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안
오리겐 신학에 대한 논쟁이 있는 동안 동방교회로부터 추방되기 전에 390년 게르마누스와 함께 이집트에 거주하는 금욕 수도적 단체들을, 콥트 수도사들(Coptic monks, Egyptian=Gypt=Copt)을 방문했다. 고요하고 정숙한 오아시스는 고대사회의 혼란과 들떠있는 곳과는 다르다는 것에서 그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그곳에 오리게니스트(Origenist) 수도사들에게 대대적인 핍박이 일어나자 그들은 이집트를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그곳에서 카시안은 크리소스톰으로부터 부제로 임명을 받았다. 그의 친구 게르마누스는 재정관이 되었다. 크리소스톰을 열정적으로 따라 헌신적 삶을 살았다. 그런데 404년 여러 어려움 속에 직면하여 모함을 받은 크리소스톰이 콘스탄티노플 감독직에서 추방을 당하자 카시안은 로마로 향했다. 그의 친구며 스승인 게르마누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 없었다.
로마로 간 카시안은 로마감독 이노센트 1세를 비롯한 레오 1세와 교회 지도자들을 만났다.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던 것은 서고트족 우두머리 알라릭에 의해 로마가 포위되었기 때문이다. 415년 카시안은 그곳을 떠난 그는 남부 프랑스 마르세유에 거하였다. 그곳에 거하면서 남성들과 여성들을 위한 두 개의 수도원들을 지었다. 그 중 하나는 빅토르 수도원(Abbey of St. Victor)이다. 그는 세미 펠라기아니즘을 지지한다고 하여 공격을 받았지만 로마감독의 지지를 받았다. 이곳에서 남은 평생을 보냈다.
426년 카시안은 『회담』(Conference)을 썼다. 이 작품에서 이집트에 있는 유명한 대수도원장들과 금욕주의자들과의 초기 경험들을 싣고 있다. 은자들의 삶에 대한 규율들을 담고 있다. 24가지 회담을 담고 있다. 회담 속에는 이집트 수도원장들의 지혜들과 사막의 영성을 이해하는 귀한 글들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고올과 서방교회의 수도사들의 사상들과 예식들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첫 『회담』에서 카시안은 결론으로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영적 삶에 매진해야하는 수도사들의 이유들을 말하기 시작하며 영적 삶의 목적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 『회담』에 등장하는 주요한 회담자는 모세이다. 그는 영적 삶의 목적을 스코푸스 (scopos)라 부른다. 스코푸스는 모든 노력, 노력, 그리고 희생을 조용하게 견딜 수 있는 단계를, 즉 순결한 마음을 말한다. 수도사들이 매진하는 실천들, 활동들, 헌신들, 그리고 여러 다른 활동들을 통해 이 목적에 이를 수 없다. 이런 것들은 보조적인 활동들일 뿐이다. 계속적인 회담을 통해 스코푸스, 순결한 마음에 이를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한다. 우리의 부패한 의도와 사상으로 인해 순결한 마음에 이를 수 없다. 상실되고 어긋난 우리의 의도와 사상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의 게으름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에게로 우리의 눈의 초점을 세워야 한다. 순결한 마음이 결국 이르는 곳은 하늘나라이다. 이 왕국에서 우리는 영원한 기쁨과 지속적인 평정을 가질 것이다.
두 번째 『회담』에서 모세는 첫 번째 회담에서 끝마친 개념을 발전시켜 나간다. 이 개념은 분별력이다. 수도사들은 영적 지리들과 활동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은 하나님의 은혜의 활동으로 말미암는 것이지 인간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분별은 불가능하지만 항상 거룩한 삶으로 영적 성숙을 이뤄나가야 한다. 이러한 내용이 3-4번째 회담까지 나간다.
다섯 번째 『회담』에서 세라피온 대수도원장을 만난 존 카시안은 우리를 공격하는 여러 적들을 열거한다. 동시에 실천적 영성을 지속해 나간다. 이런 면에서 카시안은 실천적 신학자 이다. 그가 말하는 8가지 악행을 우리들에게 말한다. 폭음, 간음, 탐욕, 분노, 슬픔, 나태(마음의 걱정이나 약함), 자만, 그리고 허영이다. 이것을 다시 두 가지로 분류한다. 영적 악행들과 육적 악행이다. 세라피온은 예수님과 아담과 대화하면서 더 높은 악행을 극복하면 자연스럽게 낮은 악행들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폭음, 허영, 그리고 자만으로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이 세 가지를 극복하여 아담을 다른 악행들을 세상을 소개했고 예수님은 승리를 우리들에게 소개했다.
그래서 세라피온은 6가지 악행은 허영과 자만에서 모두 나온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허영과 자만을 극복하면 모든 악행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서는 이것을 극복하기 어렵다. 계속적으로 기도하지만 불가능하다. 투쟁하며 싸워야만 한다. 우리의 싸움을 육적 싸움이 아니라 영적 싸움이다.
14번째 『회담』에서 우리는 대수도원장 네스토리우스가 말하는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길을 의미하는 프락티케이, 그리고 사색하는 길을 의미하는 데오레이티케이이다. 프락티케이는 악행들의 성격을 아는 길을 의미한다. 이를 알고 극복하기 위하는 첫 번째 길은 고독이며 고독을 통해 순결한 마음을 성취할 수 있다. 두 번째 길은 공동체 안에 있는 것이다. 사회적 덕행들을 (친절, 봉사, 가르침, 중재, 치유 등등을) 행한다는 것이다. 이러 길을 걸으면서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부르심이다.
두 번째 길인 프락티케이, 즉 실천적 길은 먼저 사색하는 길에 앞서 행해져야만 한다. 사색은 신적인 것들을 분별하는 것이고 거룩한 뜻을 알기 위해 역사적인 해석과 영적 이해가 요구된다고 한다. 이런 분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을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그 결과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된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해해야만 한다. 세상의 유혹이 밀어올 때 하나님께 계속하여 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기도해야만 한다.
9-10번째 『회담』에서 카시안은 기도가 얼마나 영적 삶에 중요한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13번째『회담』에서 자유의지와 은혜를 다루고 있다. 어거스틴의 견해와 비교된다. 어거스틴의 제자들의 견해가 카시안의 제자들의 견해를 이기게 된다.
또 그가 쓴 『관행』(Institutes)은 수도원제도에 대한 소논문으로 서방 수도원제도에 비평적 영향을 끼쳤다. 특별히 금욕적 삶과 신비적 삶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네스토리아니즘에 반대하는 글을, 『성육신에 대하여』를 썼다. 『회담』과 『관행』을 통해 그는 이집트 사막의 은자들의 지혜들을 형식화 했다.
세 번째 그의 대표적 작품은 『네스토리우스에 반대한 성육신에 대하여』이다. 로마감독 레오의 부탁으로 쓴 7권의 책이다. 네스토리아니즘과 펠라기아니즘간의 유사점들을 처음으로 밝히고 있다. 네스토리안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죄의 흔적이 전혀 없는 단순한 사람으로 사신 분으로 보고 있으며,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죄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세례시에 비로소 예수는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그가 529년 오라예 종교회의에서 세미 펠라기인으로 정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방교회 수도원제도의 시발자라고 할 수 있는 베네닉트와 로마감독 레오 1세는 카시안에게 성육신에 대한 글을 쓰라고 했으며, 로마감독 그레고리는 카시안의 8가지 원리적 악행들을 취하여 7가지 죽음에 이르는 죄들을 고안해 내었다. 그는 철저하게 어거스틴의 신학에 반대했다.
본문
562년에 쓴 『관행』의 1권에서 카시안은 기독교인의 성경연구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1 세상 지혜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 즉 세속적 지식을 열정을 가지고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깨달았을 때, 세속 저자들이 권위 있고 널리 알려진 전통을 가졌기 때문에 성경 학자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나는 매우 슬펐습니다. 로마감독 존경받는 아가페투스와 함께 나는 로마 시에 있는 기독교 학교들이 훌륭한 학자들을 모시는데 전력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또 그 학자들이 마음껏 발표하고 활동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체제가 이미 알렉산드리아에 오랫동안 있었고, 히브리인들이 시리아 시인 니시비스에 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지속적인 전쟁들과 이태리 왕국의 잦은 전투들로 인해 이러한 임무들을 내가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즉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위해 신적 사랑에 감복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학자가 쓴 책들을 통해 하나님은 성경의 본문 해석과 세속적 서신들의 간략한 내용이 펼쳐지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세상 지식이나 영혼구원을 위한 지식을 받고 있지만 웅변과 같은 것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초기 학자들의 책들은 우리들과 후세인들에게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가끔 질문하는 여러 의문들의 해결을 이들의 책들을 통해 분명히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야곱이 꿈속에서 사닥다리를 보고 주님을 묵상하게 이른 것처럼 교부들의 존경받는 주석들을 통해 성경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합시다. 성경 주석을 보면,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했던 야곱의 사닥다리에서처럼(창 28:12), 또 주님께서 약한 자들에게 손을 내미시면서 자신을 향해 묵상하는 자들을 올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읽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한 후에 시편을 배우며 지속적으로 저자들이 의도하는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신적 권위에 의해 쓰인 책들을 읽기를 바랍니다. 시편들은 깊은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제거되기 어렵기 때문에 훈련받지 않은 마음으로 고정되지 않도록 성경을 기록한 자들의 실수들을 닮지 않도록 합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게 되면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 행복에 이르게 됩니다. 또 인간적 사상들을 배제할 수 있고 신적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게 됩니다. 불명확한 구절들을 묻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되고 보다 더 넓은 지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히브리서에서 신약성경 시대에 구약성경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가
존 카시안의 신학은 어거스틴의 예정론, 은혜, 그리고 자유의지에 반대하는데서 출발한다. 그의 가르침의 주요한 두 가지는 하나는 헬라 신 플라톤 철학적 사상을 담은 인간론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수도원의 금욕적 삶을 살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성경은 부차적이고 자신의 노력이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전적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자유의지를 가지고 거룩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더욱이 그는 보편구원을 주장한다. 이것이 곧 수도원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