼 때 조명하는거 있지요. 그 조명하는데도 한 곳에서 하는게 아니라 여러 곳에서 그 연극하고 있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착 이렇게 조명하는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 이거에요. 시방에 있는 여래가. 그렇게 하고 종정상입(從頂上入)이어다 정상(頂上) 속으로 다시 문수사리를 조명하다가 그 문수사리의 이마 위쪽으로 향해서 그 광명이 사~악 이렇게 들어가버리는 그러한 여러 가지 신기한 그리고 불가사의한 모습들을 잘 관찰할 지어다.
이렇게 이제 사리불이 육천 명의 비구들에게 이렇게 문수사리보살을 잘 관찰하라. 문수사리보살은 이러이러한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런 분이다 라고 하는 것을 주지시키는 일이죠. 앞으로 우리가 문수사리를 쫓아갈텐데 문수사리에게 그러한 덕화(德化)가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그런 대목입니다.
爾時에 尊者舍利弗이 爲諸比丘하사 稱揚讚歎開示演說文殊師利童子의 有如是等無量功德具足莊嚴하시니라
이시(爾時)에 존자사리불(尊者舍利弗)이 위제비구(爲諸比丘)하사 여러 비구들을 위하사 비구들을 위해서 칭양(稱揚), 일컬어 드날리고 또 찬탄(讚歎)하고 또 열어 보이고 개시(開示)하고 또 연설(演說)했다. 누구를? 文殊師利童子의 이와 같은 등 한량없는 공덕(功德)이 구족(具足)하고 장엄(莊嚴)돼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칭양하고 찬탄하고 개시하고 연설했더라. 여기 소개된 것은 조그만한 것이 되고 사실은 문수사리보살에 대해서 사리불이 아주 그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구 칭양(稱揚), 찬탄(讚歎), 개시(開示), 연설(演說), 이렇게 이제 했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사리불이 그렇게 육천비구에게 문수보살에 대해서 소개를 했으니까 비구중의 친견문수라 그런 대목이 되겠습니다.
(4) 比丘衆의 親見文殊
彼諸比丘가 聞是說已에 心意淸淨하고 信解堅固하며 喜不自持하야 擧身踊躍하며 形體柔軟하고 諸根悅豫하며
피제비구(彼諸比丘)가, 그때 여러 비구가 문시설이(聞是說已)에, 이 말을 듣고 나서 심의(心意)가 청정(淸淨)하고, 마음과 뜻이 청정하고 신해견고(信解堅固)라. 믿음과 이해가 아주 견고해 졌으며 희불자지(喜不自持)하야 그 기쁨을 스스로 억누르지 못해서 거신용약(擧身踊躍)하여 온 몸으로 뛸.. 막 펄쩍펄쩍 뛰는 거에요. 거신용약으로 온 몸으로 전신이 그냥 펄쩍펄쩍 뛰며. 기뻐가지고서. 형체(形體)가 유연(柔軟)하고, 또 몸이 부드럽게 아주 기쁘니까 그렇게 부드럽게 되고 제근(諸根)이 열예(悅豫)야. 모든 안이비설신의 모든 육근이 전부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憂苦悉除하고 垢障咸盡하며 常見諸佛하야 深求正法하며
그리고 우고(憂苦)가 실제(悉除)야. 그동안 뭐 이런저런 개인적인 근심과 고통이 있던 것도 말끔히 씻어진 것처럼 없고 장구(障垢)가 함진(咸盡)이야. 온갖 구장(垢障)이 온갖 때와 마음에 장애되는 그런 것들이 전부 다 깨끗이 가셔져서 함진하며 상견제불(常見諸佛)하야 항상 모든 부처님을 친견해서 심구정법(深求正法)하며 깊이 정법을 구하며
具菩薩根하고 得菩薩力하며 大悲大願이 皆自出生하며 入於諸度의 甚深境界하며 十方佛海가 常現在前하며 於一切智에 深生信樂하야
구보살근(具菩薩根)하고 보살의 근을 갖추고 그러니까 이제는 육천비구가 보살의 행으로 나아가는 그런 입장이 되었다는 거지요. 보살의 모습을 보살의 육근을 갖췄다 이 말이에요. 갖추어서 득보살력(得菩薩力)하고 보살의 근(根)을 갖추니까 보살의 힘을 얻게 되는 거지요. 보살의 힘을 얻으며. 대비(大悲)와 대원(大願)이, 큰 자비와 큰 원력이 여기는 이제 은근히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나오네요. 대비 자비는 관세음보살이고 대원은 지장보살이 되겠지요. 대비와 대원이 개자출생(皆自出生)하며 다 모두 스스로 출생하며 입어제도(入於諸度)의 심심경계(甚深境界)하며 제도(諸度)라고 하는 말은 여러 가지 바라밀(波羅蜜) 그런 뜻인데 육바라밀 또는 십바라밀 ........ 시방불해(十方佛海)가 상현재전(常現在前)하며 앞에 떡 나타나며. ..... 어일체지(於一切智)에 모든 지혜에 있어서 심생신락(深生信樂)하야 깊이 신락(信樂) 믿고 즐겨하는 마음을 내어가지고서
卽白尊者舍利弗言호대 唯願大師는 將引我等하사 往詣於彼勝人之所하소서
즉백존자사리불언(卽白尊者舍利弗言)호대 곧 존자사리불에게 사리불존자에게 고(告)하여 말하되 유원대사(唯願大師)는 그때 여러 비구가 하는 이야기죠. 오직 원하옵노니 대사께서는 장인아등(將引我等)하사 우리들을 이끌어서 왕예어피승인지소(往詣於彼勝人之所)하소서. 저 수승한 사람 처소에 나아가게 해 주십시오. 승인(勝人) 여기서 승인, 수승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문수보살을 말하는 거지요. 여러 비구가 존자사리불에게 이런 간청을 합니다.
時에 舍利弗이 卽與俱行하사 至其所已에 白言호대 仁者하 此諸比丘가 願得奉覲하나이다
時에 舍利弗이 그러니까 사리불이 즉여구행(卽與俱行)하사 곧 더불어 함께 행해서 지기소이(至其所已)에 그 처소, 문수보살이 있는 그 처소에 이른 뒤에 백언(白言)호대 고해 말하되 仁者여 인자하라고 하는데 인자시여 이런 말입니다. 어진이시여, 문수보살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어진이시여 이 여러 비구가 원득봉근(願得奉覲)하나이다 봉근(奉覲) 받들어 만나 뵙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니까 문수보살을 친견할라고 이렇게 원하고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爾時에 文殊師利童子가 無量自在菩薩圍遶하사 幷其大衆으로 如象王廻하야 觀諸比丘하신대 時諸比丘가 頂禮其足하고 合掌恭敬하야 作如是言호대
爾時에 文殊師利童子가 무량자재보살위요(無量自在菩薩圍遶)하사 그때 문수사리동자는 한량없는 자유자재한 힘을 얻은 보살들이 죽 에워싸고 있어요. 그런 보살들에게 에워쌓여있어서 병기대중(幷其大衆)으로 여상왕회(如象王廻)하야 상왕회(象王廻)라고 하는 것은 코끼리가 고개를 돌릴 때 뭐 홱 돌리고 그래 안하지요? 천천히 그 코끼리 고개 돌릴 때 그 거위같이 고개를 돌리는데 한 5분 가까이 그래 걸리지요? 큰 코끼리가 몸을 돌리는 듯이 그와 같이 해서 문수사리가 그렇단 말이에요. 그렇게 해서 관제비구(觀諸比丘)하신대 여러 비구들을 관찰하신대 비구들을 살펴본대 時에 제비구(諸比丘)가 그때 여러 비구가 정례기족(頂禮其足)하고 그 발에다가 모두 이마로써 예배를 하고 합장공경(合掌恭敬)하야 합장하고 공경해서 작여시언(作如是言)호대 이와 같은 말을 하되
我今奉見하고 恭敬禮拜하며 及餘所有一切善根을 唯願仁者文殊師利와 和尙舍利弗과 世尊釋迦牟尼가 皆悉證知하시니라
아금봉견(我今奉見)하고 우리들이 지금에 받들어 친견하옵고 공경예배(恭敬禮拜)하며 공경하고 예배하며 급여소유일체선근(及餘所有一切善根)을 그리고 나머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선근을 유원인자문수사리(唯願仁者文殊師利)와 오직 원하옵노니 어지신 이 문수사리와 화상사리불(和尙舍利弗)과 여기서 화상(和尙)이란 말도 나오지요. 스님을 화상이라 그런 말도 합니다. 화상사리불과 그리고 세존석가모니(世尊釋迦牟尼)가 개실증지(皆悉證知)하시니라. 다 모두가 환히 알고 계시니라. 우리가 지금 이렇게 문수보살 친견하고 공경예배하는 것 이것을 그리고 일체선근(一切善根) 이것을 전부 문수사리와 사리불과 석가모니불까지 다 알고 계신다.
如仁所有如是色身과 如是音聲과 如是相好와 如是自在하야 願我一切를 悉當具得하야지이다
여인소유여시색신(如仁所有如是色身)과 인자와 같이 그런 말입니다. 가지고 소유한 이와 같은 아름다운 모습과 여시음성(如是音聲)과 이와 같은 음성과 여시상호(如是相好)와 여러 가지 삼십이상 팔십종호 그런 모습과 여시자재(如是自在) 이와 같은 자유자재함 이런 것과 같이해서 원아일체(願我一切)를 실당구득(悉當具得)하야지이다. 우리도 문수사리보살 당신과 같이 원하옵노니 그런 모든 일체를 전부 다 마땅히 갖추어 얻게 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문수보살에게 예배를 드리면서 비구들이 문수보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5) 文殊菩薩의 十種趣大乘法
爾時에 文殊師利菩薩이 告諸比丘言하사대 比丘야 若善男子善女人이 成就十種趣大乘法하면 則能速入如來之地어든 菩薩地야 何者가 爲十고
爾時에 文殊師利菩薩이 그때 문수사리보살이 고제비구언(告諸比丘言)하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사대 比丘야 若善男子善女人이 성취십종취대승법(成就十種趣大乘法)하면 열 가지 십종 대승에 나아가는 법을 성취할 것 같으면 선남자선녀가 열 가지 대승에 나아가는 법을 성취할 것 같으면 곧 속히 여래의 지혜에 들어간다. 그런데 여래의 지혜에 들어가는데 하물며 나 같은 보살의 지위겠는가? 이런 말이야. 그 육천비구는 문수보살 같이만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문수보살의 대답은 그래요. “아니야 열 가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요거만 잘 성취할 것 같으면 여래의 지위에 나아가는데 그까짓 보살지위야 뭐 문제가 있겠는가?” 그래 무엇이 열 인가? 何者가 爲十고. 所謂 여기서부터 이제 열 가지 조건이 나오지요.
所謂積集一切善根호대 心無疲厭하며
①적집일체선근(積集一切善根)호대, 일체선근을 쌓아가는 거야. 선을 쌓아가는 거라. 뭐 예를 들어서 어제 초파일이라고 해서 가서 등 달고 참회도 하고 예배올리고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그것도 하나의 선근이에요. 그런 것을 쌓아가되. 그런데 어떻게? 마 어제 했으니까 아이고 오늘은 안 할란다. 이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런데 그래서는 안 된다 이거야. 심무피렴(心無疲厭)이라. 심무피렴이야. 나도 오늘 놀았으면 좋겠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별로 할 일은 없어도 어쨌든 기분이 오늘 놀았으면 싶은데 그러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心無疲厭이야. 일체선근을 닦되 마음에 피로해 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없어야 된다. 어지간하면 할 것 같지요? 이 정도면. 근데 그게 어려운 거에요. 전부 심무피렴(心無疲厭)입니다. 대개 보면은 처음에는 신심을 내서 잘 하다가 좀 하면은 그만 피로해 하고 싫은 생각이 나게 돼 있어요. 사람이 일상 다 나게 돼 있습니다. 그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보살의 지위에 오르고 여래의 지위에 오르려면은 꾸준히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된다는 그걸 이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제일 부족한 것은 그리고 제일 필요한 것은 정진(精進)이다 그런 말이 있지요? 제일 필요한건 정진이에요. 좋은 일 할 줄은 알아요 다 몰라서 안 하는건 아니에요. 그런데 꾸준히 하는게 부족해. 정진이 부족하다 이거에요. 그래서 제일 필요한게 정진이라 그런 말 합니다.
見一切佛하고 承事供養호대 心無疲厭하며
求一切佛法호대 心無疲厭하며
또 ②견일체불(見一切佛)하고 승사공양(承事供養)하되, 모든 깨달으신 분 여기서 일체불(一切佛)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깨달으신 분 선각자를 친견하고 승사하고 공양해. 잘 받들어 섬기고 뭐 박카스도 사오고 뭐 더러 그래요. 공양도 하되 심무피렴(心無疲厭)이야. 한 두 번 오고 말아요 그만. 心無疲厭, 마음에 피렴(疲厭)이 없어야 된다 이거야. 그래 깨달으신 스승되는 분은 부처님이라고 했어요. 일체부처님을 친견하고 승사하고 공양하되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는데 마음에 피렴심이 없어야 된다. 피로해 하거나 싫어함이 없어야 된다. 또 ③구일체불법(求一切佛法)호대, 일체 불법을 구하되 心無疲厭이야. 마음이 피로해 하거나 싫어함이 없어야 돼.
行一切波羅蜜호대 心無疲厭하며
成就一切菩薩三昧호대 心無疲厭하며
④행일체바라밀(行一切波羅蜜)호대 일체바라밀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 이런 것을 실천을 하되 심무피렴이야. 좀 하다가 또 그만 아이구 마 좀 쉴란다 이러는데 그게 아니야. 心無疲厭, 마음에 피렴이 없어야 된다. ⑤성취일체보살삼매(成就一切菩薩三昧)호대 일체보살들의 삼매를 성취하되 마음에 피렴이 없어야 돼. 피로해 하거나 싫어함이 없어야 된다.
次第入一切三世호대 心無疲厭하며
또 ⑥차제입일체삼세(次第入一切三世)호대 순서대로 일체삼세에 들어가되 心無疲厭이야. 이 일체삼세에 들어간다라고 하는 말은 모든 인간이 사는 삶 속에서 보살행을 실천하는 거지요. 뭐 여기는 들어가고 여기는 안 들어가고, 또 과거에는 했는데 뭐 현재는 안하고, 현재는 했는데 미래는 안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를 통해서 다 하는 것, 그래 하되 마음에 피로해하거나 싫어함이 없다.
普嚴淨十方佛刹호대 心無疲厭하며
敎化調伏一切衆生호대 心無疲厭하며
於一切刹一切劫中에 成就菩薩行호대 心無疲厭하며
⑦보엄정시방불찰(普嚴淨十方佛刹)호대 시방불찰(十方佛刹)을 이 세상을 아주 깨끗하게 청소도하고 잘 꾸미고 장엄하되 마음에 피로해하거나 싫어함이 없다. ⑧교화조복일체중생(敎化調伏一切衆生)호대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되 마음에 피렴이 없다. 또 ⑨어일체찰일체겁중(於一切刹一切劫中)에 모든 세계 모든 지역 뭐 동네 구석구석 그리고 매일매일 일체법(一切劫)은 그런 뜻이죠. 매일매일에 성취보살행(成就菩薩行)호대 보살행하는 거야. 어느 동네 어느날 없이 늘 보살행을 성취하되 마음에 피로해하거나 싫어함이 없다.
爲成就一衆生故로 修行一切佛刹微塵數波羅蜜하야 成就如來十力하고 如是次第爲成熟一切衆生界하야 成就如來一切力호대 心無疲厭이니라
⑩위성취일중생고(爲成就一衆生故)로 한 중생을 참... 여기 중요한 말이에요. 한 중생을 만들자고 성취시키기위한 까닭에 뭘 하느냐? 수행일체불찰미진수바라밀(修行一切佛刹微塵數波羅蜜)을 수행해. 일체 먼지와 같이 많고 많은 바라밀을 수행을 해서 여래(如來)의 십력(十力)을 성취하고,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열 가지 힘을 성취하고 이와같이 차제(次第)로 일체중생을 또 한 사람 할 때는 한 사람 성취할 때마다 일체불찰미진수바라밀(一切佛刹微塵數波羅蜜)을 수행(修行)해서 여래의 십력을 갖추고 또 한사람 할 때는 또 그렇게 하고 또 그렇게 하고 이렇게 한다는 말입니다. 차제(次第)고로 일체중생계(一切衆生界)를 성숙(成熟)시켜서 如來의 一切의 힘을 성취하되 心無疲厭이니라. 마음에 피로해하거나 싫어함이 없어야 하느니라. 참 어려운 주문이지요. 왠만하면은 뭐 문수보살같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래와 같이 된다. 이런 말을 문수보살이 하고 있습니다.
比丘야 若善男子善女人이 成就深信하야 發此十種無疲厭心하며 則能長養一切善根하며 捨離一切諸生死趣하며 超過一切世間種性하며
比丘야 만약 善男子善女人이 성취심신(成就深信)하야 깊고 깊은 믿음을 성취해서 이 열 가지 無疲厭心 피렴이 없는 피로해하거나 싫어함이 없는 그런 마음을 발할 것 같으면, 발하면 해야 돼요. 발할 것 같으면 능장양일체선근(能長養一切善根)하며 일체선근을 장량(長養) 길러낸다 이 말입니다. 장량. 또 일체 모든 생사(生死)의 갈래를 사리(捨離)한다 떠나버린다 버리고 떠나버린다. 그리고 초과일체세간종성(超過一切世間種性)한다. 일체 세간의 종성을 초과(超過)한다. 뭐 김씨다 이씨다 박씨다 여기서는요. 인도의 사정이기 때문에 무슨 바라문이다 찰제리다 무슨 천민이다 뭐 불가촉천민이다. 이미 그런 종성(種性) 그런 것들을 전부 초월해버린다 이겁니다.
不墮聲聞酸支佛地하며 生一切如來家하며 具一切菩薩願하며 學習一切如來功德하며 修行一切菩薩諸行하며 得如來力하야 摧伏衆魔와 及諸外道하며 亦能除滅一切煩惱하고 入菩薩地하야 近如來地하리라
하며 불타성문산지불지(不墮聲聞酸支佛地)하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위에도 떨어지지 아니해. 그건 이제 소승이니까요. 자기만 생각하는 소승의 경지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생일체여래가(生一切如來家)하며 모든 여래의 집에 태어나게 돼. 구일체보살원(具一切菩薩願)하며 일체보살의 원력을 또 갖춰. 학습일체여래공덕(學習一切如來功德)이야. 일체 여래의 공덕을 또 학습하게 돼. 늘 그런 부처님의 공덕을 공부하게 된다 이거에요. 그 一切菩薩의 行을 또 修行하게 돼. 득여래력(得如來力) 여래의 힘을 또 얻게 돼. 해서 최복중마(摧伏衆魔)와 온갖 마구니와 그리고 모든 외도들을 최복(摧伏)해. 꺾어서 항복받으며 역능제멸일체번뇌(亦能除滅一切煩惱)하고 일체번뇌들을 제거해 소멸하고 번뇌가 싹 사라져버리고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의 지위에 가까워지나니라. 근여래지(近如來地)하리라. 여래의 지위에 가까워지리라.
그 다음에 비구중의 청법득익(聽法得益)이라. 그런 말을 듣고 이익을 얻는 그런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6) 比丘衆의 聽法得益
時諸比丘가 聞此法已하고 則得三昧하니 名無碍眼見一切佛境界라 得此三昧故로 悉見......
時에 모든 比丘가 문차법이(聞此法已)하고 거기 설명한 그런 내용의 법문을 듣고 즉득삼매(則得三昧)하니 곧 삼매를 얻었으니 그 삼매이름이 무애안견일체불경계(無碍眼見一切佛境界), 그 삼매 이름이 무애안(無碍眼) 걸림이 없는 눈으로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본다 하는 그런 삼매야 삼매이름이. 득차삼매고(得此三昧故)로 이 삼매를 얻은 까닭에 실견(悉見) 다 본다. 아까 무애안이라고 했으니까 무애안으로 일체 부처님경계를 보는 삼매라고 했으니까 이제 그 능력이 발휘되는 거지요.
悉見十方無量無邊一切世界諸佛如來와 及其所有道場衆會하며 亦悉見彼十方世界一切諸趣所有衆生하며 亦悉見彼一切世界種種差別하며 亦悉見彼一切世界所有微塵하며 亦悉見彼諸世界中一切衆生의 所住宮殿이 以種種寶로 而爲莊嚴하며
十方의 한량없고 다함이 없는 일체세계(一切世界)의 제불여래(諸佛如來)와 그리고 그들이 있는바 도량중회(道場衆會) 도량에 모여 있는 대중들을 실견(實見)하며 모두모두 다 보며 또 亦悉見 또 모두모두 다 본다. 무엇을? 저 시방세계일체제취(十方世界一切諸趣) 뭐 지옥아귀축생 이런 거에요. 지옥 ·아귀·축생·인도·천도·아수라 이런데 있는 모든 중생들을 다 본다. 또 저 一切世界 가지가지 차별을 또 다 보고, 또한 일체세간 소유미진(所有微塵) 작은 먼지를 낱낱이 다 보며 또한 저 세계 모든 세계가운데 있는 일체중생의 소주궁전(所住宮殿) 그들이 어떤 궁에 사는지 또 어떤 가지가지 보배로써 장엄이 되어있으며 또한 그런 것들을 다 본다. 어떤 뭘로 집이 꾸며져 있는 것 까지를 다 본다. 보며.
及亦聞彼諸佛如來種種言音으로 演說諸法하야 文辭訓釋을 悉皆解了하며
급역(及亦) 또 듣는다 이거야 여기서는. 저 모든 부처님 여래(如來) 종종언음(種種言音)으로 諸法을 연설(演說)해서 여러 가지 법을 연설하는데 문사훈석(文辭訓釋) 그 문장과 그 말씀과 훈석(訓釋) 그 해석하는 것 훈(訓)은 그냥 음대로 읽는 걸 훈이라 그러고요. 석(釋)은 그걸 풀이하는 것을 석이라 그래요. 문사훈석(文辭訓釋) 이런 것을 실개해요(悉皆解了)해. 해결해. 전부다 다 알아. 전부다 다 알아서. 알며.
亦能觀察彼世界中一切衆生의 諸根心欲하며
亦能憶念彼世界中一切衆生의 前後十生하며
亦能憶念彼世界中過去未來의 各十劫事하며
또한 능히 역능관찰피세계중일체중생(亦能觀察彼世界中一切衆生)의 제근심욕(諸根心欲)을 관찰해. 중생들의 모든 근의 마음의 욕망, 마음속에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중생들의 마음속에 하고자 하는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보고 다 관찰한다. 다 안다. 역능억념피세계중일체중생(亦能憶念彼世界中一切衆生)의 전후십생(前後十生)한다. 일체중생의 전후십생, 과거생의 십 열생 동안 무엇을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 집에 어떤 성씨로 뭐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떻게 태어났었는지 과거 십생을 알고 또 미래십생(未來十生) 후의 십생까지도 다 안다. 다음 생은 어떨 것이고, 그 다음 생은 어떻게 될 것이고, 그 다음 생은 어떻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십생(十生)까지도 다 아는 그런 능력이 갖춰진다. 또 亦能憶念(亦能憶念) 저 세계 가운데 과거 미래의 각십겁사(各十劫事) 그 세계의 십겁(十劫)동안의 일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거 뭐 이런거 알면 참 영험하고 좋지요. 십겁(十劫)동안 일어난 그런 일들을 전부 기억해서 다 알아.
亦能憶念彼諸如來의 十本生事와 十成正覺과 十轉法輪과 十種神通과 十種說法과 十種敎誡와 十種辯才하며
또 역능억념피제여래(亦能憶念彼諸如來)의 십본생사(十本生事)와 십본생사 라고 하는 것은 과거에 열 번 태어나 가지고 여래가 어떤 보살행을 했는지 십 생의 그런 어떤 그 생활을 다 안다. 다 기억한다 이거야. 또 십성정각(十成正覺) 열 번 정각(正覺)을 이루는 것, 또 열 번 법륜(敎誡)을 굴리는 것, 열 가지 신통(神通), 열 가지 설법(說法), 또 열 가지 교계(敎誡) 가르침, 또 열 가지 변재(辯才), 이런 것들을 전부 기억해서 다 알며.
又卽成就十千菩提心과 十千三昧와 十千波羅蜜하야 悉皆淸淨하야 得大智慧圓滿光明하며 得菩薩十神通柔軟微妙하야 住菩薩心하야 堅固不動하니라
우즉성취(又卽成就) 또 곧 십천보리심(十千菩提心)과 이거는 이제 십천(十千)은 만(萬). 만 번의 보리심과 보리심을 성취함과 또 십천삼매(十千三昧) 만의 삼매와 십천바라밀(十千波羅蜜) 만 가지의 바라밀을 성취해서 실개청정(悉皆淸淨)하야 모두모두 다 원만히 갖춘다. 이 청정(淸淨)이라고 하는 말은 다 원만히 갖추는 걸 말하죠. 다 원만해서 득대지혜원만광명(得大智慧圓滿光明)하야 큰 지혜 원만광명을 얻어가지고서 보살의 열 가지 신통 유연하고 미묘한 것을 얻어가지고서 주보살심(住菩薩心)하야 견고부동(堅固不動)하느니라. 보살의 마음에 머물러가지고서 견고부동, 절대 움직이지 않는 보살의 마음이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는 그런 견고하고 움직이지 아니한 그러한 위치에 떡 머물게 된다. 비구들이 문수보살에 대한 그런 이야기 그걸 이제 듣고 얻는 덕에 대한 이야기지요.
그 다음에는 권청보현행(勸請普賢行)입니다. 비구들에게 앞으로... 문수보살을 따라나서긴 했어요. 그렇지마는 문수보살은 다음 선지식을 소개하면서 선재동자를 따라가도록 이야기가 돼 가지요. 그러면 그렇게 많은 선지식을 친견하면서 계속 불법(佛法)을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새로운 스승에게 공부하고 또 새로운 스승에게 공부하고 이렇게 지치지 않고 싫증내지 않고 그러게 할려면은 무슨 마음이 필요하냐? 그건 보살심(菩薩心)이다. 보살심의 대표는 보현의 행위를 말한다. 그래서 보현행(普賢行)하기를 권(勸)하고 청(請)하는 거지요.
(7) 勸請普賢行
爾時에 文殊師利菩薩이 勸諸比丘하사 住普賢行케하시니
그때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권제비구(勸諸比丘)하사 여러 비구들에게 권하사 주보현행(住普賢行)케하시니 보현행(普賢行)에 머물게 했다. 이 보현행(普賢行)이라고 하는 것은 보살행(菩薩行)의 대표지요. 보살행 중에서는 제일 대표되는 보살행이 보현행입니다. 그 우리나라 고려 때 균여(均如)스님의 향가(鄕歌), 그 보현행 십일수를 가지고 향가를 썼지요. 그것도 이제 신라향가하고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뭐 큰 차이 없이 그렇게 우리나라 고대문학으로 아주 높이 평가하는 그런 열 가지 그런 원왕시죠. 원왕시 중에 보현행을 노래한 그런 뜻도 있고 그렇습니다.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이 말하자면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지요. 보현행에 머물게 하시니 이 책 제일 끄트머리에 보현행원품이에요. 마지막엔 보현행을 우리가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住普賢行已에 入大願海하며 入大願海已에 成就大願海하며 以成就大願海故로 心淸淨하며 心淸淨故로 身淸淨하며 身淸淨故로 身輕利하며 身淸淨輕利故로 得大神通하야 無有退轉하며
주보현행이(住普賢行已)에 보현행에 머물고 난 뒤에 입대원해(入大願海)하며 큰 원의 바다에 들어가며 원력이 있어야 되겠네요. 입대원해이(入大願海已)에 큰 원력의 바다에 들어가고 나서 성취대원해(成就大願海)하며 대원의 바다를 성취하며 대원의 바다를 성취한 까닭에 마음이 청정해지고 마음이 청정해진 까닭에 몸이 청정해져. 몸이 청정해진고로 몸이 경리(輕利)해 가뿐해. 몸도 마음도 다 청정해지니까 몸이 가뿐해. 몸이 청정하고 가뿐해진 까닭에 어떻게? 득대신통(得大神通)해. 크게 신통을 얻었어. 득대신통을 얻어서 무유퇴전(無有退轉)이야. 퇴전(退轉)함이 없다. 다시는 물러섬이 없어. 아주 기분이 좋고 몸이 가뿐하고 그저 앞으로 앞으로 뭐 53선지식이 아니라 뭐 530명 선지식이라하더라도 다 친견하고 싶은 그런 기분 좋은 상태로 지금 출발선상에 이렇게 있는 거지요. 그래서 경리(輕利) 뭐 마음이 청정하고 몸이 청정하고 또 몸이 가뿐하고 그래서 아주 신통을 얻고 그래서 전혀 물러설 기색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없다.
得此神通故로 不離文殊師利足下하고 普於十方一切佛所에 悉現其身하야 具足成就一切佛法하니라
그래서 득차신통고(得此神通故)로 이러한 신통(神通)을 얻은 까닭에 부리문수사리족하(不離文殊師利足下) 문수사리보살의 발밑을 떠나지 아니해. 이제는 뭐 죽으나사나 문수사리보살의 밑에 산다. 이런 뜻이 돼요. 문수사리보살의 족하(足下)를 떠나지 아니하고 보어시방일체불소(普於十方一切佛所)에 널리 시방일체부처님 처소에서 실현기신(悉現其身)하야 모두 다 그 몸을 나타내서 구족성취일체불법(具足成就一切佛法)하니라. 일체불법(一切佛法)을 잘 갖추고 모두 성취(成就)하였다.
이렇게 해서 육천 명의 비구는 결국은 성문(聲聞)이죠. 다시 말해서 소승(小乘)들입니다. 솔직하게 소승들인데 요컨대 이 소승들이 대승보살행(大乘菩薩行)으로 나아가는 그런 과정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 이 육천 비구가 행해 온* 보살행 보현행에 머물게 하다. 보살심(菩薩心)에 머물게 하라 라고 하는 이런 이야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인데 저 앞에는 보면은 비구들이 성문들이 이 자리에 있었지만은 그것을 하나도 못 봤다. 못 본 이유를 이야기하고 그랬지요. 이 법회가 이루어지는 것을 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 처음엔 그렇게 나오다가 이제 여기 이 사람들이 문수사리보살이 가는 것을 보고 문수보살을 따라갈려고 하는 그 마음은 뭡니까? 이제는 소승(小乘)으로 살지를 않고 대승보살행(大乘菩薩行)의 삶으로 전향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수보살이 인간세상으로 가잖아요. 그런데 이 비구들은 출가한 비구들인데 문수보살이 인간세상으로 가는데 그 보살행 하러가는 길인데 자기들도 인간세상으로 따라가는 거에요. 지금 인간세상으로 가고 있는 거야. 그건 뭔가 하면은 출가승단(出家僧團)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은 바람직한 불교가 아니고 결국은 연꽃이 있는 데처럼 인간 세상에 사는 이 진흙구덩이 속 결국 거기서 삶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그게 바람직한 불교지, 그대로 출가한 입장에서 성문(聲聞)으로 혼자 그렇게 있는 것 그것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기 전부 인간세상으로 데리고 오는 거에요. 산중에 있던 육천비구를 전부 세상 속으로 데리고 가는 그런 입장이 돼 버립니다.
그게 이제 불교가 할 일이다 이거야. 그게 불교가 할 일이다. 그런데 대승으로 소승(小乘)에서 대승(大乘)으로 전환하는 그런 장면이 아주 의미심장하게 담겨져 있어요. 사실은. 처음에는 그러니까 이 사리불과 목련 이런 이들이 대승.. 그야말로 부처님의 큰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화엄경 법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줄조차도 모르고 그 회중에 있었으되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고 무슨 법문인지 어떤 법회가 이루어지는지도 몰랐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가 돼 있다가 이제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하지요. 눈을 뜨고 문수보살을 따라나설 줄 알고 문수보살 인간세상으로 가는데 또 따라서 인간세상으로 가고. 그래 이제 여기에 성문을 버리고 보살심에 머물고 보현행 보살행에 머문다고 하는 그런 입장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게 이제 소승성문을 그냥 소승성문으로 내버려두지를 않고 보살로 보살행으로 전환을 하면 그건 이제 말하자면 보살비구(菩薩比丘)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경전에 보면 보살비구라 하는 말이 나오는데 비구는 비구되 보살행(菩薩行)을 하는 비구(比丘)다 하는 그런 뜻에서 그게 이제 바람직한 비구가 되는 거지요. 여기는 이제 육천비구가 보살비구(菩薩比丘)가 되는 거에요. 보살행(菩薩行)에 머무니까 보현행(普賢行)에 머물고 보살심(菩薩心)에 머무니까 그래서 이제 결국은 불교의 바람직한 길은 보살행을 하는 그런 길로 나아가게 되는 그런 것을 은근히 글 속에서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화엄경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 스물한 권인데 그 중에서 두 권, 육십 권, 육십일 권 이렇게 마치고 그 다음에 육십이 권 이렇게 이제 전체 팔십 권 중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두 권 마쳐졌어요. 이제 서서히 선재동자가 아직은 안 나타났는데 나타날 듯 나타날 듯한 그런 낌새가 보입니다. 왜냐? 문수보살 나왔죠? 그리고 육천 비구가 나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이제 보면 오백 우바새(優婆塞) 오백 우바이(優婆夷)가 나오고 그러면 곧 따라서 오백동자 오백동녀가 나오게 돼요. 이렇게 해서 이제 드디어 선재동자(善財童子)의 구법행각(求法行脚)이 이어지게 됩니다.
첫댓글 파랑새님, 정성어린 공양 감사합니다. 기분은 괜찮으시지요 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행이 따르지 않는 말은 힘이 없다.우리의 일상에서 다 나타나고 있지요.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 !!!!!!!!!!!!! 파랑새님 덕분에 고맙고 고마운 마음으로 화엄경 맛나게 공양받고 있읍니다 ^^ ↑ 왠 기분 ^^ 보현행자는 매일 매일 밝고 맑은 기쁜 마음 ^^..................._()_
감사합니다. 잘 읽고 또 읽고 배우겠습니다. _()_
불교의 바람직한 길은 보살행을 하는 그런 길로 나아 가는 길이다. 점만 찍고 갑니다. 다시 공부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