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탈출 22,20-26. 제2독서 : 1테살 1,5ㄴ-10. 복 음 : 마태 22,34-40.
어느덧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가을 단풍 구경들은 하셨나요? 저는 아직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성당 앞 공원의 단풍나무들과 주변의 풍경 속에서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변화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맘쯤이면 김용의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를 자주 듣게 되는데요. 10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올수록 잊혀지지 않는 옛 추억이 떠올라 혼자 웃음을 짓곤 합니다. 벌써 20년 전의 일입니다. 1997년 10월의 마지막 날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서 뭔가 작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친구 누님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가서 파마와 염색을 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새치가 나던 터라 변화를 주고 싶었죠. 그런데 졸다가 눈을 떴더니 서비스로 머리카락 일부를 탈색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신학교 입시준비로 주교님 면담을 앞두던 때라 성소국장 신부님께 제정신이냐면서 엄청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일상의 변화를 주면서 시월의 마지막 밤에 멋진 추억을 만들어보세요. 마침 오늘 성경 말씀도 우리에게 “사랑의 새계명”에 관하여 전해줍니다.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의 성경 전체를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실현되어야 하고 이웃을 미워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보다 먼저였음을 기억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주신 것을 말이죠(1요한 4,7-21 참조).
한편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하신 것처럼 십계명 중에서 1-3계명은 하느님 사랑에 관하여, 4-10계명은 이웃 사랑에 관하여 전해줍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면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라고 명하신 십계명의 가르침을 예수님은 왜 “새계명”이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요한복음 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꿇으신 다음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아주십니다. 그리고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가르쳐주십니다. 당시에 발을 씻는 행위는 미천한 종들이 주인에게 행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을 낮추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당신의 본을 따라 그대로 실천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이는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라는 황금률의 가르침과도 통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하지 말고, 과부나 고아를 억누르지 말며,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하신 제1독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처럼 누군가 남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하느님이 그 사람에게 분노를 터뜨리실지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일상 속에서 체험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아끼고 보듬을 수 있을 것이며 사랑의 실천에 지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제2독서의 말씀처럼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복수동)의 모든 신자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라는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사랑”이라는 말을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이나 듣고 말하시나요? 그때마다 어떤 감흥이 느껴지나요? 이 말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그 사랑의 깊이를 얼마나 체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상에서 전혀 다른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가정의 사랑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인 「사랑의 기쁨」 133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표현하는 행동은 넓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낌없는 말과 더불어 끊임없이 몸에 배도록 하여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는 “세 가지 말을 반드시 하여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거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세 가지 말은,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에서 우리는 강압적이지 않게 ‘해도 될까요?’라고 청합니다. 이기적이지 않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 가운데 누군가 자기 잘못을 깨닫고 ‘미안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가정은 평화와 기쁨을 경험합니다.”이러한 말을 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고 날마다 계속하도록 합시다.
본당 공동체 안에서의 봉사도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현재 우리 본당은 사목회장님 선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지만 구역장, 분과장, 말씀지기, 단체장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고 봉사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올해 임기를 마치는 분들이 후임자를 찾지 못해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저는 소공동체의 특성상 구역이나 분과, 단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며 내부에서 후임자를 정하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봉사자들의 모습이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질책하기보다는 수고한다, 잘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자주 건네며 응원해주세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본당 공동체에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