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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역사문화관’을 구경하고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햇다. 비가 제법 내렸지만 대책이 없어 그냥 안압지로 갔다. 안압지 정문앞에 연꽃밭이 있는데 우산들고 사진찍기가 불편해 패스하고 안압지 뒤쪽 연꽃밭으로 갔다. 연꽃밭 가기전에 부용화밭이 있는데 거의 피지 않았다. 핀 사진 몇장만 찍고 연꽃을 찍으로 가니 역시 개화는 반도 안되었다. 날씨 좋을 때 다시 올거라 작정했지만 이 더위에 무리라 생각해서 숙고 중이다. 비를 두드려 맞아가며 대강 사진찍고 길옆으로 나오니 연꽃밭 주위에 울타리가 쳐저 있었다. 주위 상인에게 왜 울타리를 쳤느냐고 물어보니 안압지와 연계해서 입장료를 받을려고 쳤다고 했다. 앞으로 첨성대가 있는 동부사적지구에도 울타리를 칠지도 모르겠다. 철철히 꽃을 심고 가꾸니까 돈을 받는것도 뭐라 할 수 없지만 공짜가 좋은데... 정부가 경주에 지원하는 예산을 팍 줄였다는 소문도... 첨성대 근처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심어져 있는데 대강 구경하고 점심 먹으로 갔다. 경주시는 면적 840㎡에 지나지 않았던 단지에서 올해 3,330㎡ 면적에 핑크뮬리를 추가 식재해 면적이 크게 확장되어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단지를 조성했다.
이번에 확대된 단지에는 주변 사적지와 어우러지는 포토존 조성 및 꽃단지 내 원활한 관람을 위한 로드길을 정비해,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날씨가 너무 덥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놓고 방콕을 하는 것도 고역이다. 7월 19일 일요일 지난번 덜핀 연꽃과 부용화를 보기 위하여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9시에 경주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분황사에 도착하였다.
지난번 아름다웠던 백일홍은 더위에 시들어 가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대강 사진을 찍고 걸어서 안압자로 이동하였다. 안압지에는 지난번에 덜 피었던 부용화가 만개하여 화사함을 자랑하고 있었고 연꽃도 좀 많이 피어 있었다.
더워서 오래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 물읗 많이 마시고 서둘러 식사하러 갔다. 경주구황동당간지주(慶州九黃洞幢竿支柱)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옛날 절에서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았던 깃대를 당간 이라고 하는데, 이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양옆에 세운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이 당간지주는 분황사(芬皇寺)바로 남쪽에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높이는 360cm이다. 양 기둥 사이에는 동쪽으로 향한 돌거북이(竿臺)가 있는데 당간의 받침돌로 돌 거북이를 배치한 것은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기둥의 일반적인 형태이며 3개의 구멍(竿孔)을 설치하여 양 기둥이 서로 관통하도록 조성되어 있다. 이 당간지주는 황룡사(皇龍寺)것이 아니라 분황사 소유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인다. 경주 황룡사지 (慶州 麒皇龍寺址) 사적 제6호
신라 진흥왕(眞興王)14년(553년)에 월성의 동북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사찰로 고쳐 짓게 하여 17년 만에 완성하고, 절 이름을 황룡사라 하였다. 진흥왕 35년(374년)에 5m가 넘는 주존불(主尊佛)인 금동삼존불을 만들고, 선덕여왕(善德女王)14년(645년)에는 자장의 권유로 백제의 기술자인 아비지(阿非知)를 초청하여 9층 목탑을 완성 시켰다. 이와 같이 황룡사는 4대 93년간에 걸친 국가사업으로 조성된 큰 절이었다. 그러나 고려 고종(高宗)25년(238년)에 몽골의 침입을 받아 불타 없어졌으며, 지금은 옛 터만 남아 있다 1976년부터 8년간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4만여 점에 달하는 우수한 작품이 출토되었으며, 당초 늪지를 매립하여 대지를 마련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사찰은 중문과 목탑, 금당 강당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일탑식 배치를 하였으나 금당 좌우에 작은 금당이 배치되는 1탑 3금당식으로 바뀌었다. 황룡사 창건설화(皇龍寺 創建說話)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553년(진흥왕 14년) 2월에 진흥왕이 소사(所司)에 명하여 월성 동쪽에 늪지대를 매립하여 새로운 궁궐을 짓고자 했는데 거기에서 황룡이 나타 났으므로 왕은 이를 이상히여겨 불사(佛寺)로 고쳐 짓게 하였으며 그 이름을 황룡사(皇龍寺) 라 하고, 기축년(569년)에 이르러 담을 쌓아 17년 만에 완성했다. 황룡사 창건설화는 이 절이 호국·호법의 신인 용과 관련지어져 있는 것입을 볼 수 있으며, 황룡사 창건 이래 9층 목탑이 완성되기까지 100여년이 걸렸다.
* 용(龍, Dragon)은 동·서양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로서 신성한 힘을 지녔다고 하여 우주만물의 질서를 상징하기도 한다. 불교가 성립하면서 인도의 토착신앙인 뱀을 신격화한 용신이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 신으로 수용되어, 사찰에서 용의 형상을 많이 볼 수 있다. 경주에 갈 때 마다 먹는 것이 신경 쓰였는데 대릉원 정문에 있는 ‘교동집밥‘이 친절하고 맛도 좋다고 해서 들렸다. 교동집밥은 대릉원 주차징옆 편의점 2층에 위치하고 있어서 테라스에서 첨성대쪽 경치가 한눈에 보인다. 이 식당 메뉴는 가정식으로 3가지가 준비되어 있고 그중에 고를 수 있는데 메뉴는 메주 바귄다고 한다. 나는 ‘차돌박이 된장찌게와 고등어 구이’를 마짱은 ‘석쇠장어구이 덧밥’을 주문했다. 식사후 마짱은 맛있다고 했는데 나는 맛이 별로였다. 차라리 ‘고추장 삼겹살 구이를’ 주문했었으면 했다. 늙은 아버지와 아들이야기
애비야 나 삼 만원만 주고 가거라 없어요.
80살이 넘은 아버지가 회사에 출근하는 아들에게 사정을 했건만 아들은 냉정하게 거절을 하였다.
늙은 아버지는 이웃 노인들과 어울리다 얻어만 먹어 온 소주를 한 번이라도 갚아주고 싶었다.
며느리가 설거지를 하다 부자간의 대화와 시아버지의 그늘진 얼굴을 훔쳐본 며느리는 한참 무엇을 생각하더니 밖으로 달려나갔다.
한참만에 버스를 막 타려는 남편을 불려세워 숨찬 소리로 손을 내밀었다 여보 돈 좀 주고가요 뭐 하게? 얘들 옷도 사입히고 여고 동창생 계모임도 있어요
안주머니에서 오만 원 가량을 꺼내 헤아리며 담배값이 차값이 어쩌니 대포값이 어쩌니 하는 것을 몽땅 빼았아 차비만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파트 양지바른 벽에 기대 하늘만 바라보는 시아버지께 돈을 몽땅 내밀었다. 아버님, 이 돈으로 드시고 싶은 소주도 잡수시고 친구들과 대공원에도 가고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
연신 눈물이 쏟아지려는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고마워서 말을 잊은 채 어떻게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날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왜 얘들 얼굴에 꾸중물이 찌찌하게 이렇게 더렵느냐고 말했다 그 이튿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얘들 꼴이 더러워져가고 있었다. 새까만 손등이며, 며칠전까지만 해도 반드레하던 얘들이 거지꼴로 변해갔다
남편은 화를 벌컥 내어 고함을 쳤다. 여편네가 하루 종일 뭐하길래 얘들 꼴을 저렇게 만들어 놓았어 남편의 화난 소리를 듣고 있던 아내도 화를 내어 남편에게 소리를 질렸다.
저 얘들을 곱게 키워봐야 당신이 아버지께 냉정히 돈 삼만 원을 거절했듯이 우리가 늙어서 삼만 원 달래도 안줄거 아니예요? 당신은 뭣 때문에 얘들을 깨끗이 키우려고 해요?
아내에게 기가 질려버린 남편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늙은 아버지의 방문을 열었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의 무정함을 잊은 채 어서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늙은 아버지는 회사일이 고되지 않느냐? 환절기가 되었으니 감기에 조심해야 한다 고 어린애처럼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더 없는 사랑에 아들은 그만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다.
속담에도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는 말이있다. 자식이 배부르고 따뜻한가를 늘 부모는 묻지만 부모의 배고프고 추운 것은 자식들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자식들의 효성이 아무리 지극해도 부모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가 짐이 되고 효가 귀찮게만 생각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효는 옛부터 가족을 사랑으로 묶는 밧줄과 같은 것이다. 효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은 부모가 자식에게 효를 내리 실천해 모범을 보이는 일이 꼭 필요하다. |