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가 인문학・경영학 책까지 낸다는 게 색달라 보입니다.
“저희 집안이 할아버지, 아버지 3대째 목사 집안이에요. 저도 원래 목회를 하려 했고요.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신앙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섬기는 종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내 이웃,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이해하게 돕는 인문학이 그래서 필요하고요. 저는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세상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세상과의 호환성이 없다는 게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방대한 자료들을 섭렵해 카라바지오, 엘 그레코에 관한 책을 쓰셨는데요. 어떻게 미술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2000년 10월, 16세기 말 중국 명나라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리치를 연구하기 위해 로마의 예수회 고문서 보관실에서 문헌조사를 하던 때였어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었지요. 오후 3시면 그곳이 문을 닫는 바람에 갈 곳이 없어 우연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성당에 들렀다 카라바지오의 작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말에서 떨어져서 회심하는 장면인데,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그림이 그려진 배경에는 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카라바지오와 그 시대를 연구했습니다. 마테오리치와 카라바지오는 1610년 같은 해에 한 사람은 중국, 한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극적인 삶을 마감한 동시대 인물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에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카라바지오 그림 40여 점을 다 찾아다니면서 보았고, 한국에 와서 처음 낸 책이 카라바지오에 관한 책이었지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과 《르네상스 창조경영》은 CEO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꼽히던데요.
“삼성 이건희 회장이 ‘창조경영’을 화두로 던진 후 경영학자들 사이에 ‘창조경영’이 무엇인지 정의를 가지고 논란이 일던 때였어요. 바티칸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같이 감상하던 아내가 ‘저 천재성, 창조성을 경영과 연결시킬 수 없을까?’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아내와 함께 쓴 책이 《르네상스 창조경영》이죠. 저는 작품에 관해, 아내(최선미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영적인 측면에서 썼습니다. 그것도 재미로 썼는데, 삼성경제연구소 ‘세리 CEO’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거예요. CEO 1만 명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세리 CEO의 파급력은 엄청났습니다. 그 후 여기저기 기업체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부르는 거예요.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제가 연세대 신학과 82학번인데, 대학시절에 난지도에 살면서 빈민운동을 했거든요.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만나보니 너무 불쌍한 거예요. 그분들이야말로 정말 외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최고결정자인 그들이 누구와 의논하고, 누구한테 기대겠습니까? 그분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피렌체의 메디치 가를 소개했지요. 메디치 가는 미켈란젤로를 양자로 받아들여 세계 최고의 예술가로 길러냈고, 지동설을 주장해 탄압받던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후원해 천문학 발전에 공헌했죠. 오페라가 처음 탄생한 곳도 메디치 가문의 궁정이었고,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하는 서양의 식사예법이 전 유럽에 확산되게 한 것도 메디치 가였습니다. 메디치 가의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인문학적 통찰을 갖춘 경영자의 전범이 될 만한 사람인데, 그는 그리스의 고대 철학자 플라톤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기르던 플라톤 아카데미를 부활시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와 함께 피렌체의 메디치 가를 찾아 ‘부자가 한 시대를 위해 이렇게 자신을 바쳤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분이 ‘플라톤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당장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다’고 했지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은 그 메디치 가에 대해 쓴 책입니다.”
최근에 펴낸 마키아벨리 책은 색다른 해석으로 화제가 되었지요?
“어느 기업의 공장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다 처음으로 조는 사람을 발견했어요. ‘내 콘텐츠가 문제다. 그동안 너무 상위그룹에 초점을 맞췄구나’라고 크게 반성했지요. 약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강자의 처세론’으로 받아들여진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사실 약자였어요. 메디치 가를 위해 쓴 《군주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화가 나서 완전히 주체적인 인간으로 변모하죠. 피렌체성벽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을 때는 윗사람의 지시도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거부했습니다. 약자가 주체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에 우리 시대를 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분이라도 그것을 읽고 자기성찰을 할 수 있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요. 제 지식과 학문, 경험으로 우리 사회에 공헌하는 게 제 인생의 목표니까요.”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인문학은 그 사회의 리더가 배워야 할 공부로, 과거 경험으로부터 지혜를 얻는 역사, 윤리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철학,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말하기와 쓰기를 모두 아우릅니다. 그런데 18세기 유럽대학에서 전공을 분리하기 시작한 후 세분화가 가속화되었고, 점차 종합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진 거지요. 지금 인문학 열풍에 불을 지핀 것은 스티브 잡스라고 봐요. 인문학에 기술과 경영을 접목시킨 스티브 잡스를 보면서 ‘돈을 벌려면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퍼진 거지요. 인문학 강사나 저자가 인기를 끌고, 서울대에 인문학 고위경영자 과정까지 생기고요. 플라톤 아카데미는 이 열풍이 방향을 잡는 데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열풍이 자칫 처세를 위한 것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한때의 흐름으로 끝나버리지 않도록요. 인문학적 성찰이 사회 곳곳에 퍼지도록 마중물 역할도 해야 하고요. 지난해에는 동양고전, 올해에는 서양고전에 대해 매주 공개강연을 하고 있는데, 서울대 강당에서 열린 강의에 2000명이 들어와 좌석을 꽉 채우고도 서서 듣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호응이 높습니다. 강사 선정에도 심혈을 기울입니다. 자문교수단이 얼마나 내공이 있는 학자인지 연구 자료들을 모두 검토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사람은 제외시킵니다. 강원도 정선 교육청과 함께 정선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도 준비 중인데, ‘자살’ ‘왕따’ 같은 청소년 문제를 인문학적 성찰로 돌아보게 할 생각입니다.”
이 분야 저 분야를 넘나들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가슴을 채우고, 그걸 다시 우리 사회에 전파하고 있는 김상근 교수. 그런데 그와 사적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줄줄이 나온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대학 2~3학년 때 그는 남대문시장에서 액세서리를 떼서 부산의 시장에서 팔면서 떼돈을 벌어 아버지께 드렸다 한다. 군대에 다녀온 후 4학년으로 복학한 그는 경주 출신의 영문과 신입생이었던 지금의 아내를 만난 지 두 번째 날 “너랑 결혼할 것 같다. 내 직감을 믿으라. 네가 나랑 결혼하면 영원히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주겠다. 나를 위해 한 끼의 밥도 안 해도 된다. 대신 네 밥은 네가 벌라”며 청혼했고, 결혼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한다. 높은 연봉을 받으며 호텔에 근무하던 아내를 “당신은 공부에 재능이 있지 않느냐”며 코넬대 박사과정에 등록시켰던 것도 김상근 교수. 코넬대와 펜실베이니아대를 거쳐 연세대 교수로 있는 아내는 겨울방학 때면 프랑스 ESSEC대에서 강의를 한다. 덕분에 유럽미술관 순례를 할 수 있었다 한다. 조금의 논리적 비약도 허용하지 않는 전형적인 좌뇌형 인간인 아내와 함께 책을 쓰면서 너무 힘들었다는 그는 마키아벨리 책을 아내에게 바쳤다. “내가 쓴 책에 대해 단 한 번도 코멘트를 해주지 않은 아내의 철저한 무관심과 무자비한 외면을 참고 견디면서 마키아벨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면서. 이제까지 그의 삶을 보면 미리 계획을 세우기보다 열정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면서 몰입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도 “미래의 내가 정말 궁금하다”고 한다.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도 그는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네 열정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라”고 한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